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떤 감정 명사를 총동원해도 반려자를 잃은 슬픔에 관해선 마땅히 표현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코린 베일리 래도 그런 아픔의 역사를 간직하고 산다. 2006년 발표한 셀프 타이틀 앨범 <Corinne Bailey Rae>로 평단과 대중의 호평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 제이슨 래가 돌연 사고로 세상을 떠난 것. 뮤지션 코린의 시계도 잠시 작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오랜 침묵을 깨고 내놓은 그녀의 두 번째 앨범 <The Sea>엔 미망인의 소리 없는 애도와 탄식이 매달려 있다. 지난 5월 13일, 오랜만에 코린이 3집 앨범 <The Heart Speaks in Whispers>를 발표했다. 환희에 찬 감미로운 목소리, 한층 투명하게 마음을 비워낸 멜로디의 여백 속에서 새로운 희망의 발로를 모색 중인 코린의 ‘지금’을 감지할 수 있었다. 이제 막 모퉁이를 돌아 다시 걸음을 떼기 시작한 그녀의 여정을 반갑게 맞이했다.어제 ‘서울재즈페스티벌’(이하 ‘서재페’) 무대는 정말 근사했다. 5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은 것 아닌가 2011년에 서울서 공연했으니, 벌써 그렇게 시간이 흘렀네. 한국에 다시 오니 정말 좋다. 어제 공연은 나도 감명 깊었다. 무대 주위로 나무가 우거져 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분위기 또한 젊고 생동감이 넘치는 데다 음악을 감상하기엔 최적의 환경 같았다. 개인적으로 무대에 선 ‘타이밍’도 좋았다. 저녁 6시가 조금 지난 시각이라 어스름이 지는 걸 보면서 노래할 수 있었거든. 그간 ‘서재페’에서 꾸준히 러브 콜을 보냈지만 앨범 준비를 이유로 거절해 왔다고 전해들었다 ‘부디 내년에’를 외치다 올해까지 오게 됐다. 유난히 3집 앨범에 손이 많이 갔다. 앨범 작업이 거의 끝나갈 무렵 LA에 가게 됐고, 그곳의 여러 뮤지션들로부터 음악적으로 새로운 접근방식과 전문 지식, 좋은 기운을 잔뜩 얻고 돌아왔다. 그러면서 앨범의 방향성도 약간 수정하게 됐고. 이제 막 독립적으로 음악 프로젝트를 시작한 플라잉 로터스, 펀, 킹처럼 와일드한 일렉트로닉 계열의 음악을 하는 밴드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굉장한 영감을 얻었다! 켄드릭 라마 역시 LA 출신이더라. 이번 기회에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들이 전부 LA에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웃음). 그래서 은연중에 새 앨범에서 따사로운 LA 햇살이 느껴졌나 보다 사실 앨범의 밑작업은 고향이자, 지금도 살고 있는 리즈(Leeds)에서 시작됐다. 중간에 잠시 LA에 다녀오긴 했지만 마무리 작업도 리즈에서 했다. 전체적으로 앨범에 LA의 무드가 약간 채색된 걸 느낄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가 모든 걸 컨트롤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춘 고유의 커뮤니티, 그리고 직접 설립한 스튜디오에서 작업했다는 점이다. ‘The skies will break’에서 출발해 ‘Push on for the dawn’까지 16곡의 배치가 좀 특별하게 다가왔다. 마치 숲 속에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에 아침을 맞이하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여정처럼 느껴진달까 3집은 다양한 무드의 곡들로 구성돼 있어 트랙 배치에 많은 신경을 기울였다. 어떤 곡은 여러 사람이 모여 파티를 즐기듯 흥겹기도 하지만 또 다른 곡은 기도하듯 차분한 분위기다. 너무 무거운 곡도 있어서 앨범 전체가 완만한 흐름으로 흘러가길 바랐다.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테마가 어둠에서 빛, 씁쓸함에서 달콤함으로 넘어가는 식이다. 그런 새로운 아이디어와 방향성을 녹인 곡이 ‘Taken by dreams’이고. 그러니 앨범이 하나의 여정이라고 보는 시각이 맞다. 섬세한 사운드의 ‘Stop where you are’, 우아한 분위기의 ‘Been to the moon’, 몽환적인 느낌의 ‘Green aphrodisiac’ 등 각각의 음색이 약간씩 다르더라. 확실히 세션의 참여도도 높아진 것 같다 ‘Stop where you are’ 같은 경우엔 어쿠스틱 기타, 전자 기타, 드럼 사운드가 이리저리 많이 들어갔다. 이 노래는 마치 산 정상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며 부르는 느낌이라고 할까? 지금 내가 어디쯤 왔는지 살펴보는 것처럼. 그에 반해 ‘Been to the moon’은 조금 더 부드럽지. 이 노래는 일종의 사랑 노래다. 너에게 내 모든 걸 던졌으니, 이젠 네 차례라는 의미가 담겼다. 기도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할 거다. ‘Green aphrodisiac’은 꿈꾸고 난 직후의 어지럼증을 담았다. 하프 소리, 윙윙거리는 보컬 소리가 들어간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자연 그리고 나아가 인간의 본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메시지도 깃들어 있다. 최종적으로 이런 과정에 도달하게 된 계기가 있나 사실 내가 곡을 쓰는 방법은 가능하면 생각을 하지 않는 거다. 어떻게 곡을 ‘고안’할지 전혀 따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일단 음악을 엄청나게 많이 듣고, 그다음에 자연스럽게 기타와 피아노로 연주하는 단계로 넘어가면서 음악이 내게 들어오길 기다리는 과정을 거친다. ‘어떻게 곡을 써야지?’라고 생각하고 그걸 구현하기 위해 애쓸 때보다 자신이 더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앨범 역시 그런 직감을 따라갔고, 그러면서 내가 무얼 말하고 싶은지, 무엇을 말하기 싫은지도 알 수 있었다. 6년 사이 훨씬 더 강인해졌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사이 어떤 일이 있었나 6년이라는 세월은 나에게 치유의 시간이었다. 내 삶이 어떻게 흘러가면 좋을지 생각할 수 있었던 변화와 성찰의 시기였다. 알다시피 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과 비통함을 겪었고, 비교적 최근에 행복과 기쁨이라는 감정을 다시 생각할 수 있게 됐다. 친구들 그리고 가족들이 엄청난 에너지를 선사해 줬고, 뮤지션으로서 다시 성장할 수 있는 자신감도 심어줬다. 허비 행콕, 웨인 쇼터와 같은 당대 최고의 음악가들의 노래를 연주하고, 그들의 공연도 많이 봤다. 이 모든 것들이 응집해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준 것 같다. 앨범 커버 사진을 찍은 장소는? 꼭 화성 같더라 스페인령인 카나리아 제도(Islas Canarias)로 아프리카 북서부 대서양에 있는 화산 제도다. 검은 돌과 뜨거운 태양, 바다가 한데 어우러진 환경이라 어딘지 지구처럼 느껴지지 않지. 포토그래퍼 알렉산드라 발렌티(Alexandra Valenti)가 앨범 커버 사진 위의 페인팅 작업도 직접 해줬다. 나에게 “카메라를 보세요, 웃으세요”라고 가이드하지 않아 좋았다. 대신 “돌 위로 점프하세요. 구르세요” 같은 지시를 내렸지. 그동안 한 번도 입어보지 않은 스타일의 옷도 입었는데, 뭔가 강인한 느낌이 들어 좋았다. 어느 인터뷰에서 ‘예술의 방어자’가 돼야겠다고 얘기했더라 아티스트로서 패티 스미스를 존경하는데, 그녀가 한 말 중에 굉장히 유명한 문장이 있다. ‘이름을 알려라. 그리고 그 이름을 깨끗이 유지하라.’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내가 행해야 할 모든 행동엔 반드시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믿고, 나만의 행동양식을 갖추는 게 결국 자신을 지키는 행동 같더라. 그래서 이번 앨범 작업에도 시간이 더 걸렸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프로듀서이면서 직접 곡을 쓰는 작곡가라는 걸 알고 있다. 나는 사람들이 나를 그 사이 어디쯤에 놓여 있다고 보는 걸 좋아한다. 스튜디오에 머물면서 퍼즐을 맞추듯 음악을 매만지는 걸 좋아한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 내가 글쓰기를 사랑하고, 무엇이든 신(Scene) 너머에 놓인 측면을 생각하길 좋아한다는 것도 알리고 말이다. 당신의 노래를 좋아하는 팬 중에 유난히 20~30대 여성들이 많다. 그녀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인간은 누구나 강인한 힘을 품고 있다. 외부의 목소리에 신경쓰느라 자주 방해받지만 우리가 진정 원하는 걸 찾기 위해선 내면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 목소리에 따라 움직여야 나만의 확고한 믿음과 자신감이 쌓인다. 올 하반기 계획은 어떻게 되나 어제 ‘서재페’ 무대에 섰던 것처럼 전 세계의 무대를 돌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것 같다. 한국을 떠나 일단 시애틀, 샌프란시스코를 포함해 미국 서부 도시에서 공연할 예정이고, 곧바로 영국으로 돌아가 글래스턴베리 무대에 선다. 이후에도 전 세계 행군을 계속할 예정이니 요약하면, 앞으로 내 일정은 음악과의 탐험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