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글자’에 대한 첫 대중적 환기라는 점에서 아파트 글자는 비(非) 디자인 전공자의 눈에도 여러모로 의미가 있는 기록이다. 전문가의 시선에서는 70~80년대의 타이포그래피를 살펴볼 수 있는 수집물일 수도 있겠지만, 처음 <아파트 글자>를 접할 대중에겐 이 책이 어떻게 받아들여지길 바라나 시간의 때가 묻어있는 것들, 점점 사라져가는 것들은 우리에게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오래된 아파트의 낡고 촌스러운 글자 또한 마찬가지다. 아파트 글자 사진을 보며 독자는 자신의 추억을 떠올릴 거다. 내가 살던 동네도 다시 보게 되고. 개인의 경험은 대상에 대한 호기심을 부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마냥 향수로만 받아들여야 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글자는 도시 속에서 살고 있다. 도시가 커지고 복잡해지면 글자도 커지고 화려해진다. 아파트 글자를 관찰하는 것은 시대와 장소를 읽어내는 과정이었다. 아파트에 일종의 ‘상호’가 크게 ‘그려져’ 있는 나라는 아마도 찾기 힘들 것 같다. 한국의 독특한 시각문화라는 걸 말하고 싶다. 그리고 왜 독특할까 하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한국적 주거형태인 아파트에 투영된 욕망, 개발주의와 성장주의가 빚어낸 표상으로서의 아파트, 이를 보다 가시화하기 위해 시도된 아파트 브랜딩과 네이밍.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아파트 글자를 바라보고 싶다.매일 같이 지나치던 경북 아파트가 글자 수집의 첫 출발점이 되었다고 들었다. 대구라는, 서울과 다른 문화적 풍토를 지닌 곳에 유난히 이렇듯 과거의 아파트 글자가 많이 남아 있는 이유가 뭘까? 우리가 잘 모르는, 지역만의 분위기나 아파트 글자 수집을 통해 새로이 발견하게 된 내용이 있다면 첫째, 오래된 아파트가 많다는 것은 재건축 또는 재개발이 더디다는 것과 연결된다. 서울은 새로 지어진 건물이 많은 편이다. 그에 비해 지방 도시는 변화의 속도가 느린 편이다. 서울에선 고층 건물에 가려 상대적으로 저층의 오래된 아파트들이 시야에 안 들어왔던 반면, 대구에서는 여전히 오래된 판상형(=일자형, 널빤지꼴형) 저층 아파트들이 존재하더라. 길을 걷다 보면 아파트 글자가 바로 시야에 포착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서울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거리감’이었다. 또 하나는, 지역건설사들의 고군분투가 눈에 들어왔다. <아파트 글자> 책에 담긴 글자들은 대부분 레터링 시대, 그러니까 70~80년대 레터링 시대의 유산이다. 지역건설사들은 대형건설사들을 모방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 보니 ‘키치’라고 부를 수 있는 어떤 전형이 눈에 띄었다. 조악하기도 하고 매우 장식적이기도 하고. 브랜딩의 개념이 자리 잡기 이전, 레터링을 통해 어떻게든 건설사를 홍보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아파트 글자 이면에 읽히더라.정말 많은 곳을 아파트 수집을 목적으로 스쳐 지나갔겠다. 가장 인상 깊었던 지역이나 시간이 지나도 지키고 싶은 아파트 글자가 있다면 대구 시지에 있는 경북 아파트와 대구 신청동에 있는 광명 아파트. 입체로 그려 놓은 글자디자인의 완성도가 훌륭하다. 아파트는 아니지만, 대구 대안동에 있는 건물에 색깔 있는 타일 조각으로 ‘대안별관’이라고 써놓은 글자가 있다. 얼마전 건물을 리노베이션하면서 흰색 페인트를 덮어씌웠다. 무척 아까웠다. 정재완 씨는 ‘거리글자박물관’을 만들고 싶은 꿈도 있지만 나는 수집과 보관이 너무 걱정될 뿐이다. 대형 창고가 필요한 일일 테니까.몇 가지 편집 기준으로 그간 촬영한 사진 중 일부를 추려서 책으로 엮어냈다. 혹시 그 기준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까 우선 글자 디자인의 완성도가 좋은 사진을 골랐다. 또 펼침 면에 좌우 어울림이 좋은 사진들을 추렸다. 병치나 대조 등 두 장의 사진들이 한 펼침에서 만날 때, 고려해야 할 몇 가지 사항들이 있다. 그것에 맞게 사진들을 조합하고 선별할 수밖에 없었다. 책은 펼쳐서 보게 되고 펼침면의 조화가 중요하기 때문이다.앞으로 대구 외에 다른 곳의 아파트 글자도 수집해 낼 계획은 없나 아파트 글자를 수집하다 보니 다른 도시에 가면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게 아파트 글자였다. 돌아다니다 보니 ‘부산’ ‘인천’ ‘서울’ 등 1960~80년대 압축 팽창을 겪은 도시들은 흥미로운 아파트 글자의 ‘보고’라는 걸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여력이 된다면 여타 다른 도시의 아파트 글자를 꾸준히 모을 생각이다. 도시가 품고 있는 고유의 이름 짓기와 디자인이 있으리라 추측해본다.어쩌다 대구에서 터를 잡게 되었나. 서울이 아닌 곳, 대구에서 사월의 눈과 같은 사진 전문 프레스가 터를 잡으면서 문화적으로 풍요로워지는 광경을 보는 게 좋다 ‘탈서울’을 의도했던 것은 아니다. 대안적 삶을 위해 일부러 서울을 떠나는 분들도 계시는데, 우리의 이주는 오히려 수동적이었다. 정재완 씨와 나는 부부인데, 정재완 씨의 직장이 대구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가족이 이곳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오자마자 한 것은 작업실 찾기였다. 서울에서는 임대료가 비싸서 엄두를 못 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이곳에서 운 좋게 집과 가까운 작업실을 구하게 되었고 이곳에서 이제 곧 일곱 번째 사진 책을 준비하게 되었다. 대구 삶의 아쉬움이자 불편함이라면 많은 문화생활이 지나치게 서울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특히, 현대 미술 전시 등), 인쇄소와 제본소 또한 서울에 모여 있다는 것, 마지막으로 연고가 없다 보니 저녁에는 일과 관련된 일정을 잡기는커녕 회식조차도 힘들다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조용하게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건 대구 삶에서 누리는 가장 큰 혜택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