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쉐린 가이드> 왈가왈부 | 엘르코리아 (ELLE KOREA)

&lt;미쉐린 가이드&gt; 서울편이 발표된 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서울엔 앞으로 반드시 더 좋은 식당이 생긴다는 것::미쉐린가이드,서울,레스토랑,미식가,식당,쉐프,푸드,엘르,elle.co.kr:: | 미쉐린가이드,서울,레스토랑,미식가,식당

한국에서 먹는 것 빼면 할 얘기가 없다. 먹방, 맛집, 먹스타그램…. 취미가 맛집 찾아 다니기, 일상은 오늘 먹은 것, 소개팅이든 회식이든 미팅이든 모든 자리의 성패는 무엇을 먹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하지만 그렇게 먹고 또 먹는 데 비해 우리는 참으로 비루한 기준을 가졌다. 블로거들의 가성비와 협찬 사이의 위태로운 소개 혹은 ‘방송에 나온 집’이 전부고, 푸드 크리틱이나 푸드 칼럼니스트들은 말의 무게를 충분히 얻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서울은 미식으로 좀 다른 주목을 받았어야 하는 게 맞고, 서울에서 식당은 좀 다른 해석을 받아야 하는 게 맞다. 시기적으로 &lt;미쉐린 가이드&gt; 서울판이 나오기 전부터 업계와 언론과 사람들의 관심을 따갑게 받았던 이유와도 일맥상통한다. 충분히 달궈진 불판이 있으니, 이 위에 산해진미를 먹을 젓가락을 얹을 차례다. 한 셰프도 동의했다. “셰프들도 무척 관심이 많았다. 올해가 처음이고, 외국에서 이미 신뢰도 있는 평가서였기에 들어온다는 것 자체가 긴장으로 다가왔다. 나오기 전에 어디가 될 것인가에 대해 한식에 힘을 많이 실어줄 것이라고들 추측했다.” &lt;미쉐린 가이드&gt;는 1900년, 타이어 회사 미쉐린 창업자가 운전자에게 필요한 도로 법규와 타이어 정보 옆에 운전 중 들를 만한 식당 정보를 실은 것이 그 시초다. 하지만 이 식당 소개가 호평을 받았고 1922년부터 식당만을 담은 가이드를 유료로 팔기 시작하며 별을 부여하는 제도가 생겼다. 기준은 요리 재료의 수준, 요리법과 풍미의 완벽성, 창의적인 개성, 가격에 합당한 가치, 전체 메뉴의 통일성과 언제 방문해도 변함없는 일관성이다. 이 기준에 맞춰 미쉐린이 직접 교육하고 고용한 평가원들이 식당들을 수차례 방문하는데 일반 손님과 동일하게 예약하고 식사한 후 평가를 매기고 그들의 의견을 취합해 최종 결정을 내린다. ‘스타 세션’이라는 합의를 거치는데 총괄 디렉터 주관 아래 모든 평가원들이 참석해 만장일치로 결정한다. 이견이 생긴다면 만장일치가 될 때까지 다른 평가원들이 해당 레스토랑을 여러 번 방문하기도 한다. 익명성을 위해 가명은 쓰지만, 셰프들에 의하면 영화 등에서 묘사된 대로 포크를 떨어뜨리거나 하는 드라마틱한 행동을 하진 않더라고 했다. 대신 식사를 마친 이후, ‘미쉐린에서 다녀갔다’는 것을 밝히며 가이드를 만드는 데 추가 정보를 요구하는 경우는 있다. 그렇게 매겨진 1스타는 요리가 훌륭한 식당, 2스타는 요리가 훌륭해 찾아가볼 만한 식당, 3스타는 요리가 매우 훌륭해 여행을 떠날 가치가 있는 식당이라는 각주가 붙는다. 서울에서는 1스타가 19곳, 2스타가 3곳, 3스타가 2곳 뽑혔다. 전 세계에서 3스타를 받은 곳은 전 세계 28개 도시(아시아는 4개 도시) 중에서 현재까지 111개뿐이다. &lt;미쉐린 가이드&gt;에서 별을 받은 곳들에 대한 설왕설래는 많다. 그러나 또 다른 셰프는 이번 결과가 매우 합당하고 또 예측 가능했다고 말한다. “셰프들끼리도 모두 의견이 엇갈린다. 누구는 정말 실망했다고도 했으니까.” 업계 관계자들 중 많은 이들이 동의하는 부분은 기호를 떠나 한식당 중에서 높은 기준을 스스로 세우고 충족해 온 곳들이고, 응당 별을 받을 만했다는 것이다. “돈 많이 쓴 쪽이 받았다. 개인이 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닌 레스토랑, 자본이 있는 레스토랑이 받았다는 거다. 지역과 인테리어, 그릇부터 서비스 직원까지 차림새라는 건 부모가 재벌 아니고서야 개인이 투자할 수 있는 돈이 아니다. 사실 ‘가온’, ‘라연’도 별을 받는다는 소문이 은근히 업계에 돌았다.” 1 스타는 그렇다 치고, 2 스타나 3 스타만 놓고 보면 레스토랑이 대중의 입맛을 만족하는, 말하자면 트립 어드바이저 순위와 정비례하는 식당이길 바라는 결과는 아니다. 물론 음식은 맛이 제일 중요하다. 그러나 균형과 감동, 의미를 가진 맛을 만들어내기까지의 철학은 물론이고 맛을 더 끌어올리는 데 필요한 지원이 필요한 법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예약하기 어려운 식당으로 꼽히는, 실험적인 셰프 르네 레드제피가 이끄는 코펜하겐의 ‘노마’를 예로 들어보면 쉽다. 살아 있는 개미로 신맛을 내고, 직접 채집한 버섯에서는 흙 맛이 배어 나온다. 이런 음식을 앞에 두고 ‘가성비’라는 말을 논할 수 있나? 코펜하겐을 여행하는 이들에게 노마가 최고 맛집이니 누가 가도 실패하지 않을 테니 꼭 가보라고 적은 여행서를 본 적 있는가? 이런 스타 레스토랑은 차라리 경험에 가깝다. &lt;미쉐린 가이드&gt;의 기준인 ‘여행할 가치가 있을 정도로 특별한 식사’를 서울에서 한다는 가정에 잘 들어맞을 만한 곳이라는 해석이다. 반대로 서울에서의 양식당들을 떠올릴 때는 좀 다르다. 국내에서 맛으로는 꽤 유명한 셰프나 TV 출연이 잦은 셰프들의 경우, 캐주얼한 비스트로 개념이라 요리 자체가 전혀 &lt;미쉐린 가이드&gt;의 기준에 맞지 않았기에 음식으로 패배했다기보다 고려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또 파는 드레싱을 끼얹는 샐러드나 푸짐한 파스타, 아니면 이 둘을 엮은 세트 메뉴가 있는 곳보다 다이닝 규격에 맞추려고 노력한 양식당들이 1 스타를 받았다. 다만 우아하게 꾸며놓고 비싼 코스 요리를 파는 곳이 무작정 선정된 건 아니다. 컨템퍼러리 퀴진을 선보인 어느 셰프의 고백. “솔직히 말하면 전에 일하던 다이닝은 단일 코스만 있고 가격은 10만원대였지만 수입상 냉동 양고기를 썼다. 그렇다면 차라리 냉장 쇠고기를 쓰는 게 나은 거다. 해외 유명 셰프가 손님으로 왔던 적 있었는데 고기 디시에는 손도 대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이런 케이스는 재료에서부터 당장 판정패다. 전 세계 스타 레스토랑의 수준은 동일하게 매겨진다. 즉 파리나 뉴욕이나 도쿄나 서울이나 같은 1스타다. 그래서 프렌치나 이탤리언 요리로 한국에서 2 스타나 3 스타를 받는 건 당분간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1 스타를 받은 한 셰프는 양식이라 해도 로컬라이징에 대한 의미를 해석했다. “내가 셰프로서 표현하고자 하는 음식 세계가 점차 한국 상황에 맞춰 변화하는 것이 사실이다. 프랑스와 한국 셰프가 프렌치로 붙는다면, 같은 요리라 해도 우리 식의 맛 표현 같은 게 가능하다는 거다. 한국은 김치를 먹는 문화이기 때문에 산도를 좀 더 과감하게 할 수 있다. 크림 소스 요리를 할 때 소스에 신맛이 찌릿하게 올라오도록 해도 된다는 말인데, 그게 외국인인 평가자들이 먹었을 때는 우리 식의 프렌치를 되게 신선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한식이 아니라도 그런 시도가 &lt;미쉐린 가이드&gt;가 말하는 셰프의 창의성에 부합한다.” 그 반대편에서 업계 관계자가 입을 모아 말한 것은 한 상 차림 말고 대중적이면서 저력 있고, 한 우물만 판 한식당들이 선정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다. 한 셰프는 우래옥을, 한 셰프를 하동관을, 또 한 셰프는 개화옥을 꼽았다. 빕 구르망(3만원대의 상대적으로 저렴하면서도 맛있는 집 리스트로, 별은 주지 않지만 정식 리스트 전에 따로 공개한다)에도 들지 않았기 때문에 별을 기대했는데, 아예 빠져 버렸다. 홍콩에서는 비좁고 격식 없는 딤섬 전문점 ‘팀호완’, 싱가포르에서는 노점인 ‘홍콩 소야 소스 치킨 &amp; 누들’도 별을 받았으니까. &lt;미쉐린 가이드&gt;가 별을 제대로 줬든 헛다리를 짚었든, 제일 잘한 일 한 가지는 이거다. 최소한 &lt;수요미식회&gt;와 &lt;삼시세끼&gt; 사이 그 어디와도 다르고, 집밥과 혼밥, 프랜차이즈와 &lt;킨포크&gt;와 먹스타그램이 끼어들 곳도 없다. 그러니까 서울에서 들불처럼 번진 음식 트렌드를 따라 순진한 혹은 멍청한 양떼처럼 몰려가던 사람들에게 전혀 다른 방향에서 달려온 명견 같은 존재가 되주었다는 것이다. 모든 익명의 제보자들이 공통적으로 동의하면서도 각성했던 점은 셰프의 확신과 신념이었다. 그간 음식에 관해 꾸준히 지켜온 가치와 노력에 대한 보상 정도로 생각한다는 담담한 자신감. 응당 별의 주인이 될 만한 셰프다운 말. 익명을 요구해 이 기사에 등장한 셰프 중 몇몇은 취재 며칠 후 &lt;미쉐린 가이드&gt; 발표 행사장 무대 위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