서울에서 그것도 예술의전당에서 엄청난 규모의 그래피티 작가 7인의 기획 전시 <위대한 낙서>가 열린다. 그래피티라는 단어가 세상에 없던 시절부터 스프레이 통을 들고 뒷골목을 헤집던 이들, 거리 예술과 같이 자라고 같이 나이 든 작가들. 눈은 침침해졌을지언정 하는 짓은 여전히 철부지 같아서 청춘은 개념미술과 같이 시대와 무관함을 증명한다. 그중 닉 워커는 영국 브리스톨과 뉴욕을 오가며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활동하는 그래피티 장인 중 하나다. 이번 전시를 위해 자신의 대표작을 모두 새로 작업했다. 왜 기존에 작업한 작품들을 가져오지 않았나 어떤 작품을 보여줄지 선택할 때 가장 유명한 작업부터 불과 두 달 전 작업까지 포함했고, 나를 잘 설명할 수 있는 것들로 골랐다. 분신과 같은 작품들이고 오랜 세월 동안 그려왔기에 다시 그려 현재 관점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분신과도 같은 작품이란 물론 ‘반달’ 시리즈겠다 2006년에 만든 캐릭터 ‘반달(Vandal)’은 우산을 쓰고 등을 돌린 채 돌아다니는 도시의 방관자다. 캔버스 밖 거리로 갔으니, 어디서든 맞닥뜨릴 수 있는 남자다. 이 남자를 시퀀스로 스토리가 이어진다. ‘모닝 애프터’ 시리즈는 런던, 파리, 도쿄, 뉴욕 등 큰 도시의 랜드마크 속에 은행원처럼 보이는 핀 스트라이프 수트를 입은 남자가 등장한다. 어떤 그래피티 아티스트도 이런 차림인 사람은 없다. 사람들은 특정 직업을 가진 사람이 어떤 옷을 입고 어떤 모자를 써야 하는지에 대한 편견이 있다. 내가 만든 슈퍼히어로는 저널리즘이 만든 방식 혹은 선입견과는 달라야 했고 그렇게 해서 반달이 나왔다.  영국 신사 같은 반달을 보면 당신이 브리스톨 출신이란 걸 떠올리게 된다. 1980년대의 브리스톨은 어떤 도시였나 당시 브리스톨은 꽤 멋진 곳이었다. 80년대에 사람들은 무엇이든 스스로 찾았다. 대부분 뉴욕에서 전해진 음악, 특히 힙합, 브레이킹, 그래피티 같은 요소들로부터 브리스톨 만의 규칙을 찾아갔던 것 같다. 스페셜 K’s란 카페에서 친구들과 ‘와일드 번치’란 이름의 크루를 만들어 주로 술 마시고 같이 놀고, 주말이면 소파 하나와 낡고 큰 스피커들이 아무렇게나 놓인 빈집에 모여 하우스 파티를 했다. 그때는 뭘 해도 얻는 게 있었다. 돌이켜보면 멋진 날들이었다. 브리스톨엔 재능 있는 젊은 친구들이 많았다. 서로 각자의 인터뷰마다 여러 번 언급한 3D(매시브 어택의 멤버 로버트 델 나자의 애칭, 그 역시 그래피티 아티스트다), 잉키(Inkie; 그래피티 아티스트) 등을 그때 다 만났다. 우린 주로 공짜로 공연하러 다니거나 새벽 4~5시에 길거리를 쏘다녔다. 음악과 뮤직비디오들에 영향 받아 그래피티를 하게 된 건 운명이었나 보다 내 안에 어떤 불덩이 같은 게 있었다.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벽이나 거리를 보고 너무나 멋있어서 ‘와 나도 스프레이 캔으로 뭐라도 해봐야겠다’라고 생각했다. 처음엔 거지 같은 걸 그렸고(웃음), 정보를 찾아보면서 노력하다 보니까 기술이 늘게 된 것뿐이다. 뭘 이렇게 열심히 해 본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나중엔 멈출 수 없었다. 그렇게 그래피티가 나를 지배했다. 아직까지 이렇게 작업하고 있다는 게 놀랍기도 하다. 내가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는 서울 예술의전당에 <엘르> 코리아와 마주 앉아서 오븐 스파게티를 먹고 있을 줄 누가 알았겠나. 브리틀이 낳은 또 다른 슈퍼스타 뱅크시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초기에 내 작업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공공연히 언급했기에 사람들이 우릴 연결해서 거론하는 걸 잘 안다. 똑똑한 사람이다. 마케팅적으로도 매우. 죽은 사람을 제외하면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얼간이 어쩌면 예술가일 테고. 스텐실 기법과 위트 있는 작업 등 비슷한 점에 대해 진지하게 묻는다면 나보단 그가 좀 더 정치적인 작업을 한다는 차이를 거론할 수 있겠지만 사람들은 그냥 유명한 이름 하나만 알면 무턱대고 “네가 뱅크시니? 뱅크시를 가르쳤니?” 같은 질문을 한다. 그건 나한테 총을 겨누는 것과 같은 거다(웃음). 뱅크시와 당신의 연결 고리인 스텐실 때문이겠지 스텐실은 크든 작든 당신이 그리고 싶은 모든 이미지를 그릴 수 있다. 거리 어디에나 원하는 만큼 같은 작업을 반복할 수도 있다. 프리핸드(스프레이로 직접 그림 그리는 방식) 스타일에 비해 여러 번 그릴 수 있다는 게 좋다. 패턴만 잘 가지고 있으면 영원히 다시 그릴 수 있는 시간의 뱀파이어다. 거리에서 작업할 때는 스텐실이라 해도 섬세하게 공들여 작업할 수가 없다. 한 판만 가져가서 ‘슈우욱’ 뿌리고 사라져야 한다(경찰은 우리가 총을 갖고 있지 않아도 현장에서 잡히면 우리를 망나니처럼 심하게 다루곤 했다). 지금은 작업 과정이 아주 복잡한, 여러 겹의 패턴을 덧대는 작업도 얼마든지 구현할 수 있다. 요즘 노동은 기계가 대신할 수도 있다. 그래피티에서도 레이저 커팅이라든지 가끔 내가 스텐실의 번거로움에 대해 ‘F ***’이라고 중얼거리지만 여전히 내가 가장 잘하고 좋아하는 작업 방식이다. 아직도 패턴을 펜으로 그린 후 별다른 대단한 작업 도구 없이 사무용 커터로 자르고 거의 모든 과정을 손으로 직접 한다. 어시스턴트도 없다. 스프레이를 여러 번 덧뿌릴 때 아주 섬세하게 작업하지 않으면 이중으로 라인이 생겨 작업을 망친다. 그런데 난 굳이 완벽해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좀 더 오가닉한 결과가 나와도 상관없달까. 최근작인 ‘스모크’ 시리즈는 마치 연기가 피어날 때 어떤 모양이 생길지 모르는 것처럼 자유롭다. 심슨이나 모나리자 같은 문화적 아이콘을 위트 있게 바꾸는 작업을 많이 했다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내 작품을 보고 웃을 수 있으면 된 거다. 누구도 해치지 않는 작업 아닌가? 우리가 ‘모나 심슨’ 작업을 했을 때 ‘더 이상 모나리자를 가지고 새로운 걸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을 어디서 들었다. 나는 뭔가 더 있을 것 같았고, 그래서 꾸준히 모나리자를 어떻게든 배배 꼬아볼 방법을 고민하다 ‘무나 리자’가 나왔다. 이제는 진짜 더 이상 모나리자를 가지고 새로운 작업을 할 수 없을 거다. 이제 진짜 끝(웃음)! 거리에 그림을 그리고 도망치던 때와 지금의 당신은 많이 달라졌나 별로. 계약서라든가 그런 데 내 이름이 쓰여 있다고 해서 달라진 건 없다. 이거 그리면 얼마나 팔릴까? 그런 생각도 안 한다. 대신 당시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의 협업 기회가 생기는 건 좋다. 예를 들어 이번 서울 전시를 위해 크래시와 내가 한 캔버스 안에 같이 그린 작품이 있다. 그런 즐거운 작업의 기회가 달라진 점이랄까. 서울이 스트리트 아트에 적합한 도시는 아니다. 간판이 너무 많고 현란하고 빈 벽이란 걸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다 서울과 그래피티가 별로 안 어울린다는 건 나도 안다. 전시란 게 필요한 이유가 바로 그거다. 사람들을 ‘알아차리게’ 만드는 것. 다른 스타일에 눈뜨게 하고. 매일 9시 출근하는 보통 사람들에 대해서 잘 알고, 나란 인간은 못할 일이기에 얼마나 그들이 대단한지도 잘 안다. 하지만 내게도 나만의 지루함을 가진 일상이 있고 완성한 후에 다 지워버리고 싶은 작품이 나오는 날도 있다. 그런 라이프 속에 아이디어를 불어넣는 것은 이 세상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필요하다. 그게 그래피티 정신인 것 같다 예전엔 누구도 우리가 뭘 하는지, 누구인지 몰랐다. 아니 거리의 그래피티란 건 실제로 우리가 누군지 몰라야 했다. 그래야 신고당하지 않으니까(웃음). 우리도 우리 밖의 사람들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는 의외의 장소에서 의외의 예술을 통해 그들과 만나게 됐고 의미를 갖게 됐다. 그게 그래피티 아트다.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밀폐된 실내에서 스프레이를 뿌려대는데 왜 마스크를 안 쓰나 게을러서. 이번 생은 이미 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