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토의 ‘알’ 라이크 록 뮤직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알’ 라이크 록 뮤직, 알베르토가 전하는 뮤직 칼럼 7월의 주인공은 도마뱀 왕 짐 모리슨. ::알베르토, 알베르토몬디, 비정상회담, 알차장, 록뮤직, 록뮤직추천, 짐 모리슨, elle.co.kr, 엘르:: | 알베르토,알베르토몬디,비정상회담,알차장,록뮤직

고등학교때부터 짐 모리슨은 나에게 자유의 상징이었다. 어른들이 나만의 세상을 이해 못 할 때, 세대 차이 때문에 답답할 때, 사회가 정한 길을 따라야 하는 것에 대한 압박을 느낄 때마다 짐 모리슨 사진을 붙여놓은 내 방에서 도어즈(The Doors)의 음악을 들으면서 그가 쓴 시집을 읽곤 했다. 1943년,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태어난 짐 모리슨은 24세에 갑자기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록 스타가 되었다. 단 5년간의 음악 활동으로 60년대의 미국 문화 혁명의 아이콘으로 반항, 시대 갈등과 같은 모든 비주류 문화의 상징하는, 미국을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로 말이다. 그가 만 24세에서 27세까지의 리드보컬을 맡고 있었던 도어즈의 음악에는 20대만이 가질 수 있는 넘치는 에너지, 불안함과 세상을 바꿔 버리고 싶은 의지가 완벽하게 담겨 있다과거로 돌아가서 그가 유명세를 얻기 시절의 얘기를 잠시 해볼까 한다. 바로 짐 모리슨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버린 만남에 대하여. 짐 모리슨은 아주 잘 생기고, IQ 149의 명석한 두뇌와 아름다운 목소리까지 지닌 완벽한 ‘엄친아’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미국해군 소장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이사도 자주 다녔고, 군대처럼 엄격한 교육도 받았다. 학창 시절 공부는 잘 했지만 책을 보는 것을 더 좋아해서 집에는 몇 백 권 이상의 책이 쌓여 있었고, 수업에 빠지는 대신 시인들이 모이는 카페에 다니기도 했다. 공부는 잘 했지만 반항심이 강해서 고등학교 졸업식에 몰래 참석하지 않아서 부모님과 심한 갈등을 빚은 적도 있다. 심지어 대학교 땐 미식축구 시합을 보다가 술에 취해 한 심한 농담으로 경찰에 체포까지 당하기도 했다. 그는 UCLA대학교에서 영화를 전공으로 졸업한 이후에 취업도 하지 않고 베니스 비치에서 보헤미안 스타일로 살았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을 벌고, 술, 마약, 독서, 음악 감상과 같은 모든 일을 과도하게 하면서 시간을 보냈던 것. 이런 나날을 보내던 와중에 그의 인생을 바꿀 사람을 만났다. LA의 베니스 비치에서 말이다! 대학교 동창이었던 레이 만자렉(Ray Manzarek)을 만났고, 그와 요가와 명상 수업을 같이 듣던 다른 두 명 로비 크리거(Robby Krieger), 존 덴스모어(John Densmore)와 함께 마침내 밴드를 결성하게 됐다. 그 밴드가 바로 전세계적으로 1억장 이상의 레코드를 판매한 도어스다.도어스는 처음에는 재즈와 사이키델릭 록, 블루스를 절묘하게 섞은 음악 스타일을 구사하며, LA 인근의 펍에서 연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짐 모리슨의 기이한 언행과 행동으로 펍에서 연주할 때마다 자주 쫓겨났다. 철학과 시를 사랑한 그는 사회의 규범에 맞서 자유와 의지를 가지고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콘서트장에서 선동적인 말과 엽기적인 기행으로 청중을 움직였다. 음악뿐만 아니라 이런 행동으로 인해 점점 유명해지기 시작한 그들을 엘레트라 레코드사에서 주목하기 시작했고 결국 록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 중의 하나가 된 첫 앨범 를 발매했다. 이 앨범은 무려 2천 만장 이상 팔리는 진 기록을 세웠다. ‘Light my fire’로 빌보드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한 그들은 에드 설리반 쇼에서 가사 중 ‘Girl, we couldn't get much higher’(‘Get high’는 마약에 취한다는 뜻)라는 가사가 유해하다는 제작진의 권유로 ‘Higher’를 ‘Better’로 고쳐 부르기로 하고 출연을 약속했다. 하지만 생방송 도중 고쳐부르기로 한 가사를 원가사 그대로 불렀고 쇼 후에는 ‘미디어를 지배하는 사람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Whoever controls the media, controls the mind)’고 말했다. 이는 사회의 정해진 규범과 언론의 자유에 대한 자신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는 짐 모리슨 인생을 관통하는 가치관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해프닝이었다. 영화를 전공한 짐 모리슨은 프랑스 여류 시인이자 연출가였던 앙토냉 아르토를 존경했는데 연극에서는 배우와 관객의 마법적인 공감대 형성, 제스처와 소리, 기이한 배경과 조명, 괴상한 언어들로 일상과 논리를 파괴하여 인간 무의식을 해방시켜 자유를 얻어야 한다는 데 동감하여 그의 음악이나 콘서트장에서 이를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때문인지 모욕적인 발언 및 노출, 선동 등의 명목으로 몇 번이나 경찰들이 그의 콘서트장에 출동하여 그들을 체포하기도 했다. 하지만 매번 콘서트는 매진사례를 이뤘고 60년대 보수적인 사회와 젊은이들에게 도어스의 파격적인 행보는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도어스를 시작한 지 5년 만인 27세 때 이미 8장의 빌보드 top 10 앨범을 발매했지만 심각한 알코올 중독 증세를 보였던 그는 당시 여자친구였던 파멜라와 파리로 떠났다. 그리고 어느 날 호텔의 욕조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고 별다른 검시 없이 장례식을 치르게 되었다. 갑작스런 그의 죽음은 많은 이들에게 의문을 불러일으켰지만 잔실은 아무도 몰랐다. 알콜이나 약물 중독으로 인한 사망일 것이라는 설, 사실 자주 가던 바 화장실에서 죽었는데 문제가 될까 싶어 몰래 숙소로 옮겼다는 설 등 아직까지도 그의 죽음은 미스테리에 싸여있다. 아직까지도 매일 수백의 조문객이 방문하는 파리에 위치한 페르 라셰즈 묘지(Pere Lachaise Cemetery)의 그의 무덤 비석에는 그리스어로 ‘ΚΑΤΑ ΤΟΝ ΔΑΙΜΟΝΑ ΕΑΥΤΟΥ’라고 쓰여 있는데 이는 ‘난 내 영혼에 충실했다(Faithful to his spirit)’는 의미이다. 짐 모리슨 대단한 뮤지션이었을 뿐만 아니라 시인이었다. 살아 생전에 2권의 시집을 펴냈으며 사후 발간된 2권의 시집 모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짐 모리슨의 짧고도 굵은 인생은 현대에도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나의 사춘기 시절 나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그의 말로 마치고자 한다. “가장 중요한 종류의 자유는 당신 자신이 진정 누구인가하는 것이다. (중략) 모든 혁명은 개인적으로 내면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The most important kind of freedom is to be what you really are. You trade in your reality for a role. You trade in your sense for an act. You give up your ability to feel, and in exchange, put on a mask. There can't be any large-scale revolution until there's a personal revolution, on an individual level. It's got to happen inside first)”RECOMMENDATIONSMust Listen Light My Fire (The Doors, 1967)Break On Through (To the Other Side) (The Doors, 1967)Hello, I Love You (Waiting For The Sun, 1968)Iconic SongsWhen The Music’s Over (Strange Days, 1967)Riders On The Storm (LA Woman, 1971)The End (The Doors, 1967)Albe’s FavoritesThe Crystal Ship(The Doors, 1967)Shaman’s Blues (The Soft Parade, 1969)The Soft Parade (The Soft Parade, 1969)PROFILE 본명인 ‘알베르토 몬디’보다 알베르토, 알차장, 알오빠와 같은 별칭으로 더 잘 알려진 마성의 이탈리안 가이. 중국에서 만난 와이프를 쫓아 한국에 왔다 정착하게 된 사랑꾼. 평화와 사랑을 믿고 인간의 따뜻한 본성을 지지하는 대인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