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고인이 된 알렉산더 맥퀸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아팠다. 마음이 미어졌다. 새벽에 들은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에 심장이 먹먹했다. 이렇게 귀하고 아까운 천재의 생명이 사라지는 것을 속수무책 바라보는 수밖에 없구나 생각하니 목구멍에서 뜨거운 불덩이가 치밀어 오르는 것 같았다.::알렉산더 맥퀸, 컬렉션, 엘르, elle.co.kr:: | ::알렉산더 맥퀸,컬렉션,엘르,elle.co.kr::

한 밤중에 번뜩 눈이 떠졌다. 시계를 보니 새벽 2시 35분이었다. 어둠 속에서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듯 그저 천정을 바라보았다. 그 때 문자가 왔다. ‘은영. 맥퀸이 자살했대. 너무 아깝고 슬프다’ 마감을 하던 잡지사 친구로부터 온 문자였다. 숨을 들여 마시기엔 심장이 너무 조여 왔다. 아침에 일어나 뉴스를 보니 확실한 사망 원인은 밝혀 지지 않았으나 우울증이 심각했던 듯하다. 그의 정신적 지주이자 수호천사와도 같은 존재였던 이사벨라 블로우의 죽음에서부터 불과 일 주일 전에 사망한 어머니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는 조금씩 죽어가고 있었나보다. 알렉산더 맥퀸을 그저 아까운 생명이라 말하기엔 그의 재능이, 그의 감각이 너무도 귀하고 아름답다. 젊은 천재 디자이너라고 말하기엔 그가 보여주었던 아름다움이 지독하게 완벽하고 새롭고, 신비로웠다. 더 이상 그 지독하게 아름답고 음울하기 까지 한 시적 표현을 볼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슬프고 애통한 일임에 틀림없다.‘난 그의 쇼를 처음 보고 나서 패션쇼가 옷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구나 생각했어. 디자이너가 단지 옷만 만드는 사람이 아니란 것도 알게 되었지. 솔직히 옷만 보았을 때는 너무 어렵고 힘들었어. 그러나 그의 패션쇼를 보고 알았어. 음악부터 헤어와 메이크업, 무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하나의 네러티브가 되어 극으로 완성된다는 것을. 그리고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맥퀸이 만들었던 범스터 팬츠를’ 편집장 신유진은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 하며 말했다. 솔직히 고백하건데 나 또한 알렉산더 맥퀸의 옷을 힘들어 했던 적이 있다. 심지어 그의 옷이 가지고 있는 강제적인 여성성이 불쾌했던 적이 있다. 그의 의상은 자연스럽게 여자의 신체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상에 가까운 여자로 만들기 위해 석고본을 떠놓고 그것에 맞추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드레스를 보게 되었다. 비너스의 몸을 그대로 본떠 만든 듯 한 입체적인 실루엣으로 요정들이 짠 것처럼 섬세하고 지극히 아름다운 레이스 소재의 칵테일 드레스였다(공교롭게도 나는 그 드레스를 배우 장진영과 같이 입어 보았다. 아름다운 드레스를 만들던 사람도, 아름다운 드레스에 대해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던 사람 모두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은 참으로 나를 아프게 한다). 만지면 부서져 버릴 것 같은 그 아름다운 드레스를 한번이라도 입어보고 싶어 그 옷을 걸치는 순간 레이스는 몸의 일부가 되어 온 몸에 밀착되었다. 그 드레스의 완벽한 형체에 나의 몸이 맞춰지는 순간이었다. 그의 옷은 조형적이고 입체적이지만 기본은 철저하게 지켜져 있다. 아마도 그의 처음 시작이 고급 신사복의 전통적 재단 기술을 습득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그가 만든 옷, 특히 재킷은 철저하고 완고하다. 그리고 그 완고함이 그레이스 켈리를 연상시킬 정도로 완벽한 클래식으로 보여지게 된다. 알렉산더 맥퀸이 보여주었던 ‘옷’은 그저 옷이라고 말하기엔 너무나도 신화적이다. 그리고 예술적이다. 빌 바이올라의 ‘물’과 ‘불’을 연상시키는 무대를 비롯해서 조형적인 헤어와 메이크업은 기괴하면서도 우아하게 어우러진다. 그의 패션쇼는 언제나 4차원의 세계를 넘어 선 가상적인 공간이었다. 우주와 시간 여행, 동화와 신화, 과거와 미래, 아름다움과 괴기스러움을 넘나들며 그는 우리를 감동시켰고, 황홀한 경험을 선사했다. 케이트 모스의 홀로그램은 팀버튼의 영화보다도 더 몽환적이면서도 미래적이었다. 레이디 가가의 코스튬은 클림트와 프랭크 게리, 로코코와 바로크를 휙휙 섞어 감칠맛 나게 만들어 놓았다. 30센티 힐과 마치 올림푸스 신화 속 동물들을 연상케 하는 의상을 선보였던 지난 2010 S/S 컬렉션은 ‘악’소리도 못 내게 완벽했지만 나는 2006년 F/W 컬렉션을 유독 사랑한다. 깃털로 만든 새 모양의 오브제를 머리에 장식하고 빅토리안과 중세 시대를 섞어 놓은 것 같은 아름다운 코트와 팬츠들은 너무나도 클래식하면서도 그림 같았고, 그러면서도 모던했다. 20세기를 시작할 때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 조형적이면서도 건축적인 의상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면 알렉산더 맥퀸은 21세기를 예술적이면서도 독창적인 천재성으로 우주적인 아름다움을 제시했다. .범스터 팬츠가 맥퀸의 쇼에 등장하고 나서 모든 사람들은 열광했고, 많은 디자이너들은 그와 유사한 바지를 만들어 냈지만 그것을 따라 갈 수 없었어. 골반에 걸쳐지는 그 포인트가 절묘한데, 어떤 디자이너의 쇼에서 범스터 팬츠가 흘러내린 뻔한 적도 있었어. 그 만큼 완벽한 재단을 했다는 거야” 신유진은 몇 번이고 강조한다. 조각을 해도 그렇게 매끄러울 수가 없을 것이고, 피부에 올려 놓고 짜맞춘다고 해도 그렇게 완벽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셀러브티리부터 패션피플들에 이르기까지 알렉산더 맥퀸의 의상을 사랑했던 것이다. 기막히게 아름다운 옷을 만드는 그의 얼굴은 흡사 동네 꼬마처럼 선하고 장난스럽다. 그의 그런 유니크함으로 인해 나온 것들이 바로 해골 프린트이고, 시바스 리갈 18년산의 멋들어진 병이고, 샘소나이트의 기발한 여행가방일 것이다. 이젠 어떻게야 하나. 더 이상 그 유니크하고, 완벽하고, 감동스럽도 아름다운 쇼를 보지 못하게 되었으니 참 막막하고 안타깝다. 글렌 체크부터 타탄 체크에 이르기까지, 망사에서부터 두터운 헤비게이지 니트와 울소재까지, 깃털부터 여우털에 이르기까지, 메탈부터 눈이 부시도록 반짝이는 스와로브스키까지 그는 세상의 모든 소재와 디테일과 패턴을 사랑했다. 그리고 그것을 독창적인 이야기로 만들며 아름다운 무대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의 쇼는 팀 버튼의 몽환적인 영화가 떠오르고, 그리스 신화의 칼립소 섬의 아름답고 무서운 요정들이 떠오르고, 세익스피어의 속의 신비로운 요정 여왕을 떠오르게 했다. 그의 죽음을 대하면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고별 메시지 중 마지막 소절이 떠오른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었던 적이 있다. 지금 이 글을 알렉산더 맥퀸의 죽음 앞에 감히 바치고 싶다. 설사 그의 죽음이 정당치 못하다 하여도 그를 가혹하게 탓하고 싶지 않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는 천재 디자이너가 견디기엔 참으로 척박하고 거친 세상이 아닌가. 어머니와 이사벨라 블로우가 있고, 그리고 참된 평화와 진정한 아름다움이 존재하는 하늘나라에서 그가 편히 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할 뿐이다.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3월호를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