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식물 살해 전과자의 고백 Ⅱ

식물 살해범이라는 오욕을 떨치고 다시 가드닝을 시작해보기로 결심한 후, 가장 먼저 시도한 것은 추식 구근을 심는 것이었다. 그것은 첫 성공작이 될 것인가, 아니면 열일곱번째 실패작이 될 것인가!

BYELLE2016.11.03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이 시국에 꽃 심는 이야기를 적으려니 마음이 무겁다. 그래도 맡은 일이니 글을 써야 한다, 마당으로 나가 꽃을 심자, 기도하는 마음으로 꽃밭을 일구자, 라고 마음먹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고것 참 내가 좋아하던 표현이다. 루시드폴의 노래 ‘오 사랑’의 가사. <만리 넘어 멀리 있는 그대가 볼 수 없어도 나는 꽃밭을 일구네> 이 얼마나 낭만적인가! 너는 못보아도 나는 꽃밭을 일구겠다니! 라고 생각했다. 직접 꽃밭을 일구어보기 전까지는.

서울의 어느 편집숍에서 샀던 영국산 꽃삽을 들고 예쁜 앞치마를 둘러메고 가끔 홍차를 홀짝이며? 아무튼 뭔가 우아한 장면을 꿈꾸며 마당으로 나갔지만 이건 ‘우아’와는 거리가 먼 일이다. 몇 번이나 후비적거리며 땅을 파고 흙을 골라도 이 척박한 땅에서는 돌과 쓰레기와 잡초뿌리가 계속 나왔다. ‘그대가 볼 수 없어도 나는 꽃밭을 일구겠다’는 표현의 진짜 의미를 깨달았다. 그것은 낭만적인 기다림이 아니다. 고단한 육체노동을 통한 마음 수련이랄까, 비움이랄까. 호미 하나 들고 쪼그려 앉아 이틀동안 땅과 싸우다 보니 마음이 초조하다. 때를 놓치면 어찌하나.



땅 고르기 Before & After. 땅을 파 잡초를 뽑고, 자갈을 골라내 흙을 부드럽게 하고, 비료를 섞었다. 


집을 지으며 건물 앞에 화단을 마련한 것은 우연한 일이었다. 땅을 파보니 돌이 많이 나왔고, 그 많은 돌을 둘 곳이 없어 건물 앞에 빙 둘러 쌓았다. 형태를 보니 화단으로 만들어도 괜찮겠다 싶어 뒷마당에 있던 흙을 옮겨 채웠다. 문제는 흙과 함께 딸려온 잡초뿌리들. 불청객들은 새 집에 눌러 앉아 거뜬히 제 생명력을 뽐냈다. 처음에는 그냥 둬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잡초라 부르니 잡초인 것. 본래 저 흙은 저들의 것이 아니었나. 하지만 날이 갈수록 황량해지는 모습에 마음을 바꾸었다.

전편에서 고백했듯이 서울에 살 때 집안으로 들이는 식물들은 한해를 버티지 못하고 사망하곤 했었다. 이곳으로 이사하면서 마음먹었던 것 중 하나가 나의 할머니처럼 식물을 즐겁게 가꿔보자는 것이었다. 이 같은 고민을 글로 썼더니 어떤 분이 블로그를 통해 귀띔해 주셨다. “추식구근부터 도전해보세요. 실패확률이 적어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 거예요.” 추식구근이란 가을에 심는 구근작물을 일컫는다. 가을에 알뿌리 식물을 심으면 겨우내 땅 속에서 봄을 기다리다가 봄에 줄기를 올리고 꽃을 피운다.


(위) 양파처럼 생긴 이것은 무엇? 튤립의 구근이다. 

(아래) 구근을 심기 위한 도구들과 비료.

땅이 고마운 것은 노동한 만큼의 결과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척박한 땅과의 오랜 사투 끝에 꽤 고운 흙을 만날 수 있었다. 이제 정원을 디자인할 차례. 심어둔 꽃이 모두 피었을 때를 상상해 위치와 구근의 양을 구성해야 한다. 온라인으로 내가 주문한 꽃은 키 작은 아이리스 에드워드(Iris reticulata ‘Edward’), 흰색 아이리스 화이트 엑셀시어, 오렌지빛의 아이리스 브론즈 퀸, 프린지 형태의 핑크색 튤립, 그리고 흰색 튤립 볼로얄 실버(Bolroyal Silver)였다.
읍내에서 사온 퇴비를 섞고 구근을 심기 시작했다. 구근은 아기엉덩이처럼 생긴 부분을 아래로, 뾰족한 부분을 위로 심는데, 윗부분이 반쯤 보일 정도의 깊이로 심는다. 노지에 심을 경우 땅의 온기를 방패삼아 겨울의 추위를 견뎌야 하기 때문에 더 깊이 심는 것이 정석. 하지만 하동은 비교적 따뜻한 편이라서 읍내 꽃집 사장님의 조언에 따라 윗부분이 아주 빼꼼히 보일 정도로 심고, 더 추워지면 흙을 조금 더 덮어주기로 했다.

(위) 2가지의 튤립과 3가지의 아이리스 구근. 

(아래) 얕은 구덩이를 만들어 ‘쫑쫑’ 심고 흙을 덮은 후 물을 주면 끝. 땅의 온기로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봄이 오면 싹을 올릴 것이다.


전문가의 조언에 따라 구근을 사서 심으면서도 내내 갸우뚱거렸다. 생각해보면 좀 이상한 일이 아닌가. 가을에 양파처럼 생긴 것을 심고 내내 맨땅으로 두었다가 짧게는 3개월, 길게는 5개월을 기다려 봄에 아주 잠깐 피는 꽃을 감상하다니, 그 얼마나 비합리적인 선택인가! 꽃이 활짝 피어있는 화분을 사다가 관리만 잘 해도 그 정도의 기간 동안 꽃을 감상할 수 있는데, 대체 왜? 이런 나의 질문에 대한 답은 다시 루시드폴의 노래, <오 사랑>으로 돌아가 찾을 수 있었다. <고요하게 어둠이 찾아오는 이 가을 끝에 봄의 첫 날을 꿈꾸네 / 만리 넘어 멀리 있는 그대가 볼 수 없어도 나는 꽃밭을 일구네 / 가을은 저물고 겨울은 찾아들지만 나는 봄볕을 잊지 않으리 / 눈발은 몰아치고 세상을 삼킬 듯이 미약한 햇빛조차 날 버려도 저 멀리 봄이 사는 곳 오 사랑!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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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WRITER & PHOTOGRAPHER 김자혜
  • EDITOR 김영재
  • ILLUSTRATOR 김참새
  • ART DESIGNER 변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