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군 악양면에 자리한 김자혜, 박주영 부부의 집. ‘악양’은 돌과 볕이 많아서 생긴 이름이다.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거실 풍경. 지리산 자락이 보이는 서쪽으로 창문을 크게 냈다. 주로 집에서 일하기 때문에 거실 가운데는 식사도 하고 작업도 할 수 있는 커다란 테이블을 두었다.거실의 끝에 마련된 서가. 양 벽면과 벤치 아래가 전부 책장이다.테이블을 기준으로 왼쪽 전면은 마당으로 통하는 유리문이다. 햇빛이 풍부하게 들어온다. 모두 다른 모양의 의자들은 부부가 산 것과 친구들이 결혼 선물로 하나씩 준 것들이 섞여 있다.침실 풍경. 현관에서 들어서면 오른쪽에 짧은 복도가 있고 복도 양 옆으로 욕실과 침실이 있다. 좁은 복도지만 침실 문이 미닫이라서 복잡하지 않다. 스탠드는 Ikea.그릇장으로 활용한 책장. 그릇을 비롯해 의미 없이, 의식 없이 사다 모은 물건들은 이사를 계기로 정리해 내다 팔거나 기부했다.“초능력을 가질 수 있다면 어떤 능력을 갖고 싶어?” <엘르> 온라인(elle.co.kr) 칼럼 ‘서울 새댁의 깡시골 적응기’의 시작은 남편이 던진 질문에서였다. 온갖 개그의 난무 끝에 마무리할 수 있는 주제였건만, 남편이 말한 초능력에 충격받은 서울 새댁은 그 길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안 자도 살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싶다 하더라고요.” 투명인간이 돼 여탕을 훔쳐보고 싶다는 것도 아닌데 어째서 충격이었을까? “24시간 중 8시간을 잔다고 치면 16시간이 남는데 그중 8시간을 일하고 출퇴근길에 1시간씩 버리고 나면 정작 우리가 원하는 걸 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짧다는 거죠. 잠을 안 자면 우리 시간을 더 보낼 수 있지 않겠냐고요.” 그랬다. 하루를 사는 데 급급해 정작 그 하루를 어떻게 사는지 놓치고 있었던 에디터 역시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수도권에서 출퇴근하는 데 3시간, 업무시간은 유동적, 잠자는 시간은 퇴근에 따라서…. 여가생활은커녕 고3 때보다 잠을 더 못 자는 것 같다고 푸념했던 날들이 떠올랐다. “저야 어릴 때부터 꿈꿨던 직업이었고 선후배들과 즐거웠지만 남편에겐 하루의 절반이 버티는 시간이었던 거예요.” 많은 대화 끝에 부부는 한 달 간격으로 각자의 회사생활을 정리했다. 그리곤 이곳 하동으로 왔다. 참고로 ‘서울 새댁’ 김자혜는 <엘르>에서 시작해 10년 동안 커리어를 쌓아온 패션 에디터였고 남편 박주영은 ‘그 좋은 데를 왜 그만두냐’고 주변에서 성화일 정도로 탄탄한 회사의 직장인이었다. 서울이라는 문명 속에 살던 이들이 시골생활을 견딜 수 있을까? “도시가 싫어서 떠나온 게 아니에요. 저 서울 좋아해요. 평양냉면도 먹을 수 있고 스타벅스도 갈 수 있잖아요.” 그런데 시골이라고 딱히 불편하지도 않더란다. “서울에서도 거의 집에만 있었거든요.” 부부에게 집은 그래서 더 중요했다. 꼭 서울, 회사가 아니라 어디에서든(특히 집에서) 일할 수 있다는 믿음이 충족돼야 할 터전이고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둘만의 공간이어야 했다. 그러나 이사 결정, 딱 여기까지만 일사천리였다. 새로운 안식처는 시골집이기를 바란 로망에 꼭 맞는 집을 찾는 데만 몇 달이 걸렸지만 그 집을 고쳐줄 건축가를 찾는 데는 곱절이 걸렸다. “다들 안 하려고 했어요. 서울 건축가도, 현지 사람들도.” 부부가 원한 건 한옥인 집의 나무 기둥과 흙벽 등 뼈대를 남겨달라는 것뿐이었는데도 말이다. “오래된 흙집이니까 싹 밀어버리고 새로 지으면 편한데 뭐하러 고치냐고 하더라고요. 공은 많이 드는데 티가 안 난다는 거죠. 하지만 이 집을 처음 만났을 때의 마음을 떠올려보면 도저히 무너뜨릴 수 없었어요. 툇마루에 앉으면 느껴지는 나무의 질감, 수십 번의 계절을 꼿꼿하게 버틴 기둥들, 마당 너머로 펼쳐진 풍광만큼이나 마음을 사로잡는 공간의 따스함…. 아무리 큰돈을 들여 아름답게 짓는다 해도 세월을 견딘 이 집처럼 만들 순 없어요.” 결과적으로 새로 고친 집에서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 중 하나는 낡고 오래된 툇마루이다. 부부의 ‘시골집 고쳐 살기’ 프로젝트를 흥미롭게 여긴 건축가를 찾고 찾아 만난 덕에 집이 품은 오랜 시간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됐다. 집수리의 고난을 함께해 이제는 남편이 형이라 부른다는 건축가 강성진(건축사사무소 틔움(Tium), 디자인랩 오사 (5osa.com))은 그 역시 서울 쌍문동에서 40년 된 낡은 주택을 고쳐 살고 있다. 사랑채이자 게스트하우스인 ‘소보루(www.soboroo.com)’ 마루에 앉은 박주영, 김자혜 부부. 사랑채의 소담한 정경은 부부가 이 집을 택한 가장 큰 이유다.‘소보루’ 마루 끝에는 높다란 누마루가 있다. 외양간이던 누마루 아래 공간은 창고로 개조했다.거실에 둔 세면대는 손을 자주 씻는 부부에게 실용적이다. 세면대 왼쪽으로는 건식 화장실이, 세면대 오른쪽으로 코너를 돌면 욕조가 있는 욕실이 있다.바깥의 누마루는 물론 지붕과 기둥을 지지해 주는 보가 그대로 남아 있는 사랑채 ‘소보루’의 풍경. 협탁은 Market M. 침구와 조명은 Ikea.기존 집에서 실내를 넓히고자 새로 증축한 부분. 마을 어르신은 왜 옛날 소재인 ‘부로끄’로 집을 짓냐 했다고. 단순하게 만들고 싶어 시멘트 블록을 통줄로 쌓았다. 커다란 창문 너머는 거실이다. 창과 라벤더 화분이 놓인 낮은 담 사이에 계단이 있어 마당으로 통한다. 화분에 키우고 있는 라벤더는 마당 한편에 가득 옮겨 심을 예정이다. 마당에 놓인 푸른색 의자는 Izola. 테이블은 Ikea.앞집 할머니의 오빠, 골동품 수집가, 은퇴한 중년부부를 거쳐 부부의 소유가 된 집은 크게 안채와 바깥채로 나뉘어 있다. 바깥채는 마루와 누마루(높은 마루), 보(기둥 위에서 지붕의 하중을 지탱해 주는 수평 구조부재), 구들을 데워주는 아궁이까지 그대로 살려 보수했다. 고즈넉한 시골 한옥의 온기가 전해지는 바깥채는 여행객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로 활용 중이다. 보와 누마루가 있는 작은 집이라 하여 이름 지은 ‘소보루’. 그 옛날 그랬듯 사랑채 본연의 업무를 다한다. 기존 집에서 가장 많은 변화가 생긴 곳은 부부의 생활 공간인 안채이다. 마당 쪽으로 나 있던 현관문을 바깥채와 가까운 측면으로 옮기고, 기존 현관과 앞마루는 아쉽지만 없앴다. 대신 협소했던 안채를 증축했다. 측면에 새로 낸 현관으로 들어서면 또 하나의 실내 현관문 사이에 좁다랗고 긴 공간이 눈에 띄는데, 그곳에 서면 실내 현관문으로 나 있는 창에 시선이 박힌다. 그 창 너머로 녹음이 우거진 지리산 풍경이 가득 담겨 있다. 거실 서쪽으로 낸 고정 창문이 실내 현관문의 창과 일렬을 이뤄 현관에서부터 바깥 풍광이 보이는 것이다. “건축가가 이름 붙이길 ‘건축적 산책로’래요. 현관으로부터 집 끝에 걸린 큰 유리창까지 관통하는 좁고 긴 길이에요. 공간 내부가 한눈에 파악되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시야가 바뀌는 구조로 지었다고요.” 집밖의 풍광을 한눈에 담으며 문을 열고 들어서는 집 안이란, 묘하다. 안에 들어서자마자 향초인가 싶을 정도로 은은하게 풍겨오는 나무 향과, 어쩐지 더듬거리며 가늠하게 되는 미로 같은 집안 구조 때문에 오묘한 기분은 풀릴 틈이 없다. “내부를 미송으로 마감해서 나무 향이 날 거예요. 생각보다 집이 좁죠? 건축가가 두 가지 버전의 설계도를 줬는데 하나는 아파트처럼 네모난 공간에 구석구석 공간 활용이 잘된 설계도였고, 하나는 지금의 집 구조예요. 우리는 집이 크지 않아도 좋다고 했어요. 넓어 보이려고 애쓴 것보단 이렇게 골목골목처럼 있는 게 좋았어요.” 현관을 기준으로 왼쪽에 거실이 있고, 거실 왼쪽으로 부엌이 길게 자리해 있다. 다시 거실에서 오른쪽으로는 짧은 복도가 있고 복도를 사이에 두고 침실과 욕실이 있다. 얼핏 간단한 구도 같지만 미송으로 마감한 벽과 천장, 집 안 곳곳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우뚝 서 있는 나무기둥들이 어우러져 독특한 공간감을 전한다. 생각해 보면 집주인 김자혜는 ‘건축가가’ ‘건축가의 의견’ ‘건축가가 원해서’라는 말을 자주 했다. ‘건축적 산책로’를 비롯해 내부를 미송으로 마감한 것도, 서쪽으로 고정 창을 낸 것도, 거실 한편에 서재를 마련한 것도, 새로 증축한 외벽을 시멘트 블록으로 쌓은 것도…. 부부의 의견이 눈에 보이는 부분은 부엌이 길었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남편은 건식을, 부인은 욕조를 원해 화장실 공간을 분리한 정도랄까. 건축가가 바라는 시도를 지지하고 수긍한 배경에는 설계 전 ‘밥은 누가 하는지, 무엇을 만들어 먹는지, 키우는 고양이들은 낮에 뭘 하는지’ 등등을 세심하게 물은 건축가에 대한 신뢰가 있었을 거다. 그렇다 해도 내 집을 꾸미는 데 더욱 적극적으로 요구해도 되지 않았을까? 마루에 앉아 나누던 대화가 잠시 끊겼을 때의 그녀 모습이 의문에 대한 답에 가까워 보였다. 그녀는 작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회사를 그만두자마자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면서 우리는 800리 길, 22개 구간 완주를 목표로 했어요. 하지만 난코스를 앞두고 발목이 아팠죠. 의사 선생님이 묻더라고요. ‘꼭 그 코스를 걸어야 하나요? 택시를 타고 지나가세요. 다음에 걸으면 되죠.’ 이 코스를 빠뜨리기 싫다고, 완주하고 싶다 했더니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걷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세요.’” 귓가에 ‘뎅’ 하고 종소리가 울리는 듯했다며 그녀는 웃었다. 언젠가 다시 이 집을 떠나 서울로 돌아갈 수도 있다면서 이사일 뿐인 일에 의미를 부여하는 걸 무척 싫어하는 부부였으나 어쩐지 그들의 집이 더욱 또렷하게 보였다. 채움보다 비움의 집, 완성보다는 완성해 나가는 집, 하동 시골집의 가장 아름다운 인테리어 요소는 삶에 대한 고요한 관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