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집의 품격을 사수하라 | 엘르코리아 (ELLE KOREA)

먹방'과 '쿡방'에 이어 이제는 '집방'이다. 과연 ‘집방’은 시청자들의 입맛을 다시게 하고 있을까?::집방,인테리어,셀프인테리어,JTBC,헌집줄게해집다오,내방의품격,수컷을방을사수하라,수방사,데코,엘르데코,엘르,elle.co.kr:: | 집방,인테리어,셀프인테리어,JTBC,헌집줄게해집다오

 ‘쿡방’과 ‘먹방’의 시대가 지나가기도 전에 ‘집방’이 나타났다. JTBC <헌집줄게 새집다오>(이하 <헌집 새집>)와 tvN <내 방의 품격>은 지난해 12월, 비슷한 시기에 방송을 시작했으며, 여러 가지 논란을 낳았던 XTM <수컷의 방을 사수하라>(이하 <수방사>)도 어쨌든 두 번째 시즌을 열었다. 이미 오래전 패션 스타일링 관련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었고, 음식과 요리 예능 프로그램 붐도 서서히 내리막길에 접어들고 있는 지금 의식주 중 마지막으로 남은, 즉 인테리어를 소재로 하는 ‘집방’의 시대가 도래한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그동안 인테리어는 ‘홈스토리’ 같은 채널에서 꾸준히 다뤄왔다. 다만 붐을 일으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약 15년 전에 방송된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신동엽의 러브하우스’만이 성공적인 케이스로 남았을 뿐. 당시는 <일밤> ‘이경규가 간다’부터 <느낌표> ‘기적의 도서관’, ‘눈을 떠요’ 등으로 이어지는 MBC 표 착한 공익 예능 프로그램의 전성기였으며, 그 중심에 ‘러브하우스’ 가 있었다. 형편이 어려운 가정의 낡은 집을 고쳐주는 인테리어의 마법 앞에서 감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방송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모두 함께 착한 일을 한 것 같은 착각에 빠졌고, 주거 환경이 삶의 질을 좌우한다는 당연한 사실 역시 이 프로그램을 통해 수면 위로 올라왔다. 현재 방송 중인 집방들 또한 이런 ‘인테리어의 마법’을 기본으로 한다. 곳곳에 먼지가 굴러다니고 물건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던 기타리스트 김도균의 거실은 작업과 휴식을 강조한 기능적인 공간으로 변신하며(<헌집 새집>), 벽지와 장판이 들떠 있어 구제 가능성이 없어 보이던 집은 멋진 캠핑 하우스로 탈바꿈한다(<내 방의 품격>). 이들 프로그램이 가르쳐주는 것은 적은 비용으로도 분위기를 바꾸는 인테리어가 가능하다는 점, 전문가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스스로 인테리어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더불어 글루건이나 터커 같은 공구 사용법이나 좋은 목재를 고르는 노하우, 네온사인 제작 및 설치비용 등 TV에서 자세히 다뤄진 적 없었던 팀들을 꼼꼼하게 소개하기도 한다. 이것은 보는 이들에게 제법 강력한 동기를 불러일으킨다. 고백건대 <내 방의 품격>에 출연한 인테리어 파워 블로거 기린아줌마가 결로 현상으로 생긴 곰팡이 제거법을 알려주었을 때, 구석구석 핀 곰팡이 때문에 그동안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던 방 벽지 교체 작업을 슬슬 해봐야겠다고 마음먹기도 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계획에 다가설수록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곰팡이를 제거하고 벽지를 뜯어낸 후에는 어떤 벽지 혹은 어떤 페인트를 발라야 내 방에 맞을까? 무난한 스타일을 다시 바르기에는 기껏 들인 수고가 아깝지 않나? 지금 있는 가구들과 어울리지 않으면? 이케아에서 대강 마음에 드는 가구를 골라오면 되려나? 그런데 이케아 가구가 내 취향이긴 한가? 아니, 처음으로 돌아가서, 나는 도대체 어떤 방에 살고 싶나?과연 ‘집방’들이 부수적으로 다루는 실용적인 팁 외에 매력적인 인테리어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있는지는 좀 더 따져봐야 할 문제다. 평균 99만원의 예산으로 인테리어를 해결하는 <헌집 새집>의 경우, 비용의 한계 때문인지 보통 사람이 보기에도 실망스러운 결과물을 내놓기도 한다. 예를 들어 정준영은 ‘럭셔리한 중세 유럽풍 인테리어’를 요구했는데, 평소 예산보다 많은 120만원을 사용하고도 애매한 침대와 조명 디자인 때문에 중세 유럽풍이라기보다 숙박업소의 테마 룸처럼 보이는 침실이 탄생했다. 그렇다면 과연 120만원으로 정준영이 제시한 테마에 맞는 인테리어를 할 수 있다고 말해도 되는 걸까? 실생활에서 전문가에게 의뢰한 결과물이 저것이었다면… 글쎄, 아마 방의 원상 복구와 손해배상을 강력하게 요구하게 될지도 모른다. ‘남자의 취미생활에 어울리는 집으로 변신시킨다’는 취지의 <수방사>도 크게 다르지 않다. 거실에 수조를 파서 물을 채운 다음 실내 낚시터를 만들거나, 방에 격투기 연습을 할 수 있는 링을 설치하는 것은 동의한 적 없는 가족의 입장에서 불쾌할뿐더러, 편안하고 쾌적한 인테리어와는 거리가 멀다. 요컨대 지금의 ‘집방’들은 여전히 어떤 공간이 다른 공간으로 바뀌는 순간의 ‘화려한 그림’을 위해 인테리어를 소재로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블로그만 뒤져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인테리어 정보, 때론 그보다 못한 정보를 도대체 왜 방송에서 다뤄야 하는지 시청자들을 납득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내 방의 품격>은 D.I.Y 인테리어의 저렴한 비용만 강조할 뿐, 그 외의 문제는 모른 척 지나친다. 고벽돌로 침실 벽을 장식한 블로거는 비용을 절감한 대신 1톤에 이르는 벽돌을 친구와 함께 직접 10층 집까지 옮기고 벽돌을 자르는 수고를 겪어야 했지만 그럼에도 프로그램의 결론은 비전문가도 직접, 싸게 인테리어를 할 수 있다는 데 머물고 만다. 손수 인테리어를 할 수 있게 되기까지에는 각종 지식과 시행착오에 드는 시간, 본격적으로 시공하는 데 소모되는 노력과 시간 등이 포함되지만 방송은 오로지 비용에만 집중한다. 그 과정에서 소위 “눈탱이 맞았다”는 표현을 거듭 써가며 전문가에 대한 불신마저 조장한다. 생각해 보라. 누구나 회사 업무를 병행하면서 D.I.Y 인테리어를 할 수 있나? 전체적인 구조를 판단하고 그에 맞는 최적의 자재와 컬러를 고르는 전문가의 노하우, 그것을 쉽게 뛰어넘을 수 있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요리 역시 기본기가 필요한 분야지만, 혼자 먹을 한 끼 식사와 집 인테리어에 드는 품은 전혀 다르다. 사실상 인테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맞는 공간을 가늠할 줄 아는 취향과 안목이며, 그래서 요리처럼 기술을 익히거나 트렌드를 아는 것만으로 인테리어에 도전하는 건 무리다. 집에 관해 자신의 기준을 세우지 못한 사람이 지금 ‘집방’에서 제시하는 인테리어를 배운다고 해서 좋은 결과물을 낼 리는 없다. 차라리 놔두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집방의 시대는 분명 왔다. 그러나 갈 길은 한참, 정말 한참 멀다. Writer is 대중문화 전문 웹진 <아이즈>의 기자. 아이돌부터 IT 기기까지 대중문화의 모든 것을 주시하고 체득하며 크리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