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도시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아이슬란드는 이제 그만, 남미가 뜨고 있다.::남미,라틴,라틴아메리카,브라질,리우,리우올림픽,쿠바,루이비통,엘르,elle.co.kr::

개인적으로 남미에 대해 아는 건 몇 가지뿐이다. 영화 속에서 이자벨 위페르가 꿈꾸던 파라다이스였던 리우의 코파카바나 해변, 프란시스코 코스타와 나르시소 로드리게즈, 라자로 헤르난데즈를 비롯한 중남미 출신의 패션 디자이너들, 지젤 번천의 탐스러운 엉덩이가 그다지 놀랍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는 이파네마 해변, 헤밍웨이의 모히토로 유명하지만 실은 없는 말을 지어낸 상술로 밝혀진 아바나의 보데기타 바. 몇 달 전, 방한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고별 무대를 놓치고 아쉬워했던 기억 외엔 중남미 문화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가져본 기억이 없다. 그러나, 2016년이 시작되기 전, 하이패션에서 영향이 막강한 두 개의 럭셔리 하우스가 남미로 향할 거라는 행보를 밝히면서(물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전 세계인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2016 리우 올림픽은 말할 것도 없다) 남미는 대세가 됐다.


패션계에 불어온 남미 열풍의 첫 테이프를 끊은 건 촉이 좋기로 유명한 샤넬의 칼 라거펠트였다. 칼이 크루즈 컬렉션을 위한 올해의 도시로 쿠바를 선택한 건 무척 쉬운 결정이었을 것이다. 50년 만에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가 이뤄진 역사적인 타이밍이라는 걸 감안했다면 말이다. 오바마 대통령, 롤링스톤스의 뒤를 이어 칼 라거펠트가 슈퍼모델 군단과 함께 블록버스터급 쇼타임을 위해 아바나에 도착했다. 쿠바를 상징하는 풍선껌 컬러의 빈티지 자동차가 초특급 게스트 600여 명을 태우고 프라도 광장 앞으로 몰려들면서 토박이들도 본 적 없는 파스텔 톤의 진풍경이 도심 한가운데에 펼쳐졌다. 프라도 광장을 따라 늘어선 아바나의 상징적인 아르데코풍 건축물은 백드롭이 되고, 완벽한 타이밍에 맞춰 붉게 물든 석양이 운치 있는 조명이 되어 쇼가 시작되자마자 쿠바의 전통 의상인 구아야베라와 파나마 햇, 남미의 강렬한 햇빛에 바랜 듯 부드러운 컬러의 행렬이 광장 위로 이어졌으며, 살사 댄스의 흥겨운 리듬으로 끝났다. 한여름 밤, 쿠바의 열기가 대단했던 걸까? 82세로 추정되지만 한 번도 정확한 나이는 밝힌 적 없는 패션계의 전설이 생 로랑의 시퀸 재킷과 장갑을 낀 채로, 그동안 숨겨온 발군의 댄스 실력을 발휘했다는 후문이다. 남미에서 영감을 충전한 또 다른 디자이너는 루이 비통의 니콜라 제스키에르. 그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이국적인 전통 문화보다 시대가 뒤섞인 현재의 리우를 여행자의 시선으로 관찰하고 자신의 영감을 좀 더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평소 건축물에서 영감을 받는 그는 이번엔 브라질을 대표하는 건축가 오스카 니마이어가 지은 니테로이 현대미술관을 택했고, 구조적인 조형미에 스포티한 올림픽 무드와 강렬하고 산뜻한 컬러 블록을 더한 크루즈 컬렉션은 전에 없이 신선했다. 브라질의 영감은 이전 시즌까지 이어져온 미래적인 전사 무드를 완전히 환기할 만큼 파워플했다. 더욱이 니콜라는 프리폴 컬렉션 역시 라틴아메리카와 연결 지었다. 레아 세이두의 첫 루이 비통 광고 캠페인이 촬영된 곳이 바로 멕시코를 대표하는 건축가 루이스 바라간(Luis Barragan)의 60년대 건축물 중 하나인 쿠아드라 산 크리스토발(Cuadra San Cristobal)이다. 핑크와 탠저린, 라벤더, 에그셸 컬러의 벽으로 둘러싸인 아이코닉한 건축물은 이미 제이 크루와 나인 웨스트의 2016 S/S 광고 캠페인 로케이션이 될 만큼 패션계의 ‘핫’ 플레이스로 재조명받고 있다. 패션계가 남미로 향하기 전부터 디자인계와 예술계는 지난 몇 년 동안 남미의 약진을 주시해 왔다. 2016년 밀란 가구박람회 기간 중, 밀란 가구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컬렉터 니나 야샤르는 ‘지금 가장 주목해야 할 디자인’으로 브라질을 지목했다. 그녀가 운영하는 쇼룸 닐루파 갤러리는 50년대 브라질 거장들의 피스에서 이미 성공 보증수표가 된 캄파나 형제, 세르지오 로드리게스를 비롯한 라이징 스타에 이르기까지 남미 디자인의 힘을 보여주는 컬렉션으로 채워져 프레스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한편, 국내외에서 라틴아메리카의 예술을 조망한 전시가 줄을 잇고 있는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뉴질랜드 오클랜드 아트 갤러리에서 기획한 남미 예술전 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콜롬비아, 파라과이, 우루과이 등 남미 6개국 출신의 현대미술가 41인의 작품을 총망라한 메가 전시로 이런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중이다. 남미 예술은 우리 가까이에도 있다. 지난해 세종문화회관의 <디에고 리베라, 멕시코의 자랑>과 소마 미술관의 <프리다 칼로> 전시가 좋은 반응을 얻은 이후, 이번엔 이 두 명의 멕시코 국보급 아티스트를 하나로 묶은 메가 전시 <프리다 칼로 & 디에고 리베라>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8월까지 열린다. 꿈의숲아트센터에서 기획한 <남미현대미술특별전> 역시 콜롬비아의 파울 파렐라, 베네수엘라의 조니델 멘도자, 아르헨티나의 클라우디오 론콜리 등 생소한 이름의 남미 작가의 작품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브라질의 로라이더 컬처(자동차나 자전거를 커스터마이징으로 꾸미고 무리 지어 다니는 문화)에서 영감을 얻은 컬렉션을 발표했던 패션 디자이너 애덤 립스(Adam Lippes)는 디자이너 프란시스코 코스타와 함께 90년대부터 리우를 찾은 남미 마니아이다. 그는 한 여행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남미의 매력을 이야기한 적 있다. “리우는 내게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이 있다는 걸 알게 해 줬어요. 시계를 차지 않는 그들은 저녁 약속을 정하면서도 정확한 시간을 얘기하지 않죠. 그런 방식이 가진 마법 같은 장점이 있어요. 더욱이 그곳엔 신선하고 단순한 음식과 아름다운 해변, 사람, 파티 등 한여름을 위한 모든 것이 있어요.” 강렬하고 별난 미학, 느긋함으로 무장한 남미의 생활방식은 모든 것이 빠르게 생성되고 소멸되는 디지털 일상에 지친 현대인에게 쉼을 주고 영감을 불어넣는 마지막 유토피아일지도 모른다. 일단 미술관에서 남미 예술을 만나는 것으로 시작하자. 머릿속으로는 이파네마 해변에 끝내주게 예쁜 비치 타월을 깔고, 작은 비키니만 걸친 채 누워 모히토로 텁텁한 열기를 식히면서 그 특별한 태양을 만끽하는 상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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