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티에 드 빌라트, 시간을 빚는다 | 엘르코리아 (ELLE KOREA)

도자 브랜드 중에서 아스티에 드 빌라트의 아성은 확고하다. 모든 제품을 여전히 파리에서 핸드메이드로 만든다는 것은 일종의 악착같은 면모라 생각했으나 그들의 공방과 인쇄소, 사무실을 둘러본 후 누군가는 간직해야 하는 것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아스티에드빌라트,인쇄소,공방,인쇄,도자기,데코,엘르데코,엘르,elle.co.kr:: | 아스티에드빌라트,인쇄소,공방,인쇄,도자기

작업 앞치마를 두르고 공방에 선 두 창립자 베누아와 이반. 지금도 새로운 디자인을 구상할 때는 손수 도자기를 만든다.도자기 가마. 초벌과 재벌을 거치며 특유의 우윳빛을 띤다.도자기를 말릴 때 쓰는 선반. 기계를 이용하지 않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자연 건조한다.서른 명의 장인들은 각자 자신만의 작업 테이블을 갖고 그 자리에서 자신이 맡은 도자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만든다.<Ma Vie a Paris> 의 표지.즉석에서 ‘ELLE DECOR KOREA’ 활자판을 뽑아주었다!공방이 있는 건물 4층의 사무실 복도. 베누아와 이반이 수집하는 앤티크 오브제와 제품들을 디스플레이했다. 시즌마다 벽에 걸린 포스터를 바꾸는데, 현재는 빌라 메디치의 전경.라이노타이프 기계. 활자를 입력하면 납으로 활자판을 뽑는다.새로 나올 산타 로사(Santa Rosa) 컬렉션. 스누피가 살 법한 상상의 도시를 떠올리며 메이플 시럽 향을 가진 향초를 만들었다.<Ma Vie a Paris>에 쓰인 활자와 사진들.고래 그림 접시는 존 데리언과의 컬래버레이션. 드로잉을 그린 노란색 필름을 붙여 구우면 페인팅 효과를 낼 수 있다.화가 발튀스의 아내이기도 한 일본계 화가 세츠코 클로소프스키 드 롤라와의 협업은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그녀는 주로 고양이를 그리는데, 고양이 얼굴 자체가 접시인 작품도 있다.매번 사용할 활자를 다시 끼워 맞춰야 하는, 아주 번거로운 작업이 요구되지만 간편한 게 최고는 아니라고 말하는 장인들.작업실이 1층에 있어 자연광이 쏟아져 들어오는 통창 밖으로 활기찬 거리 풍경이 보인다.베누아의 사무실 한편엔 장식장 위에 직접 그린 드로잉이나 선물받은 오브제들을 올려둔다. 한국에 왔을 때 선물받은 싸이의 피규어, 선물이기 때문에 놓았지 팬은 아니라고 말했다.사무실 안 베누아의 책상.오래된 유물이 아닐까 싶을 만큼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은 우유 빛깔의 에마유(emaille, 에나멜 도료의 일종)가 전매특허인 아스티에 드 빌라트의 도자기들. 그러나 이 빈티지 스타일로 미뤄 짐작하는 보통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브랜드는 비교적 최근인 1996년 파리 6구 보자르의 작은 작업실에서 탄생했다. 또한 공정의 전 과정을 100% 파리에서 소화하고 있기도 하다. 같은 미술학교 출신인 베누아 아스티에 드 빌라트(Benoit Astier de Villatte)와 이반 페리콜리(Ivan Pericoli)는 고급스러우면서도 사치를 뽐내지 않고, 비슷한 스타일 사이에서도 섬세한 손맛이 비교할 수 없이 고운 아스티에 드 빌라트만의 개성을 만들었다. 이 비밀을 찾아 <엘르 데코> 코리아 팀은 브랜드의 심장부에 직접 가보기로 했다. 그런데 사무실과 공방을 취재하겠노라는 요청에 각각 다른 두 개의 ‘파리’ 주소를 적어주는 게 아닌가?  정말 파리였다. 도심은 아니었으나 메트로가 다니는 파리 남쪽 지역이었다. 이 도자기 공방은 브랜드 탄생 이후 이사 한 번 하지 않은 최초의 터전이다. 이전에는 1층을 공방으로 2층을 사무실로 썼으나, 이제는 규모가 커져 두 개 층을 모두 작업실로 쓰고 사무실은 4층으로 이전했다. 이른 아침이었음에도 30여 명의 장인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모습에 바로 앞 거리까지 활기가 넘쳤다. 이곳 장인들은 흙을 반죽할 때부터 마지막으로 구워낼 때까지 한 사람이 한 개 제품의 제조 전 과정을 도맡는다. 반죽만 하는 사람, 빚기만 하는 사람, 굽기만 하는 사람으로 공장 생산 라인처럼 나누지 않는다. 때문에 아스티에 드 빌라트 제품은 접시마다 모두 미세하게 모양이 다르고, 하나하나에 작품을 만든 장인들의 이니셜이 박혀 있다.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쾌적한 환경에서 장인들은 반죽한 흙을 맨손으로 그릇 틀에 맞춰 얇게 펼친 다음, 예쁘게 빚어 한 번 굽고, 새하얀 에나멜 도료 에마유에 담갔다가 한 번 더 구운 후에 비로소 작품을 완성한다. 언뜻 보면 굉장히 느릿느릿하고 손으로만 꾹꾹 누르고 주물주물거리는 것 같아 쉽게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특별한 반죽법과 에나멜 도료의 배합 비율은 특급 보안을 유지한다. 공방 위층 작업실로 올라가면 시즌마다 새로 나오는 디자인의 틀을 만든다. 또 한편에선 아스티에 드 빌라트와 존 데리언과 컬래버레이션인, 색채를 입힌 그릇들을 만든다. 장인이 붓으로 패턴을 그리는데, 곁에 서 있어도 방해할 수 없을 만큼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는 모습에 경외감마저 든다. 최근 베누아와 이반은 도자기를 빚는 공정 외에 부수적인 디테일에도 그에 상응하는 공을 들이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시도했다. 여간해서는 섣불리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는 브랜드가 아주 대담하게 벌인 사건은 인쇄소를 인수한 것이다. 그곳이 바로 두 개의 주소 중 또 한 곳이었다. 이 인쇄소는 요즘 같은 세상에 1900년대 초 라이노타이프 기법(한 줄의 활자를 한 묶음의 판으로 만들어 기계식으로 인쇄하는 방식, 활자를 주조, 조립, 제판한 인류 최초의 자동 식자기이자 현대 인쇄 기술의 틀을 잡았다)을 사용하는 곳이다. 텍스트에 맞춰 납으로 활자를 뽑고 그 활자들을 한 줄로 배열한 후 한 페이지씩 찍어낸다. 박물관에 놓여 있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거대한 사이즈의 오래된 기계는 한 장 찍을 때마다 활자 틀을 청소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인쇄된 결과물을 보면 요즘 기술로는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놀라운 텍스처에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이 인쇄소를 인수한 후 브랜드에서 가장 먼저 추진한 일은 아스티에 드 빌라트만의 특별한 가이드북이다. 제목은 <Ma Vie a Paris>, 해석하면 ‘파리에서의 내 삶’이다. 이 가이드북을 만들게 된 이유? 수년 전 창업자 베누아가 여행지에서 느낀 부끄러움 때문이다. 그는 베니스를 여행하기 위해 어느 패션 브랜드에서 출간한 가이드북을 챙겼다. 거기 소개된 레스토랑에 가서 주문을 하려는 찰나 식당 테이블 위에 떡하니 가이드북을 올려놓은 자신의 모습이 영락없는 관광객으로 보인다는 사실이 대단히 불편했다. 또 고풍스런 베니스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표지 디자인 역시 아쉬움이 남았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이들은 파리에서 그들이 보석처럼 아끼는 숨은 공간의 주소들로 아주 특별한 파리 가이드북을 만들었다. 마케팅에 연연하지 않는 타입이라 이것저것 고려하지 않고 정말 사랑하는 장소들로만 추렸다. 왜 이렇게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는 일을 하는 걸까, 의문을 품는 사람도 있다. 남들과 다르게 보이고 싶어서라거나 마케팅을 생각했을 거라고 넘겨 짚는 사람들에게 베누아와 이반은 오히려 반문한다. 사라져 가는 것들을 그냥 둘 수 없지 않느냐고. 이 인쇄소에서 프린트한 글씨에 묻어나는 온기, 손으로 쓴 것처럼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직접 본 적 있느냐고 말이다. 그들이 살리고자 하는 것은 단순한 인쇄 기술이 아니라 누구나 간직하고 싶은 아름다운 추억들이다. 인쇄소의 책임자인 백발 노인의 괴팍하면서도 유머러스한 말투조차 역사 속에나 등장할 파리지앵의 캐릭터라는 그들의 말은 결코 농담이 아니다. 모두 새로운 것들을 바라볼 때 반대편을 바라본 아스티에 드 빌라트는 인간이냐 기계냐를 경쟁하는 요즘 사람들의 가치관을 무색하게 만든다. 그 가치를 알아보고 그 아름다움을 이해하는 사람들만이 기꺼이 값을 지불하는 지극히 교과서적인 측면에서 명품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