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감성이 아니라 감각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스물 일곱 살에 가진 첫 개인전으로 뉴욕의 까다로운 비평가들을 매혹시킨 다나 슈츠. 캔버스를 메우고 있는 선과 색들은 ‘그림은 감성이 아니라 감각’이라고 말하는 그녀의 말만큼이나 확고하고 대담하다. 브루클린 작업실에서 그녀와 보낸 충만한 감각의 시간.::dana schutz, 감각적인, 풍요로운, 세심한, 작업실, 집, 거실, 작업, 드로잉, 일상, 여가, 엘르, 엘르걸, 엣진,elle.co.kr:: | ::dana schutz,감각적인,풍요로운,세심한,작업실

단번에 사람의 마음을 잡아끄는 이들이 있다. 대체로 그런 이들은 아이처럼 잘 웃고 사람들로 하여금 순수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2002년, 스물 일곱 살의 나이에 뉴욕 미술계의 이목을 단숨에 잡아끈 화가 다나 슈츠는 그런 면에서 타고났다. 콜럼비아 미술대학 석사과정 재학 중 열린 개인전 으로 뉴욕 비평가와 수집가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받은 그녀. 네모난 캔버스 안을 가득 메우고 있는 대담한 선과 색감들, 밝고 유쾌한 에너지에 사람들은 매료됐다. 그리고 30세도 되기 전에 영국의 유명한 미술 컬렉터 찰스 사치가 기획한 전시 에 소개되면서 다나 슈츠는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젊은 아티스트 중 한 명이 되었다. 여기 저기 색색깔의 물감 천지인 그녀의 브루클린 작업실에서 만난 다나 슈츠. ‘천재’라는 수식어에 수줍어하고, 천진한 표정으로 홀로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고백하는 그녀는 그녀의 그림만큼 우리를 매혹시킨다. 1 작업실 벽에 붙어있는 드로잉들.2 다나의 작업실. EG 어릴 적 미술 공부를 결심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열 네 살 때였나.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머릿속에 구상한 이미지들을 내 손으로 직접 표현하고 자유자재로 만질 수 있다는 것. 그런 자유로운 느낌이 좋았다.EG 당신의 어머니가 중학교 미술 선생님이었다고 들었다. 아무래도 어머니의 영향이 컸을 것 같다. 어머니 덕분에 우리 집엔 항상 여기 저기 그림들이 있었다. 어머니가 그린 그림부터 학생들의 그림까지. 가끔 어머니는 학교에서 작업하다 남은 유화 물감들을 가져와 내게 주시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머니는 그런 무심한 듯한 행동을 통해 나 스스로 꿈꿀 수 있는 여유와 공간을 주셨던 것 같다. EG 기억을 되살려 당신이 처음 붓을 잡았던 때로 돌아가 그 때의 기억들을 나눠달라. 부모님께서 내가 마음껏 그림을 그릴 수 있게 지하실을 내 작업실로 내어 주셨으니 나는 정말 운 좋은 아이였다. 나는 유난히 유화 물감을 좋아해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캔버스에 직접 손으로 그리는 것을 더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EG 쭉 도시에서 살아왔나? 당신의 그림 속엔 도시의 삶에선 발견되지 않는 정서들이 발견되는데. 나는 미시건 주에서 자랐다. 어린 아이에게는 지나치게 고요한 정적이 감도는 곳이었지만 어린 나는 그런 것들을 심심해하면서도 즐겼던 것 같다. 모든 것이 꽉 찬 도시에서 자라난 아이에 비해 내겐 여유가 많았다. 넓은 공간과 자연, 스스로에 대해 생각할 시간 등.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유년기를 그 곳에서 보내고 싶다.EG 현재 당신은 뉴욕에서 살고 있다. 뉴욕에서 화가로 산다는 건 어떤 건가? 뉴욕은 수많은 욕망과 영감의 오브제들이 넘쳐나는 곳이지 않나. 뉴욕은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곳이다. 볼 수 있는 것,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지하철을 타고, 거리를 걷고, 크고 작은 수많은 미술관들을 둘러 보며 나는 사방에서 영감을 받는다. 뉴욕에서 산다는 건 경험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행복 그 자체다.EG 당신의 작업실이 궁금하다. 내 작업실은 늘 어질러져 있다. 그 이유는 하나의 작품을 끝냄과 동시에 또 새로운 그림을 그릴 준비를 하기 때문이다. 컬러 팔레트, 스케치, 책 등이 여기 저기 흐트러져 있다. 그런 자연스러움에서 나는 편안함을 느끼고 동시에 다음 작업으로 넘어갈 수 있는 에너지를 얻는다. EG 작업실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편인가, 아니면 개인적인 여가를 더 중요시하나. 혼자 스튜디오에서 보내는 시간을 가장 즐기는 편이다. 혼자가 된 상태를 가장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고나 할까. 이곳에서 바깥 세상과 단절된 채 혼자 작업을 하는 동안 만큼은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다. EG 당신은 2002년 열린 첫 단독 전시회 으로 까다로운 뉴욕 비평가들의 열렬한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사람들이 당신의 그림을 보고 첫눈에 매혹된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나. 글쎄. 아마도 내가 그림에 썼던 색감이 사람들이 그동안 다른 그림들에서 보지 못했던 새로운 느낌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EG 사실 전시의 제목인 ‘Frank from Observation’부터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전시회 제목이라기보다는 연작 소설이나 영화 제목 같다. ‘지구가 멸망한 후 살아남은 최후의 인간 프랭크’라는 컨셉이었는데, 도대체 어디서 영감을 받았나.졸업 이후 나는 관객이 없는 그림, 가능하지 않은 그림을 그려 보고 싶었다. 결국 나는 누군가에게 보여주려는 그림이 아니라 나와 그림의 주인공만이 존재하는 그런 세계를 그려 보고 싶었던 거다. ‘프랭크’라는 인물은 내 주위 사람들의 눈, 코, 입, 얼굴 모양 등을 각각 따서 만든 캐릭터다. EG 당신의 그림에서는 주술적인 느낌도 난다.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젊은 작가의 그림에서 그런 느낌이 난다니, 어쩐지 아이러니컬하다. 내 생각은 이렇다. 그림은 절대 감성적이지 않다. 그림은 ‘감각적’인 것이다. 그림은 내가 머릿속에 생각하고 구상한 주제를 물감이라는 수단을 이용해서 표현해내는 것이다. EG 당신의 그림에서는 특히 대담한 컬러 매치가 돋보이는데, 어떤 것들에 영감을 받아 컬러를 선택하나. 다른 이들이 그린 그림에서 영감을 많이 받는다. 그림에서 마음에 드는 색이 눈에 띄면 그것을 내 그림에 써보기도 한다. 그리고 평소 다양한 컬러 믹스를 시도해보면서 새로운 색을 만들어낸다. 그 과정이 너무 즐겁다. 그래서일까? 내 작업실은 온통 컬러 팔레트로 가득 차서 마치 하나의 거대한 그림 같다. EG 당신의 그림에는 자신의 눈과 코를 먹는 사람, 조각난 신체 부위의 거침없는 묘사가 가득함에도 비극적이거나 어둡진 않다. 오히려 밝고 원색적인 색감으로 인해 한층 더 대담하고 희극적인 분위기가 난다. 의도한 바인가?내가 생각하는 세상은 항상 두 가지 상반된 면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무겁지만 가벼워 보일 수도 있고, 슬프지만 즐겁게 보일 수도 있고, 어둡지만 밝게 보일 수도 있다. 나는 이러한 세상의 양면성을 그림 안에 자유롭게 표현하고 싶다. 무거운 주제를 밝고 즐겁게 표현하는 것, 그것이 내 그림의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EG 당신 그림의 몇몇 특징들은 마치 초현실주의의 대표 화가였던 피카소나 야수파의 수장 마티스의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맞다. 나는 추상화가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예를 들면 파블로 피카소, 앨리스 닐(Alice Neel), 필립 거스턴(Philip Guston), 로라 오웬스(Laura Owens)같은 화가들. 그들의 그림은 지금도 여전히 내게 무한한 영감을 준다. EG 당신은 젊다. 그래서 작업을 할 때 미술 이외의 다른 예술 영역과의 교류도 활발하고, 그를 통해 영감도 많이 받을 것 같다. 좋아하는 뮤지션이나 배우, 아티스트가 있다면?내 친구이자 밴드 뮤지션인 피터 라비어(Peter Labier)와 소설가 니콜 크라우스(Nicole Krauss)를 좋아한다. 특히 단편 소설을 매우 좋아해 짬이 날 때마다 읽는 편이다. EG 사실 당신 같은 부류의 화가에 대한 평은 극과 극일수도 있다. ‘새롭다. 기발하다. 창의적이다’라는 반응과 ‘못생겼다. 기괴하다. 비현대적이다’라는 반응. 솔직히 가장 신경쓰였던 평가는 무엇인가?사실 비평가들의 평가로 인해서 심한 상처를 받아 본 적은 없다. 하지만 무심코 블로그를 둘러보다가 필자가 밝혀져 있지 않은 평을 보고 놀란 적은 있었다. 평가라는 건 평가를 해 주는 사람이 최소한 나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고 비평을 해 줄 만큼의 시각을 갖췄을 때, 그리고 내가 평가자가 누군지 아는 상태에서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G 과감한 붓터치와 두꺼운 페인팅 방식은 당신을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대담한 화가처럼 느껴지게 한다. 실제로는 어떤가. 둘 다인 것 같다. 나는 내 자신에게 비판적이기도 하고 또 남들의 평가로부터 자유를 추구하기도 하니까. 작업을 할 때만큼은 때로 강박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신선한 자극과 모험을 즐기기도 한다. 무엇보다 늘 새로운 것에 대해서 오픈 마인드이기도 하고.EG 당신은 한 순간에 뉴욕 미술계의 스타로 떠올랐고, 모마(MOMA)와 같은 대형 미술관들이 당신의 그림을 구입했으며, 수집가들 사이에서 그림 한 점이 수만 달러에 거래되기도 한다. 자신의 작품이 상업화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없나. 상업화에 대한 거부감은 없다. 다만 두 가지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점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내 그림을 볼 수 있다는 것. 나쁜 점은,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내 그림이 ‘이야깃거리’가 된다는 것. 이를테면 이런 거다. 많은 사람들이 ‘예술시장(Art Market)’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아주 쉽지만 ‘진정한 예술(Art)’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는 것. EG 때로 정해진 사각 프레임의 캔버스가 답답하게 느껴질 때는 없나. 조각이나 영상, 사진 같은 예술 분야에 도전해보고 싶진 않은지. 난 사각 프레임 캔버스가 좋다. 그럼에도 만약 다른 영역에 도전한다면 조각을 해보고 싶다.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언젠가 조각을 해본 적이 있다. 그런데 내가 화가이다 보니 조각에는 ‘뒷면’도 있다는 걸 깜박하고 나도 모르게 앞면만 조각을 한 거다. 난 어쩔 수 없이 화가인가 보다(웃음).EG 그림을 그린다는 건 상당히 외로운 일인 것 같다. 오랜 시간 캔버스 앞에 혼자 앉아있어야 하고,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그림을 그리다보면 문득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도 있을 거고. 단 한 번도 아티스트로서의 내가 외롭게 느껴진 적은 없다. 바쁜 생활에 시달리는 많은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애쓰는데,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내가 사랑하는 그림을 그리며 혼자 보낼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캔버스 앞에 혼자 앉아 있는 것은, 내게 가장 외롭지 않은 일인 것 같다. EG 아티스트로서 당신이 궁극적으로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나는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없어서는 안 될 것들을 만들고 싶다. 우리 삶에 꼭 있어야만 하는 것들 말이다. EG 한국의 독자들 중에도 저마다의 개성과 독특한 매력으로 아티스트를 꿈꾸는 소녀들이 많다.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한 마디가 있다면?꼭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해야만 한다. 그래야 무엇보다 자신이 행복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사회적 성공도 꿈꿀 수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미래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활짝 열려 있을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엘르걸 본지 3월호를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