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 오트 쿠튀르 컬렉션은 매 시즌, 쇼장인 그랑 팔레를 이번엔 과연 어떤 테마로, 어떤 모습으로 탈바꿈시켜 놓을 것인지, 또 어떤 서프라이즈를 안겨줄지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킨다. 스펙터클한 쇼 스케일이나 기상천외한 테마로 진짜 쇼다운 쇼, 진짜 패션다운 패션을 보여주기에 오트 쿠튀르 쇼 중에서도 전 세계적인 이목이 집중되는 게 사실. 몇 년 전부터 여기에 한 가지 더 강력한 서프라이즈 요소가 더해졌다. 샤넬 오트 쿠튀르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강력한 포스를 지닌 존재는 바로 쇼에 초대된 특급 게스트 지드래곤이 그 주인공! 샤넬 쇼장으로 그를 태운 밴이 들어서고 그가 그랑 팔레 앞에 발을 내딛는 순간, 터져나오는 “GD! GD!”라고 외치는 포토그래퍼들과 팬들의 함성소리와 플래시 터지는 소리의 데시벨은 시즌을 거듭할수록 높아지고 있음을 이번 시즌에도 입증했다. 기네스 팰트로, 다이앤 크루거, 카라 델레바인 등 세계적인 여배우들이 도착했을 때 쏟아지는 플래시 세례보다 더욱 뜨겁고 요란했으니, 이번 샤넬 2016 S/S 오트 쿠튀르에서 그를 향한 환호성의 데시벨은 어쩌면 그 정점을 찍은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 하지만 당황한 기색은 아주 잠시. 이내 뚜렷한 존재감을 과시하며 포토 월에 당당히 들어섰다. 때때로 나무 판 모양의 쇼 인비테이션을 들고 장난스러운 미소를 던지거나 빨아들일 듯 응시하는 눈빛에선 특급 K스타다운 면모가 묻어났다. 포토 월을 지나 객석으로 들어설 땐 런웨이 못지않은 스웨그 넘치는 워킹으로 멋진 모멘트를 남겼고, 이 모습은 SNS로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사실 그가 쇼장에 도착하기 전까지 그랑 팔레의 쇼장 분위기는 온통 풀 내음 가득한 잔디가 펼쳐져 마치 북유럽이나 일본의 고요한 정원에 들어섰을 때의 차분한 분위기가 쇼장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처럼 차분하고 고요한 분위기는 크게 두 번에 걸쳐 깨졌는데, 그중 하나는 카라 델레바인이 그녀의 천방지축 애견인 울프독과 함께 들어섰을 때였고(강아지는 프런트로에 잠시 앉았다가 카라 델레바인의 가드에 안겨 쇼 시작 전에 쫓겨났다. 아무래도 잔디로 뛰어들어갈 기세였던 듯), 다른 한 번은 빅뱅 지드래곤이 포토 월을 지나 객석 통로 쪽으로 들어서서 포토그래퍼들에 둘러싸여 걸어올 때였다. 삐딱한 듯 스웨그 넘치는 걸음걸이로 그가 들어서자 객석에 감돌던 우아하고도 차분하던 정적이 이내 깨지더니, 어느새 그의 워킹을 바라보는 이들도 그루브를 타야 할 것 같은 분위기가 되기도 했다.
애견인 울프독과 함께 쇼장에 나타나 등장부터 요란했던 카라 델레바인.
1 <엘르> 코리아 3월호 커버를 장식한 프랑스 여배우 멜라니 로랑. 2, 3 다이앤 크루거와 오랜만에 오트 쿠튀르 쇼장을 찾은 기네스 팰트로. 4 씩씩하고 쿨하게 등장한 프렌치 시크의 아이콘 캐롤라인 드 메그레.
지난 시즌 샤넬 오트 쿠튀르 컬렉션에선 크리스틴 스튜어트와 줄리앤 무어와 함께 무대 위에서 카지노를 즐기는 모습으로 역대급 인맥을 과시했던 지드래곤. 이번 샤넬 오트 쿠튀르에선 다이앤 크루거, 카라 델레바인, 기네스 팰트로, 모니카 벨루치 그리고 이번 <엘르> 3월호 커버를 장식한 멜라니 로랑 등 세계적인 셀러브리티들과 함께 쇼에 참석해 특유의 포스로 쇼를 빛냈다. 그가 프런트로에 착석한 후, 모델 밥티스트 지아비코니가 리모컨으로 오픈 버튼을 누르자 중앙에 있는 아름다운 오두막의 문이 열리면서 쇼가 시작됐다. 그 안에서 시뇽(Chinons) 스타일의 헤어와 투 톤 코르크 슈즈를 신은 모델들이 걸어나와 녹음이 가득한 공간을 느릿한 걸음으로 산책하듯 거니는 런웨이 룩들을 지드래곤은 하나도 놓치지 않고 따라가고 있었다. 그 시선은 사뭇 패션 에디터의 날카로움을 닮기도 했고, 때로는 감탄 어린 표정이 묻어나 있어, 샤넬 오트 쿠튀르를 향한 팬의 시선이 교차하기도 했다. 한 해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패션을 향한 열정을 표하기도 했다. “만약 디자이너가 된다면, 새로운 컬처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덧붙여 패션과 뮤직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기도 했다. “예전엔 음악과 패션, 아트 세 가지를 분리해서 생각했는데, 요즘은 뮤지션이 아티스트와 함께 혹은 패션이 아티스트와 함께 이 세 가지가 서로 통하고 있어요. 이런 움직임은 앞으로 더 활발하게 일어날 거예요. 개인적으론 이런 방식으로 음악과 패션, 아트 세 가지를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게 정말 즐거워요.” 쇼가 끝난 후에는 칼 라거펠트와 만나 기념 촬영을 하며, 쇼가 얼마나 멋졌는지에 대한 그의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칼 라거펠트와 조우한 후, 무대 뒤로 그의 절친을 찾아가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절친은 바로 칼 라거펠트의 페이보릿 톱 모델이자 세계적인 모델 수주! 런웨이에서 우아한 파스텔컬러 드레스를 입고 차분한 워킹을 마친 그녀는 지그래곤을 보자마자 원래의 톰보이 모습으로 돌변, 마치 소년소녀가 어릴 적 친구를 만나듯 우정 어린 빅 허그를 나누고, 장난스러운 셀피를 찍기도 했다. 오버사이즈 모자를 시원하게 벗고 맘껏 웃으며 장난치는 무대 뒤의 빅뱅 지드래곤. 패션에 비유한다면 그에게는 분명 오트 쿠튀르다운, 하이패션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포스와 에너지가 느껴진다. 패션의 하이엔드 신을 자신의 스타일대로 맘껏 즐기고 만끽하는 K스타의 위용. 세계가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랑 팔레에 들어선 젠 스타일의 정원과 노르딕 양식의 오두막.
소라 같은 시뇽 스타일의 헤어스타일에 꿀벌 모양의 이어링, 꽃잎이 섬세하게 장식된 드레스를 입은 모델들.
피팅 중인 모델 지지 하디드와 에디 캠벨.
대세 모델 지지 하디드와 비주를 나누는 칼 라거펠트.
튤 위에 장식된 곤충 모티프들.
쇼 전날 하나하나 룩의 피팅을 직접 점검하는 칼 라거펠트.
빅뱅 지드래곤이 기네스 팰트로, 다이앤 크루거, 카라 델레바인 등과 함께 지켜본 샤넬 오트 쿠튀르 S/S 컬렉션의 전반적인 무드는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쇼 시작 전부터 쇼장의 가드들은 참석한 게스트들이 행여나 힐로 밟아 흠집이라도 낼까, 공들여 가꿔놓은 잔디를 보호하느라 무던히도 애를 썼다. 이렇게 잘 가꿔진 정원의 오두막에서 칼 라거펠트는 자연의 정수를 끌어다 모은 쿠튀르 컬렉션을 펼쳐 보였다. 모델들은 느릿한 걸음으로 산책하듯 나무 패널 위를 거닐었고 덕분에 블라우스와 스커트, 드레스 등 그 위에 사용된 극도로 가벼운 느낌의 소재를 천천히 감상할 수 있었다. 기본적인 컬러 베이스는 베이지에서 출발. “가브리엘 샤넬은 베이지의 여왕이었죠.” 에크뤼(표백하지 않은 천연 베이지 컬러), 아이보리, 샌드, 도브, 회갈색 베이지인 토프에서 모카 컬러에 이르기까지, 이번 컬렉션에는 베이지 팔레트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볼 수 있다. 이런 팔레트의 드레스와 주얼리 위에는 나무 파편과 부스러기들로 수놓은 자수 장식을 더했는가 하면 튤 위에 혹은 코스튬 주얼리 위에 벌이 앉아 있기도 했다. 또 하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모델들이 허리에 착용한 스마트폰 파우치. 조만간 지드래곤의 일상 패션 속에서 곧 만나게 될 거라는 예감이 드는, 이 파우치 위에도 장인들의 정성이 고스란히 묻어나 있었다. “이번 컬렉션의 시작은 실루엣이었습니다.” 칼 라거펠트는 덧붙여 설명했다. 그는 뒤집어진 형체로 이런저런 실험을 하다가 타원형 소매가 달린 쇼트 트위드 재킷 그리고 여기에 함께 매치할 수 있는 롱스커트, 풀 스커트, 플레어드 퀼로트 등을 탄생시켰다. 또 룩을 환상적으로 표현해 주는 시폰 소재는 정교한 작업을 통해 ‘드럼(Drum)’, ‘공작새(Peacock)’, ‘1월(January)’라는 이름의 플리츠로 다시 태어났다. 이브닝 웨어로는 스트랩리스 드레스, 트레인이 달린 팬츠, 라인 스톤으로 장식한 망토, 와이드컷 볼레로, 자수 장식이 달린 재킷 등을 선보였고, 특히 백리스 디자인이나 데콜테 디자인의 새틴 샤무즈 드레스는 흐르는 듯한 라인으로 여체의 우아한 곡선과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표현해 내려는 그의 노력이 여실히 드러났다. 창조주가 자연을 만들었다면, 칼 라거펠트는 패션 속에 자연의 경이로움을 입히는, 자연의 재창조를 이뤄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