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벌일 축제 팡파레를 고대하며 | 엘르코리아 (ELLE KOREA)

‘라 페트(LA FETE)’라는 이름하에 자발적으로 모든 거을 준비해 2010 F/W 파리 패션위크 중 쇼룸을 여는 구원정&양근영의 ‘AWE’, 유환선&이명제의 ‘LOVE’, 지일근의 ‘SHADOW OF YOUR SMILE’. 3월6일, 그들이 파리에서 벌일 축제 팡파레를 고대하며. :: LOVE,AWE,The SHADOW OF YOUR SMILE,유환선,이명제,구원정,양근영,지일근,신선한,열정적인,정열적인,파리,LA FETE,엘르,엣진,elle.co.kr :: | :: LOVE,AWE,The SHADOW OF YOUR SMILE,유환선,이명제

햇살 좋던 일요일 오후. 오랜만에 밝게 뜬 해에 설레는 마음에 옷장을 뒤적였다. 하나, 둘, 셋 필요한 옷가지들을 챙기고, 볼록한 눈두덩에 아이라인을 그었다. 나가기 직전. ‘보일러는 껐지? 불들은?’ 마지막으로 섀도 오브 유어 스마일(디자이너 지일근의)의 모직 소재 트렌치코트의 허리를 조이고 커스텀 멜로우(디자이너 손형오가 이끄는)의 클러치백을 쥐어들었다. 그리고 쟈뎅 드 슈에뜨(디자이너 김재현의)의 펌프스에 발을 밀어넣고 현관문 문고리에 손을 얹었다. 간만의 가벼운 옷차림에 아이팟 플레이 리스트마저 바꾸어야 할 것 같았던 그날. 생각없이 길을 걷다 문득 머리부터 발끝까지 짚어보니 기분이 오묘했다. 조금 과장하자면, 아주 조금이나마 국위 선양자가 된 것 같은 당치도 않은 기분을 느꼈달까. 21세기의 10년이 지나간 지금, 한국 패션계는 분명 재기발랄한 젊은 디자이너들의 출현으로 많은 변화를 맞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확연히 세대 교체의 기운이 느껴지는 요즈음, 편집 숍 등지에서 마주쳤을 때 ‘이 브랜드는 무엇인지, 디자이너는 누구인지’ 궁금해지는 국내 디자이너 라벨이 늘어가고 있다는 건 확실히 좋은 징조다. 컬러부터 디테일, 테일러링까지 해외 라벨에 뒤지지 않는, 아니 때로는 앞서간다고 느껴지는 옷을 만드는 새로운 세대들. 이는 예견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근 20년간 한국 패션계는 물론 사회 자체가 엄청나게 변모했고, 몇 십배는 빨라진 변화 속도를 체감하며 자란 지금의 세대가 이전 세대과 같을 수 없으니까. 어릴 때부터 훨씬 많은 것을 보고, 접하고, 더 다양한 가지각색의 자극을 받고 자라난 세대의 감성과 감각, 그리고 내제된 지식의 양이 다를 밖에 없는 건 당연한 일인 것이다. 그러던 중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동갑내기 한국 디자이너 라벨 세 팀이 모여 ‘LA FETE’라는 프로젝트명으로 2010 F/W 파리 패션위크를 노리는 다이내믹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일을 벌이는 멤버는 ‘SHADOW OF YOUR SMILE’의 지일근(남성복 라벨 ‘인스탄톨로지’의 디자이너), ‘LOVE’의 유환선과 이명제, ‘AWE’의 구원정과 양근영. 지일근의 테일러링 실력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란도리202’를 꾸리던 양근영의 감각에 대한 흥미로움이 있었고, 블로그로 먼저 접한 ‘LOVE’라는 팀에 대한 궁금증이 컸기에 그들의 여정에 잠시 끼어들어도 되는지 물었다. 그리고 답을 받았다. 당장 며칠 후 있을 미팅부터 함께하자는.1월 초 이뤄진 첫 만남. 장소는 망원동에 있는 AWE 쇼룸. 토마토 주스 축배와 함께 본격적인 미팅이 시작됐다. ‘LA FETE(라 페트)’는 프랑스어로 ‘축제’를 뜻한다. 아니나 다를까 ‘이게 과연 미팅?’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밝은 분위기. 그들이 이번 프로젝트 팀의 명칭으로 고른 것이 세 팀이 함께 모일 때 발산되는 에너지, 즐거움, 끝없는 재잘거림, 그 흥겨움이 축제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라 했던 이유에도, 세 팀의 색깔이 전혀 다르지만 그것이 오히려 긍정적인 효과를 낸다는 말에도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미팅의 주제는 약 20일 후 서울에서 있을 2010 S/S 프레젠테이션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과 이후 3월 초 파리 패션위크에 선보일 2010 F/W 프레젠테이션의 방향에 대한 논의. 파리를 택한 이유는 LOVE의 본거지가 프랑스일뿐더러, 낭만적인 뉘앙스가 좋기 때문이라 했다. 룩 북을 보고, 진행 중인 스케치를 보고, 그들이 좋아하는 영상을 보고,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누며 무언가 엷지만 확실한 희망이 생겼다. 계속 보고 싶다는, 과정을 쫓고 싶다는. 그리고 그들은 그날, S/S 프레젠테이션에서 상영할 영상을 로 정했다. 사랑에 미숙한 머리 없는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와 축제에 가기 위해 자신에게 어울리는 머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아직 어떤 문장으로 정의하기엔 유연한 신인들인 자신들의 모습과 닮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2월 중순인 현재, 2010 S/S 서울 프레젠테이션(서울 프레젠테이션 역시 한 공간 안에서 세 팀의 각기 다른 무드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진행됐다)을 마치고 온전히 F/W 작업에 전념하고 있는 그들은 밥 먹을 시간조차 녹록치 않은 일상을 보내고 있다. 쇼룸 오픈 날짜는 3월 6일부터다. 장소는 마레 지구의 프라이빗 아파트. 곧 룩 북과 인비테이션을 현지 바이어와 프레스들에게 발송한다. 쇼룸을 오픈하는 기간 동안 진행할 각종 이벤트들에 관해서도 끈임없이 이야기한다. 출국일은 쇼룸 오픈 5일 전으로 정했다. 게릴라 식의 광고와 홍보를 진행할 예정이기 때문.무엇이든 처음은 어렵기 마련이다. 그러나 며칠 전 던진 ‘요즘 무슨 생각을 하냐?’는 질문에(각기 따로 물었음에도) 그들은 마치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하나같이 ‘할 일이 산더미다. 그러나 설렌다. 흥미롭다’는 답을 해왔다. 이렇듯 두려움과 걱정에 얽매여 의기소침해지기엔 그들은 아직 하고 싶은 것도, 해보고 싶은 것도 너무 많은 디자이너다. ‘파리 진출!’이라는 거창한 타이틀보다 좀 더 가볍고, 즐겁게 떠나고 싶다는 그들의 준비 과정을 바라보며, 사실 더 많은 에너지를 얻은 건 에디터 본인이다. 신인 디자이너들이 마음껏 뛰놀기엔 너무 척박하고 힘든 한국 패션계이기에, 자발적으로 재기발랄한 일을 벌이는 이들의 행보는 더 의미 있게 다가왔다. 지금도 정신없이 작업에 매진하고 있을, ‘축제’라는 타이틀로 뭉친 세 팀을 각자의 아틀리에에서 만났던 날의 기록을 공개한다. LOVE를 만드는 유환선과 이명제ELLE(이하 E): 라벨 이름을 LOVE로 지은 이유가 궁금하다. LOVE(이하 L): 우리 둘은 사랑으로 이뤄진 인생 동반자다. 동시에 작업을 함께하는 동료이고. 직설적이지만 우리가 함께할 때 늘 내재된 감성, ‘LOVE’야말로 브랜드 네임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E: 이제까지 걸어온 길은? L: 섬유미술을 전공했고, 브랜드 디자인실 막내로 일을 시작했다. 패션 그래픽 담당이었다. 그후 파리에서 VMD 분야를 공부했고, 실무를 쌓았다(환선). 어릴 적부터 순수미술을 동경해오다가 패션디자인이 나의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예술 분야와 접목이 가능하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파리의상조합학교를 다녔고, 가스파 유르키에비치와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에서 실무를 익히던 중 ‘나의 컬렉션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08년 파리 신인디자이너대회에서 파이널리스트로 선정되면서 좀 더 프로페셔널하게 시작하고 싶어졌다(명제).E: 작업할 때 영감을 주는 것은?L: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만의 패러다임이 또 다른 세상을 낳는다고 믿는다. 디자인하기에 앞서 항상 서로가 입고 싶은 옷, 가지고 싶은 옷들을 아이처럼 상상한다. 완성될 때까지 수많은 상상과 순수한 이미지가 교차한다고 보면 된다. E: 첫 컬렉션인 2010 S/S와 F/W에 영감을 준 것들은? L: S/S 시즌에 가장 큰 영감을 준 것은 여성 라인과 수많은 건축물에서 보여지는 기하학적인 요소였다. 그래서 부드럽고 간결한 라인에 건축물의 유기적이고 복합적인 이미지에서 추출한 구조적인 커팅을 더해 라인을 변형하는 것이 컬렉션의 주된 모티프였다. 처음인 만큼 중점을 둔 것은 통일성 있는 이미지를 만들어 가는 것이었다. 그 결과 기본적으로 ‘클래식’이란 틀 안에서 커팅, 소재, 컬러, 볼륨 등이 위트 있게 트위스트된 컬렉션이 완성됐다. 준비 중인 F/W의 경우 지난 컬렉션을 좀 더 발전시키는 연장선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에 더해 스포티한 요소들을 믹스하는 작업에 매진 중이다.E: 연인 관계라는 것이 마이너스가 되는 부분은 없나?L: 서로 다른 경험과 강점을 가진 것이 장점이 될 거라 생각했다. 다양한 접근방식으로 작업할 수 있어서 서로 많은 도움이 된다. E: LOVE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L: 원초적이고 직설적이지만 사랑? 사랑스럽게 만들려고 한 옷이 아닌 사랑으로 만들어진 옷. 생각만 해도 멋지지 않은가.1 햇살 좋은 LOVE의 서정적인 작업실에서. AWE의 구원정과 양근영ELLE(이하 E): AWE의 뜻이 궁금하다. AWE(이하 A): 풀 네임은 ‘UNBOUNDED AWE BY LAYKUNI’. ‘LAYKUNI’는 나(구원정)의 영어 이름 레이에서 비롯됐다. AWE는 영국 유학 시절 Jan Svankmajer의 필름의 초현실주의에 빠져 있을 때 지은 것. ‘A’는 무한한 상상력의 매개체가 되는 옷을 뜻하는 것으로 디자이너를 대변한다. 이에 더해진 ‘WE’는 다수의 대중을 뜻한다. 앞에서 언급한 A와 사람들이 무한 소통하는 브랜드가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지었다. E: 영감을 주는 것은? A: 모든 환경과 관심이 AWE를 통해 새롭게 소화돼 드로잉, 글, 옷으로 표출된다. E: AWE의 2010 S/S와 F/W에 영감을 준 것은? A: 2010 S/S의 테마는 ‘Hole in AWE’. 빠져드는 느낌의 구멍에 의미를 두고 시작했다. 기존 이미지들의 포로가 되고 싶지 않아 텍스트가 주는 오묘한 상상력을 선호하는 편. 그래서 가상의 A, 토끼를 만들었다. 이유는 에서 앨리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항상 주도적이며 능동적인 토끼의 캐릭터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 A의 일상을 상상한 글과 그림에 영감을 받아 작업했다. 2010 F/W는 ‘SIDE BENT BAND!’ ‘3D 입방체는 옆면을 가져야만 3D 면모를 갖추게 된다’는 명제에서 출발했다. 옆면은 정면에서 바라보았을 땐 그 형태감을 잘 알 수 없다. 하지만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관절의 구부러짐과 꺾임이 옷의 옆면 형태에 미치는 영향에 매료됐다. 스키 타는 이의 옆모습을 상상해보라. 스포티하고 위트 있는 컬렉션을 만들고 있다. 그래서 이번 시즌, A씨는 스키를 타러 갔다. E: AWE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A: UNBOUNDED IMAGINATION(무한한 상상력)!1 Awe 2010 F/W2 Awe의 작업 노트엔 그들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The SHADOW OF YOUR SMILE의 지일근ELLE(이하 E): SHADOW OF YOUR SMILE의 뜻은? SHADOW OF YOUR SMILE(이하 S): 좋아하는 스탠더드 재즈 곡의 제목이다. 여성복 레이블을 위한 이름을 생각하던 중 우연히 이 노래를 듣게 됐고 왠지 내가 생각하고 있는 여성복과 느낌이 어울린다고 생각했던거 같다. E: 여성복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S: 남성복 라벨 인스탄톨로지와 병행할 예정인데 남성복이 미처 채워줄 수 없었던 부분이 있었다. 무드라던지, 상업적인 면에서. 같은 디자이너가 만든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아마 많은 면에서 다르게 전개될 것이다.E: 특별히 영감을 주는 대상이나 뮤즈가 있나? S: 아직 특별히 없다. 대신 남성으로서 여성복에 가지고 있는 판타지가 있다. 하고 싶은 이야기도, 옷도 너무 많다. 천천히, 조금씩 풀어 나갈 예정이다. E: 2010 S/S와 F/W의 컨셉트에 대해 이야기해달라. S: S/S의 경우엔 컬렉션의 타이틀이기도 한 ‘Do you want the truth or something beautiful?’이 시작점이었다. 젊은 소울 싱어 팔로마 페이스의 노래인데 아름다움이라는 건 사람들이 원하는 만큼만 보인다고 생각을 했다. 스스로에게 끈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여성복을 시작하며 어떤 것을 보여주고 싶은가?’에 대해. 그에 대한 자문자답이다. 반면 F/W는 꿈에 관한 이야기다. ‘목표' 가 아닌 진짜 '꿈' 말이다. 쇼를 준비하던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거기에 등장한 여자가 입은 옷들을 머릿속에 그렸다. 조금 가벼워 보일 수 있겠지만 거진 열다섯 착장의 옷들은 다 그 꿈에서 본 옷들을 스케치하며 시작했다. 어찌 보면 강박적으로 다음 시즌을 급하게 준비하는 과정에서 준비했던 이미지들이 더해지고 섞이면서 머릿속에서 그림이 그려진 거라 생각한다. E: SHADOW OF YOUR SMILE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S: 피지 않은 꽃봉오리. 아직 꽃의 색은 알 수 없다. 열심히 물을 주고 가꿔가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3월호를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