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밀란 디자인 위크, 한 브랜드의 전시장 때문에 온 거리가 들썩거린 적 있었다. 하루 평균 1만5000명의 방문자들과 함께 놀이공원 인기 어트랙션을 기다리듯 줄어들지 않는 줄을 하염없이 서서 들어간 곳엔 완전한 ‘헤이 월드’가 있었다. 무슨 촬영 세트장처럼 완벽하게 구성된 거실과 침실, 키친, 사무실 등 다양한 공간을 모두 헤이로 꽉꽉 채우고, 레스토랑과 카페 그리고 헤이 미니마켓까지 열렸다. 수백수천 개의 브랜드 중 이렇게 사람들의 관심을 받은 브랜드 전시장은 드물었다. 저 멀리 두고 감상해야 하는 디자인 말고, 내 손에 갖고 싶은 디자인을 만나는 경험은 흔치 않은데, 헤이의 모든 물건을 사고 싶고 살 수 있을 것만 같다.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2002년에 론칭했고, 이후 2005년부터 시작한 헤이 미니마켓의 붐은 유럽 전역에서 어마어마할 정도로 일었다. 브랜드 창립자이자 오너인 롤프와 메테 헤이(Rolf & Mette Hay) 커플을 밀란에서 만나 브랜드의 가장 큰 원동력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그들은 에둘러 답하지 않고 “좋은 디자인과 적당한 가격”이라고 했다. 그들은 처음 브랜드를 구상할 때부터 세련된 데니시 디자인을 전개하되 크래프츠맨십을 현대적으로 이어가야 한다는 방향을 세웠다. 그러나 이보다 앞섰던 필요조건은 ‘합리적’이라고 느껴질 만한 가격이어야 했다. 코펜하겐에 가는 사람들의 필수 코스(예전엔 로열 코펜하겐 스토어였다면)가 이젠 헤이 하우스와 헤이 미니마켓이다. 헤이 하우스는 코펜하겐 구시가지 한복판에 있는 타운하우스 전체를 헤이의 모든 것으로 채웠다. 들어가서 빈손으로 나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금방 나오는 사람도 없다. 시즌이 아니라 몇 주에 한 번씩 이곳의 디스플레이가 바뀐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나오자마자 바로 실천한다. 롤프와 메테는 역할을 분담했다. 롤프는 헤이의 가구를 총괄하고, 메테는 미니마켓을 담당한다. 메테가 말하는 헤이 미니마켓의 목적은 “생활 속 용품을 디자인 오브제로 바꾸라는 게 아니에요. 일상용품의 모습에 디자인적 요소만 얹는 거죠. 내부의 디자이너들이 직접 만드는 제품이나 해외에서 바잉하는 제품 모두 너무 생소하거나 쓰기에 어려운 제품은 안 돼요. 미니마켓에서 파는 모든 물건은 우리가 쓰고 봐왔던 매우 익숙한 형태인데 다만 즐거운 디자인만 더하는 거예요.” 훌륭한 디자인을 일상에 스며들게 한다는 점에서 디자인의 궁극적 목적에 좀 더 다가선 게 아닐까. 이번 시즌 대대적으로 론칭한 부홀렉 형제의 소파 ‘캔(Can)’에도 헤이의 브랜드 철학이 그대로 담겨 있다. 롤프는 특별히 부홀렉 형제에게 전 세계로 배송할 수 있도록 조립 가능한 소파를 주문했다. 생산 과정이나 디자인이 결과물을 넘어 소비자들이 편리하고 경제적인 방식으로 배달받을 수 있는 것까지 고민한 것이다. 지금까지 이런 부분을 고민한 회사는 대형 유통 채널을 보유한 이케아 같은 브랜드들이었지만,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멋진 디자인을 향유할 수 있는 궁극적 목표를 위해 그들은 아예 디자인 자체부터 현 시대를 반영하는 방식을 택했다(실제로 그들은 2017년에 선보일 이케아와의 협업 티저를 공개한 바 있다). 최근 헤이는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걸친 소품들을 폭넓게 출시했다. “요즘 부엌이나 주방 용기로 관심을 넓히고 있어요. 주방에서 각종 툴들은 기능에만 초점을 맞춘 경우가 많았는데, 헤이가 해 온 방식대로 디자인을 먼저 생각하되 실용적인 면을 반드시 갖게 될 거예요.” 메테의 설명에 따르면 헤이가 점령하지 못할 생활 영역은 없어 보인다. 헤이 하우스를 둘러볼 때 느껴지는 것들은 여기가 단지 한 브랜드의 신제품들을 보기 좋게 늘어놓은 곳이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로 이런 집에 산다면 반나절도 걸리지 않고도 내 집처럼 편안할 것 같다는 기분은 그저 멋지고 예쁜 것들을 모은다고 해서 느껴지는 감정이 아니다. 신제품들이 부각되도록 디스플레이하지 않았고, 아주 오래전에 나왔던, 지금은 더 이상 ‘핫’한 아이템이 아닌 것도 모두 뒤섞여 어딘가에서 집주인이 튀어나올 듯 안정감이 든다. 메테는 헤이 하우스를 운영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여타 숍들과 헤이 하우스가 다른 점이 있다면, 헤이 제품이 누군가의 집으로 갔을 때 어떻게 쓰일지를 좀 더 고민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거예요. 우리 집에서도 헤이의 제품만 쓰는 건 아니거든요(웃음). 몇몇 프로토타입이 여기저기 놓여 있을 뿐이죠. 헤이 하우스를 둘러보는 사람들도 헤이이기 때문에 구입하기보다는 자신에게 꼭 필요했던, 하지만 그동안 왠지 찾지 못했던 아이템을 헤이 하우스에서 발견했으면 해요. ‘맞아! 이럴 때 이런 제품을 쓰면 되는군’이라고 생각하면서요.” 생활 깊숙이 들어오는 헤이의 또 한편에는 여전히 아티스틱한 움직임도 있다. 부홀렉 형제가 만든 또 다른 컬렉션 ‘팔리사드’를 론칭했을 때는 런던 세르펜틴 갤러리에서 성대하게 오프닝 이벤트를 열었고, 지난여름엔 코펜하겐 차트 아트 페어와 협업해 독특한 아트 피스들을 제작하기도 했다. 그들은 젊고 다이내믹하다.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실용성과 예술성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실험한다. 동시에 마케팅을 열심히 하는 것을 세속적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사는 모습이 그렇잖아요. 어떨 때는 무한히 실용성만 생각해서 싼 물건을 찾아내는 데 온 힘을 기울이기도, 또 어떨 때는 예쁜 것을 보면 기분이 좋아져서 열심히 꾸미고 영감을 찾고 싶어 하잖아요. 브랜드가 하는 일도 여러 채널을 아우르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이 브랜드가 그들이 세운 목표보다 더 빨리 지금의 성공에 도달했음을 솔직히 고백하는 것 같이 전 세계인에게 헤이가 사랑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