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프리다 지아니니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엘르>가 2010 S/S 컬렉션 준비로 한창인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프리다 지아니니를 만났다. 로마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그녀가 강인함과 카리스마로 무장한 그녀의 일 그리고 그녀가 만들어내는 여성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 프리다 지아니니,프로페셔널한,멋있는,카리스마적인,일상,구찌,패션,인터뷰,엘르,엣진,elle.co.kr :: | :: 프리다 지아니니,프로페셔널한,멋있는,카리스마적인,일상

‘프로페셔널다운 본능’ ‘워커홀릭’. 이 두 가지 말은 프리다 지아니니에게 늘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그녀의 사적인 삶보다 그녀가 만들어낸 디자인의 디테일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프리다에게 ‘일’ 외에 다른 선택은 없다. 20억달러가 넘는 비즈니스의 원천을 담당하고 있으니 어쩌면 그녀로선 ‘일’에 초첨을 맞추는 게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로마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프리다와의 만남. 약속시간인 11시에 맞춰 우리가 도착했을 때 그녀는 일찌감치 기다리고 있었다. 살짝 늦게 나타나는 것이 패셔너블해 보인다는 관행은 그녀에게 통하지 않는 듯했다. 사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프리다는 1921년부터 구찌의 베이스캠프가 돼온 피렌체에 살고 있었지만 디자인 팀과 함께 최근 이곳 로마로 옮겨왔다. 포켓 장식의 구찌 미니드레스에 블랙 플랫 샌들 차림의 그녀가 우리에게 말했다. “전 로마 출신이고 가족들도 모두 여기 살고 있죠. 내가 에너지를 발견하는 곳도 바로 이곳이고요.” 허스키한 목소리로 솔직함을 털어놓는 이 37세의 여인은 구찌 여성복과 남성복뿐 아니라 액세서리, 향수, 광고까지 책임지고 있는 프로였다. 그녀의 디자인 팀은 그 누구도 24세 이상으로 보이지 않았고 모두에게서 구찌의 터치와 ‘메이드 인 이탈리아’의 자부심이 전해졌다. “우리 팀에는 아주 젊은 사람들도 있죠. 세대는 서로 다르지만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해요. 그들은 제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잘 알고 있죠. 물론 가끔식 제가 규율을 요구하는 순간들도 있지만요. 미팅 중에는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하기도 하지만 자주 함께 둘러앉아 피자를 즐기기도 한답니다.”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구찌의 모든 일들을 돌보는 막강한 프로 본능의 비밀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녀가 대답한다. “모든 게 통제될 때 훨씬 더 편안함을 느껴요. 컬렉션 뒤에 바로 컬렉션이 있기 때문에 체계적인 조직이 우선이죠. 특에 박힌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반드시 필요한 요소예요. 모든게 미리 계획되고 진행될 때 나머지를 안심하고 처리할 수 있으니까요.” 팀 내에서 가장 각별한 사이를 자랑하는 이는 지난 10여년 간 함께 일해온 알레한드로 미첼(Alessandro Michele)이다. 그는 그녀를 이렇게 설명한다. “프리다는 정말 강인한 여성이에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알고 절대 흔들리는 법이 없으니까요. 물론 우리의 이런저런 아이디어에 귀를 기울이지만 모든 걸 보완한 후에 단호한 결단을 내리죠. 게다가 어마어마한 양의 리서치와 아카이브 작업 가운데에서도 정확하게 어디서 영감을 얻을지 재빨리 집어내죠.” 미팅 동안에도 모든 게 신속하게 진행됬다. 그녀는 시간을 낭비하는 법이 없어서 마치 그녀가 이 일을 적어도 30년은 넘게 해 온 사람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프리다는 팀원들이 제출한 아이템들을 이리저리 매만져보더니 거울에 일일이 비춰본다. “늘 블랙을 입는 이유도 이것 때문이에요.” 거울에 비춰지는 컬러들을 살펴보면서 그녀가 말한다. “너무 많은 패브릭과 컬러로 작업하기 때문에 단색으로 입을 필요가 있어요. 컬러들을 좀 더 정확하게 판단하기 위해서죠.” 그녀만이 지닌 마법의 터치로 백의 매무새를 약간 만지작거리더니 어깨에 걸친 후 앞뒤로 걸어다녀본다. 마치 구찌 부티크 고객이 된 듯 사소한 디테일 하나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그녀. 하이힐 스트랩이 고통스럽지 않은지 체크해보고, 클러치백의 안쪽 포켓에 담뱃갑이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지도 살펴본다. 그러다 테이블에 앉아 주얼리들을 점검하기 시작한다. 잠시 손에 든 펜슬과 종이를 힐끗 보더니 프리다가 약간 겸연쩍은 미소를 보내온다. “명색이 디자이너인데.... 버젓한 펜슬 하나가 없어요!” 프리다 지아니니가 어릴 적에 패션에 눈을 뜨게 해준 건 다름아닌 ‘엘르’라는 부티크를 운영했던 그녀의 할머니 루시아나(Luciana)다. “방과 후에 숍에 놀러가곤 했어요. 손님들도 구경하고요. 할머닌 정말 근사하고 우아한 분이세요. 최근까지 부티크를 하실 정도로 아주 강인하고 관리 능력도 뛰어나시죠. 지금은 87세지만 여전히 에너지가 넘치신답니다. 정말 본보기가 되는 분이세요.” 1997년 펜디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프리다는 그녀가 참여한 바게트 백을 출시하며 ‘잇’백의 효시가 됐으며, 2002년에는 톰 포드에 의해 구찌 백과 레더 제품 디자이너로 영입됐다. “런던에 있었지만 영어를 잘하진 못했어요. 대부분의 시간을 톰을 지켜보는 데 보내면서 그가 정말 근사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영화배우처럼 잘 생겼죠. 그 앞에서는 늘 할 말을 잃어버릴 정도였어요. 톰이 물을 땐 대답도 못하다가 나중에 혼잣말로 중얼거리곤 했어요. ‘아, 이렇게... 아니 저렇게 말했어야 했는데!’ 일의 순서와 체계적인 감각을 일깨워준 것도 그였어요. 그의 방 벽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오직 책상 위에 난초만이 놓여있었죠. 꽃잎이 떨어지거나 시들면 그는 난초를 치워버리곤 했는데 종종 알레한드로와 내가 지하실로 내려가, 쓰레기통에 버리기 직전의 난초를 재빨리 구해내곤 했죠. 그런 다음엔 우리 아파트로 가져갔어요!” 2004년 톰 포드가 그룹을 떠나자 프리다는 액세서리 부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됐고, 이후 그녀는 기적을 만들어왔다. 1966년 그레이스 켈리를 위해 특별 제작됐던 스카프 문양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플로라’ 백과 액세서리에 대한 뜨거운 반응들을 떠올려보라. 2005년 여성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에 올라선 후로는 톰 포드의 울트라 섹시 코드와는 차별화되는 전략을 구사했다. 구찌에 더욱 어울리는 여성적 전통을 재정립하는 동시에 첫 보헤미안 시크 컬렉션도 론칭했다. 2006년 후부턴 하우스 전체를 맡아 지금까지 브랜드의 매출 수치를 안정적으로 증가시켜왔다. “때론 내가 이렇게까지 멀리 왔다는 사실을 머리 속에서 잊어버리곤 해요. 구찌에 들어왔던 때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실제로 브랜드의 역사는 제 삶에 각인돼 있죠. 어머닌 구찌를 자주 입으셨고, 저의 첫 스틸레토도 더블 G가 새겨진 것이었으니까. 그래서인지 아카이브를 들여다보는 게 굉장히 즐거워요. 기록들을 파헤치는 게 너무 재밌어서 만약 이 일을 하지 않았다면 고고학자가 됐을지도 모를 일이에요.” 밀란 쇼 하루 전, 프리다는 예상 외의 문제에 부딪혀 계획을 수정해야만 했다. 신예 모델이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작은 문제가 생겼어요. 그녀가 힐을 신고 워킹하는 것에 익숙치 않아서요. 계속 걸려 넘어지는데 그대로 뒀다가는 사람들이 슈즈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거예요. 가혹하더라도 그녀를 보내는 수밖에 없어요. 모델이라면 힐 워킹이 안정적이어야 하니까요.” 프리다는 거의 사과하다시피 모델을 돌려보내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는지 계속 신경을 썼다. 진행 과정에 몇몇 트러블이 있어도 그녀는 팀에게 상냥했고 평온해 보였다. 소란스러움이나 혼란은 찾아볼 수 없었다. “쇼 마지막 몊 분까지도 항상 리스크를 생각해야 해요.” 그녀가 뱀부 백을 신중하게 살피며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그녀의 사전엔 ‘긴급’이란 단어는 없으며 불같은 이탤리언 기질이 충돌하는 일도 없어 보였다.다음날 쇼가 시작된 4시, 런웨이의 2010 S/S 구찌 컬렉션엔 전통과 혁신이 기교 넘치게 혼합됐다. 뱀부 백은 하이테크 재질로 재해석됐으며, 미니드레스엔 크리스털이 수놓아져 브랜드의 전통적인 장인 정신에 아름다움이라는 터치를 가미해주고 있었다. 섹시하지만 공격적이지 않은 느낌. 섹시하게 커팅된 에스닉 프린트의 미니드레스와 일명 ‘프리다 팬츠’인 스키니를 구입하려 줄을 서는 모습이 눈에 그려졌다. 백스테이지의 프리다는 블랙 미니드레스 차림이었는데, 평소 일할 땐 볼 수 없었던 몸매의 굴곡을 강조해주는 타이트한 버전이었다. 프리다는 그동안 선보인 미묘한 섹시함이라는 기술을 뛰어넘어 구찌에 새로운 센슈얼리티를 불어넣고 있었다. “여성의 옷은 그들을 한층 더 자신감 있고 당당하게 표현해준다는 점이 아주 중요해요.” 그녀는 “스타일의 자기진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디자이너의 역할”이라 말한다. “패션에 관한 한 당신은 늘 새로운 트렌드를 시작할 수 있어야 해요. 나 역시도 똑같은 걸 반복하거나 늘 특정한 테마에서 힌트를 얻고 싶진 않으니까요. 요즘엔 옷의 길이나 구조에 호기심을 느끼고 있어요. 특히 다리에 사로잡혀서 그걸 강조하는 법을 연구 중이죠.” 프리다는 쇼가 만족스러운 눈치지만 결코 들뜨는 일 없이 언제나처럼 특유의 프로페셔널다운 침착함을 발휘했다. 프리다는 우리에게 “프로페셔널리즘에도 감정적인 리듬이 있다.”고 털어놓는다. “겉으로는 아무리 강인해 보이는 여성일지라도 충분히 예민해질 수 있어요.” 그렇다면 이런 리듬이 매 시즌 구찌 우먼을 정의내리는 데도 영향을 주지 않을까? 더군다나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브랜드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 시점에서 말이다. “물론 전 구찌 우먼과 많이 닮아 있어요. 컬렉션에 제 자신을 많이 쏟아붓기 때문에 어느 정도 제가 이입되는 건 불가피하죠.” PPR의 CEO인 프랑수아 앙리 피노(Francois-Henri Pinault) 역시 “성공이 지속되는 레이블일수록 디자이너와 브랜드의 결속력이 강하다.”고 말한다. “하우스 코드가 디자이너의 감수성과 맞아떨어져 이미지가 탄생하는 것이죠. 정확히 그런 일이 바로 이곳 구찌에서 일어나고 있어요.”결단력이 강하고 섹시하며 감수성이 예민한 프리다 지아니니. 이런 그녀가 있기에 다음 구찌 광고에선 굳이 뮤즈를 고르느라 애쓸 필요가 없을 거라는 생각마저 든다. 미스 지아니니가 바로 구찌를 상징하는 살아 있는 롤모델이기 때문이다.*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3월호를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