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음, 자신감에 살고 죽다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오뚝이 같고 잡초 같은 제 기질은 그냥 태생 같아요." 배우 황정음이 똑 소리 나는 여자가 된 이유는 근원으로부터 차오른 자신감 덕분이다.::황정음,그녀는예뻤다,프라하,여배우,엘르,엘르걸,elle.co.kr:: | 황정음,그녀는예뻤다,프라하,여배우,엘르

“어릴 때 꿈은 아나운서, 미스코리아였어요. 웃기죠? 저는 지금이 더 좋아요. 그런데 연기 말고 무슨 일을 선택했든 잘했을 것 같아요. 과일 장사나 붕어빵 장사를 해도 나는 성공했을 거야!” 한남동의 한 디저트 카페에서 황정음이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밉게 들릴 수도 있는 말이 전혀 밉게 들리지 않는다. <엘르> 프라하 화보 촬영에 이어 이탈리아 여행을 즐기고 돌아온 그녀는 <그녀는 예뻤다>의 ‘혜진이’를 행복한 표정으로 추억했다. 그리고 솔직 발랄한 화술과 똑 부러진 말투로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오뚝이 정신’에 대해 설명했다. 철부지 막내딸, 아이돌 출신의 서투른 연기자에서 정극과 코미디를 넘나드는 ‘믿고 보는 배우’로 성장한 서른두 살 황정음. 내면 깊은 곳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는 자신감과 그 마법 같은 효력이 놀랍고 신기한 건 누구보다도 그녀 자신이었다. 연기라는 고된 작업, 그것이 돌려주는 무엇과도 비교 못할 성취감에 고취돼 있는 그녀에게 사랑과 결혼도 당분간 (최고) 우선순위는 아니다. 프라하부터 피렌체까지 보름 남짓 떠났다가 돌아왔어요. 여행은 즐거웠나요 그럼요, 작품 끝나면 나한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여행이에요. 프라하는 오래된 도시의 풍경 그 자체로 좋았어요. 프라하 성 언덕에서 바라본 야경이 정말 멋졌어요. 이탈리아에서는 걸어 다니는 사람을 구경하는 게 재미있더라고요. 특히 베니스 남자들은 청소부도 멋있더라는! 알아보는 팬들도 많았다고요 프라하에서도 호텔 앞까지 찾아온 현지 팬들이 있어서 놀랐어요. 이탈리아에서는 외국인이 <그녀는 예뻤다> 포스터 사진을 내밀면서 “너 얘야?”라고 묻더라고요. 함께 사진도 찍었어요. 원래는 잘 안 찍거든요. 그런데 서른둘이 되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그분들도 큰맘 먹고 다가와서 말하는 걸 테니 가능하면 응해드리는 걸로. 또 이상하게 내가 들어간 식당마다 한국 사람이 많은 거예요(웃음). 옆에 앉은 아줌마들이랑 수다 떨면서 밥 먹고 그랬어요.  혜진이를 깡그리 잊어버린 건 아니죠 혜진이는 정말 사랑스러웠죠. 이런 캐릭터는 당분간 못 만날 것 같아요. 전작인 <킬미 힐미>도 너무 좋은 작품이었지만, 그건 누가 봐도 지성 오빠 작품이었거든요. 때론 작품을 위해 내 연기를 조절해야 한다는 게 스트레스였어요. <그녀는 예뻤다>는 내가 주인공이어서가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게 많아서 좋았어요. 그동안 코믹한 역할은 피해왔는데, <거침없이 하이킥> 때 함께 했던 조성희 작가님 작품이란 걸 알고는 믿음이 생겼어요. 소풍 가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촬영은 엄청 힘들었죠(웃음).  앞으로 여배우들이 ‘못생긴’ 분장을 하려면 더욱 고민될 것 같아요. 혜진이가 그 기준을 너무 높여놔서 정말 원 없이 망가졌어요. 나처럼 망가질 수 있은 사람이 또 있을까 궁금하기도 해요. 저는 센 거, 버라이어티한 게 좋아요. 멜로를 하든 코믹을 하든, 기준에서 좀 벗어난 게 좋아요. 남들이랑 똑같은 건 하기 싫어요.  어중간한 걸 싫어하나 봐요. 평소 다른 것들에 대한 취향도 그런가요 아뇨, 옷은 평범하게 입어요. 너무 튀는 행동도 좋아하지 않아요. 사람들은 내가 사차원일 거라고 생각하는데, 전혀 아니에요. 그렇지(매니저를 향해서 동의를 구하며)? 지극히 정상적이에요. 되게 현실적이고. 출연하는 드라마마다 대중의 반응이 좋아요. 이번에도 ‘촉’이 왔는지 이 정도로 잘될 줄은 몰랐어요. 늘 작품 들어가기 전에 ‘내 거’는 잘될 거라고 생각하긴 해요. 안 되면 어쩔 수 없고요. 내가 열심히 하고, 얻어갈 수 있는 거만 얻어가면 되는 거죠. 평생 해야 하는 직업인데 “이번에 망하면 절대 안 돼” 그럴 순 없잖아요.  <그녀는 예뻤다> 덕분에 제 직업이 좀 ‘핫’해졌어요. 피처 에디터라고 소개하면 이제 사람들이 “아, 김신혁 같은?”이라고 물어봐요 그게 드라마의 힘이죠. 저도 또 한 번 느꼈어요.  배우들간의 어울림도 좋았던 것 같아요 다들 사이 좋고 현장 분위기도 재미있었어요. 애들이 참 착해요. 연기할 때도 자기 욕심 안 부리고. 준희는 4년 만에 다시 작품으로 만났는데 여러모로 많이 성장했더라고요. 시원이는 너무 러블리하고, 서준이는 연기 욕심이 남다른 친구인데도 저한테 많이 얘기하고 의지하니까, 다 챙겨줄 수밖에 없었어요. 언니 역할 하느라 더 바빴죠. 개인적으로 정음 씨가 새롭게 보인 작품은 <내 마음이 들리니>예요. 거기서 진짜 똑같은 옷만 주야장천 입고 나왔잖아요. 다른 드라마에서는 가난한 여주인공도 매일 옷이랑 가방이 달라지는데 제가 그렇게 하겠다고 고집했어요. 일단 작품에 들어가면 전 제 생각대로 해요. 때론 감독님 말도 살짝 흘려 들어요. 내 캐릭터에 대해서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거든요. 사전에 완벽히 준비하고, 현장에서 상황과 상대방 연기에 따라 더하거나 빼기, 그게 제 스타일이에요. 몇 년 간 어떤 여배우들보다도 열심히, 계속, 작품을 해 왔어요 하지원 언니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이 예전부터 있었어요. 쉬지 않고 작품을 하는.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그렇게 하고 있더라고요. 어떤 배우들은 힘들거나 자기가 못하는 건 안 하려고 하는데, 저는 정반대예요. 내가 못하는 걸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내 연기 스펙트럼이 넓어질 테니까. 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아요. 지나간 건 지나간 거고, 다음에 잘하면 되니까. 되게 긍정적이에요. 그리고 운을 좀 타고난 것 같아요. 시험을 봐도 늘 공부한 것보다 잘 나오고, 주차장에 들어갈 때도 “분명히 내 자리는 있어”라고 하면 진짜 자리가 나요. 정말로? 5~6년 전쯤 배우로서 계획했던 대로 다 이루어졌어요. 저도 신기해요. 목표를 세우면 바로 ‘행동’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다른 친구들은 작품 하나 결정할 때 ‘이럴 것 같다, 저럴 것 같다’ 생각이 너무 많은데, 그렇게 몇 년 지나면 나랑 차이가 확 나더라고요. 머리 써봤자 사람 생각이 다 비슷비슷하잖아요. 지혜로운 사람도 솔직한 사람은 못 당하는 것 같더라고요. 저는 그렇게 똑똑한 사람은 아니지만, 단순하게 생각하고 열심히 살다 보니 지금까지 왔어요. 어릴 때 무용을 해서 체력이 좋고 악바리 근성도 좀 있고요. 성격과 노력과 운이 합쳐졌다고 할까? 저는 황정음이란 사람에 대해 엄청 만족스러워요(웃음). 엄청난 긍정 에너지! 마냥 힘들어하고 걱정한다고 해서 그 일이 해결되진 않잖아요. 그리고 이 세상에 안 힘든 사람이 어디 있냐고요. 이렇게 말하면서도 다음 작품 할 때 “힘들어 죽겠어” 그럴 거예요. 그런데 그 시간이 지나면, 내가 훌쩍 성장한다는 것도 알거든요. <그녀는 예뻤다> 촬영하면서도 짜증 많이 냈어요. 잠을 못 자니까 새벽에 너무 졸리고 피곤해서. 그럴 때면 짜증 한 번 팍 내고 다시 가는 거죠. 억지로 참거나 스트레스받지 않고. 사람들이 보는 눈을 크게 의식 안 해요. 욕하든 말든 알게 뭐야? 잠깐 소심해졌다가 내가 할 것 찾아서 해요. 절망과 우울함에 빠져 바닥을 헤매던 때가 정말 없었나요 굳이 꼽자면 슈가 활동 때? 그때는 제가 너무 어려서 그랬죠. 뭐든지 내가 1등이고 이 세상에서 최고인 줄 알고 살다가, 그게 깨진 거죠. 막연히 생각했던 연예인의 삶이랑 너무 다른 거예요. ‘맙소사’였죠. 그런데 돌아보면, 가수를 하면서 시행착오를 겪고 많이 깨졌던 게, 지금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진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니까요! 일도 없고 존재감도 없던 때도 있었죠. 그런데 겉으로는 그런 상황에서도, 여기(손으로 가슴을 가리키며) 아주 깊숙한 곳에는 설명 못할 자신감이 있어요. 그래서 바닥을 쳤다가도 다시 살아나요.  곱게 자란 막내딸에게 어떻게 그런 근성이 생긴 걸까요 오뚝이 같고 잡초 같은 제 기질은 그냥 태생 같아요. 엄마가 우리 집에 돌연변이가 태어났다고 했어요. 저희 가족은 다 좀 무르거든요. 전 남한테 피해 안 주는 선에서 제가 챙길 건 확실히 챙겨요. 친구들이랑 밥 먹을 때도 꼭 더치페이해요. 하하. 평소에도 10원, 20원 되게 아껴요. 회사 물건도 누가 막 쓰면 뭐라고 해요. 그런데 큰돈 쓸 때는 거침없이 써요. 제가 돈 쓰는 대상은 딱 정해져 있어요. 엄마, 아빠 그리고 우리 스태프들.  현재의 내가 만족스럽다면 더 바랄 것도 없겠어요 아니요, 욕심은 끝이 없죠. 남들은 작품이 잘된다고 엄청 부러워하지만 전 아니에요. 전용기도 타고 싶고, 중국 공주도 되고 싶고(웃음). 정말로 톱스타가 되고 싶은 건 아니에요. 대중에게 친근한 배우로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할 수 있으면 돼요. 그래도 연기로는 박수를 받아야죠. 내가 행복해지려면 연기를 계속하되, 잘해야 하는 거죠. 그런데 연기는 하면 할수록 어려운 거니까, 그래서 힘들면서도 재미있는 거고. 신기하죠? 그래서 지금 갖고 있는 목표는 뭐예요 앞으로도 마흔까지는 쉬지 않고 일할 거예요. 그 전에 결혼은 해야겠죠. 아이도 낳고. 모든 건 다 시기가 있으니까, 물 흘러가듯이. 그러나 얼마를 벌었든 무슨 상을 타든 상관없이 계속 일할 거예요. 마흔 살 이후의 계획은 아직 안 정했어요. 물론 그 이후에도 3년에 한 번이든, 5년에 한 번이든 연기는 평생 할 거고요. 집에서 편안히 남편이 가져다주는 돈 쓰면서 사는 것보다, 힘들어도 내 일 열심히 하면서 살고 싶어요. 내 자신의 한계를 딱 정해버리는 것보다는,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인지 보고 싶어요. 사랑이나 결혼보다 일이 더 중요하다는 뜻인가요 사랑도 물론 중요하죠. 인생 최고의 행복이 사랑이라고 저도 생각해요. 그런데 그걸 넘어서는 게 자기 일을 통한 성취감이더라고요. 칭찬받았을 때 사람이 어떻게 변하는지 제가 바로 경험했어요. 속 좁고 여유 없던 사람인데, 칭찬을 받으니까 마음이 넉넉해지더라고요. <비밀>을 찍고 나서 그 점을 크게 느꼈어요. 오늘 잘난 척을 많이 했지만, 사실 스스로에 대해 굉장히 겸손해요. 연기에 대한 목마름이 컸어요. 계속 “난 모자라, 모자라”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더 발전할 수 있고,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약간 우쭐한 상태인데, 그래도 판단력은 있어요(웃음). 언제쯤 혜진이가 아닌 다른 모습으로 만날 수 있을까요 빨리 다시 연기하고 싶어요. 어제 <내부자들>을 보고 나니 너무 영화가 하고 싶은 거예요. 예전에는 저렇게 큰 화면에 내가 나오면 창피할 것 같았는데, 이제는 몇 신만 나오더라도 임팩트 있는 역할이면 하고 싶어요. 그런데 저는 드라마가 더 좋아요. 제일 하고 싶은 건 주말 가족 드라마예요. 저는 생활 연기자가 되고 싶거든요. 선배님들이랑 수다 떨고 맛있는 거 먹고, 그렇게 즐기면서 하고 싶어요. 사실 지금 미니 시리즈는 즐기지 못하거든요. 내가 사랑하는 연기를 더 즐기면서 하고 싶은 게 꿈이에요. 서른다섯 살쯤 할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