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 다이어트의 시작 | 엘르코리아 (ELLE KOREA)

당신에게 필요한 물건을 한데 모은다면 전부 몇개일까? 단순하게 살고싶다고? 그렇다면 이것만 기억하라. 당신의 물건 중 대부분을 내다 버려야 한다는 것을.::심플하게산다,미니멀라이프,물건,정리,김자혜,하동,엘르,elle.co.kr:: | 심플하게산다,미니멀라이프,물건,정리,김자혜

고뇌는 하나의 배낭에서 시작됐다. 지난 가을, 약 300km의 지리산 주변을 걷는 둘레길 완주에 도전한 우리 부부는 커다란 그레고리 백팩을 하나씩 장만했다. 15일간 필요한 물건들을 선택해 배낭에 담는 것은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었고, 빼고 다시 넣고를 반복한 끝에 결국 ‘손대면 뻥 터질 것 같은’ 배낭이 완성됐다. v 반팔 티셔츠 7벌v 나이키 레깅스 3벌, 러닝 쇼츠 2벌v 나이키 윈드브레이커v 요가 톱 3벌v 속옷 7세트v 화장품(스킨, 에센스, 수분크림, 아이크림, 선크림, 파운데이션 등등)v 세면도구(샴푸, 컨디셔너, 보디샴푸, 퍼프, 보디로션 등등)v 일기장, 펜v 블랙베리, 후지카메라, 그리고 각종 충전기v 휴대용 의자줄이고 줄여도 더이상 줄어들지 않았는데. 어째서 아직도 한가득인거지?내가 소유한 물건들은 결국 나의 짐이 된다.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다.둘레길의 첫째날을 보내고 우체국에 들러 짐을 덜어 서울로 보냈다. 미련의 무게= 9445그램.초보 백패커의 좌절은 짐싸기에서 이미 시작됐다. 온갖 물건을 쏟아 부은 커다란 캐리어를 벨보이가 방 앞까지 가져다주는, 그런 종류의 여행이 아니라는 것을 잊었던 거다. 내가 챙긴 짐의 무게는 온전히 내 어깨에 얹어졌고, 그 짐을 짊어진채 20킬로미터 산행을 해야 했다. 결국 둘째날 한 작은 마을을 지나다가 우체국을 발견하곤 짐을 덜어 서울 집으로 보냈다. 둘이 합쳐 21킬로그램이던 배낭은 12킬로그램이 됐다. 9킬로그램의 미련은 따로 서울로 배달되었다.v 티셔츠 2벌v 레깅스 1벌, 러닝쇼츠 1벌v 윈드브레이커 1벌v 속옷 위아래 2세트v 수분크림, 선크림v 샴푸“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물건이 고작 이것이었다니!” 둘레길 짐싸기의 충격적인 기억은 머릿속에 각인됐다. 이번 하동행을 결심하며 가장 먼저 한 일 역시 짐을 줄이는 일이었다. 하나의 배낭을 꾸리듯, 우리의 모든 물건을 다시 정리하기로 한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집의 규모였다. 작아도 너무 작은 두 개의 방. 대체 옛날 사람들은 이 작은 집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이 미스터리한 문제에 대해 우리는 한참동안 이야기했다. 옛 집은 어찌하여 이토록 작은가. 우리 선조들은 아늑한 집을 좋다고 여겼는데, 이 아늑하다는 느낌은 안정감에서 유래한다. 자연과의 조화, 소박한 질서의 미, 적막할 정도로 단순한 디자인 역시 옛 집의 특징이다. 방을 넓히지 않고 마당을 넓게 쓴 것은 소유에 대한 개념 또한 우리와 달랐음을 말해준다. 아파트의 실평수에 집착하고 그 안에 물건을 가득 채워 살아가는 현대인은 이해하기 힘든, 여백과 여유를 향한 우아한 갈망!작아도 너무 작은 시골집. 내부를 확인하고 우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물건을 처분하는 일이었다.우리는 작은 옛 집으로 이사하기로 했고 물건은 넘쳐나니, 어떻게든 정리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정리법에 관한 책들이 말하는 가장 기본적인 첫걸음은, 지난 일년동안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물건을 과감히 처분하라는 것. 그 동안 둘이서 각자 사모은 책들, 수십켤레의 신발, 10년 가까이 일하면서 브랜드에서 선물로 받은 작은 물건들(그 많은 열쇠고리는 모두 어디에서 왔을까!) 등 모든 물건을 심판대에 올렸다. 지난 일년동안 입지 않은 옷을 모아 정리하니 커다란 박스로 7-8개 정도, 다시 펴보지 않을 것 같은 책이 4박스. 의미없이 사다 모은 그릇이 2박스다. 옷과 그릇은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하고 책은 중고서점에 내다 팔았다. 그리곤 우리가 가진 가구와 가전제품 리스트를 만들어 건축가와 공유했다. 그러는 사이 몇 가지 공식이 생겼다. 용도가 비슷한 물건은 하나만 가질 것. 그 하나의 물건은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최상의 품질일 것. 쉽게 말해, 백원짜리 물건 열 개를 갖는 것보다 이천원짜리 좋은 물건 하나를 갖는 게 낫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소비 위주의 생활로부터 도망쳐야 한다는 것. 아무렇지도 않게 자잘한 물건을 사던 습관을 바꾸기 위해 독한 결심을 해야만 한다.  그러던 어느 주말. 홈쇼핑을 보던 중 나도 모르게 손이 휴대폰을 향했다. 힘이 무척 세다는 믹서기 주문. 우린 믹서기가 없잖아? 있긴 하지만 방망이 모양이잖아. 쥬스 뿐 아니라 수프도 만들 수 있잖아? 사은품으로 코코넛 오일도 한 병 준다잖아? 옆에서는 남편이 낮은 한숨을 내쉰다.이처럼 나의 결심이란 참으로 연약하고, 변명은 다양하고, 단순하게 사는 길은 이토록 멀다.사용하지 않는 물건은 세 단계로 나누어 정리한다. 되팔 것, 기증할 것, 버릴 것.건축가와 공유한 가구, 가전제품 리스트. 한번쯤 갖고 있는 물건을 리스트업 해 볼 것. 꽤나 흥미로운 일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집은 나를 바꿔갈거라고 믿는다. 나를 바꾸는 건 나의 결심이 아니라 이 작은 집일 것이다. 윈스턴 처칠은 말했다. “We shape our buildings and they shape us” 곧 만들어질 우리의 집이 우리를 모양지어갈 것이다. 부디 우리의 삶이 단순하고 조용한 모양으로 빚어지기를. 물건 다이어트를 할 때 읽었던 책들 <심플하게 산다 Ⅰ>, 도미니크 로로, 바다출판사, 2012<심플하게 산다 Ⅱ>, 도미니크 로로, 바다출판사, 2014<심플한 정리법>, 도미니크 로로, 문학테라피, 2013<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사사키 후미오, 비즈니스 북스, 2015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