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로에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클레어 웨이트 켈러는 조용하지만 파워플한 여성이다. 하이패션계를 이끄는 여성 디자이너로서 늘 갖고 싶은 현실적인 디자인으로 매 시즌 놀라운 성과를 보여준다. 출산 후 아주 짧은 시간 안에 끌로에의 데뷔 컬렉션을 선보여야 했던 그녀는 ‘성공적인 보스’와 ‘행복한 엄마’라는 두 가지 타이틀을 잃지 않기 위해 어떤 마법을 부려야 했을까? 사실, 남자들에게 필요 없는 이 질문은 일하는 여성들에게는 불가피하다. 많은 여성들이 완벽한 워킹 우먼으로 살기엔 여전히 힘겨운 세상이다. 오늘날 패션계의 70% 이상은 여성들로 이뤄져 있지만 25% 미만의 여성들만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더욱이 여성이 패션의 주 소비자임에도 중요 안건은 모두 고위층 남자들이 결정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끌로에의 회장 지오프리 드 라 보르도나이는 클레어 웨이트 켈러를 영입한 이후 놀랄 만한 성장을 기록했다고 말한다. 비평가들 역시 컬렉션에 활기를 불어넣은 그녀에게 호평 일색이다. 아무리 뛰어난 디자이너라도 작업 환경에서 불협화음을 일으킨다면 결코 비즈니스 성공으로 이어질 수 없다. 게다가 중요한 디렉터 역할을 위해선 가정을 포기하거나, 아니면 원래의 뜻을 펼치지 못한 채 그저 이런저런 요구사항에 휩쓸려 버리고 만다. 하지만 그녀는 옷장 속뿐 아니라 일터에서도 그 판도를 바꾸어놓고 있다. 캘빈 클라인, 랄프 로렌, 구찌, 프링글 오브 스코틀랜드를 거쳐 2011년 끌로에의 디렉터로 리치몬트 그룹의 CEO 마티 윅스트롬과 인터뷰할 당시, “디렉터의 리스트에도 오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클레어 웨이트 켈러가 말했다. 당시 그녀는 임신 5개월이었다. “처음부터 솔직하게 이런 얘기를 했더니, 마티는 ‘클레어, 난 당신에게 오직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어요. 이 일을 할 수 있나요?’라고 했죠. ‘네, 당연히 할 수 있어요!’ 임신한 상황이지만 기회를 잡는 데는 그 어떤 장벽도 없다는 얘기였죠. 당시 나는 끌로에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줄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죠.” 이 소식은 끌로에뿐 아니라 패션계 전체가 술렁일 정도로 커다란 이슈였다.현대 여성의 정의를 내리라면 클레어 웨이트 켈러가 가장 잘 들어맞지 않을까 싶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패션 속도에 휘둘리지 않은 채 자신만의 스타일을 유지한다. 패셔너블함 속에서도 그녀에게서만 느껴지는 여유로운 라이프스타일! 컬렉션을 마친 후 한층 더 성숙해진 그녀를 만났다.남자들이 지배적인 곳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많은 여성들이 패션계에서 일하고 있지만 결정권이 없는 경우가 많다. 높은 자리로 올라갈수록 여성들은 점점 더 사라지고, 때론 유일한 여성이 될 수도 있다. 게다가 남자들의 발언권이 강해지는 고위층에선 대화조차 차단돼 버린다. 중요한 건 동료들과의 직접적인 소통이다. 자신 있게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여성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목소리를 내주길 바란다. 끌로에는 85%의 직원이 여성이고, 다른 곳에 비해 여성 디렉터의 비율도 높다. 여성들이 패션계에서 더 큰 역할을 맡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스스로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잘 알고 있으니까. 워킹 맘들에게도 더 많은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어머니가 훌륭한 롤 모델이었나 항상 딸의 선택을 존중하고 아낌없이 지원해 주셨다. 어릴 적에 어머니는 보험회사에서 일했는데, 늘 시간을 쪼개 우리를 돌봐주셨다. 또 구찌에서 일할 당시 우리 쌍둥이(아멜리아와 샬럿)는 6개월이었고 나는 출장이 잦아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어머니는 길게는 한 달가량을 함께 머물며 쇼가 끝나는 걸 지켜보셨다. 일할 때마다 죄책감이 들곤 했지만, 그래서 더욱 일에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어머니에게 육아를 맡기는 건 완전한 신뢰를 뜻한다. 디렉터로서 자신감을 갖는다는 것은 ‘자신감이 없다면 그걸 가장해라’는 말을 좋아한다. 끊임없이 ‘난 할 수 있어!’라는 말을 되뇌면서, 스스로를 믿는다. 나를 믿기 위해선 그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가 돼야 한다. 그건 의지와 집중력의 문제다. 패션계에서 일하면서 회의가 들었던 적은 왜 없었겠나. 구찌에서 톰 포드가 떠났을 때, 마땅한 일자리 없이 나 역시 구찌를 떠났다. 그땐 새로운 일을 하고 싶은 마음도, 가족을 돌볼 여유도 없었다. 그저 휴식을 갖고 한동안 뭔가 다른 일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을 때 프링글 오브 스코틀랜드를 맡게 됐다. 언제나 침착하고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일과 가정에서 모두 그런가 모든 일을 감정적이지 않고 침착하게 처리하려고 노력한다. 사소한 것이라도 놓치거나 잊어버리지 않게 메모하고 정리정돈하는 걸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유가 생기더라. 하지만 남편과 나는 가족을 최우선 순위로 여긴다. 그것만이 우리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