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틀랜드에서는 요가를 하면서 맥주를 마신다? | 엘르코리아 (ELLE KOREA)

동화 작가 선현경, 만화가 이우일 부부가 딸과 고양이와 함께 서울 대신 포틀랜드에 머물면서 지내는 얘기. ‘요기니’인 선현경이 반한, 술과 운동이 함께 하는 엉뚱하지만 재기 발랄한 요가 클래스. ::선현경,이우일,요가,요기니,요기,포틀랜드,운동,술,맥주,미국,동화작가,일러스트레이터,고양이,일상,파워빈야사,힐링요가,엘르,elle.co.kr:: | 선현경,이우일,요가,요기니,요기

좋아하는 모든 게 혼재된 포틀랜드나는 요가를 사랑한다. 요가 수련자 중 남자를 ‘요기’ 여자를 ‘요기니’라 하는데, 나도 요기니라 불러도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디스크가 있어 운동 삼아 시작한 요가였는데, 조금 나아져 잠시 쉬려 하니 바로 허리가 다시 아파왔다. 외발자전거 타기처럼 멈추면 무너지는 몸이었다. 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마스터 자격증까지 따가며 사 년이나 달려왔다. 마스터를 수료한 후엔 요가원에서 ‘새끼 강사’로 수업을 하기도 했다. 당연히 포틀랜드에 오면 제일 먼저 요가 학원을 등록하려 했다. 그런데 검색해 보니 이곳 포틀랜드엔 요가원이 많아도 너무 많다.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난감했다. 운동에 가까운 파워 아쉬탕가 요가부터 수면 명상의 니드라 요가까지, 각양각색의 요가원들이 스타벅스처럼 흩어져 있었다. 시작을 아무렇게나 하고 싶지 않았다. ‘포틀랜드는 취향 저격에 결정 장애까지 일으키는 도시구나!’ 빈티지에, 요가에, 수제 맥주에, 커피 로스팅에, 파머스 마켓과 각종 푸드 트럭들까지. 하고 싶은 얘기가 정말 많지만 먹거리 이야기는 좀 더 참았다 하기로 하자. 아직 우릴 기다리는 수제 맥주 페스티벌, 국제 맥주 페스티벌, 오레건 양조장 페스티벌, 유기농 맥주 페스티벌 등은 시작도 안 했으니 말이다(그건 일단 더 마셔보고 쓰기로 하겠다. 츄릅).처음으로 참가했던 요가 수업은 말만 들어도 호기심이 절로 생기는 ‘요가와 맥주’ 수업이었다. “양조장에서 하는 요가와 맥주 수업. 당신은 마술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요가를 무슨 물리 치료로 생각하는 남편을 꼬드겨가기에 충분한 광고 문구다. 어딘가 아프거나 쑤시지 않으면 요가를 절대 안 하는 남편도 역시나 ‘양조장과 수제 맥주’라는 말에 아무 거부감 없이 눈을 반짝이며, 낚였다. 그래서 우린 요가를 하러 양조장에 갔다. 대체 양조장에서 어떻게 요가를 하게 되는 걸까? 동네에서 친구들과 요가 수업을 빙자해 맥주를 마시며 살짝 취한 상태로 요가를 해 본 적이 있다. 고백하자면 그 때, 난 마술을 경험하긴 했다. 다리가 쫙쫙 찢어지고 안 되던 동작이 다 되더라. 물론 다음 날, 인대가 늘어나 한 달 정도 고생을 하긴 했지만 마술은 마술이었다. 그래서 맥주와 요가가 함께하는 수업이 좀 무섭기도 했다. 만약 술을 먼저 한잔씩 돌려서 마신 뒤 요가를 하는 거라면 알아서 살살 해야 하는 걸까? 마시기 싫은 사람은 안 먹어도 된다고 쓰여 있었는데, 그렇다면 남은 맥주는 내가 마셔도 되는 걸까? 아무튼 전혀 요기니 답지 않게 사심을 가득 담고 요가 수업에 참가했다.진짜 양조장에서 요가를 하다!수업은 양조장 창고 바닥에서 이루어진다. 창고 벽면에는 맥주를 담는 커다란 스테인리스 술통들이 그득하게 쌓여있다. 습하고 축축했다. 음악이 나오니 모두들 진지해 진다. 수업은 꽤 난이도가 있는 파워 요가다. 진지하지만 활기찼다. 맥주 통들을 향해 두 손을 합장하고 태양 경배 요가를 할 때는 좀 괴로웠다. 주신을 모시는 종교단체처럼 느껴져 혼자 웃음을 참으며 요가를 해야만 했다. 나만 이렇게 생각이 많은 걸까? 대부분 모두 열심히 요가를 했다. 늘 이렇게 일주일에 한 번씩 포틀랜드의 양조장을 돌며 요가 수업을 한다는 선생님, 기운이 맑고 활기찼다. 요가와 더불어 일주일마다 새로운 브랜드의 신선한 맥주를 마신다니 생각만으로도 나 또한 기운이 저절로 밝아지는 듯하다. 덕분에 점점 개운해지는 내 몸을 느꼈다. 멋모르고 맥주 생각만으로 수업에 참가한 남편이 조금 불쌍하긴 했다. 그 날 온 사람 중 가장 길고 뻣뻣했다. 부들부들 떨어가며 따라 하는데 안타까워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그 요가가 끝나면 병뚜껑을 하나씩 나눠준다. 병뚜껑 하나에 맥주 한잔이다. 다행히 요가 중에 맥주를 마시는 건 아니었다. 남편은 다시는 안 오겠다고 씩씩댔지만 신선한 맥주가 들어가니 좀 느슨해진다. 포틀랜드는 재미있는 도시다. 세상에 요가랑 맥주라니 이게 말이 되는 조합일까?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며 요가를 하기는 해도 그건 우리끼리만 할 수 있는 거였다. 운동이랑 술은 같이하면 어쩐지 다 무너지는 그런 기분 아닌가? 그런 장난 같은 일을 대놓고 수업으로 진행한다? 게다가 늘 만석이라 예약이 필수라니! 선입견이 없는 도시다. 요가와 맥주처럼 음악과 요가 수업도 있다. 이건 주로 소극장이나 라이브 카페에서 하는데 연주 음악에 맞춰 하는 요가라 한다. 하지만 그건 맥주보다 더 집중이 안 될 것 같아 체험은 관두기로 했다.그렇게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알아본 끝에 구 시가지에 있는 요가원으로 결정을 내렸다. 높은 천장 덕분에 난 긴 창이 에드가 드가의 발레리나들이 연습을 하는 곳처럼 느끼게 하는 고풍스러운 곳이다. 매일 다른 수업을 진행해 원하는 시간에 맞는 스타일의 선생님을 찾아가면 되는 편리한 방식도 마음에 들었다. 이곳도 역시 파워 빈야사 요가가 제일 인기다. 인기 있는 수업은 한 반에 서른 명씩 듣기도 하지만 편안하게 누워서 진행하는, 내가 좋아하는 힐링 요가 수업엔 늘 다섯 명에서 일곱 명 정도가 전부다. 한 번은 선생님과 단 둘이 수업을 한 적도 있었다. 물론 그날은 둘 다 늘어지게 잠까지 자버렸지만,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평온한 ‘요가적인’ 순간을 만들어 준 시간이었다. 왜 이리 포틀랜드에는 요가원이 많은지를 물었더니 요가 선생님은 이 도시가 특별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유기농을 사랑하고, 천천히 삶을 즐기는 곳에서의 요가. 너무 당연한 걸 물었나 보다.PROFILE 동화 작가 선현경(@sunny_7008)은 만능 재주꾼으로 지난해 포틀랜드로 긴 여행을 떠났다. 포틀랜드에서도 변함없이 만화가 남편 이우일(@i00111)과 딸 은서(@e_eunseooo), 고양이 카프카를 관찰하면서 별탈 없는 일상을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