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지 않아도 그대로 멋진, 김상호 ‘신 스틸러’란 말이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배우다 ‘명품 조연’보다 더 듣기 좋다. 물론 ‘명품 조연’도 고마운 말이지만, 살짝 규정하는 느낌이 든다. 신 스틸러는 주연이든 조연이든 배역에 상관 없이, 작품을 보고 나서 기억에 남는다는 뜻이니까. 어떤 역할을 연기할 때 즐거움을 느끼나 처음부터 ‘이 사람 웃겨’라고 규정 짓는 인물은 되게 불편하다. 그럼 내가 더 이상 할 게 없다. 그렇지 않은 작품이 <모비딕>이었다. 기자라 해서 다 머리털 많으라는 법은 없지 않나. 머리털이 없다고 해서 늘 웃기고 다닐 필요도 없고. <대호>나 이번에 개봉하는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를 찍으면서 많이 행복했다. 만일 다른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글쎄, 난 내가 좋다. 나는 판매량이 많은 상품이 되기보다 판매되는 지역이 넓은 상품이 되고 싶다. 어떤 외모든 ‘인간’만 잘 표현해낼 수 있다면, 여러 군데에 쓰이는 배우가 될 수 있지 않을까.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기는 점 배우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과 지금의 아내를 만난 것. 신기하다. 연극하던 시절, 나는 평생 돈 벌어서 밥 먹을 팔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잘 살고 있지 않나. 가끔 자문한다. ‘상호, 너는 어떻게 이런 직업을 택해서 이렇게 행복하게 사느냐?’고. 인생에서 영화 같았던 순간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바지 정장을 입고 긴 머리를 메추리 꼬리처럼 묶고, 한 손에 서류 봉투를 들고 걸어 오는데 ‘아, 사람한테서 빛이 나는구나’ 싶었다. 해보고 싶은 도전 올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만년 꼴찌였던 레스터 시티가 최초로 우승하지 않았나. 그걸 보면서 ‘인간은 계속 성장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고로 나도 몸집만 커지고 머리털만 빠지는 게 아니라, 계속 내 안을 채우고 비워나가면서 성장해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