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원더랜드 포틀랜드 | 엘르코리아 (ELLE KOREA)

뭐든 예측할 수 없는 삶처럼 어느 날 갑자기 추워진 포틀랜드의 겨울 날씨. 그곳에서 맞이한 눈의 날에 전하는 소망.::포틀랜드,겨울,눈,비,선현경,이우일,눈의날,스타워즈,로그원,스타워즈스토리,2017,소망,희망,엘르,elle.co.kr:: | 포틀랜드,겨울,눈,비,선현경

 포틀랜드에서의 두 번째 겨울이다. 사계 중 겨울을 가장 좋아하는 딸은 대부분의 포틀랜드 생활과 환경에 대해 만족했는데, 한 가지 아쉬워하던 게 있었다. 겨울 같지 않은 겨울. 주야장천 비만 내리고 그리 춥지 않은, 미적지근한 겨울 날씨 말이다. 사실 남편과 나는 이런 겨울을 좋아했다. 서울에선 오리털 점퍼에 털신을 신고 지내도 손끝이 시린 주택에서 지내왔기에 아무리 비가 많이 와도 춥지 않은 이런 겨울에 감사할 정도다. 하지만 딸은 늘 그게 불만이었다. 겨울 코트를 입고 나가면 너무 더워서 땀이 난다고 투정을 했다. 그러고선 옷장 안에서 먼지만 쌓인 겨울옷들을 슬프게 바라봤다. 유난히 겨울 아이템을 사랑하는 딸이었다. 젊어서 아직 추위를 모르는 모양이다. 아니, 몰라도 너무 모른다. 그랬던 포틀랜드의 겨울이 올해엔 꽤 추워졌다. 딸애가 그토록 추운 겨울을 간절히 바랐기 때문일까? 마치 지난해와는 다른 도시에 와 있는 게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다. 그렇게 끝없이 내리던 비도 줄었다. 대신 추워진 날씨 덕에 간간이 눈이 온다. 포틀랜드는 눈이 오면 ‘눈의 날(Snow Day)’라는 이름이 붙는다. 뭘 이름까지 붙이느냐 하면 눈의 날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엔 일월 초 정도에 눈이 단 한 번 내렸는데, 도시의 모든 게 멈췄다. 당시 딸은 포틀랜드에서 처음 학교에 다니게 된 터라 개학을 꽤 설레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내린 눈 덕에 도로의 모든 차가 살살 기어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학교에서 이메일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눈이 내린 첫날은 눈이 와서 학교 문을 닫으니 학교에 오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다음날엔 아직 눈이 안 녹아서 문을 닫는다며 내일을 기약했다. 그 다음날은 눈이 녹기 시작해 미끄러워서 업무를 못 본다고 다시 이메일이 왔다. 무려 삼일이나 학교가 놀았다. 얼마나 어마어마하게 눈이 왔냐고? 우리가 서울에서 겪은 눈과 비교하자면 그냥 내리다가 만 수준이었다. 싸리 눈이 오다 말 다 해 3cm도 안 되게 쌓인 정도였다. 하지만 친환경을 생각하는 이곳 포틀랜드에서는 화학 제설제를 거의 쓰지 않는다. 도로에 뭔가를 뿌리긴 하는데, 차가 부식되지 않을 정도로 약한 친환경 제설제를 쓴다고 한다. 그러니 뿌려도 눈이 녹을 리가 없다. 눈이 오면 당연하다는 듯이 모든 게 천천히 돌아가거나 안 돌아간다. 모두 그 사실을 아무 거리낌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아니, 거리낌 없다기보다 오히려 즐거이 받아들이는 느낌이다. 얼마 전 기상청 웹사이트에 올라온 눈을 대처하는 자세를 읽고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눈이 밖에 내리는데, 당신이 그 눈을 피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무조건 피해라.” 피할 수 있다면 피하자는 눈에 대한 자세. 역시 ‘포틀랜드 하다.’ 요즘 여기 현지인들은 이렇게 춥고 눈이 많이 내리는 포틀랜드는 근 5년 만에 처음이라며 혀를 내두르며 추워한다. 엘리베이터에서 눈만 마주치면 다들 너무 춥다는 날씨 이야기뿐이다. 11월부터 눈이 몇 번 내리더니 아직 12월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서너 차례는 눈이 내린 듯하다. 하지만 우린 이 두 번째 겨울이 지난해와 달라 좋다. 모든 게 정지된 눈 오는 포틀랜드는 유난히 커다란 나무가 많아 동화의 한 장면 같다. 며칠 전에도 눈이 조금 내렸다고 딸의 학교가 문을 닫았다. 눈이 와서 못 오는 택배들, 문 닫는 학교와 관공서, 달리다 멈춰버리는 트램과 아예 배차 시간이 달라져버린 버스. 덕분에 할 일이 없어져 심심해진 딸이 산책이나 가자기에 우리 둘은 하얀 포틀랜드를 걸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케이크를 사러 근처 빵집에 들어가려다 문득 빵집이나 푸드 트럭, 서점, 카페는 다 문을 열고 장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역시 먹고 노는 공간은 눈과는 상관없다. 그것도 역시 ‘포틀랜드 하다’. 딸과 함께 케이크를 사들고 나오는데, 빵집 앞의 케이블카가 오늘만 공짜라며, 우리를 유혹했다. 사실 그 케이블카를 늘 타보고 싶긴 했다. 그동안 안 탄 이유는 그 케이블카가 단지 병원으로 가는 교통수단이라는 걸 알고부터다. 오직 병원으로 가는 교통수단을 돈까지 내가며(고작해야 5달러지만) 탈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눈이 와서 공짜라니 좋아서 딸에게 타고 가자고 졸랐다. 딸은 유치한 엄마 덕에 쓸데없는 공짜 케이블카를 탄다며 내키지 않아 했다. 하지만 일단 타고나니 아빠와 함께하지 못함을 아쉬워했다. 공중에서 내려다본 하얀 포틀랜드의 집들은 플레이 모빌의 장난감 집처럼 아기자기해 보인다. 케이블카 이름은 공중 트램(Aerial Tram). 어쩐지 이름을 알고 나니 나중에 돈을 내서라도 남편과 한번 타보고 싶어졌다. 딸과 함께 새하얀 포틀랜드를 하늘에서 바라보며 뜬금없는 병원 투어를 하고 나니 벌써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여름엔 밤 10시가 넘어서야 어두워지기 시작했는데, 겨울의 포틀랜드는 오후 4시만 되면 하늘이 캄캄해지기 시작한다. 포틀랜드의 겨울이 추워서 만족스럽냐고 딸에게 물어보니 이곳의 겨울이 이 정도로 추워질 줄은 정말 몰랐다며 미소를 짓는다. 우린 모른다. 항상 똑같을 것만 같은 포틀랜드의 겨울 날씨도 이렇게 예측을 하지 못하는데,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감히 예측하는가? 하지만 2017년엔 우리에게 정말 희망이 필요하다. 우리가 모두 바라는 진짜 새로운 2017년이 오기를 소망해본다. 얼마 전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Rogue One: A Star Wars Story)>을 보고나니 자꾸 생각하는 대사처럼 ‘포스가 함께 하길(May the force be with you!)’PROFILE 동화 작가 선현경(@sunny_7008)은 만능 재주꾼으로 지난해 포틀랜드로 긴 여행을 떠났다. 포틀랜드에서도 변함없이 만화가 남편 이우일(@i00111)과 딸 은서(@e_eunseooo), 고양이 카프카를 관찰하면서 별탈 없는 일상을 유지하고 있다. 이전편 보러가기 >  다음편 보러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