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란
드라마 작가
<일지매>
<신의 선물-14일>

시간여행을 떠나 딸의 죽음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엄마의 이야기. 2014년 방영된 <신의 선물-14일>은 독특한 이야기 전개로 미드형 한국 장르 드라마를 개척했다는 평을 받았다. 작가 최란은 <역사스페셜> <인간극장> 등 15년 넘게 많은 다큐멘터리·시사 프로그램을 집필한 방송작가 출신. 지금은 시청자들이 화장실도 못 가게 만드는 드라마를 쓰기 위해 골몰하고 있다.
<신의 선물 14일>은 이야기 퍼즐이 굉장히 복합한 작품이었다. 16회를 촘촘히 끌고 나가기 위해 고민이 많았겠다
처음부터 엔딩을 정해놓고 판을 짰다. <신의 선물-14일>은 끝까지 범인을 숨기고 가는 드라마였다. 매회 반전이 이어지다가 마지막 회에서야 범인이 드러나는. 한국 공중파에서는 이런 구조의 드라마가 낯설다 보니 편성이 어려웠고, 제작 과정에서 실수도 많았다. 복선으로 넣어놓은 소품을 빠뜨린다거나, 막판에는 급한 촬영 상황 때문에 중요한 신들이 아예 빠지기도 했다. 드라마가 끝난 뒤 무삭제 오리지널 대본집을 출간한 이유도 그런 아쉬움 때문이었다.
미국에서 리메이크 판권을 계약했다고 들었다
미국 선더보드 사와 세계적인 에이전시인 CAA에서 공동으로 리메이크를 진행하고 있다. 새 작품 준비 때문에 바쁘긴 하지만, 그래도 미국 쪽 작가와 통화하며 도움을 주고 있다. 이번 작품이 잘되면 미국에 가서 시즌2 대본을 직접 쓰게 될지도 모르지(웃음).
해피 엔딩을 쓰는 작가는 아니다
행복한 결말을 쓰면 작가가 칭찬받는 걸 안다. 하지만 시청률이나 외부적인 요인에 흔들려 내가 원래 세팅해 둔 이야기를 억지로 바꾸고 싶진 않다. 그리고 나는 현실론자여서, 모든 게 너무 잘 풀리고 행복하면 거부감이 든다.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까. 시사 프로그램 방송작가로 오래 일하면서 세상의 어두운 면을 다 봤다. 그런 게 아무래도 작품에 영향을 미치는 듯싶다.
어떤 드라마를 쓰고 싶나
1순위는 재미있는 드라마. 그 다음은 내가 하고자 하는 얘기를 하는 드라마. 두 가지를 다 가져가고 싶다. 세련된 이야기를 좋아하지만 그 속에 한국적인 정서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리즌 브레이크>나 <24시> 같은 미드의 경우도 폭주하는 힘과 함께 끈끈한 가족애가 있어서 한국 사람들이 좋아했던 것 아닐까.
한국 드라마에 바라는 변화라면
장르가 다양해지면 좋겠다. 공중파는 자꾸 안전한 선택을 하려는 경향이 있다. 신인 작가들은 대본이 훌륭해도 편성을 못 받고, 어떤 작품은 배우나 작가 이름만으로 편성을 주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질 좋은 드라마를 볼 권리가 있다. 극장에 가서 돈을 내고 보는 영화와 달리, 드라마는 어떻게 보면 일방적으로 살포되는 것이지 않나. 방송사들이 그 점을 좀 더 인지하고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막장 드라마’ 문제도 그렇다. 미친 인물이 미친 짓을 하는 걸 계속 보다 보면, 그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게 바로 드라마 힘이기도 하고. 최소한 대중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는 드라마는 쓰지 말자는 게, 작가로서 내 신념이다.
준비하고 있는 작품은
특수구조대원들의 이야기를 다룬 <세이버>와 저승사자가 주인공인 <블랙>을 준비 중이다. <블랙>은 인간의 몸을 빌린 저승사자가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되면서, 인간의 생사에 관여해서는 안 되는 천계의 룰을 어기고 세상의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되는 슬픈 사랑 이야기다. 그런데 천계 법칙과 그로 인한 형벌로 기억에서 사라지는 설정 등을 다른 작품에서 그대로 가져다 쓰는 바람에 엔딩을 바꿔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
그런 일이 많이 벌어지나
한국은 표절에 너무 관대하다. 창작자가 만든 설정과 에피소드를 함부로 베껴도 우리나라 법은 그것을 아이디어 차용으로 보지, 표절로 인정하지 않는다. 부디 창작자들이 자신의 작품을 온전히 보호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