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메르 아카이브에서 발췌한 뉴스 기사와 오디오 테이프, 해초 추출물의 저온 발효 공정 그리고 1960년대 크렘 드 라 메르.치열한 뷰티 월드 속에서 전설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아이코닉한 제품들이 존재한다. 그중 하나인 라 메르의 크렘 드 라 메르. 고가의 가격뿐 아니라 탁월한 보습과 피부 재생 효과 그리고 그 기원에 얽힌 스토리까지, 과연 ‘레전드’가 될 만한 요소들을 고루고루 갖췄기 때문. 그 스토리는? ‘독일 태생의 항공 물리학자 맥스 후버(Max Huber)는 1950년대 로켓 실험 중에 실험실 폭발로 얼굴에 심각한 화상을 입었다. 12년간 스스로 화상 치료를 위해 캘리포니아 자택 인근 해안가에 자생하는 저온조류들로 수많은 실험을 한 끝에 마침내 이 해초 추출물로 상처를 치료하고 피부를 복원할 수 있는 묘약을 만들었다’는 것. 맥스 후버 박사는 1965년 ‘바다에서 온 크림’이라는 뜻의 크렘 드 라 메르를 출시했는데 이 제품이 ‘기적의 크림’으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1991년 그가 사망한 후에는 에스티 로더 그룹이 그의 딸로부터 브랜드를 매입, 오늘날의 블록버스터급 럭셔리 스킨케어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좀 더 깊숙이 파볼수록 이 크림에 얽힌 히스토리는 어딘가 낯설고 묘하게 느껴진다. 피부를 바꿔준다는 기적의 크림, 스푼으로 떠먹어도 된다는 얘기, 사망한 과학자에 얽힌 루머, 한때 프랭크 시내트라(Frank Sinatra)와 데이트를 했다는 우아한 백작부인, 가족만이 안다는 극비의 포뮬러, 부유한 상류층 신봉자들… 게다가 최근엔 맥스 후버 박사는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음모론에 이르기까지. 나사(NASA)에는 그의 사고기록이 없는 데다 그 어디에도 사망 기사가 검색되지 않는다는 루머도 끊이질 않는다. 그는 나사가 아닌, 항공우주회사인 칼-발 리서치 앤 디벨롭먼트(Cal-Val Research and Development Corp.)에 근무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하지만 맥시밀리언 앨버트 후버(Maximillian Albert Huber)는 실존 인물이며 1925년 1월 13일에 해외에서 출생, 1991년 11월 5일 로스앤젤레스에서 사망한 기록을 찾을 수 있다. 1988년 후버와 본 도즈, 후버의 발효 공정을 담은 오리지널 테이프, 1961년 후버가 참여한 로켓 발사 계획을 담은 잡지 기사.“맥스 후버가 실존 인물이 아니라고요?” 뉴욕 센트럴 파크 웨스트의 한 호화로운 아파트, 77세의 백작부인 루시엔 본 도즈(Lucienne von Doz)는 루이 16세 스타일 소파에 앉아 고개를 가로저으며 웃음을 터트린다. 그녀는 영화화돼도 충분할 만큼 다채롭고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아왔다. 스무 살에 오스트리아 백작과 결혼, 몇 년 후 “보디가드에 둘러싸여 샤넬만 입어야 하는 삶이 지겨워 이혼했다”는 그녀.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Luciano Pavarotti)와도 친분이 두텁고, 전설의 무용가인 마사 그레이엄(Martha Graham)에게 댄스를 배웠으며, 딘 마틴(Dean Martin)을 닮은 이탈리아 변호사와 프랭크 시내트라와도 염문이 있었다. 1980년대 본 도즈는 헨리 벤델(Henri Bendel) 백화점에서 크렘 드 라 메르 샘플을 처음 접한 후 후버 박사를 찾아 나섰다. “그에게 전화를 걸어 ‘정말 믿을 수 없어요. 이 크림이 제 피부를 완전히 바꿔놓았어요!’라고 했죠. 그리고 그가 뉴욕으로 와서 점심을 함께했는데, 아주 키가 크고 피부는 열두 살 소년 같았어요. 우린 사랑에 빠졌죠.” 이때부터 맥스는 그녀에게 한 달에 200여 통의 크렘 드 라 메르를 보내기 시작했다. “이 크림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었더니, 맥스는 ‘그냥 온몸에 다 바르라’고 하더군요.” 본 도즈는 화이트 블라우스의 옷깃을 살짝 잡아당겨 놀라울 정도로 매끈한 목덜미를 보여줬다. “단언컨대 이 크림은 최고예요. 심지어 가슴의 탄력까지 잡아주죠. 종종 길거리에서 제게 성형을 했는지 묻는 사람들이 있으면, 무조건 라 메르 매장으로 보내곤 해요. 하하.” 본 도즈는 그를 펜실베이니아 뉴호프에 있는 별장으로 초대했고(그녀는 온통 꽃으로 둘러싸인 오솔길에서 후버와 흰색 애완견과 함께 포즈를 취한 사진을 보여주었다), 사촌이자 맨해튼의 저명한 정형외과의인 메리 앨렌 헥트(Mary Ellen Hecht)에게 그를 소개했다. “맥스가 화상을 입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이 크림을 수술 후 환자들에게 사용하기 시작했죠.” 헥트가 그때를 회상하며 설명했다. “화상 상처가 아물 때까지 오랜 시간 꾸준히 크림을 병행 처방했어요. 정말이지 놀라운 효과가 나타났죠. 사용 후에 상처는 완화되고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매끄러워졌으니까요.” 맥스 후버 박사는 모든 면에서 독특했고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헥트는 “그는 특이한 식습관을 갖고 있었다”고 말한다. 맥스는 크렘 드 라 메르 통을 갖고 다니며 저녁 식사 때 소량을 덜어먹곤 했다! “우린 종종 뉴욕의 우아한 레스토랑에서 식사했어요. 그는 크림을 꺼내 애플 소스에 섞어 먹곤 했죠.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요. 그 모습에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죠.” 맥스의 친구이자 디자이너인 랄프 루치는 1988년 웨스트 빌리지의 한 디너 파티에서의 첫 만남을 기억하고 있다. “우리 모두 맥스의 스토리에 빠져 있었어요. 그는 테이블 위에 크림 통을 올려놓은 뒤 “한 번 먹어보세요. 소화에도 정말 좋아요”라고 말했어요. 난 안경을 낀 채 자세히 크림을 살펴봤죠. 그는 무슨 문제라도 발견했는지 물어본 후 “손가락에 크림을 덜어 물에 풀어본 후 직접 성분을 살펴보라”고 권유했어요. 사교성도 뛰어나고 총명한 데다가 카리스마가 넘치는 사람이었습니다. 파티에선 늘 화제의 중심이었죠. 다들 맥스를 만나는 것이 젊음을 가져다주는 기적의 크림을 발견한 거라고 생각할 정도로요.” 66세의 나이로 돌연 사망할 때까지(본 도즈는 그가 치과 치료 후 감염 증상을 일으켰다고 말한다), 크렘 드 라 메르는 입소문을 타면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당시엔 지금은 사라진 아이 매그닌(I. Magnin) 백화점이나 통신판매를 통해 구입할 수 있었다(1991년 ‘피부가 새롭게 태어납니다!’라는 광고 문구 아래 28g당 약 85달러에 판매되었다). “정말이지 핫한 크림이었어요.” 1986년부터 에스티 로더 그룹에서 일하기 시작한 맥스 후버 리서치 연구소(Max Huber Research Lab)의 부사장 앤드루 베바쿠아(Andrew Bevacqua)가 말한다. “에스티 로더 그룹은 늘 크렘 드 라 메르를 매입하길 원했지만, 맥스가 팔려 하질 않았죠.” 1995년에 이르러서야 에스티 로더는 맥스의 딸 말리로부터 브랜드를 인수할 수 있었고, 베바쿠아는 크림 탄생지인 캘리포니아 카노가 공원 인근을 탐험했다. 그는 맥스의 실험실 문을 열자 마치 투탕카멘 묘에 숨겨진 ‘비밀의 방’에 들어선 느낌이었다고 한다. “와이어로 연결된 작은 병들과 구리판 그리고 각종 실험 장비들…. 거품이 일거나 꿀럭꿀럭하는 기묘한 소리들이 났어요.” 크림의 핵심이 되는 ‘미러클 브로스(Miracle Broth)’라는 성분을 만들어내기 위해 맥스는 수조에서 3개월간 해조류를 배치별로 발효시키는 실험을 거듭했다. 발효 공정에서 나는 소리들을 단계별로 테이프에 녹음하면서 이를 다양한 파장의 빛에 노출시켰다. “전혀 상상치도 못했던, 새로운 성분을 탄생시키는 과정이었어요.” 베바쿠아는 에스티 로더 연구실로 돌아와 미러클 브로스를 배운 대로 재탄생시켰지만, 결과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실험실 검사와 피부 테스트를 반복했지만, 맥스가 만들어낸 항산화 및 항자극 효과에 필적할 만한 만족스러운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맥스와 가까웠던 친구들과 VIP 고객들(본 도즈를 포함한)은 각 배치 실험을 평가했고, 수많은 테스트를 거쳤지만 수십 년간 사용해 오던 오리지널 크림의 효능에는 미치지 못했다. 에스티 로더의 연구개발부 수장인 조셉 구버닉(Joseph Gubernick)의 경우엔 맥스를 만나는 환영에 시달릴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던 중 구버닉이 노트를 갖고 왔어요.” 베바쿠아가 회상한다. “꿈에서 맥스가 말하길 ‘당신은 이런저런 부분을 간과했다’고 하더군요. 우린 처음부터 맥스가 했던 일들을 하나씩 다시 짚어보았고 ‘조명과 음향 에너지를 놓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아마도 듣기에 따라선 굉장히 정신 나간 이야기처럼 들릴 거예요.” 실제로 음파는 발효 과정에서 화학적 반응을 가속화하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는 연구 결과가 밝혀지기도 했다. (왼쪽) 크렘 드 라 메르의 효능은 그대로, 보다 가벼운 텍스처로 선보여진 크렘 드 라 메르 모이스처라이징 소프트 로션. (오른쪽) 12년간 6천여번의 실험을 통해 완성된 안티에이징 크림. 크렘 드 라 메르, 30ml 21만원대, 모두 La Mer.에스티 로더는 수많은 연구와 임상시험 끝에 마침내 맥스의 오리지널 크림에 필적하는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베바쿠아와 구버닉의 헌신 덕분에 라 메르의 과학자들은 맥스의 과정을 연구실에서 재현할 수 있었다. 각 공정마다 맥스가 사용했던 음파와 조명을 고스란히 적용시킨 끝에, 라 메르 제품의 원료가 된 발효 성분들은 오리지널과 동일하게 재탄생할 수 있었다. 뉴저지에 있는 맥스 후버 리서치 연구소에는 후버의 실험 장비들, 다양한 발효공정의 소리를 담은 유서 깊은 오디오 테이프, 크림을 담은 유리병들, 이 물리학자의 노트와 항공우주와 관련한 기사 그리고 50여 년 된 해조류가 쇼케이스처럼 진열돼 있다. “이 해조류를 맥스처럼 여기고 있어요.” 라 메르 글로벌 제품부 부사장인 로레타 미라글리아(Loretta Miraglia)의 말이다. “그를 한 번도 만나본 적 없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져요. 지금까지 스킨케어 분야에서 그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도 드물기 때문이죠.” 브랜드가 성장함에 따라 미라글리아와 베바쿠아는 맥스의 연구뿐 아니라 독립적인 새로운 아이디어를 토대로 다양한 응용 작업에 들어갔다. 버크민스터 풀러의 지오데식 돔이나 플렉서블 글라스를 활용한 항자극 실험에서부터 콜라겐과 엘라스틴 등의 단백질을 좀 더 피부세포 깊숙이 전달하기 위한 수많은 전기자극 실험 등이 이어졌다. 워싱턴 DC의 피부과전문의 노엘 셔버(Noelle Sherber) 박사는 자신의 어머니 역시 50여 년 전, 맥스의 크렘 드 라 메르를 구입하려 줄을 섰다고 말한다. 그는 라 메르 크림의 가장 큰 장점으로 피부 보호막을 견고하게 유지해 주는 효능을 꼽는다. “피부 보호막이 제 기능을 한다면, 우리 피부는 자극에 덜 반응하고 수분 손실도 덜하죠. 덕분에 피부는 한층 매끄럽게 탄력이 강화되고, 더욱 고른 톤을 유지할 수 있어요.” 맥스가 화상 치료를 위해 제품을 개발할 당시만 하더라도, 이렇게 오랜 세월 사랑받는 크림이 되리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점점 더 맥스에 대한 기억을 잊어가겠죠.” 90년대 후반 라 메르 홍보대사로 전 세계를 누비며 그녀의 피부를 과시했던 본 도즈가 말한다. “이 제품은 실험실에서 탄생했지만, 그 뒤에는 맥스가 있었어요. 수익에 대해선 별 관심이 없었지만, 그는 피부 기적을 믿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