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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 이영훈, 리옹에 뜬 별

‘한국적 감성을 더한 프랑스 요리’라는 평을 받으며 <미슐랭 가이드> 별 하나라는 영예를 안은 이영훈 셰프. 음식이 혀를 즐겁게 해 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먹는 사람의 기분까지 책임져야 한다고 말하는 그를 ‘미식의 도시’ 리옹에서 만났다.

BYELLE2016.05.30

전 세계 셰프들 사이에서 가장 명예로운 훈장으로 통하는 <미슐랭 가이드> 스타. 그간 한식으로 <미슐랭 가이드> 스타를 받은 한국인 셰프들은 있었지만 아쉽게도 미식의 본고장 프랑스에서 별을 받은 한국인 셰프는 없었다. 그런데 올 2월 발표된 2016년 <미슐랭 가이드> 프랑스에서 별 하나를 거머쥔 자랑스러운 한국인이 탄생했다. 바로 프랑스 리옹에서 프렌치 레스토랑 ‘르 파스 탕(Le Passe Temps)’을 이끄는 이영훈 셰프. 그는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요리를 새롭게 선보이듯 진중한 표정으로 프랑스에서 이방인이 레스토랑을 열고 그토록 고대하던 별 하나를 받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풀어놨다.


프랑스에서 <미슐랭 가이드> 별을 받은 최초의 한국인이 됐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손님들이 축하의 말을 건넬 때 문득 실감한다. 별을 받은 후에 달라진 점도 아무것도 없다. 늘 하던 대로 좋은 재료를 직접 고르고, 만들고 싶은 요리를 한다.


발표는 언제, 어떤 식으로 전해 들었나 <미슐랭 가이드> 발표 이틀 전, 레스토랑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한 남자가 주방에 있던 나 대신 전화를 받은 소믈리에에게 셰프와 해야 할 개인적인 이야기가 있으니 다시 걸겠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고 했다. 영업이 끝난 후에 그에게서 전화가 왔고, 올해 <미슐랭 가이드>에 들어가게 됐다는 소식을 전해줬다. 별 하나까지 받게 됐다는 말과 함께! 손을 덜덜 떨면서 수화기를 들고 있던 그 순간을 떠올리면 지금도 심장이 뛰는 것 같다. 


<미슐랭 가이드> 측에서 몇 차례 와서 먹고 간다던데, 솔직히 전혀 눈치채지 못했나 지난해 1월 자신이 <미슐랭 가이드>에서 나왔다며 셰프를 만날 수 있냐고 물어본 손님이 있긴 했다. 하지만 당시엔 <미슐랭 가이드> 홈페이지에 레스토랑을 등록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등록과 관련해서 문제가 생긴 줄 알았다. 그런데 다음 날 다시 찾아온 그가 <미슐랭 가이드> 신분증을 꺼내 보여주면서 열심히 하면 내년에 발행될 <미슐랭 가이드>에 실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힌트를 주고 돌아갔다. 그땐 그저 열심히 하라는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지, 진짜 받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프랑스 셰프들 사이에서 <미슐랭 가이드>가 주는 별의 영향력은 어느 정도인가? 별을 받았을 때 현지 셰프들의 반응은 어땠나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나 역시 레스토랑을 시작하면서 꼭 받아보고 싶었다. 꿈이 현실이 되자 이미 <미슐랭 가이드> 별을 받은 인근 셰프들이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현실적인 조언도 해 줬다. 앞으로 음식에 대해 트집을 잡으려는 사람들이 늘어날 거라면서 그럴 때는 의연하게 대처하고 꾸준히 노력하면 된다는 팁을 알려주었다.


자신이 별을 받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솔직히 이유는 잘 모르겠다. 리옹 지역만 해도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레스토랑이 많은데 말이다. 아마 더 열심히 하라는 의미에서 준 게 아닐까 생각한다.


<미슐랭 가이드>의 평을 보면 프랑스 요리에 한국의 감각을 입혔다고 했는데 간장 소스를 곁들인 푸아그라 요리를 예로 들면 상상만 했을 땐 의외의 조합일 것 같지만 실제로 먹어본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다. <미슐랭 가이드>가 평가한 한국의 감각이라는 건 아마 간장 소스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다양한 맛을 연구하다가 탄생한 요리일 뿐, 한국의 맛을 일부러 섞으려고 노력한 건 아니다.


프랑스 도시 중에서 리옹에 레스토랑을 열게 된 계기는 나만의 레스토랑을 열겠다고 결심한 건 2010년 <미슐랭 가이드> 3스타 레스토랑인 ‘폴 보퀴즈(Paul Bocuse)’의 인턴이었을 때다. 한 레스토랑에서 10년 넘게 일하다 떠나는 두 번째 셰프(Sous Chef)들을 보면서 내가 하고 싶은 요리를 평생 하려면 내 이름을 건 레스토랑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리옹은 프랑스에 와서 처음 정착한 도시이자 요리를 공부한 곳으로 동네 구석구석까지 잘 알고 있는 곳이다. 이곳이야말로 내가 음식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고 생각했다.


‘르 파스 탕’이라는 레스토랑 이름에 담긴 의미가 궁금하다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힘든 단어인데 ‘기분 전환’ ‘시간을 때우는’이라는 뜻이다. 물론 레스토랑 이름은 기분 전환이라는 의미에 초점을 둔 것이고. 사람들이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때 여행을 가거나 영화를 보듯 ‘르 파스 탕’에서 음식을 즐기며 활기를 되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았다.


외국에서 레스토랑을 열기까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은행 대출을 받아 레스토랑을 오픈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 게다가 아는 동생과 단둘이 가스관 설치만 빼고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공사를 진행했는데, 말할 수 없을 만큼 힘들었다. 거의 매일 밤 후회하면서 울었던 것 같다.


한국인 셰프가 운영하는 프렌치 레스토랑이라서 겪은 황당한 에피소드는 없나 한식 레스토랑이라고 생각하고 들어오는 손님들이 꽤 있다. 한 번은 전화로 10명 자리를 예약한 손님이 약속한 당일 레스토랑에서 메뉴를 확인하고 그냥 나간 적이 있었다. 한국 식당에서 파는 비빔밥보다 비싸다며 발길을 돌리거나 일식집으로 착각하고 초밥을 만들어 달라는 사람들도 있었다.


메뉴는 얼마나 자주 바뀌나 적게는 한 달에 한 번, 많게는 몇 번씩 바뀌기도 한다. 특정 시즌에는 제철 재료로 새로운 메뉴를 만들어 내놓기도 한다. 간혹 <미슐랭 가이드> 스타를 받은 메뉴들을 계속 고수하는 셰프들도 있는데, 나에겐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고 손님에게 선보이는 과정이 훨씬 즐겁다.


모든 직원이 한국인인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처음부터 한국인 지인들과 일하는 게 편했다. 그러다 우연히 한국인 소믈리에까지 합류하면서 멤버가 구성됐다. 좋은 점은 한국 사람들과 함께 주방에서 일하다 보니 가족 같은 기분이 든다. 8월에 레너베이션 공사를 할 예정인데, 그 역시 한국 건축가에게 맡기고 싶다. 최근 ‘라 파스 탕’에 이력서를 내는 프랑스인들이 늘었지만 한국어로 일하는 분주한 주방에서 언어 문제를 극복하기 힘들 것 같아서 채용이 망설여진다.


레스토랑 직원들이 먹는 ‘스텝 밀’은 한식 위주로 먹겠다 대부분 한식을 먹는다. 처음에는 빵과 프랑스 요리였는데 누가 한국인 아니랄까 봐 1주일도 안 돼 밥이 먹고 싶더라. 직원들이 먹는 음식도 손님들에게 내놓는 음식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대충 끼니를 때우지 않도록 직원들에게 신경 써서 식사를 준비하라고 잔소리할 때도 있다.


<미슐랭 가이드> 스타 셰프의 하루는 어떤 모습인가 아침 7시쯤 일어나서 점심 서비스를 준비하고, 브레이크 타임에 저녁 식사 준비에 필요한 재료를 사기 위해 장을 본다. 채소와 과일들은 주문 배달이 가능하지만 내 손으로 직접 보고 고르는 게 좋다. 정신없이 바쁘게 보내는 하루는 새벽 1시쯤 돼야 마무리된다. 휴일은 좀 다르게 보내나 아직은 레스토랑 일로 신경 쓸 게 많아서 쉬는 날도 여유가 없다. 와인 선택만 제외하고 요리와 경영, 둘 다 신경 쓰다 보면 하루가 너무 빨리 간다. 예전에는 집에서 요리를 자주 하는 편이었는데, 요즘은 휴일에 외식을 자주 한다.


나만의 요리 철학이 있다면 음식에 셰프의 노력이 투영된다고 믿고 요리한다. 사람들이 내가 만든 요리를 맛보고 셰프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또 균형미가 있는 음식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다양한 재료로 새로운 메뉴를 만들어낼 때 재료 간의 균형을 맞추는 건 요리에서 중요한 부분인 것 같다.


5년 안에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프랑스가 아닌 곳에 레스토랑 하나를 더 열고 싶다. 아마 그 꿈이 현실이 되기까지 5년 정도 걸리지 않을까. 만약 한국에 레스토랑을 연다면 프랑스 레스토랑에 있는 셰프들과 한국에서 일하는 셰프들이 주기적으로 레스토랑을 바꿔가면서 두 나라의 음식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다.


LE PASSE TEMPS add 52, Rue Tronchet, Lyon tel +33 4 72 82 90 14


스타 셰프의 레스토랑 2016 <미슐랭 가이드> 프랑스에서 별 하나를 거머쥔 이영훈 셰프. 특제 간장 소스를 부은 푸아그라와 김가루를 더한 아귀 등 맛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는 특별한 요리가 만들어지는 그의 레스토랑으로 초대합니다. elle.co.kr에서 영상으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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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PHOTOGRAPHER OLIVER ANSELLEM
  • CORRESPONDENT 김이지은
  • EDITOR 김보라
  • ART DESIGNER 조효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