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겜블러, 고창석시각적인 배우로 타고났다 내가 ‘신 스틸러’로 불리는 이유를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독특한 외모 때문이 아닐까 싶다. 덕분에 살이 안 빠지게, 얼굴이 더 작아지지 않게끔 노력하고 있다(웃음). 가끔 제작진이 나를 통해 시각적인 표현에 욕심을 낼 때가 있는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창석 역이 대표적이다. 컨셉트 회의 때 윗머리는 없고 아래는 양갈래로 묶어 보자고 해서 분장을 끝내고 나갔는데 그 자리에 있던 성동일, 신정근 선배가 “야, 너 이 자식 그거 반칙 아냐? 저 비주얼을 누가 이겨?”라고 하더라. “나는 조선의 국모다”라고 받아쳤지. 배우 고창석의 커리어를 계절에 비유한다면 처음 영화에 출연하게 된 건 일종의 일탈이었는데, 2005년 <친절한 금자씨>에 출연하면서 ‘정말 영화 하고 싶다’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불과 10년밖에 안 된 일이니 지금의 커리어는 ‘초’가을이라 해도 되지 않을까. <친절한 금자씨>는 이틀 촬영한 장면이 영화에 빠짐없이 등장해서 단역이라도 내 역할이 분명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이후 촬영분이 통편집되는 경우도 있었고, 카메오로 출연해서 조연상을 받은 적도 있다. ‘영화가 이런 거구나’ 하는 자각이 든 이후에는 드라마와 뮤지컬에도 참여하고 연극도 다시 하니까 뭐라고 해야 할까 ‘열매를 맺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가장 힘을 뺀 순간 “저는 이제 영화하기 싫습니다”라고 거절했던 영화가 바로 <영화는 영화다>다. 아이러니한 건 사람들이 이 영화로 나를 아주 많이 기억해 준다는 거다. 그 전까지 정말 열심히, 열심히 했다. 그리고 ‘내가 영화랑 안 맞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이 작품을 만났고 그제야 힘을 뺀다는 것의 힘을 깨달았다. 상당히 당혹스러운 때였지만 나를 일으켜 세운 작품이다. 배우를 떠나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고기도 먹어 본 놈이 먹는다고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도 사실은 어떤 면에서는 악다구니만 쓴다고 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거라고 생각한다. 늘 사랑받고 인정받았던 놈들은 어딜 가도 사랑받고 인정받는다. 대학 시절 탈춤 동아리에 가입했을 때 난 거의 지진아 수준이었지만 시간을 보내면서 사랑받고 인정받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그 일을 그만두고 극단에 들어갈 수 있었고, 37세에 영화를 시작할 때도 걱정이 없었다. 좋은 배우라는 게 좋은 사람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은 아닐까, 당연한 부분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