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살 땐 하루에도 수십 번씩 시간을 확인하곤 했다. 분단위로 스케줄을 나누어 소화해야 했던 생활. 늘 급한 일로 쫓기던, 딱히 바쁜 일이 없는 날에도 습관적으로 전전긍긍했던 날들. 시골에서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확인한다. 집 앞 골목에 스쿠터 소리가 들리다가 은은하게 멀어지면 오전 열시 십분이다. 옆집 애기엄마가 식당으로 출근하는 시간. 앞집 할아버지네 굴뚝에서 흰 연기가 피어오른다면 오후 네시 삼십분경이 되었다는 뜻이다. 그저 아, 그쯤의 시간이 되었구나, 라고 깨닫고 다음 식사를 준비하거나 짬짬이 나의 일을 하는, 단순한 생활이다. 계절에 대한 체감 역시 자연스럽다. 마당 감나무에서 잎이 우수수 떨어지고 감이 빨갛게 익어가니 아아, 가을이 깊어지는구나 싶었다. 밤 수확이 끝나고 단감과 대봉 수확도 끝나고, 동네 할머니들이 감을 깎아 곶감창고에 매달기 시작하니 어디선가 겨울냄새가 나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여섯시도 채 안 된 시간에 해가 산 너머로 사라진다. 그리고 앞집 할아버지네 굴뚝에서 처음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할 무렵, 그 몽글몽글한 흰 연기가 우리에게 선언했다. 이곳에서 맞는 너희들의 첫 겨울이 지금 시작되려 한다고. 이제 월동준비를 해야 한다. 우리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숙제는 아래채 민박 객실의 난방이었다. 공사비를 줄이기 위해 아래채에는 기름보일러를 깔지 않았다. 70년된 구들과 아궁이를 그대로 남겨둔 채 내부 공사만 진행했다. 코끝이 시려온다는 건 아궁이의 성능을 확인해야 한다는 뜻. 망가진 환풍시설을 손보고 툇마루 밑에 쌓아둔 나무를 태워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태워도 방바닥은 따뜻해지지 않았다. “오늘 피우면 내일 따뜻해져!” 앞집 할머니의 힌트. 오래된 아궁이방은 데우는 데 오래 걸린다는 것이었다. 대신 한번 따뜻해지면 오래도록 온기가 유지된다. 문제는 거기에 있었다. 주로 주말에 손님이 있는 탓에 주중에는 구들이 식어버리는데, 그걸 다시 데우려면 꽤 오랜 정성과 많은 양의 장작이 필요하다는 것. 아무곳에서나 나무를 해올 수 없으니 구입해야 하는데 나무가 기름보다 비싸고 효율이 낮다. 그리고 무엇보다 큰 문제는 사람마다 원하는 방바닥의 온도가 다르다는 것이었다. 직접 온도를 조절할 수 없으면 얼마나 불편할까. 이대로는 곤란하다. 무언가 수를 내야만 했다. 결국 전기 난방 필름 업체를 수소문해 방 사이즈에 맞춰 주문한 뒤 직접 깔았다. 기껏 마음에 드는 컬러의 강마루를 시공하고는 그 위에 흉측한 필름과 단열재를 깔게 되었으니 거의 울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이 바닥을 어찌하면 좋은가. 장판은 죽어도 싫은데 도대체 어쩌나. 결국 우리가 선택한 건 일본식 다다미였다.(위)전기 난방 필름을 설치한 모습. (아래)전기 난방 필름과 다다미를 시공한 모습. 시골의 겨울은 가혹할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푸른 잎사귀도, 들꽃도 없는 계절이니까. 그런데 요즘의 아침 햇빛을 보면 ‘아, 이토록 아름다운 볕이 있었던가!’라며 감탄하게 된다. 봄볕의 따사로움이나 여름볕의 뜨거움과는 완전히 다른, 형언하기 어렵도록 아름다운 초겨울의 볕! 창가에서 갸릉갸릉 그 볕을 즐기는 나의 고양이를 보며 되뇌었다. “그래, 계절의 좋고 나쁨이 어디에 있겠니, 그저 그 때마다 아름다운 것들이 따로 있는 거겠지.”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