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의 패션 공포 증상 | 엘르코리아 (ELLE KOREA)

매장 점원이 당신의 심장을 위협하고 당신의 옷장을 전신 마비시킨다. 이런 경험이 있다면 패션 공포증을 의심해 봐야 한다. 당신이 겪는 일상 속의 패션 공포 증상에 패션 테라피스트 아가 박사(Dr. Aga)가 처방전을 내렸다. 처방전에 따라 치료에 힘써 볼 것. :: 공포증,거부감,패션,테라피,엘르,엣진,elle.co.kr :: | :: 공포증,거부감,패션,테라피,엘르

당신은 패션 공포증인가? 독자에겐좀 어색한 질문일 수도 있겠지만 팔방미인 전문가인 아가 박사의 안테나가 이 문제가 감지했다면 이건 하나의 사회현상이 됐다는 신호다. 점점 많은 여성들이 패션을 두려워하고 있다. 마치 거미를 무서워하듯 말이다. 원인에는 여기에 나열하기에도 다소 구차한 사회, 역사, 경제적 요인들이 있겠지만 간단히 정리해보면 이렇다. 우선, 선택의 폭이 너무 넓어졌다. 가격대도 천차만별이고 패션의 절대 원칙도 사라졌다. 예전에는 프린트 스타킹을 신으면 따가운 눈총감이 됐지만 지금은 ‘스타일리시’라는 단어와 함께 길거리를 누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을 하세요. 하지만 스타일 있게!’ 바로 이것이 두려운 현실이다. 너무 많은 자유는 사람들을 미치게 한다. 그래서 다양한 형태의 곤란한 증상들이 당신을 괴롭히는 것이다. 증상간만에 폼나는 옷 한 벌 마련해보자는 마음으로 오랫동안 미뤄왔던 쇼핑을 하기로 했다. 평소 나름대로 스타일 좋다고 생각했던 매장 안으로 한 걸음 내딛는 순간, 어떤 젊은 여성이 상냥한 말투로 당신을 향해 달려온다. 들떴던 기분은 잠시, 그녀가 당신에게 가까워질수록 당신의 심장은 쿵쿵 요동친다. 매장 곳곳을 천천히 둘러볼 시간도 주지 않고 점원은 “어떤 아이템을 찾으세요?”라거나 “어떤 스타일을 보고 계세요?”라는 식의 다소 부담스러운 질문을 퍼붙는다. “그냥 한 번 보려고요.”라고 대답하고 싶지만 이후 쏟아질 점원의 따가운 시선이 신경 쓰여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진드기처럼 당신 옆에 찰싹 붙어 있는 점원의 친절함과 당신의 취향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오렌지 컬러 재킷과 올리브 컬러 셔츠를 입혀 보려는 그녀의 열정. “정말 잘 어울리네요” “날씬해 보이는데요?”라는 끝없는 그녀의 감탄. 당신은 그녀가 마구마구 추천하는 옷을 결국에는 다 살 수 없을 거란 생각에 당황하게 된다. ‘아, 이거 정말 잘 어울리는 거 같기도 하고...’라는 생각과 함께 패션에 관한 점원 의견을 당신도 모르게 인정하는 순간, 당신은 지갑을 열어 계획에도 없던 거액을 지불하게 된다. 쇼핑백을 두 손 가득 들고 매장을 나오는 당신의 머리 속에선 도난 방지 경보음 소리가 울려 퍼진다. ‘삐삐삐삐삐....’처방당신의 두려움에 당당히 맞서라. 두려움의 대항을 향해 당당히 걸어가 괴물과 부딪혀 당신의 운명을 개척하라. 점원은 당신의 적이 아니다. 사실, 패션에 있어서는 점원이 당신보다 경험이 더 많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당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점원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괴물이 될 수 도 있고, 반대로 당신의 든든한 쇼핑 조력자가 될 수 있다. 그러니 다음에 쇼핑할 기회가 생기면 매장에 들어가 이런 실험을 해보길 권한다. “내 예산이 150유로인데 무엇을 골라야 할지 잘 모르겠네요.” 이런 이성적인 당신의 의견에 선입견을 갖을 점원은 없다. 당신은 과도한 점원의 옷 세례로 부담스러워할 필요가 없고 점원의 도움으로 원하는 예산 안에서 원하는 옷을 구입할 확률이 높아지는 기분 좋은 경험을 하게 될것이다. 증상지금은 새벽 3시. 당신은 따끔거리는 심장의 고통으로 컴퓨터 앞에서 울며 앉아 있다. 처음으로 당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데도 말이다. 블랙 플랫 부츠. 이보다 더 심플하고 베이식한 아이템은 없다고 생각한 당신. 이 부츠를 사려면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동이 트기 전에 모든 걸 해결해야 하니 당신은 먼저 구글을 이용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이 판단은 곧 불행으로 이어진다. 56개의 전문 웹사이트, 3782개의 부츠 종류, 3만2800개를 넘나드는 리플들. 이 끔찍한 검색 결과로 편두통이 더해진다. 예전 카탈로그 시절에는 옷이 잘 보이지 않아서 구입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다. 첫눈에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넘겨버리면 끝이었다. 사지 않아야 할 이유가 늘 있었다. 하지만 요즘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클릭만 하면 360도 회전으로 아이템의 구석구석 디테일을 살펴볼 수 있다. 또 줌 기능으로 별로 신경 쓰이지도 않는 굽까지 다 볼 수 있다. 그래서 부츠 한 켤레를 살펴보는데 2분씩 걸린다. 여기에 3782배를 하면.... 이 사실만으로도 인터넷 쇼핑을 포기한 여자들이 있다.처방커튼 사이로 보이는 아침 햇살에 실망하며 아무런 성과 없이 볼까지 내려온 다크 서클과 함께 침대로 기어 들어가고 있는 당신. 몸을 돌려 다시 컴퓨터 앞으로 돌아가 당신을 패닉 상태에 빠뜨린 괴물을 응시해보자. 그리고 클릭 한 방에 그 괴물을 처부수자. 어떻게? 모니터 검색 맨 위에 올라온 38사이즈 블랙 부츠를 과감하게 질러보자. 아, 당신 사이즈가 38이 아니라고? 그런 건 상관없다. 인터넷 쇼핑을 성공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발이 아플지언정 당신은 결국 해내지 않았는가. 증상어느 출근길. 엘리베이터 문으로 비치는 당신의 모습을 보며 오늘의 의상을 점검하고 있을 때 문이 열린다. 조용한 엘리베이터 안. 별로 친하지 않은 옆 부서의 여성 동료가 당신을 아래위로 훑어보며 입가에 애매한 미소를 띄운다. 순간 어지러움증 동반한 이름 모를 고통이 당신을 공격한다. 당신이 패션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정말 자유 낙하하는 엘리베이터에 몸을 맡기고 싶을 심정일 것이고 보험회사 직원이라면 졸도하기 일보 직전, 깊은 심호흡으로 간신히 버텨낼 것이다. 엘리베이터에서 간신히 내린 후에도 끊임없이 오만 가지 생각들이 당신의 목을 죄여온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 가죽 레깅스는 안 된다는 걸 알아야 했는데 유행이 지나도 한참 지난 그레이 수트를 이번 시즌에 입을 생각을 했다니 정말 굴욕인 걸까, 매장 점원이 키 158cm라도 싸이하이 부츠를 신으면 다리가 길어 보일 거라고 했는데.’ 하루 종일 일은 손에 잡히지 않고 미팅 때 사람들을 만나면 자꾸 위축된다. 당신의 하루를 끔찍하게 망쳐놓은 동료의 시선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처방전한 가지 사실을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시점이 왔다. 당신은 누구를 위해 옷을 입는가? 친구나 동료의 마음에 들게 하려고? 이건 잘못된 생각이다. 여자는 언제 어디에서나 남자들의 마음에 들겠다는 생각으로 옷을 골라야 한다. 남자들에게 있어서 레깅스가 라텍스 소재냐 가죽 소재냐, 한 철 지난 수트냐 트렌디한 수트냐는 전혀 관심사항이 아니다. 그들의 뇌는 단 두 가지 판단만이 존재한다. ‘좋다 혹은 좋지 않다.’다. 그러니 동료 시선일랑 개의치 말고 마음가는 대로 옷을 입어도 된다. 당신의 패션 테라피스트로서 내가 그 동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바로 이거다. “너나 잘하세요!” 증상오늘 아침, 당신은 벌거벗은 채 옷장 앞에 서서 거부의 몸짓을 보였다. 옷장 문을 열 수가 없다. 옷장을 여는 순간 깊은 한숨과 함께 가시 돋친 듯한 짜증이 밀려올 것 같았다. 당신의 연인이 놀라 재촉한다. “서두르지 않고 뭐해? 빨리 출근해야지.” 하지만 당신은 옷장의 손잡이조차 잡을 수 없었다. 실망 가득한 목소리로 당신이 말한다. “안 돼. 난 이 안에 뭐가 들었는지 알고 있다고.” 그러자 그가 부드럽게 묻는다. “왜, 안에 아무것도 없어?” 당신은 몸서리친다. “그래, 바로 그거야. 아무것도 없다고! 아무것도! 나 정말 벌거숭이로 출근해야 할지도 몰라.” 그가 다시 말한다. “아무것도 없다니? 옷장 안에 트렁크 대여섯개는 거뜬히 채울 물건으로 가득 찼잖아!” 그가 비웃는다. 당신이 아무리 옷장 앞에서 발버둥쳐봤자 아무도 당신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동안 수많은 옷으로 옷장을 가득 채웠지만 더 이상 그것들은 당신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털썩. 당신은 바닥에 주저앉고 만다. 그러니까 패션 때문에 당신이 무너진 것이다.처방전옷장 공포증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점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바로 당신의 옷장과 친해지려는 노력이다. 천천히 옷장과 가까워지기 위해서 먼저 일주일간 매일매일 옷걸이와 신발장을 만져보자. 미친 짓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옷들을 매만지며 모두가 당신의 친구들이라고 생각한다. 1991년 이전에 태어난 옷들과는 헤어짐의 인사를 나누고 나머지들은 단순한 도식에 따라 다시 정리해볼 필요도 있다. ‘등에 걸치는 것, 엉덩이에 걸치는 것, 누울 때 입는 것’으로 가볍게 나누어 보자. 그리고 또 가장 중요한 것. 위기 타개용 옷 한 벌을 늘 가까이 두도록 하자. 오늘 아침처럼 예고 없는 마비 증상이 당신을 찾아올 때 아무 생각 없이 입을 수 있는 옷으로 준비하도록 한다. 꽤 괜찮은 레깅스나 블루 컬러 볼레로, 가죽 톱같은 것들이면 되겠다(하하하!).*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3월호를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