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시절, 친구들과 여자, 자동차, 축구보다 더 열을 올렸던 건 바로 음악 얘기였다. ‘비틀스가 최고냐?’ 아니다. ‘롤링스톤스가 최고다!’ 우리끼리 새벽까지 뜨겁게 토론하면서 밤 새우던 날들이 많았다. 하지만 우리가 감히 부정 하지 않았던 한 가지 사실은 퀸(Queen)의 프레디 머큐리가 역사상 최고의 프런트 맨, 최고의 리더였다는 것이다. 특히 그가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라이브 에이드(Live Aid) 자선 콘서트에서 U2의 보노, 엘비스 코스텔로(Elvis Costello), 비틀스의 폴 매카트니, 더 후의 로저 달트리(Roger Daltrey), 데이비드 보위, 엘튼 존 등과 같은 최고의 아티스트들과 무대에 서서 보여준 익살과 무대 매너는 스타디움에 운집한 관중을 완전히 휘어잡기에 충분했다! 프레디의 음성으로 가 흘러나오는 순간엔 7만2천 명의 환호와 박수가 이어져, 감히 록앤롤 역사 사상 최고의 무대라고 평가해도 과언이 아니다. 퀸의 기타리스트인 브라이언 메이(Brian May)가 “콘서트 할 때마다 가장 멀리 무대와 떨어져 있는 사람조차 프레디와 연결된 걸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할 정도. 1980년대에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던 프레디는 영국 식민지 중 하나인 아프리카 잔지바르에서 인도 출신의 부모 아래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파록 불사라(Farrokh Bulsara). 17세가 되던 이듬해, 잔지바르에서 런던으로 이주했다. 이때만 해도 그는 조용한 성격의 수줍은 많은 가난한 젊은이였을 뿐이다. 그러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록 밴드 스마일(Smile)을 알게 됐고 그들의 팬이 됐다. 스마일의 공연을 따라다니고, 팀 멤버인 팀 스타펠(Tim Staffell)에게 밴드 합류를 요청하기도 했지만 결국엔 거절당했다. 보컬 트레이닝을 받으면서 기회를 찾던 그에게 마침내 기회가 생겼다. 스마일의 콘서트 도중 노래를 부르게 된 것. 꽤 괜찮았던 그의 노래는 청중에게 좋은 인상을 줬고 이후 스마일이 해체되면서 드러머인 로저 테일러와 기타리스트인 브라이언 메이가 프레디와 함께 퀸을 결성하게 됐다. 하지만 의외로 밴드 결성 초기에만 해도 ‘천상의 목소리’라 불리는 프레디에겐 스스로 목소리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끊임없이 노력에 노력을 기울인 끝에, 완성도 있는 음악을 소리 낼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마침내 1970년, 퀸이 완성되면서 전설의 서막이 올랐다. 첫 앨범이 발매된 이후, 퀸은 화려한 무대 매너와 독특하면서도 중성적이 매력을 뽐내는 패션으로 차츰 인기 상승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퀸’이란 밴드 이름 자체가 여성적인 느낌을 풍기는데다, 멤버들의 정체성에 대한 논란, 타이트한 바지에 블랙&화이트 톤의 여성스러운 의상 착용과 관련해 보수적이고 경직된 영국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또 퀸의 파티는 항상 화젯거리였다. 술, 마약, 섹스가 넘치는 문란한 파티는 유명세에 기름을 부었다. 수줍음 많던 인도계 젊은이의 내면엔 다른 이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모습이 숨겨져 있었다. 참고로 성 정체성 논란의 중심에 서 있던 프레디는 메리 오스틴이란 여자친구와 7년째 교류 중이었다. 하지만 뒤늦게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뒤엔 메리에게 그 사실을 밝히고 헤어졌으나, 이후 프레디가 사망하기 직전까지도 두 사람은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이후 그녀에게 재산의 절반을 유산으로 물려줄 정도). 프레디의 또 하나의 사랑은 바로 고양이들이었다. 그는 전 세계 7백 회 이상의 콘서트를 하며 투어를 하면서 고양이의 사진을 항상 지니고 다녔고 메리에게 전화를 걸어 고양이와 통화를 할 정도였다.프레디는 화려한 무대와 일상을 극단적으로 오가며, 열정적으로 하루하루를 살았다. 1978년 ‘Don’t Stop Me Now’라는 곡에서 “I'm a rocket ship on my way to Mars/ On a collision course/ I am a satellite I'm out of control/ I am a sex machine ready to reload/ Like an atom bomb about to explode”라고 노래 부르며, 자신의 인생을 화성을 향하는 로켓, 컨트롤 불능의 인공위성 등으로 표현하였다. 프레디의 그러한 에너지는 전세계 모든 퀸의 팬들에게 그의 목소리를 통해 전염되었다. 그러나 역시나, 비극은 또 찾아왔다. 그의 애인 중 하나였던 니콜라이 그리샤노비치(Nikolai Grishanovich)가 에이즈로 사망했고, 프레디 역시 에이즈에 감염됐을 거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건강을 염려한 그는 건강 검진을 했고 에이즈에 감염되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그의 병을 아주 가까운 친구에게만 알리고 대중에겐 비밀로 하였다. “왜 콘서트를 하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타이트한 바지를 입고 무대에서 노래 부르는 방식은 이제 마흔 살이 되었으니 바꿔야 하지 않겠냐”고 위트 있게 대답했지만, 실은 에이즈로 인한 건강 악화로 더는 무대에 오를 수 없었던 것이다. 병으로 제대로 콘서트를 할 수 없게 되면서 그에 대한 루머는 점점 부풀려졌다. 매니저와의 상의 끝에 병에 대해 공개했고, 그로부터 단 24시간 후 세상을 떠났다. 직접적인 원인은 폐렴이었다.전무후무한 4옥타브의 음역을 넘나드는 그의 목소리로 그는 록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보컬리스트가 되었고 그의 아름다운 노래들은 몇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불리고 있다. 또한 보수적인 당시 사회 분위기 속에 자유롭고 솔직하게 게이임을 밝히고 살아온 그의 모습은 성 소수자들의 상징이 되었다. ‘Bohemian Rhapsody’의 마지막 구절은 아마 그가 세상에 남기고 싶었던 그의 목소리였을 것이다. “Nothing really matters / Anyone can see / Nothing really matters to me / Anyway the wind blows”<추천곡>Must ListenInnuendo (Innuendo, 1991)Love of My Life (A Night At The Opera, 1975)Under Pressure (Hot Space, 1982)Legendary SongsBohemian Rhapsody (A Night At The Opera, 1975)Somebody To Love (A Day At The Reaces, 1976)We Are the Champions (News Of The World, 1977)Albe’s FavoriteDon’t Stop Me Now (Jazz, 1978)Is This The World We Created? (The Works, 1984)PROFILE 본명인 ‘알베르토 몬디’보다 알베르토, 알차장, 알오빠와 같은 별칭으로 더 잘 알려진 마성의 이탈리안 가이. 중국에서 만난 와이프를 쫓아 한국에 왔다 정착하게 된 사랑꾼. 평화와 사랑을 믿고 인간의 따뜻한 본성을 지지하는 대인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