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발칙한 이탈리아 여행기 | 엘르코리아 (ELLE KOREA)

나는 새벽에 종종 노량진시장에 간다. 장도 보고, 요새 어떤 해물과 생선이 물이 좋고 값이 싼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으흠, 저 생선을 구워서 팔면 아주 바가지 톡톡히 씌우겠는 걸, 이라거나 아이쿠 저 해물로 찜을 만들면 손님을 홀랑 벗겨 먹을 수 있겠네, 하고 흐뭇한 미소가 절로 번지곤 한다. 그중에는 진지하게 들여다보며 추억에 잠기게 하는 생선과 해물도 있다. :: 박찬일,푸드,여행기,이탈리아,엘르,엘라서울,엣진,elle.co.kr :: | :: 박찬일,푸드,여행기,이탈리아,엘르

나는 새벽에 종종 노량진시장에 간다. 장도 보고, 요새 어떤 해물과 생선이 물이 좋고 값이 싼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으흠, 저 생선을 구워서 팔면 아주 바가지 톡톡히 씌우겠는 걸, 이라거나 아이쿠 저 해물로 찜을 만들면 손님을 홀랑 벗겨 먹을 수 있겠네, 하고 흐뭇한 미소가 절로 번지곤 한다. 그중에는 진지하게 들여다보며 추억에 잠기게 하는 생선과 해물도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멸치다. 특별히 내가 멸치를 먹을 줄 모른다거나 하는 건 물론 아니다. 오직 멸치에 얽힌 트라우마가 가시를 세우고 달려들기 때문이다. 나는 내 식당의 요리사들을 괴롭힐 때 멸치 상자를 던져주곤 한다. 그건 마치 땡깡을 피우고 엉엉 우는 세 살짜리 조카를 달래는 것처럼 인내력을 시험하는 재료이며, 멸치 가시에 독이 올라 돌아가신 수많은 이탈리아 요리사들의 고통을 몸소 체험할 수 있는 일종의 훈련에 다름아니다. 이탈리아 남부의 한 식당에서 일할 때의 일이다. 전임으로 일하던 한 브라질 녀석이 주인과 대판 싸우고 갑자기 짐을 싸버린 까닭에 내게 모종의 일이 배당됐다. 그건 멸치 다듬기라는, 역사상 가장 교묘하고 치사하게 요리사를 괴롭힐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멸치 가시는 모두 재수 없게 걸린 요리사 녀석의 손을 공격하는 무기가 되는 거였다. 내장이 묻어 지저분해진 멸치 가시가 당신 손톱 밑을 파고든다고 생각해보라. 파상풍이나 생인손이나 뭐 그렇고 그런 후진국형 후유증을 앓을 가능성이 농후해진다. 멸치는 알다시피 등푸른 생선이다. 이 종류에 속하는 녀석들은 몹시 성질이 급해서 그물에서 떨어지는 순간에 버럭 화를 한번 내고는 삶을 마감한다. 고등어나 멸치나 살아 있는 횟감을 보기 어려운 건 이런 까닭이다(나는 종종 한국의 횟집 수족관에서 산 고등어를 발견하는데, 주둥이가 뾰족한 게 성질 한 번 더럽게도 생겼다는 걸 느낀다. 그나저나 그 녀석들은 얼마나 성질이 순하길래 저렇게 수족관에서 버티고 있는 걸까). 등푸른 생선의 숙명은 빨리 부패한다는 거다. 가자미 자반은 없어도 고등어자반이 있는 건 그런 까닭일 테다. 빨리 부패하니 소금이라도 뿌려줄 수밖에. 당연히 이탈리아 요리사들은 멸치를 재빨리 손질해야 한다. 상하기 전에 말이다. 상자를 열면 멸치가 아마도 수백 마리는 우글우글 들어 앉아 있다. 크기가 작으니 그만큼 손질해야 할 마릿수도 많다. 손질을 해도 해도 줄지를 않는다. 염병할이나 제기랄 같은 점잖은 낱말 말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욕설이 튀어나오게 마련이다. 왜 아닐까. 당신도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으며 멸치를 수백 마리쯤 내장을 따고 살을 바르다보면 그렇게 변하게 된다. 내가 무심코, 밤에 침대에서 사용하는 신체의 어떤 부위를 뜻하는 욕설을 내뱉다가 스스로 깜짝 놀라기도 했다니까. 멸치란 녀석은 먹는 게 다 살로 가는 게 아니라 가시로 가는 것 같다. 얼마나 촘촘하고 예리한지 푸욱, 그 가시가 깊게 살을 찔러오면 끄윽, 하고 신음을 내뱉게 된다. 여보슈, 그럼 장갑이라도 끼고 일하지 그러슈. 모르는 소리 마시라. 당신은 벙어리장갑 끼고 바느질 할 수 있나. 멸치 다듬기라는 게 꼭 그렇다. 자, 별볼일 없는 하급 이탈리아 요리사의 필살기인 멸치 손질을 설명해주마. 먼저 머리를 사정없이 비틀어 따내면서 내장을 집게손가락으로 훑어내야 한다. 그것을 1초 정도 안에 해내지 않으면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밤을 새워야 한다. 그 다음에는 엄지손가락을 등뼈 밑으로 넣어 발라낸다. 이때 무수한 가시가 손톱 위아래를 공격하려 든다. 그 통증을 참으면 두 장의 멸치 필레가 나온다. 필레를 도마 위에 펴놓고 잡가시를 데어내야 비로소 손질이 끝난다. 그렇게 손질한 멸치는 소금을 팍팍 쳐서 안초비젓을 담그거나 빵가루를 묻혀 오븐에 굽는다. 그 비릿하고 재수 없는 멸칫살에 환장하는 손님들의 꼴이라니. 어떤 인간은 이렇게 주문을 넣기도 한다. “요새 아치우게(aciughe 멸치)가 제철이지? 우리 8명 모두 아치우게 그라탕을 주게.”말이 8인분이지 손가락만한 멸치(손가락이 엉망이 되어야 겨우 얻을 수 있는 그 필레 두 쪽!)가 10마리쯤 들어가야 1인분이 되니 모두 80마리의 멸치가 한 테이블에 나가서 흔적도 없이 그 얄미운 손님들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주인은 흐뭇해서 웃고 있지만 멸치나 다듬어야 하는 막내 요리사, 게다가 나 같은 이방인은 수면시간이 줄어드는 고통에 손가락에 찔린 가시 상처가 더 아파오는 것이다. 한국에서 양식당 일을 하다보면, 묘한 한국인의 선입견에 상당히 고전할 각오를 해야 한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식당이라면 푸아그라 요리 정도는 당연히 팔고 있을 거라고 믿는 손님들 때문이다. 푸아그라=고급 식당의 등식이 언제 생겼는지 모르지만 말이다. 요리사란 결국 재료를 다루는 사람이고, 자신이 만드는 요리 재료가 어떻게 산지에서 생산되는지 정도는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고기라면 어떤 나라에서 뭘 먹고 자라는지, 항생제 주사따위는 맞지 않는지 그런 시시콜콜한 걸 사람들은 알고 싶어 하고 알 의무가 있다. 그런데 푸아그라에 대해서는 그런 관심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이탈리아는 세계적인 관광 국가이니 당연히 여러 국적의 손님들이 몰려온다. 여름 바캉스 철에는 이탈리아 전 국토가 외국 손님들로 넘쳐난다. 식당도 예외는 아니어서 경기가 한창 좋을 때는 그냥 문만 열어두고 ‘관광객 대환영! 스파게티’라고 써붙여 놓아도 그럭저럭 먹고 사는 식당들이 있을 정도였다. 주방장 녀석이 대마초 중독이든 요리학교나 겨우 졸업한 초짜이거나 아니면 요리사인 척 하는 동물원 원숭이든 알 바 없이. 한번은 그 빌어먹을 멸치 박스를 다 손질하고 났는데, 홀이 소란스러워졌다. 꽤 닳아 보이는 이탈리아 여자를 낀 어떤 미국 관광객 손님이 찍자를 붙고 있는 것 같았다. 주방에 들어온 웨이터는 그 상황을 실감나게 30초짜리 스폿 광고처럼 새로 구성해서 방송해주었다. 그러니까 이런 상황이었던 것이다. “예, 손님. 우리 식당은 최고의 해물 요리를 선보이고 있습죠. 불법으로 낚은 지중해 혀넙치 구이에 튀니지에서 직송한 성게알 카르파치오를 전채로 드실 수 있습니다. 오르가즘을 느끼기에 딱 좋은 요리들입죠. 스파게티라면 미트볼밖에 모르실 손님을 위해 이탈리아의 향수 어린 오징어먹물 링귀네 어떻습니까. 우리 식당의 철없는 견습생들이 일일이 오징어 배를 갈라 따 놓은 먹물주머니가 통째로 들어간답니다. 메인 요리는 또 어떻구요. 기름기를 싹 발라낸 소 안심구이에 여름 아티초크 속살을 곁들여낸답니다….”뚱뚱하고 이마에 주름살이 가득한 고약한 인상의 손님이 말을 가로막고 나섰다. “그런 거 말고 음, 푸아그라 구이는 없다는 얘기요?”“예, 손님. 이탈리아에서 푸아그라를 구경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죠. 그 구역질나는 기름덩어리를 굳이 먹을 이탈리아 사람들이 어디 있겠어요? 원하시면 어떻게 푸아그라를 만드는지 동영상을 틀어드릴깝쇼? 속이 거북해서 구토를 하고 싶을 때 딱이지요.”설마 이렇게야 얘기하지들 않았겠지만, 제철의 신선한 재료를 가지고 요리하는 걸 최고로 생각하는 이탈리아 식당에서 함부로 푸아그라를 찾는 건 모욕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바다에서 갓 건져 올린 아귀의 간이나 농장에서 놓아기른 닭이나 돼지, 송아지로 만든 간 요리를 이탈리아는 아주 즐긴다. 의심쩍은 방법으로 만들어진데다가 먹으면 곧바로 심장에 두터운 기름막을 만들 것 같은 기름투성이의 푸아그라를 굳이 먹으려고 드는 경우가 드물다. 푸아그라가 있느냐 없느냐로 고급 식당이냐 아니냐를 가르는 한국인의 자칭 미식가들이 이탈리아를 찾으면 무얼 기준으로 요리를 시킬지 자못 궁금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기껏 ‘두툼한 푸아그라구이’를 먹었노라 자랑하기에 바쁜 사람들이 말이다. 그러나 뒤집어보면 나 같은 얼치기 셰프에겐 이런 손님들이 얼씨구나, 반갑기는 하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좋은 요리를 고민할 필요없이 두툼한 푸아그라와 마블링 좋은 쇠고기 등심을 준비하면 될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건 요리사의 요리 능력과는 별 상관없어 보인다. 아니, 이렇게 쉬운 길이 있는데, 강호의 멋진 셰프들이여! 고민하지 마시라. 그냥 샴페인이나 마시면서 재료 공급업자에게 전화나 한 통씩 걸어주시라. “냉동 푸아그라 한 박스랑 마블링 짱짱한 등심 한 짝만 보내줘.”누가 내게 이탈리아 관광 코스를 짜달라고 부탁하는 경우가 있다. 주로 도시의 뒷골목이나 시골을 뒤지고 다녔던 내게 그런 부탁은 별로 영양가가 없다. “하여간 다녀볼 곳을 꼭 다 넣어주고 명품 쇼핑할 곳도 빠짐없이 체크해줘. 아울렛이 그렇게 싸다며?”명품 쇼핑을 알려달라는 건지 관광을 하겠다는 건지 모를 부탁이다. 이 정도는 양반인데, 어떤 녀석들은 시칠리아에 있던 내게 이런 전화를 걸어왔다. “나 다음 달에 이탈리아 가는데 로마 공항에 마중 나와 줄래? 호텔 예약도 좀 해놓고. 어렵다고? 넌 다 알 거 아냐?”시칠리아에서 로마까지는 고속 열차를 타도 열 시간은 걸린다고 그에게 말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탈리아가 무슨 룩셈부르크, 아니 바티칸이나 산 마리노 정도의 크기인 줄 안다. 그 녀석에게는 이탈리아가 제 손바닥보다 작아 보인다. 밀라노와 피렌체 찍고, 베네치아와 로마를 하루에 다 둘러본 다음 푸아그라 요리로 저녁 먹고 어디 쌈빡한 나이트클럽에서 이탈리아 여자랑 부킹이나 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것이다.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을 알차게 보는 방법이나 그 도시의 서민들 삶을 체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따위를 물어달라는 건 아니다. 적어도 관광이라면 한 도시를 충분히 보려는 노력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겨우 판문점이나 남대문, 경복궁만 보고 가는 외국 관광객을 이해 못하겠다고, 서울만 해도 진짜 볼 곳이 얼마나 많은데 하고 깊은 우려를 표명한 적이 있는 당신이라면 새겨 들어야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내 친구들만 내가 이탈리아에 있을 때 전화를 걸어 괴롭혔던 건 아니다. 무슨 회사의 해외 지사나 외교 대표부들은 모국에서 오는 손님 뒤치다꺼리하느라 정작 일을 못한다고들 한다. 높으신 의원 나부랭이라도 오는 날에는 만사 제쳐두고 외교관들이 총출동한다고 언론은 종종 비판 기사를 싣는다. 설사 그 외교관들이 얄타 협약이나 포츠담 회담을 앞두고 있더라도 말이다. 축구 얘기로 책 한 권을 너끈히 써내는 닉 혼비만큼은 아니더라도 나도 어지간히 떠들 능력은 있다. 한국 대표팀의 소식, 이를 테면 이동국 안정환이 최후의 월드컵 멤버가 될지, 이운재가 체중을 5킬로그램 줄일지는 몰라도 이탈리아 축구만큼은 꽤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특별히 이탈리아 축구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냥 그 나라에 살면 그렇게 된다. 자, 저녁밥을 먹고 텔레비전을 커면 어느 채널인가는 꼭 축구 얘기를 한다. 어려워서 알아듣지는 못해도, 멋진 골 장면을 보면 대충 감이 잡힌다. 유벤투스와 인터밀란간의 게임에서 나온 오프사이드 판정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를 놓고 정말 대여섯 명의 전문가들-어떤 사람은 멋진 수염을 기른 움베르토 에코처럼 생겼다-이 두 시간쯤 대토론을 벌인다. 각기 다른 각도에서 찍은 영상이 공개되고, 추적 60분식의 몰래 카메라가 관련 심판과 인터뷰를 시도하기도 한다. 나는 축구를 좋아하니까 이런 나라에서 살면 어쨌든 언어 공부는 된다. 마시모 불가렐리-유명한 텔레비전 축구 해설가-가 멋진 패스를 보고 호들갑을 떨며 ‘벨 빠싸지오!’하고 감탄사를 날리는 걸 들으며 이탈리아어 공부를 하기도 했다. 누구는 어둠의 경로를 통해서 본 일본의 야리꾸리한 동영상을 보며 일본어를 배웠다고 하니,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주로 ‘좋아 좋아’라든가 ‘남편은 오늘 집을 비웠어요’따위의 대사만 외워지게 되어서 탈이겠지만.(다음 호에 연재가 계속됩니다.)PROFLE박찬일은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에서 소설을 정공하고 잡지 기자가 되었다. 33세 느닷없는 깨우침(!)은 아니었고 돌연 요리에 흥미를 느껴 3년 동안 이탈리아에서 요리와 와인을 공부했다. 시칠리아에서 고수 주방장을 만나 요리사로 일하다 한국으로 돌아와 ‘뚜또베네’에 이어’트리토리아 논나’를 성공적으로 론칭, 스타셰프로 이름을 날렸다. 요리와 와인에 대한 쫄깃한 문체의 칼럼니스트로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으며, 현재 이탈리아 향토 요리 ‘누이누이’의 주방을 책임지고 있다. 그가 쓴 이탈리아 도시와 지방, 주방과 거리를 누비며 보고 느낀 유쾌 발랄 달콤 살벌 이탈리아 여행기를 만나본다.* 자세한 내용은 엘라서울 본지 3월호를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