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패션의 미래

패션계의 지각 변동과 꼬리에 꼬리를 문 디자이너 교체, 패션사에서 전무후무한 카오스가 시작된 바로 그 때, 2016년 F/W 컬렉션이 열렸다.

BYELLE2016.08.12


최근 몇 년 동안 패션계에 불어닥친 변화의 상황를 지켜보면 오랫동안 패션계에 몸담아온 베테랑 에디터들도 미래를 예견하기 어렵다. 


마치 처음과 끝을 알 수 없는 비현실적인 펜로즈 계단(Penrose Stairs)을 바라보는 느낌이랄까? 그러나 디자이너들은 카오스 속에서 저마다 강력한 훅을 날리며 위기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내고 있다. 패션위크의 존재에 대한 의문이 불거진 바로 그 시각, 패션 성지 파리를 지키는 디자이너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숭고한 패션 모멘트로 불리는 오트 쿠튀르의 황금기를 상기했다. 특히 에디 슬리먼의 행보에 대한 루머로 가득했던 생 로랑의 쇼장은 꽤 의미심장해 보이기까지 했다. 에디는 그의 패션쇼를 상징했던 빵빵한 사운드의 록 음악을 과감하게 버렸다. 대신 베네딕트 드 가인스타우스(Be′ne′dicte de Ginestous)가 착장 번호를 내레이션하며 모델을 호명하는 정통 살롱쇼의 형식을 빌려 80년대 파티 룩의 진수를 보여줬다. 패션쇼는 헬무트 뉴튼의 80년대에 견줄 만큼 이례적인 호평을 받았고, 그로부터 3주 후 소문대로 에디 슬리먼은 4년간 몸담은 하우스를 떠났음이 확인됐다(결별 이유에 대한 수많은 예측 중 뷰티 광고를 둘러싼 주도권 다툼이라는 소문이 우세하다). 그의 빈자리를 채우게 된 벨기에 출신의 앤서니 바카렐로는 2009년 1월, 파리에서 자신의 브랜드를 론칭한 이후 최근 네 시즌 동안 베르수스 베르사체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를 맡아왔다. 






또 다른 프렌치 하우스 랑방은 알버 엘바즈가 떠난 공석 상태로 디자인 팀이 쇼를 선보이던 중, 부크라 자라를 새로운 수장으로 발표했다(앤서니 바카렐로와 부크라 자라 모두 새로운 자리에 전념하기 위해 당분간 그들의 시그너처 브랜드는 중단하기로 한 상태). 디올은 하우스 소속의 루시 마이어(Lucie Meier)세르주 후피(Serge Ruffieux)가 맡아 이번 컬렉션을 완성했지만 오트 쿠튀르 쇼 직후, 발렌티노의 듀오 중 한 명인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를 하우스 사상 첫 여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발표하면서 라프 시몬스가 떠난 이후 오랫동안 비었던 공석이 마침내 주인을 찾았다. 누가 떠나고 누가 올 것인가에 대한 온갖 추측이 무성했지만 정작 패션위크의 뜨거운 감자는 따로 있었다. 






런웨이에서 본 옷을 바로 매장에서 구매할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 ‘현장 구매(Buy-Now)’의 도입에 대한문제가 현실적으로 점쳐진 첫 시즌이었기 때문이다. 많은 브랜드들이 급진적인 선택을 감행한 뉴욕 패션위크와 달리, 대부분의 유럽 디자이너들은 거부감을 드러냈다. “현장 구매 방식은 럭셔리를 꿈꾸고 욕망할 기회를 빼앗는다.” 구찌, 발렌시아가, 알렉산더 맥퀸, 보테가 베네타를 소유한 케어링 그룹의 CEO 프랑수아 앙리 피노(Francois Henri Pinault)와의 인터뷰에서 강경한 입장을 내비쳤다. 파코 라반을 소유한 푸이그(Puig)의 패션 부문 CEO이자 프랑스패션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랄프 톨레다노(Ralph Toledano) 역시 그런 의견에 동조했으며, 이들은 현재 럭셔리 브랜드 매출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프리 컬렉션을 공식적인 패션쇼 스케줄에 추가해야 한다는 대안을 내놓았다. 






이렇게 보수적인 분위기에서 발렌시아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데뷔쇼를 치르며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에 선 뎀나 바잘리아는 독자적인 스케줄로 다시 한번 이슈를 만들어냈다. 베트멍 쇼를 기성복 스케줄이 아닌, 1월과 6월에 여성복과 남성복을 통합한 방식으로 선보일 계획이며, 런웨이 쇼 한 달 후에 판매를 시작하겠다는 것. 그리고, 지난 7월 3일, 이 패션 천재는 오트 쿠튀르 패션위크 첫날, 무려 17개의 헤리티지 브랜드와의 협업이라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계획을 실현했다.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도 머지않아 남성복과 여성복을 하나로 통합한 쇼를 선보일 계획이지만 그게 여성복 패션위크가 될지 남성복 패션위크가 될지는 미지수다.






한편, 프라다와 알렉산더 왕을 비롯한 꽤 많은 브랜드에서 캣워크에 등장한 액세서리 중 일부를 바로 판매하는 차선책을 도입했으며, 버그도프 굿맨 백화점은 뉴욕 패션위크 기간 동안 방금 런웨이에서 내려온 아이템을 판매하는 특별한 이벤트를 열기도 했다. 고객들은 조셉 알투자라, 제이슨 우, 마이클 코어스, 프라발 구룽을 포함한 뉴욕 대표 디자이너들의 런웨이를 보며 선별된 제품을 사전 주문했다. 이 모든 전략은 소셜 미디어와 모바일 기술이 만들어낸 현실적인 변화에 대한 대안인 동시에, 판매 부진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몸부림으로 이 과정에서 2008년, 금융위기 때 터득한 재고 정리 전술이 요긴하게 사용됐다는 후문이다.





아직까진 가능성을 타진해 보는 과정일 뿐 명쾌한 답이 도출되지 못한 상태에서, 역설적으로 쇼의 퀄리티 면에선 약진이 돋보였다. 격동의 시대야말로 창의력이 꽃피우는 적기라는 옛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전설적인 무용수 마사 그레이엄캐롤 아미티지(Karole Armitage)에게 영감받은 시폰과 저지 드레스를 선보인 발렌티노, 80년대 캐서린 헴넷의 슬로건 티셔츠를 재발견한 알렉산더 왕, 사이키델릭을 현실적으로 풀어내며 캘빈 클라인에서 마지막을 장식한 프란치스코 코스타, 아티스트 크리스토프 셰민(Christophe Chemin)과의 협업으로 여자의 복합적인 내면을 표현한 미우치아 프라다, 절친 레이디 가가에게 몽환적인 고딕 룩을 입힌 마크 제이콥스…. 





한편, 발렌시아가와 베트멍, 생 로랑의 런웨이에선 클로드 몬타나와 뮈글러의 전성기 이후 자취를 감췄던 빅 숄더 재킷과 와이드 팬츠 수트가 목격됐으며, 뉴욕에선 의외의 인물이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행위예술가 바네사 비크로프트(Vanessa Beecroft)와의 협업으로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쇼를 연 카니예 웨스트의 이지3(Yeezy3) 쇼를 본 언론은 이전까지 그를 향한 혹평을 거둬들일 수밖에 없었다. 타이달(Tidal)을 통해 2천만 명에게 라이브로 전해진 이번 패션쇼는 카니예의 신보 발매 이벤트와 쇼를 결합해 티켓 가격만 50달러에서 135달러에 달했고, ‘예술과 상업의 완벽한 조합’이라는 호평을 얻으며 뉴욕 패션위크의 베스트 모멘트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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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writer ANNE SLOWEY
  • editor 주가은
  • PHOTO IMAXtree.com/GETTY IMAGES/IMAZINS
  • TRANSLATOR 백지원
  • DIGITAL DESIGNER 전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