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셔니스타와 완판녀의 미묘한 경계 | 엘르코리아 (ELLE KOREA)

'패셔니스타=완판녀' 이공식은 필요충분 명제가 될 수 없다. 패셔니스타라고 완판녀가 될수 있는 것도 아닐뿐더러 모든 완판녀가 '억'소리 날 만큼 스타일리시한 것도 아니기에. 패셔니스타와 완판녀. 그 미묘한 경계에 대하여.::트렌디한, 패셔니스타, 완판스타, 김민희, 공효진, 황정음, 김남주, 엘르, elle.co.kr:: | ::트렌디한,패셔니스타,완판스타,김민희,공효진

새삼스럽게 자신의 모습에 놀라는 요즘이다. 은 정신없이 달리는 삶의 활력소가 됐다. 평범한 일상을 마치는 하루하루는 물론이요, 마감 중 새벽 서너 시에 들어가도 당일 방송분을 ‘다시 보기’ 하고 낄낄거리다 잠이 든다. 그 누구 하나 특별히 잘난 것 없는 캐릭터들이 만들어내는 유치찬란한 불협화음과 그 과정을 통해 둥글어져 가는 모습에 자지러지게 웃고, 짠한 애틋함에 눈물 짓는 날들이 일상을 수놓고 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그러했듯이 재발견한 캐릭터는 ‘황정음’이다. 아이돌 ‘슈가’에서조차 아유미와 박수진의 그늘에 가려 존재감이 없었던 그녀, 황정음. 극중(사실 극중이라고 말하기도 뭐한 게 에서 보여준 모습과 상당히 일관성 있다) 대책 없는 무대포 성격과 감정 표현에 거침없는 그녀를 보고 있자면, 무자비한 감정 표현으로 상대를 당황케 했던 나의 어린 시절 연애가 떠올라 오묘한 미소를 짓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또 한 가지. 직업병인지는 몰라도 매회 주의 깊게 관찰하게 되는 건 역시 그녀가 옷을 입는 방식이다. 그건, 매주 5회 중 4회는 같은 옷을 입고 나오는 신세경이나 10대에게나 어울릴 스타일링을 보여주는 유인나와는 출발점부터 다른, 황정음만이 가진 특이성이다. 매달 카드값에 얼굴이 회색빛으로 변하는 캐릭터답게 1회부터 최근 100회 중 같은 스타일링을 보여준 회는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스타일에 관심 많은’ 캐릭터임에도 스타일링을 보고 있자면 ‘귀엽다’ 싶다가도 종종 ‘저건 아니지’ 싶고, 자주 ‘어쩌면 저렇게 촌스럽게!’ 하는 마음에 한숨이 절로 피어오르는 것이 사실. 그러나 흥미롭게도 황정음이 입고 나온 옷들은 엄청난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건 포털 사이트 N의 질의 응답 섹션 혹은 수천 명의 20, 30대 여성들이 활동하는 인터넷 카페만 봐도 그렇다. 하루에도 수십 개씩 ‘황정음이 오늘 입고 나온 그 재킷 어디 껀지 아시는 분?’ ‘황정음 오늘 입은 원피스 사고싶긔. 어디꺼긔?’ 하는 글들이 올라오는 현상을 보고 있자면 그야말로 ‘황정음 효과’에 대해 새삼 놀라게 된다. 결국 그간 활동이 적었던 그녀를 믿고 옷을 협찬해준 브랜드들은 그야말로 ‘봉’ 잡은 셈이다. 특히 이미 유행이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했을뿐더러(사실 패션지에서 어그를 다뤘던 것은 2003년 겨울, 정말 잠시뿐이지 않았던가), 주변 남자의 70~80%에 이르는 이들이 “그걸 왜 신어! 여자답지도 않고 섹시하지도 않고 심지어 귀엽지도 않아. 이해가 안 돼! 임수정조차 용서할 수 없었어”라고 말하는 어그 부츠를 다시 유행의 수면 위로 끌어올린 황정음 스타일의 파워를 보고 있자면(심지어 어그를 충동 구매한 후 없는 생활비 때문에 소개팅으로 오랜 시간 모든 끼니를 해결했다는 ‘어그녀’가 얼마 전 등장하기도 했다). 새삼 패션지의 효용성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매달 실리는 수천 개의 제품과 유행이라 소리 높여 떠들어온 수백 개의 트렌드. 생각해 보면 그 중 어떤 것도 ‘열풍’이라 불릴 만큼 대중의 동감을 얻은 적은 전무했다. ‘패셔니스타’에 대해서도 그렇다. 국내 패션지가 사랑하는 김민희나 공효진이 걸치는 아이템이 ‘완판’됐다는 이야기는 실제로 듣기 힘들다. 지난해 의 김남주, 의 한효주, 거슬러 올라가 의 임수정 혹은 ‘12년째 국민 요정’ 이효리라면 몰라도. 또 클로에 셰비니나 케이트 모스, 올슨 자매의 스타일링 감각에 전 세계 수많은 이들은 찬사를 보내지만 오히려 동대문 등지에 나가 보거나, 온라인 쇼핑몰을 클릭해보면 더 많은 사진이 흩뿌려져 있는 이들은 되레 시에나 밀러, 린지 로한, 키얼스틴 던스트라는 사실 역시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결국 대중이 택하는 건 ‘잘 입는’ 스타보다 ‘나도 입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스타다. 이 미묘한 경계선은 우리나라 패션계에 떠도는 정설 중 하나인 ‘한 발 앞서 나가면 망하지만 반 발 앞서나가면 성공한다’는 이야기가 진리임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런웨이에 등장한 트렌디한 디자인(한 발 앞서나간)이 대중에게 받아들여지기까지는 엄청난 순화 과정을 거치는 오랜 시간이 흘러야만 하고, 낯선 디자인에 대중은 쉽게 지갑을 열지 않는다. 그래서 새로운 아이템이 런웨이에 등장한 후 패션 TV 프로그램이나 패션지, 패션 사이트에서 여러 번, 패셔니스타들이 입은 모습으로 수십 번은 노출되고, 어느 정도 익숙해진 다음 대중의 일부가 슬슬 ‘나도 한 번 시도해 볼까?’라는 생각이 들 때 이를 걸치고 등장한 스타들이 결국 각종 쇼핑몰에 ‘000st’로 등장하고 ‘완판녀’가 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완판녀들의 스타일링은 우선 ‘난해하다’는 느낌을 조금이라도 주어선 안된다. 몇 년 전 클로에 셰비니가 양말에 샌들을 신고 나타났을 때, 케이트 모스가 주머니가 보일 만큼 짧게 자른 쇼츠를 입고 거리를 누비는 사진이 떴을 때, 공효진이 누드 톤 실크 블라우스 안에 훤히 비치는 블랙 브래지어를 입은 모습이 인터넷에 올라왔을 때, 패션에 관심 좀 있다는 사람들 외에 대부분은 ‘저게 뭐냐’는 뜨악한 반응뿐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지금은 거리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는 스타일링이다. 그래서 이렇게 ‘한 발’ 앞서 리드할 수 있는 이들은 패셔니스타로 분류될 뿐 완판녀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또 완판녀들은 몸매 역시 지나치게 출중해서도 안 된다. 대표적인 예가 김민희. 시사회장을 비롯한 다양한 스폿에서 촬영된 그녀의 모습이 공개될 때마다 빠짐없이 달리는 리플은 언제나 ‘예쁘다!’ 그리고 그 다음이 바로 ‘거적때기를 걸쳐도 예쁜 몸매인데 무얼 걸치든 안 예쁘겠느냐’는 식 말이다. 따라서 같은 브랜드, 같은 아이템을 구입한들 비슷하게 소화하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몸매를 가진 이들은 완판의 기적을 이뤄내기 힘들다. 마지막으로, 접근 가능성이 좋은 브랜드를 택하는 스타일수록 완판녀가 되기 쉽다. 예를 들어, 어떤 드라마에서 스타가 입은 옷이 너무 마음에 들어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부리나케 질문을 타이핑했다. 그런데 돌아오는 답변이 ‘그거 명품 브랜드 00제품이고요, 가격은 3백만원대. 매장은 서울 갤러리아 백화점에만 있고요’라면 과연 그 스타가 판매율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정도가 얼마나 될까. 하지만 답변이 ‘온라인 쇼핑몰 00.co.kr에 있어요. 3만8천원이요’라는 답변이 돌아온다면 클릭부터 구매까지 단숨에 이뤄질 확률이 훨씬 높아지는 셈이다. 그리고 쇼핑몰 ‘온음’의 운영에 관계하는 황정음은 이 덕을 기가 막히게 본 스타 중 하나다. 따라서 어찌 보면 ‘완판녀’라는 타이틀은 사실 스타들에게 꼭 플러스가 되는 수식어만은 아니다. 결국 대중에겐 환영받아도 트렌드를 쥐락펴락하는 디자이너나 에디터, 스타일리스트들에게 ‘스타일리시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확률도 낮으며, 감흥을 주는 ‘패셔니스타’가 되기는 더더욱 힘들다는 이야기일 테니까. 그러나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어쨌든 완판녀이든, 패셔니스타이건, 워스트 드레서이건 간에 가장 중요한 건 ‘제 역할을 얼마나 잘하느냐’란 거다. 그건, 우리가 멋드러진 레오퍼드 퍼 코트에 아찔하게 달라붙는 블랙 팬츠를 입고 나온 의 김민희와 후드 티셔츠와 패딩 베스트를 겹쳐 입고 컬러 어그를 신은 채 뛰어다니는 의 황정음 모두에게 애정을 쏟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3월호를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