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많은 에피소드를 담은 에디터 탐구생활 | 엘르코리아 (ELLE KOREA)

편집부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으면 웃음과 눈물이 뒤섞인 시트콤, 혹은 ‘에디터’란 희귀 종족에 대한 야생 리얼 다큐가 되지 않을까. 마감을 둘러싼 치열한 하루하루와 우여곡절 많은 에피소드를 담은 ‘에디터 탐구생활’.::바쁜, 지친, 힘든, 작업실, 편집부, 외근, 취재, 작업, 편집, 마감, 엘르, 엘르걸, 엣진, elle.co.kr:: | ::바쁜,지친,힘든,작업실,편집부

연예인 인터뷰 현장 한 달 전부터 매니저와 수십 통의 전화를 나눈 끝에 성사된 여배우 A와의 인터뷰 날이에요. 매니저의 핸드폰 번호가 남자친구 번호보다 더 친숙하게 느껴져요. 몇 달 전만 해도 새파란 신인이었는데 드라마가 조금 떴다고 콧대가 하늘을 치솟아요. 자기가 송혜교인 줄 아나봐요. 드디어 도착했네요. 이미 약속 시간은 30분을 지났어요. 팔에 수첩을 낀 매니저가 직전 스케줄이 늦었다고 변명을 해요. 그 뒤에서 샤넬 백을 든 A는 순진한 표정으로 인사를 해요. 보톡스의 향기가 느껴지는 빵빵한 볼은 둘째치고, 예상보다 넓은 어깨와 튼실한 허벅지에 눈이 가요. 프로필에는 45kg라고 하더니, 역시 사기였어요. 준비한 의상이 맞지 않을까봐 스타일리스트가 걱정하는 눈치예요. 의상을 갈아입고 사진 촬영을 진행해요. ‘한 낮의 오후처럼 나른한 느낌’이라고 열심히 찾은 시안까지 보여주며 설명했지만, 계속 예쁜 척하는 표정만 지어요. “그런 표정은 미니홈피에 올릴 셀카 찍을 때나 해!”라고 말해주고 싶은 걸 꾹 참고 “예쁘다!’고 뻥을 쳐요. 연예인에게는 칭찬이 약이거든요. 사진 속 짧아 보이는 다리가 거슬리긴 하지만, 그래도 괜찮아요. 우리에겐 포토샵이 있으니까요. 이제 인터뷰를 할 차례예요. 녹음기를 켜고 ‘실물이 훨씬 예쁘다’는 립 서비스를 시작으로 준비한 질문들을 던져요. 예상은 했지만, 역시 단답형의 착한 대답만 돌아와요. 제발 ‘연기’는 드라마에서나 잘 했으면 좋겠어요. 작은 얼굴 말고는 아무런 감흥도 없는 연예인의 기사를 쓰는 것은 둘리의 자서전을 쓰는 것보다 힘들어요. 그래도 기사에는 ‘재능과 열정을 겸비한 스타’라고 포장해야겠죠. 독자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드네요. 스튜디오를 떠나면서 매니저가 슬쩍 해외 화보 촬영을 가자고 떠봐요. 나는 어색한 웃음으로 응대해요. 나는 기자이지 여행사 직원이 아니잖아요. 역시 다음 달에는 귀여운 아이돌 그룹이나 인터뷰해야겠다고 생각해요. 안구라도 호강할테니까요. 뷰티 에디터의 출근 준비오전 7시 20분, 핸드폰 알람이 울리기 시작해요. 수면 안대를 한 채로 손을 뻗어 거의 무의식적으로 벨소리를 꺼버려요. 벨소리는 내장된 멜로디 중 가장 단조롭고 감미로운 음악이에요. 단잠에서 깨어날 때 받을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한 현명한 선택이죠. 전날 야근으로 인해 온몸에 붙어 있는 잠과 피로를 억지로 떼어내고 눈을 감은 채 욕실로 향해요. “오늘은 미팅과 행사가 많으니까 힐을 신어야지. 스키니한 블랙 팬츠와 파워 숄더 블라우스, 퍼 목도리, 블랙 코트. 그리고 블랙 아이라이너로 포인트를 줘야지.” 아침 드라마를 흘끗거리며 메이크업을 시작해요. 토너, 에센스, 로션, 아이크림, 크림, 자외선차단제를 바른 다음 전체적인 피부결과 톤을 점검! 몇 일째 야근을 했지만 최근 테스트용으로 받은 고가의 영양크림을 듬뿍 바르고 잔 덕분인지 얼굴에 윤기가 자르르 흘러요. “퍼펙트!” 만족스러운 표정과 함께 스팟 컨실러, 리퀴드 파운데이션, 파우더 팩트를 차례로 발라 마무리해요. 드디어 요즘 유행하는 도톰한 아이라인을 그릴 차례예요. 속쌍꺼풀도 번지지 않고 바르기 쉬운 젤 타입으로 골라 브러시에 묻힌 다음 조심조심 오른쪽 눈을 완성해요. 오늘은 눈꼬리도 아주 자연스럽게 잘 올라갔어요. 왼쪽 눈을 그리던 순간, 드라마에서 극적이 장면이 펼쳐져요. 잠시 한눈을 판 사이 라인이 빗나갔어요. ‘오, 마이 갓!’ 서둘러 면봉으로 지웠다 그리기를 반복해요. 그 사이 시간은 이미 8시 20분. 서둘러 옷을 챙겨입고 뷰러와 마스카라, 립글로스를 주머니에 쑤셔넣고 집을 나서요. 허겁지겁 버스정류장을 향하던 중 저 멀리 빈 택시가 얼른 타라는 듯 깜빡이를 켜고 다가와요. 버스를 타고 여유롭게 출근하겠다는 야심찬 새해 계획은 잊은 지 오래예요. 그래도 지각도 안하고 회사 근처에서 커피까지 사갈 수 있겠다며 긍정적인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해요. 프레스 세일 득템 소동기다리고 기다리던 D 브랜드의 샘플 세일 날이에요. 예전부터 눈독 들이고 있던 가방을 오늘은 정말 사고 말리라 결심해요. 출근하는 내내 그 생각에 들떠 있어요. 행여 누가 먼저 채가기라도 할까 마음은 점점 급해지고 엉덩이는 들썩 들썩. 결국 출근 후 한 시간을 못 채우고 행사장 오픈과 동시에 들르기로 결심해요. ‘역시, 일찍 오니 사람이 없군. 부지런 떨길 잘했어.’ 스스로를 대견하게 생각하며 행사장 안으로 당당하게 입장해요. 표정관리 하고 있지만 사실 그 가방을 찾으려고 눈동자는 재빠르게 좌우 운동을 반복하고 있어요. 그런데 젠장, 그 가방이 없어요. 지난 6개월 간 매달 눈맞춤 했던 아이인데 미아가 된 듯 감쪽같이 사라졌어요. 이럴 수가. 갑자기 다리에 힘이 쑥 풀리는 것 같아요. 직원한테 그 가방은 왜 없는 거냐고 최대한 도도하고 시크하게 물어봐요. 속에선 열불이 나지만 패션 에디터의 자존심을 뭉갤 수 없잖아요. 속도 모르는 직원은 얄밉게도 벌써 딴 여자한테 입양됐다는 말을 생긋 웃으며 해요. 그 여자의 이름은 바로 연.예.인. 그놈의 연예인. 아무리 패션 피플이라도 일반인인 나에게 그들은 넘을 수 없는 산과 같아요. 표정 관리 같은 건 이미 온데 간데 없어요. 허탈한 마음에 뭐라도 사려고 두 눈의 좌우운동은 다시 바빠져요. 그래, 상한 자존심엔 킬 힐이 제격이죠. 그 순간, 이런 우라질 브라질 스리랑카레이션! 타 잡지사의 K 에디터가 내가 눈팅한 그 아이를 낚아채고 말았어요. ‘쟨 키도 큰 게 웬 킬 힐을 저렇게 사들이는 거야? 하여간 저 밉상!’ 안 그래도 나보다 키 큰 K가 그 아이 위에 올라서니 나보다 족히 20cm는 더 커보여요. 행여라도 남들이 키 차이를 눈치챌까 재빠르게 무심한 듯 그 옆을 지나쳐요. 다음 번 프레스 세일 땐 성공하고 말리라 다짐하며 행사장을 유유히 빠져나와요. 어휴, 너무 신경을 곤두세웠나 봐요. 어느새 배에선 꼬르륵 꼬르륵. 브런치나 먹으러 가야겠어요. 편집장의 속마음나는 패션지 편집장이에요. ‘정말 프라다를 입나요?’라는 재미도 감동도 없는 질문은 사절이에요. 사무실에 들어가니 자기네들끼리 수다를 떨다가 움찔대는 에디터들의 움직임이 포착돼요. 에디터들은 마감이 다가오면 편집장과 눈 마주치기도 싫어해요. 이해할 수 있어요. 나 에디터 시절엔 더했어요. 그런데, 왠지 울컥해요. 책상 위를 보니 밤새 재봉틀을 돌린 에디터들이 올려둔 송고표들이 있어요. 하나, 둘, 셋, 넷. 마음에 차는 숫자는 아니지만 몰래 에디터들의 얼굴을 살피니 다크 서클이 발등을 찍고 있어요. 잠시 짠한 생각도 들어요. 물론 표정들은 살벌해요. “이게 다야?” 따위의 망발을 날렸다간 오늘 밤 부두인형의 주인공이 되어 바늘로 온몸을 찔리는 고문을 당할 것 같아요. 원고를 읽으려는데, 어김없이 타 부서의 미팅 요청과 홍보 대행사의 전화가 빗발쳐요. 마케팅부과 광고부, 제작부 등의 업무 협조 요청을 급히 해결한 후 홍보 대행사의 전화를 급 상냥한 목소리로 받아요. 물론 전화를 끊을 땐 ‘언제 꼭 점심 같이 해요’ 따위의 결제도 못할 부도수표를 마구 마구 날려요. 내가 생각해도 가증스러워요. 이런저런 업무들을 처리하고 다시 원고와 교정지들을 살펴봐요. 철자법이 틀렸거나 어색한 표현이 있으면 어김없이 빨간 펜으로 수정을 하면서요. 그때 에디터 한 명이 촬영한 화보 사진을 들고 조심스레 다가와요. 이런 젠장, 컨펌했던 시안과 전혀 다른 결과물이에요. 이렇게 칙칙하고 에지 없는 비주얼은 우리 책에 절대 안 어울려요.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격앙되지만 이내 애써 표정 관리를 해요. 좋은 잡지를 만들기 위해서 편집장은 이따금 ‘악마’가 되기도 해야 해요. 책이 나올 때까지 한 순간도 방심해서는 안 돼요. 마감은 말 그대로 데드라인이니까요. 원고 마감이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각인시켜주기 위해 에디터들에게 무언의 압박을 보내요. 그래도 차곡차곡 완성되는 기사들을 보니 에디터들의 땀과 노력이 느껴지네요. 우리 아이들, 오늘 저녁에 고기라도 먹여야겠어요.* 자세한 내용은 엘르걸 본지 3월호를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