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 관음증 그리고 찌라시 | 엘르코리아 (ELLE KOREA)

‘00패치’를 타고 전파되는 모자이크 처리 되지 않은 일반인들의 ‘핫’한 가십, 그냥 소비해도 괜찮은가요::찌라시,SNS,사생활,프라이버시,인스타그램,엘르,elle.co.kr:: | 찌라시,SNS,사생활,프라이버시,인스타그램

‘00패치’가 요즘 화제라는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트렌드를 모르는 사람 취급받을까 봐 그게 뭐냐고 물어보지도 못했다. 호기심이 높아갈 무렵 한두 번의 검색으로 알게 된 건 충격적인 글과 사진들이었다. “ㅇㅇㅇ(유명 룸살롱) 에이스로 유명했던 애예요. 얼굴 다 고쳤어요.” “고상한 척하면서 요리 사진 자꾸 올리는데 술집 다녔어요.” “쇼핑몰로 신분 세탁했는데 텐프로 맞아요. 지금도 돈만 주면 나가요.” 젊고, 예쁘고, 고급스러운 차림을 한 여성들의 실명과 사진에 해설처럼 붙어 있는 확인 불가한 ‘증언’들. 사진 속의 여성들이 과거에 강남 유흥업소에서 일했거나 일하는 중이라는 주장들을 바탕으로 ‘누구와 연인관계다, 스폰을 받았다, 성형을 했다’는 내밀한 사생활 정보가 댓글로 줄줄이 달려 있었다. 개설 후 며칠 만에 조회수 10만 건을 돌파한 강남패치의 게시물을 소비하는 사람들은 그녀들이 정말 성형을 했는지, 재벌 3세 누구와 불륜 관계인지는 상관없었다. 그저 모자이크 처리가 되지 않은 일반인들의 얼굴과 실명, 거기에 따라오는 ‘핫’한 가십을 소비할 뿐이었다. 거론된 여성들 중에는 SNS에서 화려한 생활과 미모로 유명해진 ‘페북녀’ ‘인스타녀 아무개’ 같은 SNS 셀럽들도 있었다. 수시로 떠나는 해외여행, 럭셔리 브랜드의 부티크에서 VIP 대접과 패션쇼 참석 등 꿈 같은 일상을 드러내는 그들의 게시물은 강남패치에서 ‘얘들 알고 보면 술집 다닌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그녀들의 SNS를 팔로잉하며 ‘저 언니는 저렇게 잘사는데 내 인생은 왜 이러나’ 부러워하던 사람들이 그걸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역시 그러면 그렇지’ 하며 우월감이라도 느꼈을까? 강남패치에 이어 등장한 ‘한남패치’는 강남패치의 흥행에 응답이라도 하듯 똑같은 방식으로 남성들의 신상과 사생활을 ‘털었다’. 젊고 잘생기거나 남다른 커리어를 가진 준유명인 남성들의 실명과 사진에 그들의 여성관계나 거의 범죄 수준의 루머가 댓글로 따라붙는 식이었다. “몸 좋은 거 믿고 이 여자 저 여자 등치고 다녀요. 잔 뒤에는 바로 잠수 타요.” “자기 모르면 강남 사람 아니라고 부심(자부심) 쩔어요.” “이 사람이 준 음료수 먹고 머리 아팠는데 약 탔던 것 같아요.” 강남패치와 마찬가지도 한남패치 역시 생판 모르는 사진 속의 남자가 누구랑 잤는지, 자고 나서 연락을 끊었는지 같은 사실을 우리가 알 필요가 있는지는 물론이고, 이런 식의 사생활 침해와 명예 훼손성 발언들이 범죄가 될 수 있다는 골치 아픈 문제는 전혀 고려사항이 아니었다. 가끔 한남패치와 강남패치에 언급된 당사자가 등장해서 직접 해명 글을 올리기도 했다. “어릴 때 놀았던 게 죄인가요? 성형한 거 맞는데 님들이랑 상관 없잖아요. 가족이랑 잘살고 있는데 저한테 왜 이러시나요?” 백번 지당한 이런 반박은 ‘패치’의 게시물들을 더 ‘핫’하게 만들어줄 뿐 해명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금 두 계정은 모두 폐쇄되고 운영자가 고소당한 상태지만 캡처된 사진과 신상 정보는 구글에 영원히 남을 것이고 카톡 등으로 널리 퍼지고 있다. 화려하고 부유한 SNS의 유명인, 미모의 여성들이 ‘알고 보니 유흥업소 종사자’라는 식의 하대와 조롱이 강남패치를 관통하는 기조다. ‘훼손될 명예가 있으면 고소하라’는 강남패치 인스타 계정의 소개 글은 유흥업소 다니는 여성들은 명예를 주장할 수 없다는 노골적인 증오를 드러낸다. 드러내놓고 나타내지는 못하지만 아직도 만연한 여성혐오, 유흥업소 종사 여성에 대한 하대와 편견, ‘박유천 사건’에 대한 왜곡된 일부의 팬덤, 거기에 관음증과 남녀 성대결 분위기가 ‘패치’ 계정을 탄생시켰다. 강남패치가 나오자마자 한남패치가 나온 것은 그동안 ‘김치녀’ ‘포인트카드녀’ 등으로 매도된 여성들이 가만히 당하지만은 않겠다는 움직임이다. ‘강남패치’가 여성들의 신상을 털면 ‘한남패치’가 똑같은 방식을 취한다. 인터넷 상의 여성혐오에 맞서겠다며 등장한 ‘메갈리아’의 ‘미러링’ 논리다. 혹자는 증오와 혐오를 같은 방식으로 되돌려주는 대응이 화풀이 말고 어떤 의미가 있느냐며 비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성들만 그런 비판을 받기엔 우리 사회는 여전히 공고한 남성 위주의 사회이고, 밤길은 여전히 불안하며, 대기업에서 여성이 임원 되는 것이 ‘신화’로 취급되는 사회이기에 미러링 방식의 대응을 선택하는 이들을 마냥 탓할 수만은 없다. 진짜 문제는 이런 성대결 과정에서 타인의 사생활이 무차별적으로 공개되고 루머가 확산되는 것이다. 인스타그램 서버가 외국에 있기 때문에 실질적인 처벌이 어려운 상황에서 두 패치 계정은 너무도 뻔뻔하게 확인되지 않은 루머들을 ‘제보’라면서 기정사실화해 버린다. 마치 스포츠처럼, 아무런 방어능력 없는 타인에 대한 가십과 질시를 즐기기 위해 그들의 신상을 터는 데 대한 죄의식을 갖지 않는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동안 강남패치에 언급된 재벌 3세가 강남패치 운영자를 고소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온라인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애정사와 성형 여부에 대해 ‘심판자’ 역할을 자처했던 ‘패치’ 운영자들이 법의 심판을 피해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남이야 성형을 하든, 100명의 여자랑 자든, 그건 전적으로 남의 인생이고 그들에게도 나에게도 인생은 인스타 게시물이 아니라 ‘실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