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를 떠나는 사람들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최근 아파트 대신 주택으로 이사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왜 그럴까?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복합적 이유에 대해 건축가 유현준이 연어와 돼지를 빌어 명쾌하게 답했다.::주택,이사,아파트,유현준,협소주택,데코,엘르데코,엘르,elle.co.kr:: | 주택,이사,아파트,유현준,협소주택

연어 최근 들어 작지만 마당이 딸린 주택으로 이사 가는 것이 트렌드가 됐다. 수십 년 동안 온 국민이 주택에서 아파트로 이사 갔다가 연어처럼 다시 고향인 주택으로 돌아가고 있는 듯하다. 인터넷 검색 창에 ‘협소주택’이라고 치면 스무 평도 안 되는 땅에 지은 작은 집들이 나온다. 도심형 협소주택 외에도 걱정 없이 아이들이 마음 놓고 뛰어놀 수 있게 교외에 나가서 주택을 짓는 사람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1980대부터 지난 30년간 우리나라의 주거 문화는 한 마디로 아파트 문화라 할 수 있다. 아파트로 이사 가는 것이 중산층의 상징이었고, 아파트란 공간은 따뜻한 온수와 내 차, 줄이 잘 그어진 주차장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또 이 시기는 ‘럭키치약’ 하나만 있는 줄 알았다가 ‘브랜닥스안티프라그’라는 고급 치약이 나왔던 시절이었고, 흑백TV가 컬러TV로 바뀌던 시절이었다. 그 시대의 사람들은 ‘포니’ 같은 내 차를 소유하고 아파트로 이사 가서 하루에 한 번씩 머리를 감는 것이 중산층의 멋있는 라이프스타일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그대로 따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파트가 재테크의 가장 중요한 방편이기도 했다. 돼지와 아파트 과거, 문명이 살아남는 데는 식량 확보가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기근을 넘기지 못한 종족은 모두 사라졌다. 역사학자에 의하면 기근에서 살아남는 방책으로 멀리 떨어진 여러 장소에 분산해서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다른 기후대에 다른 종류의 작물을 나눠 키움으로써 한 지역에 피해가 와도 다른 지역의 작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위험 대처 방식인 셈이다. 현대의 주식투자자들이 다양한 업종에 분산투자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이후 인류는 식량을 저장하는 기술을 발전시킴으로써 기근을 해소했다. 고대 농부들이 돼지를 키운 것은 남는 식량을 오랫동안 보존 가능한 식량으로 바꾸는 기술이었다. 사람이 먹고 남은 감자나 고구마를 돼지에게 먹이고 수년 후 기근이 오면 돼지를 도살해서 식량으로 전용하는 것이다. 과거에 식량은 곧 생존을 의미했다. 현대 사회에서는 돈이 그 역할을 한다. 과거에 식량 저장의 한 방편으로 돼지를 키웠다면 현대는 돈을 저장하는 방식으로 부동산을 산다. 부동산은 부패하지 않기 때문이다. 돼지 사육이 기근을 넘기는 방식이라면, 현대인에게 돈이 부족한 시기를 넘기는 방식은 부동산을 처분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우리나라에서 아파트는 환금성이 가장 높다. 대부분의 중산층은 은퇴 후 아파트를 처분해서 돈의 기근 시기를 넘겨왔다. 우리가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사고 매월 대출금을 갚는 것은 옛 선조가 자신의 식량을 아껴 돼지를 키운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 면에서 돼지와 아파트는 다르지만 같은 기능을 한다. 기성품 vs. 맞춤 최근의 주택 선호 현상의 한 원인은 우선 더 이상 아파트 가격이 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30년간 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재테크와 라이프스타일은 한국전쟁 이후에 태어난 베이비 부머 세대의 모습이었다. 엄청난 수의 베이비 부머들이 은퇴를 앞두고 있다. 도살을 앞둔 ‘아파트 돼지’가 많다고 볼 수 있다. 사겠다는 사람보다는 팔겠다는 사람이 더 많으니 아파트 가격이 떨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주를 이룬다. 현대사회는 로봇과 IT 기술의 발달로 기업 매출이 늘어도 일자리는 늘지 않는 특이한 산업구조를 띠고 있다. 자연스레 가정을 꾸릴 만한 일자리가 없는 청년은 결혼을 꿈꾸기도 어렵다. 게다가 아파트 가격은 비싸도 너무 비싸다. 그런데 마침 사회문화가 바뀌었다. 예전에는 남녀가 꼭 결혼해야 했다면 지금은 자유로운 연애가 보편적인 문화가 됐다. 이제 결혼해서, 집 사고, 차 사고, 애를 낳는다는 공식은 사라졌다. 주류의 방식이 깨지면서 다양한 삶의 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혼자 살거나, 독신자들이 여럿 모여서 부엌과 거실을 공유하는 셰어링 하우스도 나타났다. 사실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는 대량생산된 평면 타입이기 때문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거의 비슷한 라이프스타일을 가질 수밖에 없는 찍어낸 공간이다. 좋든 싫든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다시 되팔기 위해 보편적인 평면 공간에 자신의 삶을 끼워 맞춰야 한다. 하지만 이제는 나만의 라이프스타일을 고수하면서 살고 싶기에 기성품 아파트 대신 맞춤형 주택으로 가는 것이다. 우리는 20세기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시대에서 21세기 개별맞춤형 생산과 소비 시대로 이동해 가는 중이다.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소비자 개별 맞춤형 생산이 기술의 발달로 가능해졌다. 사람들은 점점 개성 있는 ‘맞춤형’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주거 형태도 그 대세를 따라가고 있다. 개인주의도 심해졌다. 당연히 다른 사람과 일정 거리를 두고 생활하고 싶은 욕구가 늘어났다. 다른 사람과의 거리는 자유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벽 하나만 사이에 두고 층간 소음에 시달리는 아파트는 주택보다 구속적이다. 반면 주택은 위아래 사람이 없고 옆집과도 공간이 떨어져 있다. 얼마나 자유롭고 독립적인가. 이런 상황에서 아파트 전셋값이 매매가와 비슷해지다 보니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나만의 맞춤 공간인 주택을 찾아나서게 된 것이다. 이렇게 주거 형태가 다양해지는 추세는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저마다의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은 다양한 농작물을 재배하는 것처럼 이 문명이 건강하게 지속해 나가는 데 유리할 테니까. Writer is 우리가 사는 도시를 혜안으로 꿰뚫은 에세이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저자로, 홍익대 건축과 교수이자 자신의 이름을 딴 건축사무소를 운영한다. 도시를 인문학적 시선으로 바라보며 <엘르 데코>가 궁금해하는 도시 공간에 대한 의문에 쉽고 명쾌한 답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