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을 타고 날아간 한옥 호텔 '고이'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주인과 손을 아울러 이르는 말, 주객. 주객이 있는 서울 한옥 호텔 '고이'를 찾았더니 앞으로도 여전히 '서울 사람의 서울 집'으로 남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생겼다.::고이,한옥,호텔,한옥호텔,북촌,데코,엘르데코,엘르,elle.co.kr:: | 고이,한옥,호텔,한옥호텔,북촌

종로구 가회동 북촌로 11길 끄트머리, 한옥 게스트하우스 고이가 있다. 시끌시끌한 관광객들 사이에서 조용하지만 단단한 모습으로 우뚝 서 있다.여섯 평 남짓한 고이는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툇마루가 나온다.소품들이 놓인 모양새마저 모던하다. 하루 편히 묵었다 갈 수 있도록 불필요한 물건들은 최대한 자제했다."옛날 사람들이 지금까지 쭉 살았더라면 어떤 집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었을까요. 1500년대 사람이 2015년에 산다면 말이에요."그래픽 디자인그룹 포스트포에틱스의 손에서 탄생한 고이의 폰트.게스트들의 편리함을 배려한 현대식 도구들을 곳곳에 배치했지만, 한옥의 의미를 되살려 가구와 시설의 키를 한 단계 낮췄다.욕실 내부는 화이트 컬러로 통일해 모던한 느낌을 강조했다.침실에는 침대를 없애는 대신 요와 이불을 깔아 좌식 구조를 택했다.GOI고이“옛날 사람들이 지금까지 쭉 살았더라면 어떤 집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었을까요. 1500년대 사람이 2015년에 산다면 말이에요.” 집주인 정진아 대표가 한옥 레지던스 고이를 오픈하게 된 흥미로운 사연이다. 종로구 가회동 북촌로 11길, 한국인들에게는 그냥 ‘북촌’이지만 외국인들에게는 관광 특구 ‘북촌 한옥마을’로 유명한 이 지역은 한옥 게스트하우스들이 유난히 많은 동네다. 안국역에서 내려 가회로를 따라 걷다 보면 북촌 11길이라는 푯말이 보이고, 이내 시끌벅적한 관광객의 인파 속에서 유난히 좁고 비밀스러운 골목 하나가 호기심을 잔뜩 유발한다. 길을 좇아 끝까지 정성스럽게 올라가다 보면 등장하는 정성스러운 집, 고이다. 여섯 평 남짓한 작은 한옥집이 얼마나 정성스럽게 생겼는지, 이름도 집도 꼭 그렇다. 고이의 운영은 간단하다. 1인 혹은 2인까지 묵을 수 있으며, 집 한 채를 내어주는 것. 게스트가 집에 도착하면 비밀번호를 누르고 스스로 문을 열고 들어가는 무인 시스템이다. 문을 여니 두어 발자국 겨우 옮길 수 있는 작은 마당과 아늑한 툇마루가 보인다. 신을 벗고 들어가면 바로 부엌이고, 오른쪽으로 거실, 그 옆은 침실이다. 집은 작아도 있을 건 다 있다. 거실, 침실, 부엌, 화장실, 앞마당, 뒷마당까지 물론 모두 합해 여섯 평이다. 10년도 더 된 이 작은 공간이 이토록 젊고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이는 조형 예술을 전공한 정진아 대표가 총 디렉팅을, 그래픽 디자인그룹 포스트포에틱스(Postpoetics)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인테리어 스튜디오 그라브(Grave)에서 공간 디자인을 담당한, 그야말로 각 분야 예술가들의 협업으로 완성된 공간 포트폴리오다. 기존의 한옥이 품고 있던 집 구조와 창 모양, 온돌 같은 전통적 요소 위에 ‘모던’이라는 두 글자를 입혀 고이만의 현대판 한옥이 탄생했다. 모든 것들이 느리게, 천천히, 낮게 가던 그 시절을 생각해 내부 가구와 시설의 시선을 한 단계 낮췄다. 테이블도 낮고, 소파도 낮다. 침실에서도 침대가 아닌 두툼한 요와 이불을 깔아 한옥의 특성인 좌식 구조를 택했다. 소품 하나도 그냥 놓지 않았다. 공예가와 디자이너들의 제품들을 곳곳에 비치해 한국 예술을 일상으로 가져왔다. 게스트들은 일부러 노력하지 않으면 경험해 볼 수 없는 것들을 고이에 묵으면서 자연스럽게 체험할 수 있다. 특히 정소영의 식기장 그릇이나 담양 대나무 젓가락, 도예가 권나리의 화병, 디자이너 최정유의 물병, 공주상회 무명광목과 아씨방 천연 목화솜 소재 침구 등은 정진아 대표가 정성껏 고른 제품들이라 더 애착이 간다고. 어쩌면 고이는 단순한 게스트하우스가 아닐지도 모른다. 작게는 집으로, 넓게는 옛날부터 지켜온 것들을 지금 사람들에게 이어주는 일을 하거나, 옛것의 가치를 지금 시대의 가치로 바꿔 서로 교감하게끔 하는 타임머신 같은 공간일 수도 있다. 어떤 의미로든 고이가 지금 모습 그대로 10년, 20년 뒤에 또 다른 과거, 또 다른 미래와 정성스러운 마음을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여전히 ‘서울 사람의 서울 집’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