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타 페레티의 지극히 사적인 공간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알베르타 페레티가 첫 번째 숍을 열었던 나이는 방년 18세였다. 약 4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그녀는 패션 월드를 정복했다고 말해도 모자라지 않는 디자이너다. 그녀의 지극히 사적인 공간에서 함께한 오후. :: 알베르타 페레티,빈티지한,자연스러운,아름다운,패션,인터뷰,엘르,엣진,elle.co.kr :: | :: 알베르타 페레티,빈티지한,자연스러운,아름다운,패션

이번 기사를 위해 북이탈리아에 있는 카톨리카(Cattolica)의 한 비치 리조트에서 알베르타 페레티와의 만남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지켜보던 남자 바텐더가 미소를 지으며 “행운을 빌어요.”라고 말했다. 역시 그녀는 카톨리카의 가장 유명한 여인임이 틀림없다. 1993년 밀란 패션 위크에서 첫 컬렉션을 선보인 페레티는 특유의 부드럽고 여성스러운 디자인으로 명성을 얻었다. 여성의 보디 위를 포근한 산들바람처럼 감싸는 실크와 시폰 소재의 드레스들을 그 누가 그녀보다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있으랴. 하지만 실제로 알베르타 페레티 본인은 강인하고 현실적인 여성으로도 유명하다. 하긴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지금과 같은 알베르타 페레티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을까.준비를 끝내고 그녀를 만나기 위해 카톨리카의 메인 타운에서 조금 떨어진 그녀의 빌라로 향했다. 페레티는 아직 도착 전이었다. 그녀는 카톨리카에 이곳 말고도 해변가에 빌라를 하나 더 가지고 있다. 또 카톨리카뿐 아니라 밀란과 뉴욕에도 각각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으며 '이탈리아의 아스펜(Aspen)'이라 불리는 코르티나(Cortina)에도 가족들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집을 소유하고 있다. 하지만 카톨리카의 빌라에서 그녀를 만나기로 한 것은 이곳이 그녀의 다른 집들보다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페레티가 구입한 지 25년째된 그곳은 그녀가 전 남편과 함께 이사해 이제는 성인이 된 두 아들을 키워낸, 그녀의 삶이 가장 깊게 배어 있는 집이다. 빌라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델(Adele)’의 음악이 로비 전체에 흐르고 있었다. 응접실에 자리 잡고 앉아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페레티의 집은 지위나 부를 보여준다거나, 장식적인 인테리어로 가득한 공간이 아니다. 그녀가 이제껏 걸어온 삶의 스토리와 그녀만의 아이덴티티로 가득 채워져 있다. 결코 지나치게 화려하거나 억지로 꾸민 듯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어두운 목재 바닥과 흰 벽, 바로크식 안락의자부터 모던한 L자형 소파들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가구들. 19세기의 유화 작품들부터 줄리앙 슈나벨(Julian Schnabel) 작품까지 다방면에 걸친 예술작품 컬렉션도 눈에 띈다. 야니스 쿠넬리스(Jannis Kounellis)의 오리지널 스케치들과 호스트(Horst)와 헬무트 뉴턴(Helmut Newton) 사진들도 다양하게 걸려 있다. 개인 어시스턴트, 통역사와 함께 응접실로 들어서는 페레티에게 이에 대해 이야기하자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정말이에요. 이 집은 아름답고 심플하죠. 이곳에는 여유가 있어요. 제가 숨쉴 수 있는.” 1 자신의 빌라 정원에서 자신이 만든 드레스를 입고 포즈를 취한 알베르타 페레티.2 알베르타 페레티와 필로소피 라인의 슈즈들.3 사랑하는 가족의 사진들.4 여행하며 모은 빈티지 아이템들.5 어머니가 물려주신 기모노.6 필로소피의 옷을 입은 그녀.사실 그녀에게 완벽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은 무엇보다 필수적인 삶의 요소다. 언제나 가장 효율적으로 일하기 위해 끈임없이 고민하는 그녀는 쉬지 않고 일을 벌이기 좋아하는 ‘작은 거인(그녀는 힐을 웬만해선 벗지 않는데 키가 155cm 정도다)’이기 때문. ‘알베르타 페레티’와 ‘필로소피 디 알베르타 페레티’, 두 개의 레이블로 이뤄진 패션 제국(직원만 해도 1천3백 명이 넘는다!)을 이끄는 그녀의 24시간이 얼마나 바쁠지는 굳이 상상해보지 않아도 예측 가능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누구보다 부드럽고 따뜻한 사람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알베르타 페레티에게 있어 패션은 긴장되고, 어렵고, 일로 느껴지는 존재가 아닌, 첫 만남부터 로맨틱했던 인생 최고의 동반자였기 때문이다. 그 특별한 시작은 어머니에게서 시작됐다. “어머니는 재봉사였어요. 성함은 이사도라. 그녀가 열정적으로 일하던 1960년대의 이 지역은 부유하고 유명한 이탈리아인들 때문에 막 유명해지던 시기였죠. 나는 어머니가 그런 여성들에게 옷을 만들어주는 것을 가장 가까이서 보아왔죠. 아직도 각종 패브릭들이 내던 바삭거리던 소리라던가 향기들이 생생해요. 패브릭이 여성의 몸 위에서 아름다운 움직임을 만들어내던 모습들을 빠짐 없이 기억하죠. 그때부터 전 패션과 사랑에 빠졌어요.” 그녀는 열여덟 살의 나이로 자신의 첫 부티크를 오픈해 현장에서 사업을 배웠다. “저는 대학에 가지 않았어요. 그렇게 치면 정식으로 패션을 공부한 적 없죠. 부티크가 저에겐 산 교육 현장이나 마찬가지였어요. 저의 모든 고객이 누구보다 특별한 선생님이었고, 숍이 바로 교실이었으니까요.” 비단 컬렉션 작품들뿐만 아니다. 그녀가 직접 입는 옷 중 99%는 자신이 디자인한 옷이다. 그녀의 옷장에는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다양한 아이템들이 빼곡히 자리하고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자신의 컬렉션과 아주 소량의 장 폴 고티에 옷을 제외하면 그 외의 모든 것들이 그녀가 이제껏 해온 수십 번의 여행에서 수집한 빈티지 아이템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모든 것들에서 영감을 얻지만 특히 여행과 예술에서 많은 영감을 얻어요. 마음을 풍요롭게 만들죠. 빈티지 제품들은 각각 독특한 개성과 색깔을 가지고 있어요. 제가 디자인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과 일맥상통하죠.” 개 중에는 특별한 사연을 가지고 구입하게 된 아이템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단순히 작품의 장인정신과 독특한 아름다움에 끌려 모으게 된 것들이다. 7 알베르타 페레티의 손을 거친 아름다운 드레스들.8 소품들로 꾸민 벽면.9 느낌이 좋아서 구입한 빈티지 백과 슈즈.10 소중한 앤티크 백들.인터뷰를 하는 동안 그녀가 입고 있던 룩은 스스로 ‘전형적인 작업복’이라 명명하는 심플한 블랙 앤 화이트 스트라이프 패턴 저지 소재 튜닉과 블랙 팬츠였다. “항상 블랙 컬러의 옷을 꼭 한 아이템 이상 입어요. 아니, 블랙을 입어야만 하죠. 스튜디오에서 작업할 때는 특정 컬러나 소재에 얽매이면 안 되거든요. 스스로 하나의 커다란 빈 캔버스가 돼 생각을 온통 창조하는 데 집중해야 하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옷장이 온통 블랙 컬러 일색으로 비슷비슷한 아이템만 가득할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우마 서먼, 리즈 위더스푼, 다이앤 크루거, 스칼렛 요한슨 등 그녀의 컬렉션을 사랑하는 이들을 그 누구보다 레드 카펫 위에서 빛나게 만드는 이가 바로 페레티 아니던가. 아니나 다를까, 사진 촬영을 부탁하자 그녀가 첫 번째 컷을 위해 입고 나온 것은 바닥까지 내려오는 피치색 드레스였다. 각종 로맨틱한 파티에 더없이 잘 어울릴 전형적인 ‘페레티 드레스’ 말이다. 자신의 F/W 프리 컬렉션 작품 중 하나라고 이야기한 그 드레스는 이미 쉰 살을 넘은 그녀의 몸을 아름답게 감싸고 있었다. 사실 그녀는 그 어떤 파티보다도 자신의 보트 위에서 벌이는 선상 파티를 가장 좋아한다. ‘Prometej’라고 이름 붙여진 그녀의 48m짜리 러시안 보트는 베니스와 칸에서 열리는 각종 페스티벌에도 자주 출몰한다. 선상 파티를 즐기는 이유에 대해 “바다 가까이에서 태어나서인지 여전히 보트 위에서 마음이 가장 평온해진다.”고 말하는 그녀에게 자신만의 특별한 스타일링 팁이 있냐고 묻자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신감’이라고 말한다. “자신감이 가득한 눈은 최고의 액세서리에요. 어떤 옷을 걸쳐도 멋져 보이게 만들죠. 또 볼드한 주얼리 역시 룩을 가장 손쉽게 살리는 아이템이에요. 드레스와 매치하는 백은 립스틱 하나 정도 들어가는 사이즈면 충분하죠.” 또 여성의 보디라인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그녀답게, 어떤 체형이든 여성의 몸은 아름다울 수 있다고 말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옷은 결코 입는 이의 아이덴티티를 가리는 마스크가 돼서는 안 돼요. 자신만의 색깔을 표현해주는 드레스는 당신을 가장 아름다워 보이게 만들어줄 거예요.”*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3월호를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