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은진, 라마야 기다려 | 엘르코리아 (ELLE KOREA)

펫과 나의 이야기, 그 첫 번째는 영화감독 방은진의 영원한 지기이며 자식이자 식구인 만 14세 라마에 대하여.::펫,나, 영화감독,방은진,자식,식구,라마,강아지,개,반려견,엘르, 엘르걸, elle.co.kr:: | 펫,나,영화감독,방은진,자식

나의 오랜 지기이며 자식이자 식구인 라마는 만 14세 생일을 병원에서 보냈다. 간호사 누나들의 배려로 생일 케이크도 받은 라마의 불 꺼진 병실 안에서 영롱하게 빛나던 14개의 촛불. 나는 웃으며 노래도 불러주었지만, 라마는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워낙 노령에 3년 전부터 호르몬 계통의 약으로 생을 유지하던 라마에게 췌장염과 장염, 복수가 들어찬 것이었다. 치명적이었다. 고개조차 가누지 못하는 라마는 내가 가면 어떻게든 일어나서 무조건 밖으로 나가려 애썼다. 산책할 겸 안고 밖으로 나가면 자동차를 보고 낑낑거리던 라마. 그것만으로도 모자라 대기실 한가운데를 몇 바퀴씩 걷는 라마가 바라는 게 무엇인지는 확연했다. 라마는 집에 가고 싶어 했다. 다음 날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15년간 라마를 돌봐준 원장님도 이번에는 가망이 없다는 조심스런 이야기와 더불어 퇴원을 권유했다. 빨리 라마를 데리고 가 마지막 시간을 함께하라고. 아, 이제 정말 그 시간이 왔구나. 나도 너도 이렇게 세월이라는 짐을 부리며 강을 건너고 산을 넘으며 이쯤에서 너와 나는 다른 길로 들어서겠구나. 나는 수시로 흐느끼며 라마 곁을 떠나지 않는 일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러나 3~4일을 넘기지 못하리라는 병원의 예상을 뛰어넘어 라마는 2주 뒤 췌장염을 반 이상 극복해 냈다.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기적 같은 일이었다. 그렇게 라마는 퇴원해 그토록 다시 오고 싶어 하던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여전히 아니 오히려 나를 지켜주고 있다. 생후 4개월 때 내게로 와 슬플 땐 고요히 옆에 앉아 있고 기쁠 땐 마치 웃는 얼굴처럼 나를 바라봐 준 라마. 힌두의 대서사시 ‘라마야나’에서 따와 이름 지은 라마는 이름답게 천방지축이기 마련인 성장기를 빼고는 대부분 배려가 뛰어났고 기품이 있었다. 나는 종종 이를 품격이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아마도 라마는 품격 있는 라마답게 끝까지 내 곁에 있다가 떠날 것이다. 나 또한 그럴 것이며. She is 영화 <집으로 가는 길>, <오로라 공주> 등을 연출한 방은진 영화감독이 출간한 책 <라마야 기다려>의 주인공이기도 한 라마와 기적처럼 15년째 함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