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된 하이테크적 요소가 가미된 뉴스포티즘 | 엘르코리아 (ELLE KOREA)

패션 올림픽이 열리기라도 하려는 걸까? 종목을 막론한 다양한 스포츠가 런웨이를 수놓는다. 덕분에 ‘건어물녀’의 대명사 트레이닝복은 대변신을 감행하고, 과감한 커팅과 진보한 하이테크적 요소가 가미된 뉴스포티즘은 올 시즌을 대표하는 키 트렌드가 되었다. :: 패션,에고이스트,구찌,스포티즘,트렌디한,실용적인,엘르,엣진,elle.co.kr :: | :: 패션,에고이스트,구찌,스포티즘,트렌디한

패션은 언제나 그렇듯 돌고 돈다. 분별 없이 찾아오는 것 같아 보이지만 트렌드 순환의 법칙에는 나름의 주기와 공식이 있다. 극적이며 화려한 트렌드가 한바탕 거리를 휩쓸고 간 다음에는 부드럽고 고요하며 한 겹 걸러진 트렌드가 뒤따른다. 요란함의 대명사로 기억되는 80년대를 뒤이어 미니멀리즘과 모더니즘이 90년대를 지배했고, 바로 지난해를 강하게 쥐고 흔들었던 ‘발맹 신드롬’을 위시한 80년대 파워풀 룩의 마법이 풀리자, 디자이너들은 다시 실용적인 것과 동시대적인 것에 집중하고 있다. 과장법의 잔재를 씻어내고자 한 디자이너들은 우선 비우고 덜어내면서 동시에 그 어느 때보다 패션이 실용적이기를 원하는 것 같아 보인다. 화난 것처럼 어둡고 무서웠던 모델들의 얼굴은 평온하고 보드라운 빛깔로 변했고, ‘누가 누가 더 크게 각을 키웠나’ 내기라도 하는 것 같던 어깨는 차분히 내려앉았으며, 목 디스크나 발목관절의 안전이 걱정스러우리만큼 무거운 체인과 아찔한 킬힐은 안정적인 키튼힐과 깃털처럼 가벼운 헤어피스 등에 그 자리를 양보해야 했다. “글로벌 경제 위기와 함께 실용주의가 부각되었다.”는 멘트는 귀에 못이 박힐 만큼 들어 지겨워질 대로 지겨워졌지만, 그로 인해 저렴하면서도 적은 수의 아이템으로 자신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룩, 더불어 그것을 대표할 수 있는 스포티 룩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전국을 김연아 신드롬으로 이끈 밴쿠버 동계올림픽부터 여름을 후끈 달아오르게 할 남아공 월드컵까지 세계적인 스포츠 이벤트가 올해 개최된다는 점에서도 디자이너들의 스포티즘 열풍에 미친 영향을 짐작할 수 있다. 패션 올림픽이라도 열려는 듯 승마, 축구, 스킨스쿠버, 테니스 등 다양한 스포츠가 런웨이에 등장한 올 시즌, 새로운 스포티즘의 패러다임을 맞았다. 1 스니커즈를 변형한 듯한 웨지힐 부티는 에고이스트.짐 시크 vs. 하이테크 스포티이번 시즌 소개된 스포티즘은 크게 두 가지로 정의된다. 알렉산더 왕을 필두로 웨어러블하면서 동시에 시크한 짐 시크 룩, 그리고 구찌나 프로엔자슐러 등의 컬렉션에서 소개된 모던하고 미니멀한 라인을 조형적으로 풀어낸 미래지향적인 스포티 룩이다. 뉴욕의 뜨거운 감자, 알렉산더 왕의 쇼가 시작되자 이제 막 수업이 끝남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운동장을 빠져나가는 소녀들을 보는 듯한 광경이 펼쳐졌다. 마치 축구 유니폼을 자기 개성에 맞춰 자르거나 겹쳐입은 듯한 소녀들은 헐렁한 회색 스웨트 셔츠에 가죽 반바지나 적당히 늘어진 트레이닝 팬츠를 입고 술이 달린 로퍼와 헤진 샌들 부츠에 운동 선수용 양말을 신었다. 손에는 바람 빠진 축구공 같은 가방을 든 채 말이다. 재잘거리는 여고생들이 라커룸에 모여 수다를 떨 것 같은 무드를 그려낸 알렉산더 왕의 컬렉션은 걱정이나 번뇌, 심각함과는 다른 세계의 것으로 보였다. 그가 스포티함을 옷에 적용하는 방식은 가볍고 즐겁다. 그는 멋진 재킷이나 우아한 드레스도 한 벌 없이 스웨트 셔츠, 후드 톱, 트레이닝 팬츠 등 누구나 한 벌쯤 가지고 있을 쉬운 아이템들로 런웨이를 구성했다(그런 점에서 그는 스타일리스트라는 명함이 더 잘 어울릴 디자이너다). 스웨트 셔츠나 트레이닝 팬츠처럼 스포티 룩의 ‘직설법’적인 아이템들은 랙&본이나 스포트막스, 디스퀘어드2 등의 런웨이에도 두문분출했다. 이들 짐 시크 룩의 가장 큰 특징이 여기에 있다. 과거에는 런웨이에 소개된 아이템이 ‘트렌드’라는 어명의 받고 ‘머스트 해브’니 ‘잇’이니 하는 훈장과도 같은 수식어를 달게 되면, 그것이 리얼웨이로 흘러들어와 ‘절찬리에 판매 중’의 영광을 얻었다. 그런데 지금은 주객이 전도되었다. 스트리트를 베이스로 유행이 시작된 스키니 팬츠나 스웨트 셔츠와 같은 캐주얼한 아이템이 역으로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주고 그것이 런웨이의 키 아이템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극도로 모던한 룩을 선보이기 위해 스포티즘을 차용한 발렌시아가의 런웨이에서도 그 흔적이 보인다. 쇼가 시작되기 직전 당대의 패션 트렌드를 이끌어 나가는 니콜라스 게스키에르는 “도시적인 옷을 만들고 싶었어요. 현재의 순간을 위해 더 이상 과거의 역사를 참고하고 싶진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그가 집중하고 있는 동시대적인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그의 런웨이를 통해 바로 알 수 있었다. 파리의 럭셔리한 크리용 호텔에서 후드를 뒤집어 쓰고 스키니 팬츠를 입은 모델들을 만나게 될 줄이야! 1 하이테크적 요소가 가미된 섹시한 슈즈는 구찌.반면 간결하고 하이테크적 요소가 강한 스포티즘에 집중한 디자이너들은 그들이 즐겨해오던 방식대로 영감의 원천을 상징적인 것에서 찾았다. 글래머러스한 구찌의 부활을 꾀한 프리다 지아니니는 지극히 현대적인 스포츠인 패러글라이딩과 스킨스쿠버에서 영감을 얻었다. 스포티즘에 섹시 본디지를 믹스한 프리다 지아니니는 쉽고 편한 스포티가 아닌 섹시하고 모던한 스포티를 그려냈다. 부유한 젯셋족을 위한 브랜드임을 어필하려는 듯 연출한 에밀리오 푸치나 과감한 직선의 사용으로 마치 몬드리안의 그림과도 같은 면분할을 보여준 오네 티틀, 잠수 중인 스킨스쿠버가 바라본 해저 세계를 프린트한 듯 화려한 프린트의 프로엔자 슐러, 수영 선수들의 전신 수영복을 떠올리게 하는 몸에 꼭 붙는 팬츠 룩의 줄리앙 맥도날드 등도 스킨스쿠버나 윈드서핑, 스카이다이빙을 떠올리게 하는 하이테크적인 스포티 룩을 보여주었다. 이들 룩이 짐 시크 스포티에 비해 일상의 룩과 친해지기엔 다소 멀어 보이지만, 주목하는 부분은 스포티즘을 미래지향적이고 모던하게 풀기 위해 가져온 디테일이다. 프리다 지아니니는 몸에 꼭 맞는 보디수트와 컷 아웃된 드레스에 낙하산의 버클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메탈 장식을 달았고, 안전벨트 버클을 응용해 장식했다. 이렇게 아웃도어의 기능적 요소를 재치있게 장식적인 요소에 차용하는 가 하면, 피(phi)나 줄리앙 맥도날드의 컬렉션에서는 스트링이나 지퍼, 메시와 같은 일반적이고 대중적인 스포티 요소를 포인트로 활용해 보다 간편한 방법으로 스포티즘을 설명하기도 했다. 이것은 광적인 레저 스포츠 마니아나 등산이 유일한 취미인 40~50대 주부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져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던 아웃도어 룩을 미니멀한 실루엣과 신축성 있는 소재와의 랑데뷰를 성공시킴으로써 ‘후줄근한 스포티’의 인식과는 안녕을 고하고 미니멀하고 조형적이며 섹시하기까지 한 스포티 룩을 선보이게 된 것! 트레이닝복을 입고도 ‘건어물녀’와 안녕을 고하는 방법 일상에서 트렌디한 스포티 룩을 입기에 따라야 할 무드는 트레이닝복을 키 아이템으로 한 짐 시크 룩이다. 클릭 한 번이면 지구 반대편의 내로라하는 셀러브리티부터 옷 좀 입는다는 스트리트의 패셔니스타들을 접할 수 있도록 빠르게 진보한 미디어 덕분일까? 이젠 서울에서도 옷 잘 입는 여자들을 만나는 게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녀들도 스포티 룩 앞에선 갈팡질팡 방황하기 시작한다. 자고로 더하는 것보다 빼는 게 어렵고, 화려한 것보다 담담한 것이 더 까다로운 법이니까. 하지만 아직도 타월을 두른 것 같은 배꼽이 드러내는 집업 후드 점퍼와 파스텔 컬러 트레이닝 팬츠가 스포티 룩의 화룡정점이라 믿는다면 그것은 당신의 스타일링 감각이 아직도 2000년대 초반에 머무르고 있다는 증거. 베이식한 아이템들만으로도 멋질 수 있다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것에 성공했을 때 비로소 스타일링에 능한 여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을 얻게 되며, 그것이 곧 스포티 룩의 특권이 된다. 할 일 없는 주말 방구석을 뒹군 흔적이 고스란히 밴 튀어나온 팔꿈치와 무릎으로 ‘건어물녀의 유니폼’이란 오명을 쓴 트레이닝 룩이 일상에서도 멋스러워 보일 수 있는 아이템으로 신분 상승되기 위해 제일 먼저 필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컬렉션에 소개된 짐 시크 룩을 종합해 봤을 때 스타일링의 키 포인트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룩의 전체를 긴장감을 푼 상태로 두지 않는 것! 그중에서도 대충 입은 듯한 트레이닝 룩에 운동화를 신는 건 최악의 시나리오. 대신 반드시 힐을 신을 것. 둘째, 상의와 하의를 동시에 저지 소재로 입는 범죄(?)를 저지르지 말 것. 재기발랄한 캠핑 룩을 선보인 디스퀘어드2나 이자벨 마랑의 컬렉션에선 스웨트 셔츠에 대비가 분명한 미니스커트나 티어드 스커트를 입어 여성스러움을 잃지 않도록 했다. 마지막으로 스웨트 셔츠든 트레이닝 팬츠든 편안해 보이는 아이템은 가죽 벨트나 재킷과 같이 갖춰 입었다는 느낌이 드는 아이템과 함께 매치할 것. 랙&본이나 리처드 채의 컬렉션에서는 루스한 피트의 트레이닝 팬츠에 매니시한 재킷을 매치함으로써 자칫 긴장감을 잃기 쉬운 트레이닝 팬츠 룩에 에지를 더했으니, 일상의 스타일링에 그대로 옮겨오면 실패 확률은 줄어들 것이다. 이 세 가지의 조건만 잊지 않는다면 당신은 실용적이고 활동적이면서도 세련되기까지한 짐 시크 룩을 즐길 수 있다. 만약 누군가 오늘날의 스포티 룩을 즐기기 위해 단 한 가지의 아이템만을 구입하라고 한다면 주저없이 스웨트 셔츠를 꼽을 것이다. 알렉산더 왕은 쇼가 시작되기 전 “시대를 초월한 클래식한 옷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도톰한 그레이 컬러의 스웨트 셔츠는 그의 표현대로 소녀들이 투자하기 좋을 만한 새로운 클래식 아이템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90년대 이후 대중들의 시야에서 멀어진 스웨트 셔츠의 부활을 불러온 알렉산더 왕에게 스웨트 셔츠는 업드려 절해도 모자랄 판국. 이제 발끝까지 꾸며야 할 것 같은 강박에서 벗어나 막 운동을 끝내고 나온 듯한 자연스러움으로 스포티즘 본연의 의도를 즐겨보자. 물론 그마저도 치밀한 계획되고 의도된 자연스러움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사실에 어쩐지 서글픈 마음도 들지만 말이다.*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4월호를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