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적인 디자인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에르메스의 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나데주 바니-시뷸스키. 19세기부터 시작된 이 유서 깊은 하우스에 정교한 공리주의 코드를 다시 불러일으키고 있는 그녀의 시적이고도 모던한 행보.::에르메스,나데주 바니 시뷸스키,나데주,크리에이티브 디렉터,디자이너,디자이너 스토리,엘르,elle.co.kr:: | 에르메스,나데주 바니 시뷸스키,나데주,크리에이티브 디렉터,디자이너

“프랑스 여자들을 아주 어릴 적부터 에르메스에 익숙해요. 엄마들은 에르메스 스카프 하나씩은 꼭 갖고 있죠. 아마도 어릴 적에 처음 접하면서 그 귀중함을 알게 되는 물건 중 하나가 바로 스카프일 거예요.” 브랜드의 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나데주 바니-시뷸스키(Nade?ge Vanhee-Cybulski)가 말한다. 그녀는 이 유서 깊은 프렌치 하우스로부터 ‘지나치게 고풍스러운 노스탤지어’를 덜어내려 애쓰는 중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르메스만의 헤리티지와 사려 깊은 매력에 대한 경외를 잃지 않는다. 나데주의 역할은 ‘21세기에 맞게 기존의 틀을 깨뜨리고 브랜드를 바로 지금, 현재에 입을 수 있는 코드로 맞춰놓는 것’이다. 19세기 마구상에서 출발한 브랜드 역사에서 알 수 있듯이, 틀과 경계를 허무는 디자이너의 비전은 에르메스에 내재된 DNA와도 같은 것이다. “에르메스 패밀리의 비전은 백뿐 아니라 주얼리와 의류에 대한 필요성도 포용하면서 시작됐어요. 그들은 여성을 디자인하기 시작했죠.” 나데주는 20년대에는 화가 몬드리안으로부터 영감을 얻은 디자이너 롤라 프루삭(Lola Prusac)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때부터 이미 모더니즘과 함께 수공으로 직접 만들어내는 시적인 아름다움이 존재했어요.”나데주의 첫 런웨이 쇼는 파리 공화국 수비대(Republican Guard)의 기마병 스쿨에서 열렸는데, 모더니즘과 시적인 감각이 어우러진 쇼 무대는 새롭게 제시되는 에르메스의 코드를 보여주었다. 램스킨 라이딩 재킷과 승마복 스타일의 감각적인 버티컬 스트라이프 스트레이트 레그 팬츠, ‘루즈 H(Rouge H)’로 알려진 하우스의 시그너처 컬러 브릭 레드를 패칭한 퀼트 레더 코트에 이르기까지, 전체적인 분위기는 전원풍의 주말 여행자가 아닌, 도심 속 오프 듀티 룩에 가깝다. 또 터서 실크(Tussah Silk)를 사용해 종아리 부분에서 좁게 나풀거리는 슬림한 아이보리 니트 드레스를 포함한 이브닝 웨어까지! 하지만 무엇보다 에르메스의 헤리티지에 그녀만의 새롭고 스마트한 비전을 덧붙여 시선을 사로잡은 디자인은 단연 루스한 레더 오버올이었다.“일종의 지도를 만들길 원했어요. 어떤 여성들이 에르메스를 입을 것인가? 그녀들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에르메스 우먼은 강인한 마인드를 지녔다고 생각해요. 스스로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알고 있죠. 장시간 업무와 잦은 여행, 가족에 이르기까지 오늘날의 모던 라이프에 맞춰 그녀들이 원하는 것을 제공하고 싶었어요. 더욱이 홍콩, 런던, 뉴욕 등 서로 다른 삶의 방식에도 세심할 필요가 있고요.” 확실히 그녀의 말은 세대를 거쳐 내려온 에르메스의 증손자이자 CEO 악셀 뒤마(Axel Dumas)에겐 마치 음악처럼 감미롭게 들릴 것이 틀림없다(그의 목표는 럭셔리 업계에서 연매출 46억 달러가 넘는 정점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100만 명에 이르는 브랜드 인스타그램 팔로어의 증가 속도도 보조를 맞추는 것이다). 나데주는 프랑스 북부에서 자랐고 어머니의 고향인 알제리에서도 많은 시간을 보냈다. 10대 시절에는 프랑스 북쪽 국경선 인근의 릴(Lille)에 살면서 종종 벨기에로 전시회와 콘서트를 보러 다녔다. 또 고스와 펑크를 넘나들면서 모리세이(Morrissey)와 매시브 어택(Massive Attack)의 음악에 빠져들었고, 안나 카리나가 등장하는 고다르의 영화도 빠짐없이 챙겨봤다고 한다. 2003년 앤트워프 왕립예술학교를 졸업한 후 미니멀리즘의 성지 메종 마르지엘라에서 3년간 일했으며, 그후 셀린에서 피비 파일로를 돕던 런던 시절과 더 로우의 디자인 팀으로 일하던 뉴욕에서의 경험을 거쳐 지금은 파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피갈 지역에서 예술업계에 종사하는 남편과 잭러셀 테리어 애완견들과 함께 살고 있다. 팡탱(Pantin) 외곽에 있는 아틀리에에선 가죽 장인들의 정교한 마법이 펼쳐지는 동시에 나데주의 디자인이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다. 그녀는 패턴사들 옆에 앉아 볼륨에 대한 테스트를 하거나 카프스킨 재킷의 끝자락을 무두질하는 기술자 옆에서 디자인을 가다듬곤 한다. 다들 부러워할 만한 패션계의 세 레이블에서 쌓은 커리어가 '여성에 대한 생각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묻자 그녀는 이렇게 답한다. “내가 관찰하는 작은 소우주에서 벗어나야 해요. 아마도 다양한 도시에서의 경력이 내 안의 여성적인 인식을 일깨워준 듯해요. 사실 여성에 대한 생각은 외부로부터 유입되는 건 아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