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외국에서 살기 - 상하이 편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자발적 외톨이가 되기로 결심하기 무섭게 떠난 네 여자들, 어쩌다 운명처럼 상하이에 정착한 피처 에디터 출신의 유희영의 정착기. | 여행,중국,상하이,해외정착기,중국어

편리뿐 아니라 온 동네가 내 것 같은 기분을 만끽하려면 자전거나 스쿠터는 필수다. 어쩌다 운명처럼, 상하이종일 뜨거운 사우나 속을 걷는 것 같았던 상하이의 습도 높은 여름도 지나가고 제법 냉랭한 가을 기운이 감돈다. 어제는 곧 시작할 랭귀지 코스의 반 편성 인터뷰가 있어 아침 일찍부터 비를 뚫고 쉬자후이에 있는 교통대학교 캠퍼스에 다녀왔다. 20대 초반의 아기같이 보송보송한 학생들이 무리 지어 활보하는 곳에 발을 들이자니 세월의 흔적이 찔려서, 큼지막하게 학교 로고가 박힌 회색 후드 티셔츠를 입고 학창 시절에 애용한 백팩까지 하나  걸치고 당당하게 교정으로 들어섰다. 꼭 10년쯤 젊어진 것 같은, 양심도 없이 상쾌한 이런 기분이라니. 여기까지라면 긴 직장생활 끝에 꼭 한 번 찾아오는 ‘부질없다’ 병에 걸려 타국에서 야심 차게 인생 2라운드를 시작한 흔한 30대 늦깎이 도피 유학생 이야기의 시즌 1 오프닝 장면 같지만, 실상은 좀 다르다. 중국어는 서툴지만 벌써 상하이 생활 1년 차. 나는 보통 남들이 다른 나라에 살러 가기 위해 준비하는 순서를 정확하게 반대로 밟아 여기까지 왔다. 상하이에 발을 들인 건 지난해 7월, 퇴사 후 포틀랜드와 하와이를 전전하며 한량 짓을 즐기다가 서울로 돌아온 지 한 달 만의 일이었다. 새로운 매거진을 창간하려는 팀에 대학 시절 선배가 있어 내게 기획과 팀 세팅을 위한 짧은 출장을 제의해 온 것이다. 2주짜리 출장이니 비자가 나오는 동안 옷가지 몇 벌을 챙기고 에어비앤비 하나를 예약해 놀러오듯 건너온 것이 준비의 전부였다. 그러나 그 2주가 한 달이 되더니, 정신을 차렸을 땐 정식으로 렌트한 집 책상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며 창간호 첫 장에 들어갈 긴 글을 쓰고 있었다. 그걸 다 적고 나서, 삶의 중대한 사건들 가운데 어떤 것은 딱히 무슨 결심을 해야만 벌어지는 게 아니란 걸 알았다.  중국의 동시대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을 이야기하는 잡지 <하이, 상하이>를 창간하며 지난 1년을 보냈다. 그렇게 ‘니하오’에 붙이는 올바른 성조가 뭔지도 모른 채 중국 땅을 밟은 자의 1년은 파란만장했다. 취재를 위해 아주 빨리 미지의 영역인 이 나라의 깊은 곳까지를 파고들어야 했는데, 중국에 관한 내 지식은 거의 백지 상태였기에 외려 그 모든 경험이 살갗에 새겨지듯 생생하게 다가왔다. 토박이 상하이런들은 물론 중국 전역에서 상하이로 건너온 내 또래의 바링허우(八零後; 1980년대생)가 생각하고 선택하고 소비하고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은 그 어떤 문화권의 예시와도 달랐다. 이 세대의 중국인 친구들에게는 타고난 ‘뜨거움’이 있다. 그건 ‘열정’이라든가 ‘노력’ ‘치열함’ 혹은 ‘극복’ 같이 묘한 열패감이 밑에 깔린 에너지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말하자면 ‘강렬한 자기확신’에 가깝다. 그걸 보면서 처음으로 그간 내가 늙은 사회에서 살아왔다는 걸 자각했다. 흔히 ‘중국의 미래’라고 불리는 상하이도 들여다보면 여전히 정제된 세련미와는 거리가 있지만 그 역시도 누가 함부로 한계나 낙후라고 낙인 찍을 수 없는 것이 이 도시의 천성인 걸 알게 됐다. 여기엔 평가받거나 보여주거나 완벽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롯이 자기 확인과 만족을 위해 어떤 방향으로든 무섭게 살아서 움직이는 생생한 의지가 존재한다. 무엇보다, 이들은 지친 기색이 없다. 어떤 계층과 세대를 봐도 그렇다. 누구도 제 삶을 타인이 정한 순서나 규격에 맞춰 순응하며 살아온 적 없는 것처럼 보인다. 지상에 몇 안 남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이토록 무서운 해방감을 맛보는 아이러니라니!  지난달 이사한 새집은 가족 단위의 일본 및 한국인 주재원들이 다수 거주하는 구베이 지역에 있다. 고작 서른 몇 살에 풍진 세상 다 산 듯한 기분이 든 나는 이곳 사람들의 얼굴에서 뜨거움의 흔적을 발견할 때마다 매번 질투와 짜릿함을 동시에 느낀다. 이곳은 마치 아무것도 완벽할 수 없고 완벽할 필요도 없다는 걸 태어난 순간부터 이미 통달한 자들의 도시 같다. 그 숨통이 트이는 기분에 그간 유람한 세상의 모든 내로라하는 도시들마저 상하이에 비하면 전부 시시하고 맹숭맹숭한 장식용 액자 그림처럼 느껴졌다.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을 선택하고 그렇게 살면 그만이라는 당연한 자유를, 지금껏 이렇게 피부로 실감한 적이 없었다. 상하이에서 계획했던 일정이 끝날 때쯤, 이 도시에선 삶이 무언가 다른 형태로 존재할 수 있을 거란 막연한 확신이 마음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 사이 렌트 만료를 기점으로 계획했던 귀국 일자도 성큼 다가왔다. 이미 결론 내린 일을 앞두고 마음 한구석에서 갑자기 무언가 널뛰기 시작했다. ‘한 번쯤, 무슨 가능성이든 열려 있는 이 자유를 나도 누려보면 안 될까?’ 아무리 그래도 세상의 그 많은 장소와 기회를 제치고 하필이면 말 한 마디 통하지 않는 이 땅에 정을 주고 말다니. 오락가락하는 정신으로 여권을 펼쳐보니 중간에 갱신한 상무 비자 만료까지 반년이 남아 있었다. 일단 계약이 끝난 집을 정리하고 도쿄와 상하이를 합쳐 15년 차 해외 생활 중인 또래의 플로리스트 친구와 정원이 딸린 널찍한 1층 맨션을 얻어 셰어하기로 했다. 그리고 금방 떠날 거란 핑계로 미뤄둔 중국어 공부를 위해 어학연수를 시작했고 늘 ‘언젠가 만약에’로 남겨둔 내밀한 삶의 계획들을 오래된 것부터 하나씩 꺼내 ‘씻고 닦아서 말리는’ 중이다. 이상이 내가 앞으로 몇 년이 될지 모를 상하이살이를 결심한 과정의 전말이다. 살면 살수록 상하이는 키치한 표지를 가진, 발견되기 직전의 베스트셀러 같다. 세상을 전부 알아버리기 전에 잠시만 더 이 깨알 같은 매력을 혼자만 누려보고 심은 욕심을 여기에 조용히 고백해 본다.   유희영매거진 <B> 에디터로 일하다 우연한 기회에 상하이로 건너갔다. 짧은 출장으로 몸담았던 일이 점점 커지더니 새로운 잡지를 창간하는 등 예정에 없던 1년을 바람같이 보냈다. 귀국의 기로에서 3일간 고민하다 덜컥 이곳에 정들어 버렸음을 인정하고 본격적인 정착을 준비 중. 가장 많이 쓰는 중국어 메이콴시. 괜찮다, 상관없다, 문제없다는 뜻이다. 조정래 작가의 <정글만리>에 중국 사회가 돌아가는 기본 법칙으로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 있는데 ‘문제 삼지 않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문제 삼으니까 문제가 된다’다. 살아보니 진짜 그렇다.한국과 비교했을 때 체감 물가 싼 것은 말도 안 되게 싸고 비싼 것은 어처구니없이 비싸다. 한국에서 누리던 것과 같은 수준의 의식주를 영위하고 싶다면 대략 1.5~2.5배는 더 든다고 보면 된다. 단, 인건비와 직결된 물가와 공공재 물가는 확연히 저렴하다. 아저씨가 자전거로 끄는 손수레 두 대를 불러 엘리베이터 없는 5층 집에서 8km 떨어진 새 집으로 짐을 옮기는 데 300위안(약 5만 원) 정도 지불했다. 챙겨갔으나 무용지물인 아이템 황사 방지용 마스크. 살아보니 한국에 들여오면 좋을 것 위챗페이와 알리페이의 초간단 인증 절차, 마라샹궈, 그리고 무엇보다 저녁이 있는 삶. 상하이 라이프에 도움이 될 만한 웹사이트 스마트상하이닷컴(www.smartshanghai.com), 케이트앤키미(www.kateandkimi.com), 타오바오(www.taoba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