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권한다고 러너가 되진 않는다‘96페이지 읽는 도중 달리러 간다. 2014. 06. 27’. 달리기를 어떻게 시작하게 됐더라…. 지난 5월 22일에 있었던 서울 나이키 우먼스 하프 마라톤을 끝낸 시점, 기억을 떠올리며 책장에서 <러닝 라이크 어 걸>을 꺼내 펼쳤더니 다급하게 휘갈긴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한동안 미쳐 있던 인라인스케이트에 마침표를 찍은 20대 중반 이후, 내내 책상 아래 정박해 온 다리, 닻만큼이나 무거워진 엉덩이를 번쩍 들어 좁은 골목으로 내몰고 한강으로 떠민 힘의 시작점이 물결치는 텍스트로 머물러 있었다.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부터 나는 오래달리기를 잘하지도, 즐기지도 않는 부류였다. 이왕 달릴 거면 가슴이 출렁거리는 굴욕을 감수하고라도 빨리 끝낼 수 있는 단거리가 나았다. 그러고 보면 달리기는 운동도 아니었다. 어떤 운동을 하기 위한 워밍업에 불과했다. 그런데 자발적 달리기라니, 마라톤을 꿈꾸다니. ‘닻을 올려야 한다, 바람을 타고 나아가야 한다.’ 나는 어쩌면 오랫동안 무의식중에 이같은 주문을 걸고 있었던 건 아닐까. 복잡한 삶 속에서 내가 나라는 것을 증명할 방법을, 어딘가에서 잃어버린 자신의 본래 모습으로 복귀하고자 하는 강한 마음을 땅을 박차고 나가는, 비교적 간편해 보이는 방법으로 나려고 한 건 아니었을까. 다만 2년 전의 내가 기특하다고 생각했던 건 이런 잡생각 따윈 할 틈도 없이 아주 단순하게 운동복과 운동화로 갈아입고 한강으로 달려 나갔다는 사실 때문이다. 하지만 그 단순한 뜀박질이 내 인생을 변화시킬 의미 있는 워밍업이 되리라곤 당시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렇게 될 만해서 러너가 되는 것<러닝 라이크 어 걸> 98쪽은 저자 알렉산드라 헤민슬리가 달리기를 통해 마주한 아버지와의 새로운 관계를 서술하는 대목이 실려 있다. 당시의 나는 그 이야기를 자신과의 관계 회복에 적용한 게 분명했다. 책을 다시 훑어보니 얻은 것과 놓친 게 분명해졌는데 먼저 밑줄을 쳐놓은 부분에서 얻은 것은 자신의 발에 최적화된 러닝화, 크건 작건 근육이 전혀 없는 가슴을 제대로 가둬둘 수 있는 브래지어, 발의 마찰의 줄여주는 질 좋은 양말 등 초보 러너가 알아야 할 필수 아이템에 대한 내용들이었다. 러닝화는 발이 부을 것을 고려해 반 사이즈 큰 신발을 신어야 발이 숨을 쉴 수 있으며, 브래지어는 가슴의 구조적 탄력을 지탱하는 쿠퍼 인대를 보호하고 피부 마찰을 줄여주는 스포츠 브라를 피팅 서비스 받은 후 선택하는 게 좋다. 러닝화 안에서 젖었다 말랐다를 반복하는 양말은 소재도 중요하지만 달리는 데 익숙할 즈음엔 압박 양말처럼 종아리를 압박해 혈액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는 기능에도 관심을 둬야 한다. 물론 나도 안다. 당신이 생각하는 기능성 의류란 ‘못생긴 옷’에 불구하다는 사실을. 하지만 달리기를 시작해 주의를 둘러보면 그 고정관념을 깨는 스포츠웨어 디자인이 너무 많아서 문제인 상황이 발생한다. 이럴 때 쇼퍼홀릭이 되는 게 숙명이라면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내 경우엔 액세서리를 뺀 최정예 아이템만 갖추고 운동을 시작했지만 2년이 지난 지금, 옷장엔 러닝과 트레이닝용 아이템이 포화 상태가 됐다. 하지만 저자의 말대로 내 몸이 그 옷을 입고 재미를 느낄 수 있어야 하기에 러너가 되는 것과 내 자신이 되는 것, 둘 중 하나를 선택할 필요는 없다. 진짜 문제는 여기에 있다. 달리기 위해 발을 뗐는데 달릴 줄 모른다는 것. 울랄라. 이렇게 어수룩한 ‘워너비 러너’의 이야기가 지인들에게 전해지면서 고맙게도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다(왜 달리기에 관한 인터넷 검색도 해보지 않았는지 지금으로선 이해되지 않지만). 가장 큰 성과는 한 동네 사는 러닝 메이트를 구할 수 있었다는 거다. 달밤의 체조에 메이트가 생긴다는 건 적어도 안전에 관한 문제가 해결된다는 뜻이었다. 이밖에도 나이키 러닝 앱 사용법과 킬로미터당 속도에 대한 감 익히기, 걷기에 유혹되지 않고 꾸준히 뛰는 연습, 준비운동과 쿨다운 방법 등을 익힐 수 있었다. 집에서 한강잠원지구까지 왕복 3km, 준비운동을 하고 3~4km 달리기, 쿨다운 이후 음료수를 하나씩 입에 물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은 평균 밤 11시였다. 그렇게 새로운 여름밤이 열렸고, 신나게 방출되던 땀방울은 가을이 되어 해가 일찍 떨어지고 날씨까지 쌀쌀해지자 자연스럽게 소강 상태에 돌입했다. 하지만 좀처럼 다음 시즌 방영 일정이 정해지지 않는 ‘미드’ 같은 나의 달리기 제2장은 이듬해 봄, 매거진 에디터들을 소환한 ‘나이키 미디어 RTL 클럽’을 통해 구원될 수 있었다. “선배, 우리 10km 레이스 나가요. 충분히 해볼 만해요. 재미있고. 나이키에서 서포트받으면서 하면 좋잖아.” “어우, 내가 10km를 어떻게 뛰니? 억만금을 줘도 못하겠다, 그건.” 1년 전 후배의 제안을 단번에 거절했던, 너무 유명해서 신청하는 데도 경쟁이 치열하다는 바로 그 ‘2015 나이키 우먼스 레이스 10K & 15K’의 초대에 기꺼이 응하게 된 거다. 어쩌면 그것만으로 나는 이미 완전히 달라진 사람이 된 거나 다름 없었다.효과적으로 자신을 연소시키는 일‘2015 나이키 우먼스 레이스 10K & 15K’ 중 10km를 뛴 경험은 달리기에 대한, 넓게는 운동을 대하는 젊은이(!)들의 관점을 아로새긴 기회가 됐다. 남자친구를 그날의 가방 거치대와 포토그래퍼로 소환한 수많은 여성 러너들의 애티튜드는 ‘상대 남자들의 심리는 뭘까’ 하는 궁금증으로 이어졌지만 해소되지 않아도 될 만한 별도의 궁금증이었으니 패스. 다만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나와 달리 ‘달려야 한다’가 아니라 ‘즐기면 그만’이라는 그들의 태도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추억을 쌓기 위해 레이스에 참가했다 하더라도 마냥 10km 혹은 15km를 걸을 수만은 없다. 수치야 어떻든 긴장감이 없지 않다는 말이다. 그중엔 자신의 모습을 사진에 담는 것으로 시작해 시선을 점점 세상 밖으로 향한 이도 적지 않을 것이다. 달리면서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기보다 길에서 보이는 것에 집중한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면 됐다. 뛰겠다고 결정하고, 그저 뛰고 싶어 하기만 하면 된다. 그게 달리기로 마음먹은 이들의 이유일 테니까. 그리고 남자친구만 대동하지 않았을 뿐 나도 그들과 같았다. 5km 구간에서 화장실을 다녀오는 바람에 페이스를 잃은 나는 1시간 18분(7분46초대)만에 골인 지점을 통과했다. 완주했다는 안도감과 달리 만족스럽지 않은 기록은 내게 집중할 또 다른 시간이 필요함을 상기시켰다. 달리기를 하기 위한 근본적인 단련, 바로 근력을 포함한 몸에 대한 준비 말이다. 지난 몇 달에 걸친 칼럼을 통해 내 필라테스 체험기와 8체질 섭생기는 게으르게 이어가고 있으나 여전히 흥미의 상위권을 차지하는 것은 달리기로 비롯된 행보였다. “근육이라는 것도 살아 있는 동물과 마찬가지로 가능하면 힘 안 들이고 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무거운 짐이 주어지지 않으면 안심하고 기억을 지워 나간다. 그리고 일단 해제된 기억을 다시 입력할 경우에는 또 한 번 같은 과정을 처음부터 되풀이해야 한다.” 그간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얘기한 근육이란 놈과의 사투에서 100전 100패라는 스코어를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필라테스와 금음체질식을 꾸준히 이어가면서 녀석에 대한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서울 나이키 우먼스 하프 마라톤’에 참여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여전히 달리기에 미숙해도 이런 일련의 과정을 익숙하게 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단지 10km 레이스에 한 번 참여했을 뿐인 사람이 21km나 되는 하프 마라톤에 참가해도 될까 하는 고민과 부담은 대회에 참가하는 당일까지 이어졌다. 정말이지 특별 편성(!)된 나이키의 서포트가 없었다면 감도 잡지 못한 채 레이스를 포기했을 가능성이 다분했다. 아이린 코치와의 1:1 상담부터 런 클럽, 하프 마라톤 컨설팅까지 미숙한 사람을 제법 익숙하게 단련시킨 3개월의 과정 동안 나는 NRC(나이키 러닝 클럽), NTC(나이키 트레이닝 클럽)에 참여해 경험을 익혀갔다. 스쿼트 1000개 달성이라는, 내겐 너무 과분한 트레이닝에서 오기를 부렸다가 트레이닝 세션을 접은 좌충우돌도 있었다. 강남과 독립공원, 한체대 등에서 장단거리를 달렸던 경험은 사소하지만 구체적인 교훈을 얻어가며 내 낮은 신체능력 대한 데이터들을 인정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나이키 강남 매장에서 진행된 하프 마라톤 구간 설명과 컨설팅을 받으면서 15km 롱런에 참여한 건 신의 한 수였다. 안 그랬다면 하프 마라톤 완주는 물 건너 갔을 것이다. 그날은 15km를 6분 40초대로 완주했다. 물론 겨우. 그리고 다리를 박차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팔 흔들기의 중요성도 재정비할 수 있었다. 그런데 15km를 완주했다는 기쁨도 잠시, 이틀 후 종아리에 탈이 났다.달리기의 본질과 사는 것의 메타포하프 마라톤이 끝난 지 한 달이 된 시점, 나는 그때를 세세하게 상기하기엔 이미 늦은 평안의 상태다. 시청에서 시작해 처음으로 한계가 찾아온 어린이대공원 지점, 다리가 올라가지 않던 올림픽대교를 지나 달리기의 시동이 어쩔 수 없이 걷기로 전환된 시점들 그리고 마지막 1km에서 전력을 다했을 때 내 몸에 에너지가 많이 남아 있음을 알고 한계에 이르렀다고 오해한 지난 구간에 대한 아쉬움이 묻어 있는 정도다. 15km 롱런 이후 찾아왔던 종아리 통증은 지압을 받고 필라테스를 하고 마그네슘을 섭취하는 등의 유난을 떨며 회복할 수 있었고, 하프 마라톤 당일엔 달리는 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일찍 찾아온 더위와 무자비할 정도로 따가운 햇살이 달리고 있다는 현실감을 앗아간 고통스런 기억은 있다. 오래 달릴수록 어려운 것은 달리는 일보다는 오히려 감정을 추스르는 일이었는데 생전 그렇게 내 이름을 많이 불러본 건 처음이었다. 완주에 실패해 깜냥도 안 되는 거리를 달렸다거나 트레이닝에 게을렀다는 자책을 하고 싶지 않은 것도 이유였다. 무엇보다 내 주위엔 걷는 러너들이 잔뜩 포진해 있었던 터라 그들의 패턴을 따라 하는 것만은 지양했다. 그래서 기록은? 2시간 54분, 집계를 보니 최종 1559위인데 결승선에 다다른 사진을 보니 마치 10위권 안에 든 사람보다 더 신이 난 표정이었다. 목표 달성의 세레모니였을 테니까.달리기를 시작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내 몸이 어떻게 보이는지 보다 내 몸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게 된 것 같다. 몸이 변하면 몸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관점도 바뀔 수 있을 것 같아 지난 2년간 몸에 대한 습관을 조금씩 바꿔온 게 아닌가 싶다.  아이러니하게도 몸에 근육이 붙으면서 바뀐 건 내면이었다. 감정에 근육이 붙으니 주변에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고 낙담할 필요도 없었고 오히려 내 자신을 소통 대상으로 삼아 연습할 수 있게 됐다. 관계를 망칠지 모른다는 불안감 없이 안전한 상태에서, 나와의 소통이 보다 자유로워진 거다. 예전엔 달리기를 못하는 것이 나다운 거였다.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게 당연한 일상이었다. 감정이 널을 뛰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나는 자신을 괜찮은 사람으로 여기고 싶어 했다. 이 어불성설의 라이프스타일을 교정해 준 건 달리기의 공이 크다. “너희들의 증조부 샹폴리옹은 인간이 자주 쓰는 단어를 알아봤기 때문에 그들의 언어를 해독할 수 있었지. 바로 ‘시간’이라는 단어야. ‘시간이 없다’ ‘일할 시간이다’ ‘시간이 부족하다’ ‘시간을 좀 달라’ 등등. 그런데도 정작 시간의 의미는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비관만 하다 죽었어.” 아마도 나는 당분간 장 자크 상페의 <돌풍과 소강>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일은 경험하지 않을 것이다. 좀 더 장기적으로 감정의 근육을 이어가기 위해 나를 위한 특별한 시간도 계획하게 됐다. 그러니 하루키의 말대로 이 역시 하나의 성취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