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익숙해진 오버사이즈 트렌드는 매 시즌 다양한 디자인과 소재로 변주된다. 이 트렌드가 한두 시즌에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여자들이 남자 옷을 입었을 때 풍기는 보호 본능과 상대적인 여성미 같은 1차원적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이번 시즌의 과장된 오버사이즈 룩은 이전과는 다른 변화가 감지된다. 오버사이즈를 넘어 슈퍼사이즈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거대하게 제작된 테일러링 수트의 등장에서 그런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미식축구 리그의 수비수를 연상시키는, 힘을 잔뜩 준 파워 숄더를 보고 있으면 그동안 베트멍과 자크뮈스가 선보인 유니크한 파워 숄더 룩이 평범해 보일 정도다. 마크 제이콥스는 엑스트라 라지의 숄더가 흘러내려 손가락 끝까지 완전히 덮은 원 버튼 코트를 선보였고 셀린 런웨이의 팬츠들은 통이 넓어서 모델이 걸을 때마다 마치 바닷물결이 일렁이는 것처럼 보였다. “실루엣 자체가 끝없이 커지고 있어요. 옷과 몸 사이의 공간은 점점 더 넉넉해지고 있죠. 이러한 룩은 존재감과 주관성이 아주 뚜렷하다고 볼 수 있어요.” FIT(Fashion Institute of Technology) 뮤지엄의 디렉터 발레리 스틸(Valerie Steele)이 말했다. 이번 시즌에 등장한 큰 사이즈의 유니크한 옷들을 실제로 길에서 만난다면 깜짝 놀라 한 번쯤 다시 쳐다보게 될 것이다. 1945년, 영화 <밀드레드 피어스 Mildred pierce>에 등장한, 패드를 잔뜩 넣은 파워 숄더 룩과 비슷한 면이 있지만, 영화 속 여주인공들은 사랑스러워서 껴안아주고 싶은 범위를 결코 벗어나지 않았다. 이처럼 극단적인 오버사이즈 룩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빅 사이즈는 ‘여성스러움’이라는 틀에 갇히지 않는다. 모호한 섹슈얼리티와 중성적인 트렌드를 내포하며, 성적으로는 절제된 모던한 패션이다. 게다가 한없이 커진 볼륨은 단순히 몸을 커버하거나 실루엣을 강조하는 것을 넘어, 옷 자체가 독립적으로 두드러지는 효과를 준다. “전 늘 오버사이즈를 사랑해 왔어요.” 마르탱 마르지엘라에서 커리어를 쌓은 디자이너 루츠 후엘(Lutz Huelle)의 말이다. 루츠 후엘 컬렉션의 드롭 숄더와 극단적인 롱 슬리브 드레스는 이번 시즌 빅 사이즈 트렌드의 중심에 있다. “전 언제나 완벽하지 않은 평범한 몸매의 사람들을 위해 디자인해 왔어요. 오버사이즈는 우리 몸을 새롭게 표현하고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어내요. 옷, 그 자체로 생명력을 지닌다고 할 수 있어요.”새로운 빅 사이즈는 그저 통이 넓고 화려한 스타일이 아니다. “몸에 피트되지 않지만 다양한 형태로 변화를 줄 수 있도록 완벽하게 계산된 테일러링이 필요해요. 예를 들어 편하게 걸치는 간단한 T자 형태의 룩에도 오스만 왕조의 로브나 일본의 기모노처럼 동양적인 전통을 반영하고 있죠. 오버사이즈 수트는 입는 사람이 스스로 형태를 변형시킴으로써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내는 방식이에요.” 스틸의 말이다. DKNY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듀오 맥스웰 오스본(Maxwell Osborne)과 다오이 초(Dao-Yi Chow)는 퍼블릭 스쿨의 중성적인 디자인을 빌려와 DKNY만의 미학으로 재탄생시켰다. 그들이 컬렉션으로 전하려는 메시지 역시 ‘새로운 형태’다. “이 새로운 핏은 상상력을 자극하죠. 볼륨은 단지 눈에 보이는 것뿐 아니라 비유적인 의미를 포함하고 있어요.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많이 남기니까요.” 이처럼 기괴한 오버사이즈 룩은 이번 시즌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꼼 데 가르송은 이미 2014 F/W 컬렉션에 XXL 재킷을 선보였고,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는 2000년에 오버사이즈 룩으로 시선을 집중시켰다.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1984년 다큐멘터리 영화 <스톱 메이킹 센스 Stop Making Sense>에서 배우 데이빗 번(David Byrne)은 우스꽝스러운 대형 그레이 수트를 입고 등장한다. 그의 수트는 점점 자라나고 커진다. 마치 영화 <밀드레드 피어스>에서 신분 상승에 따라 어깨 패드가 점점 더 커지고 잔뜩 힘이 들어가는 것처럼. 데이빗 번의 빅 박스 수트는 디자이너 시몽 포르테 자크뮈스(Simon Porte Jacquemus)가 디자인한 싱어송라이터 크리스틴 앤 더 퀸스 (Christine and the Queens)의 뮤직비디오 의상에도 영감을 줬다. 여기에 등장하는 핑크 컬러 수트는 마치 튜브에서 치약을 짜내듯 서서히 거대해진다. 그리고 이 핑크 수트는 자크뮈스 2016 F/W 컬렉션 ‘스펀지밥 수트’의 전조가 됐다. “핑크 수트에서 영감받아 사각형의 평면적인 옷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의 말이다. 허리 라인을 졸라매는 스타일링을 가미한 트롱프뢰유(trompe l’oeil) 수트 재킷은 정면에서 보면 식빵처럼 정직한 사각형의 형태를 띠지만 뒷면은 평범하다. “사각형이지만 입을 수 없는 형태는 아니에요! 은근히 웨어러블하답니다”라고 자크뮈스는 설명한다. 거대한 박스 수트는 단순히 몸을 커버하는 옷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 옷들은 ‘개성’을 상징한다. 사이즈는 유동성을 지니며, 일종의 조형 작품에 가깝다. 1970년, 아티스트 요셉 보이스(Joseph Beuys)가 선보인 유명한 작품 ‘펠트 수트’와 흡사할 만큼. 이 모든 분석들이 골치 아픈가? 그렇다면 오버사이즈 트렌드를 본능적인 ‘기호’의 문제로 생각하면 어떨까? 단순히 ‘좋아서’라는 것만큼 더 확실한 이유는 없을 테니까. 자크뮈스의 모호한 답변이 오히려 명쾌하게 들린다. 받아들이면 된다. “왜 빅 실루엣을 디자인하냐고요? 그냥 예전부터 오버사이즈 팬츠와 수트를 입은 여자들이 ‘쿨’하다고 생각해 왔어요.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