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내려가 살겠노라 선언했을 때, 나의 아버지가 내놓으신 첫 문장. “시골에서 살면 굶어죽을 일은 없겠지.” 순간 혼란스러웠다. 거기 가서 어쩌려고? 너무 성급한 거 아니냐? 좋은 직장을 왜들 때려치웠니? 아직은 좀 더 벌어서 저축해야 할 때가 아니냐? 와 같은 질문이 아닌, 굶어죽진 않을 거라는 희미하고도 근거 없는 예언이라니. 예상 못한 반응에 놀랐다. 그 의중을 헤아리기 어려웠다. 고집불통 둘째딸이 결정을 내렸으니 어찌해볼 수 없다는 것을 잘 아는 아비의 한숨 같은 것이었을까. 아니다. 아버지의 인생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것은 진심일거라는 생각에 이른다. 재물을 좇아 살아온 삶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명예를 얻고자 했던 것도 아니다. 평생을 열심히 노동했고 칠순을 코앞에 둔 지금도 공장을 운영하고 있지만, 또 회사의 규모도 꽤 커졌지만 여전히 당신 손에 쥔 것은 별로 없는 사람. 당신 이름으로 된 집도 새 차도 가져본 적 없다. 계절별로 옷은 한두 벌 정도. 어떤 신발은 십 년을 넘게 신어 식구들 모두가 그 두 짝의 유물을 내다 버리는 것이 염원이던 시절도 있었다. 엄마가 아버지의 새 옷이라도 사오는 날엔 불호령이 떨어졌다. 새 옷은 다시 가게로. 그리고 환불. 같은 시간에 출근해 같은 시간에 퇴근하고 저녁식사, 산책, 독서, 성경공부, 취침. 그리고 다시 출근. 매우 단순한 패턴을 반복하는 생활이었다. 그의 인생에 술, 담배, 골프, 친구, 쇼핑 같은 것은 없었다.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반드시 지켜지는 약속’같은 사람이었다. 그 약속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식구(食口)들이 따뜻한 집에서 세 끼 먹고 사는 것. 그 이외의 것에는 이상하리만치 둔하달까 무심하달까.손에 쥔 것이 없다고 가난한 것인가. 평생 한 가지를 연구하며 만들어 온 아버지에게는 꼿꼿한 자부심이 있다. 그것은 물질을 많이 얻는다고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초등학생 때였나, 아버지가 실험중이던 어떤 제품의 샘플을 집에 가져와 비밀스레 내게 보여주던 순간, 빛나던 그의 눈을 기억한다. 소년처럼 맑은 얼굴. 그건 평생 누구에게 아부해본 적 없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와 같은 삶의 태도는 하동으로 이사하면서 우리가 꼭 이루고자 했던 것이기도 하다. 떳떳한 돈을 조금 벌어 조금씩 쓰면서 사는 것. 대신 우리의 시간을 더 많이 갖는 것. ‘직장’이 아닌 ‘직업’을 갖게 되는 것. 도시든 시골이든 한국이든 외국이든, 세상 어디에 떨어뜨려 놓아도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 그것은 젊으니까 한번쯤 해볼 수 있는 것. 일종의 실험이다. 자발적인 가난이다. 기대치를 낮추면 처음에는 허무해지다가 글쎄 왜인지 용기가 생긴다. “굶어 죽을 일은 없겠지” 아버지의 문장은 내내 가슴 한켠에 남아 묘한 희망을 주는 말이 되었다. 굶어죽지만 않으면 돼, 굶어죽지만 않으면 된단다. 굶어죽지 않으려는 첫 번째 노력은 이미 시작되었다. 농어촌민박사업자. 농어촌에 거주하는 이들에게 부수입을 제공하려는 목적을 가진 농어촌민박사업자 제도는 간단한 신고만으로 군에서 민박 허가를 받을 수 있는 제도다. 몇 가지 조건만 만족하면 된다. 윗채와 분리되어 있는 작은 아래채를 따로 고쳐 여행객에게 빌려주기로 했다. 그것으로 우선 최소한의 생활비를 마련한다. 그리고 높은 마루 밑의 공간, 그 옛날 외양간으로 쓰던 창고를 둘이 고쳐 작업실로 꾸몄다. 이곳에서 남편은 몇 가지 물건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손으로 물건을 만들고, 나는 약간의 글을 쓰고, 함께 맛있는 것을 만들어 먹고, 몇몇 사람들을 맞이하며 이어가는 단순한 생활. 그것이 우리의 일상이 될 것이다. 무례한 호기심에 이젠 속 시원히 대답하리. “뭐 먹고 사냐고요? 쌀밥 먹고 잘 삽니다.”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