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힐의 시대가 위협을 받고 있다 | 엘르코리아 (ELLE KOREA)

높을수록 아름답다던 킬힐의 시대가 위협을 받고 있다. 슈퍼 디자이너조차 하나 둘 낮은 굽에 다시 애정의 눈길을 돌리고 있다. 과연 킬힐의 시대는 내리막길에 접어든 것일까? :: 칼 라거펠트,알렉산더 맥퀸,마크 제이콥스,펜디,루이 비통,베르사체,보테가 베네타,구찌,섹시한,로맨틱한,여성스런,엘르,엣진,elle.co.kr :: | :: 칼 라거펠트,알렉산더 맥퀸,마크 제이콥스,펜디,루이 비통

1 the kill heel 칼 라거펠트는 이번 시즌 펜디 런웨이에 더없이 로맨틱한 의상에 아찔한 킬힐을 매치한 룩을 선보였다.2 the extreme kill heel 이번 시즌 30cm에 이르는 높이의 극한의 킬힐을 선보인 알렉산더 맥퀸.3 the kitten heel 마크 제이콥스의 변심. 루이 비통 런웨이를 수놓은 건 바로 이러한 키튼힐이었다.4 the kill heel 도나텔라 베르사체 특유의 패턴과 달콘한 컬러감이 돋보이는 엄청난 킬힐.5 the wedge heel 자연적인 소재에서 편안함이 느껴지는 보테가 베네타의 웨지힐.6 the kill heel 기하학적으로 엮인 스트랩이 돋보이는 구찌의 2010 S/S 킬힐.2009년 10월 6일. 뒤뚱뒤뚱, 몽환적인 음악을 타고 모델들이 아주 조심스레 걸어나온다. 이제껏 마주한 적 없었던 세계에서 불시착한 외계 생명체처럼 눈 깜짝하는 사이에 피어올라 사라질 것 같은 환상적인 모습으로. 그리고 아주 좁은 보폭으로 발을 내딛는 그들의 앙상한 다리 끝, 아찔하고도 엄청난 오브제. ‘저 엄청난 집게발 같은 덩어리는 뭐지? 에일리언 영화에서 본 듯. 살아 있는 것 같은데? 갑자기 눈을 뜨고 멋대로 움직이면 어떡하지? 저것을 과연 우리는 사람의 발에 신겨지는 신발이라 불러야 하는 걸까?’ 이 엄청난 슈즈를 만든 이는 바로 영원한 앙팡테리블, 알렉산더 맥퀸. 2010년 S/S 알렉산더 맥퀸 쇼 런웨이를 바라보며 혁신적인 것에 마음이 열려 있는 패션 피플조차 벌어지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이건 쇼 자체가 굉장하지 않았다거나 아름답지 않았다거나 하는 식의 이야기가 아니다. 쇼는 황홀했지만 ‘에일리언 슈즈 쇼크’는 생각보다 오래갔단 것(익스트림 킬힐의 정점을 찍었다고나 할까?). 그리고 쇼장에 있었던 이들은 물론 닉 나이트의 쇼 스튜디오를 통해 생중계되는 쇼를 바라본 각종 패션 블로거들, 심지어 우리나라 인터넷뉴스 사이트조차 이 슈즈에 열렬한 관심(비판이던, 지지던)을 표명하기 시작했다. 예상했겠지만 이 슈즈에 충격을 받은 건 런웨이를 ‘바라본’ 이들만이 아니었다. 알고 보니 직접 ‘신고 걸어야’ 하는 모델들이 먼저 난색을 표했던 것. 우리가 이번 알렉산더 맥퀸 쇼에서 요즘 톱 중의 톱 모델인 애비 리 커쇼와 사샤 피보바로바, 나타샤 폴리를 만날 수 없었던 것도 바로 굽이 30cm에 달하는 에일리언 슈즈 때문이었다니. 이 정도면 할 말 다하지 않았겠나. 그도 그럴 것이 그 중에서도 가장 얼굴을 붉혔다는 애비 리 커쇼는 ‘사연 있는 여자’긴 하다. 2009 S/S 로다테 런웨이에서 말 그대로 슈즈에서 ‘떨어져 내렸는가’ 하면 2009 S/S 알렉산더 맥퀸 쇼에서는 지나치게 조인 코르셋 덕분에 기절했고(그래서 더 무서웠던 건 아닐까?), 2009 F/W 로다테 쇼에서는 또 한 번 슈즈에서 바닥으로 내처질 뻔한 뒤 무릎 부상으로 그 이후 모든 쇼를 스킵해야 했으니 자신의 몸을 먼저 생각하는 게 당연할 수밖에. 그러나 다음날인 10월 7일. 뜨거운 감자, 알렉산더 맥퀸 쇼의 컬처 쇼크가 가시지 않은 패션 피플들 머리 위론 다시 한 번 뭉게뭉게 ‘?’ 모양의 구름이 피어나고 있었다. 현장은 바로 루이 비통 런웨이. 지난 F/W 시즌의 발칙한 파리지앵 레이디 무드는 온데간데 없고, 일본 망가 주인공 같은 블론드 컬러의 거대한 아프로 헤어(!)를 하고 걸어나오는 모델들을 더 비현실적으로 만든 건 오래토록 잊고 있었던 3cm 높이의 낮은 키튼힐 슈즈들이었다. 2010 S/S 마르니와 미쏘니 쇼에 등장한 키튼힐, 프라다 쇼에 등장한 플랫 샌들도 만만찮게 놀랍지만 거기서 끝이려니 싶었다. 그런데 2009 F/W까지만 하더라도 올라타야만 하는 높은 슈즈들을 만들던 마크 제이콥스의 루이 비통마저 이런 변화를 맞다니! 내려앉은 듯 극단적으로 짧아진 모델들의 새로운 프로포션은 낯설어서 더욱 새롭기도 했지만, 그래서 어색했던 것도 사실이다. ‘아름답다’나 ‘우아하다’가 아닌 ‘귀엽다’는 형용사가 절로 붙는 루이 비통 ‘걸’들이라니! 그러나 많은 이들은 감지할 수 있었다. 큰 변화는 이미 찾아왔음을. 이렇듯 죽어도 세 번은 죽일 것 같은 ‘킬’ 힐과 오래간만에 지구에 대한 사랑이라도 샘솟아난 듯 바닥으로 ‘착’ 가라앉은 슈즈들이 극단적으로 공존하는 가운데 제3의 입장으로 대두된 것은 바로 웨지와 클로그다. 모던 우먼 피비 파일로의 셀린, 칼 라거펠트의 샤넬, 미우치아 프라다의 미우미우에 등장한 바로 그 우드 소재의 웨지와 클로그들. 그 중에서도 모던한 우드 굽의 웨지(피비 파일로가 출산 후 돌아와 처음 선보였던 2006 S/S 끌로에에 이와 똑같은 웨지들이 한동안 등장했단 사실을 생각하면 참 아이러니하다)는 척추에 가해지는 충격이 큰 스틸레토 힐과 킬힐에 지쳤음에도 높은 굽을 포기하긴 힘든 이들을 위한 최고의 대안이다. 힐을 오래토록 신어온 사람들은 한두 번쯤 느껴봤을 것이다. 얇고 높은 굽을 오래 신다보면 어느 날 갑자기 걸음을 빨리하거나 뛸 때 척추에 못을 박는 것처럼 ‘콩, 콩, 콩’ 전해지는 자극을. 전문의들은 이것이 ‘바닥 접촉면이 발 앞부분과 힐의 지름 1cm 남짓한 고무 부분으로 한정돼 있어 걸을 때마다 허리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데 웨지힐의 경우 이런 걱정할 필요 없어 좋다(요즘 웨지힐과 사랑에 빠진 에디터의 경우, 웨지힐을 신고 일할 땐 킬힐의 몇 배의 속도로 뛰는 자신을 발견한다). 게다가 킬힐만큼, 아니 심지어 굽이 더 높아도 안정적이니 ‘옷발’ 살리기에도 무리가 없다. 그러나 클로그 경우는 이야기가 약간 달라진다. 문화적인 특성 때문인지 우리나라에서만은 아직 ‘?’의 무리수를 두는 아이템일 수밖에 없는 것. 사실 클로그를 마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우리네 할머님들께서 추운 겨울 시장에 나가실때 신으시던 통굽 슬리퍼들이다. 앞이 투박하게 막혀 발가락 끝부터 발등 끝까지 통째로 감싸던 그 슬리퍼들! 몇 년 전부터 클로그를 애용하던 메리 케이트 올슨의 파파라치 사진에 동글뱅이 ‘조니 뎁’ 안경과 함께 최고의 악플을 기록하는 투 톱 아이템이 바로 이 클로그들이었던 사실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게다가 몇 년 동안 뮬을 비롯해 슬링백 샌들조차 트렌드 전반에 등장한 경우가 드물었으니 이 ‘슬리퍼’ 형태의 클로그가 얼마만큼 러브 콜을 받게 될지는 정말 무리수인 셈. 상황이 이러니 이번 2010 S/S 시즌만큼은 진정 슈즈의 춘추전국시대라 불러도 무방할 듯싶다. 슈퍼 디자이너들과 킬힐의 이별 사태가 곳곳에서 발발했고, 빼꼼히 세력 확장을 노리는 새롭고 다양한 카테고리의 슈즈들이 수시로 여심 공략을 노리고 있으니 말이다. 진나라가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했듯 슈즈계를 호령할 대상이 다시 한 번 ‘킬힐’이 될지, 아직은 낯선 ‘키튼힐’이 될지, 반가운 ‘웨지힐’이 될지는 예측 불가능하지만 획일적이었던 10cm 이상 킬힐 열풍에 제동이 걸린 건 분명 패션 러버들에게 또 다른 도전의식을 재고시키는 즐거운 일임은 분명하지 않을까. The wedge heel‘웨지힐’이란 앞굽부터 뒷굽까지 분리됨 없이 이어진 밑창을 가진 슈즈를 뜻한다. 흔히 우리나라에서 ‘통굽’이라 불리는 굽을 연상하면 된다. 이러한 디자인의 웨지힐은 바닥과의 접촉면이 넓어 앞굽과 뒷굽이 분리된 플랫폼힐이나 가느다란 뒷굽 하나로 버텨야 하는 스틸레토힐과는 질적으로 다른 편안함을 준다. The clog‘클로그’는 원래 나무로 만들어진 네덜란드 전통 신발을 뜻하는 단어다. 패션 월드에서는 이에서 유래된 디자인들을 모두 클로그라 부르는데 나무 굽, 징을 이용한 재봉, 발등을 모두 감싸는 디자인이 가장 대표적인 특징이다. 답답해 보이는 앞부분이 부담스럽다면 변형된 오픈 토 디자인을 선택하는 것도 좋은방법. The kitten heel‘키튼힐’이란 5cm 미만의 낮은 굽을 가진 슈즈들을 통칭하는 용어다. 오랫동안 트렌드 전반에 등장하지 않았던 이 높이의 힐에 이번 시즌 시선을 돌린 대표적인 디자이너는 루이 비통의 마크 제이콥스, 미쏘니의 안젤라 미쏘니, 그리고 마르니의 콘수엘로 카스틸리오니. 낯설어서 망설여진다면 심플한 디자인의 샌들부터 시작해볼 것.*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3월호를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