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첼 파인스타인의 솔직한 이야기 | 엘르코리아 (ELLE KOREA)

마크 제이콥스의 뮤즈이자 아티스트로서 활약을 펼치고 있는 레이첼 파인스타인을 만났다. 그녀의 스튜디오에서 들어보는 그녀의 작품 세계와 그녀가 사랑해 마지않는 남편, 존 커린(John Currin)에 관한 이야기. :: 레이첼 파인스타인,아티스트,모델,자유로운,섹시한,아름다운,엘르,엣진,elle.co.kr :: | :: 레이첼 파인스타인,아티스트,모델,자유로운,섹시한

2004년, 긴 블론드 헤어에 퍼 코트를 입고, 커다란 선글라스를 낀 채 활짝 웃으며 마크 제이콥스 광고에 등장한 여인을 기억하는지. 바로 마크 제이콥스의 뮤즈이자 화가 존 커린(John Currin)의 뮤즈이기도 한 아티스트 레이첼 파인스타인이다. 한국에서는 다소 생소한 이름이지만 이미 뉴욕 미술계와 패션계 사이에서는 잘 알려진 그녀. 그녀가 처음 마크 제이콥스의 눈에 띄게 된 건 마크가 존 커린의 작품 속에 등장한 상반신 나체 모습의 레이첼을 보게 되면서부터였다. “존은 저를 모델로 한 작품 시리즈를 두고 라고 불렀는데 마크가 이 작품을 인상 깊게 눈여겨보았어요. 이후 유르겐 텔러와 함께 마크 제이콥스 광고 촬영을 하게 된 거고요.” 그녀는 마크 제이콥스와의 인연을 이렇게 설명했다. 마크는 존 커린의 작품 속 레이첼을 ‘모나리자’에 견주곤 했다. 세기의 아티스트와 디자이너의 뮤즈가 된 레이첼 파인스타인은 비범한 매력을 가진 여인임이 분명했다.레이첼이 작업하는 뉴욕의 스튜디오에는 다섯 개의 타원형 거울이 걸려 있었다. 으슥한 동굴이 연상되는 이곳에서 그녀는 자신을 마리 앙투아네트로 묘사한 자화상을 그리고 있었다. 그림 속의 그녀는 가발과 티아라를 쓴 채 진주와 장미, 타조 깃털을 달고 있었으며 허리쪽에 천사 같은 아이들을 앉혀놓은 모습이었다. 한때 모델이기도 했던 그녀에게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도자기 같이 뽀얀 피부였다. 하트형 얼굴에 귀족적인 콧대,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녹색 눈동자를 가진 레이첼의 시그너처 작품은 밝은 컬러의 공격적이고 섹시한 조각들이다. 사실 그녀가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건 존 커린을 만나면서 부터였다. 세 명의 아이를 두고있는 레이첼과 아홉 살 연상의 존은 현재 뉴욕 최고의 아티스트 커플 중 하나로 꼽힌다(트레이시 에민(Tracy Emin)과 데미안 허스트(Demian Hirst)가 만났다고 상상해보라). “유명세를 얻을수록 점점 많은 파티 초대장을 받게 돼요. 아티스트로서는 성공했지만 그만큼 작업에 열중할 시간은 줄어드는 셈이죠.” 6개월 전 셋째 아이를 낳은 그녀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건 근사한 일이지만 하루라도 집에 앉아 가만히 텔레비전을 볼 시간조차 없어요. 자유롭고 한가로운 시간을 갖는 게 아티스트에겐 참 중요한데 말이죠.” 인터뷰 전날에도 웨이버리 인(Wavery In)에서 있었던 예술가들을 위한 디너 파티에 다녀왔다며 그녀가 말했다. 1 모두 마리안 보에스키 캘러리(Marianne Boesky Gallery)에 전시돼 있는 레이첼 파인스타인의 조각 작품들.2 그녀의 작품이 프린트된 마크 제이콥스의 티셔츠다.15년 전 시작된 레이첼과 존 커플의 러브스토리는 예술계에서는 하나의 전설처럼 입에 오르내리는 사건이다. 당시 23세의 레이첼은 아티스트가 되기 위해 노력 중이었고 작품 의 일부가 돼 아예 뉴욕 갤러리 안에 살고 있었다. 스티로폼으로 만든 작품 안의 핑크 빛 침대에서 자고 있던 레이첼이 눈을 떴을 때 그녀의 친구가 존 커린의 이야기를 전했다. 자신의 그림 속 소녀들과 너무나 닮은 레이첼을 그가 직접 만나보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앞에 백마 탄 왕자가 나타난 셈이었다. “처음 존을 본 순간 한눈에 반해버린 나머지 다가가 키스해 주었어요. 그러자 존이 당혹스러운 듯 주춤거리더군요!” 레이첼이 웃음을 터뜨렸다. “당시 전 핑크 컬러에 프릴로 장식된 50년대 풍 언더웨어에 모카신을 신고 있었죠. ‘I’M A SATISFIER’라고 쓰여진 티셔츠 차림으로 침대에서 막 일어난 터라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어요. 친구이자 배우이기도 한 메간 도즈(Meghan Dodds)는 ‘당장에 데리고 놀고 싶은 인형’ 같았다고 하더군요(웃음). 하지만 제겐 섹시하고 터프한 마돈나가 우상이었어요.”존은 반항적이고 공격적이었던 레이첼을 부드럽게 만들어주었다. “존은 늘 절 즐겁게 해주죠. 아마도 처음 그를 만난 순간부터 제가 부드럽게 녹아버렸다고 할 수 있을 거예요. 하룻밤 사이에 제 성격이 바뀌었으니까요. 바보처럼 분별력 없이 사랑에 빠졌어요. 서로가 쿨한 척하지 않고 감정이 가는대로 행동하고 사랑하기로 했어요.” 그들이 만난 지 2주만에 존이 청혼했지만 당시 그녀는 대답을 망설였다. “결국 2년 후에 결혼에 골인했어요. 우리는 틀림없이 전생에서도 만났을 거라 믿어요.” 확신에 찬 목소리로 그녀가 말했다. 오후 내내 이뤄진 인터뷰 사이사이에도 두 사람은 몇 차례씩 통화를 하며 ‘자기’ ‘사랑해’라는 표현을 꺼리지 않았고 대화 도중에는 그녀는 ‘존은 항상 이랬죠....’ ‘존 생각에는....’이라는 말을 종종 꺼냈다. 3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한 레이첼 파인스타인의 모습.4 현재 그녀가 작업하고 있는 다양한 페인팅, 조각 작품들의 진행 과정도 카메라에 함게 담았다.물론 모든 일이 늘 순조로웠던 건 아니다. 항상 ‘존 커린의 여자친구’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녀야 했던 레이첼은 한동안 작품 활동을 중단하기도 했다. 자신의 작품에 그의 이름이 오르내리길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에 그녀는 존의 뮤즈로서, 작품 속 모델러서의 의무에 충실했다. 어느 날 존은 그녀에게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 을 재해석한 작품을 제안했다. 그리고 그 길로 그녀를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샘플 세일에 데려가 옷을 사주었다. “영화 컨셉트에 맞는 마거릿 대처 스타일의 그레이 수트를 샀어요. 펜슬 스커트에 타이트한 재킷이었죠. 버슬(치마 뒷부분을 볼록하게 해주는 틀)도 따로 구입하고요.” 사교적인 성격의 레이첼은 이를 계기로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친해졌고 종종 모델로 활동하며 옷을 선물받기도 했다. 레이첼은 현재 웨스트우드 외에도 로렌 스콧, 스테파노 필라티, 피비 파일로, 그리고 빠질 수 없는 마크 제이콥스를 비롯한 많은 디자이너들과의 친분을 자랑한다.작품 활동을 쉬는 기간에는 단편영화인 을 만들었다. 할머니가 백설공주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린 이 독특한 영화 외에도 그녀는 스스로 조각상이 돼 세트를 연출하는 퍼포먼스 아트 활동도 선보였다. 존 커린이 캔버스 위에서 평면적인 작업을 했다면 레이첼은 매일같이 조각상이 돼 자신만의 입체적인 세상 속에 그녀의 에너지와 열정을 쏟아부은 셈이다. 이런 그녀의 시도는 뉴욕 미술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1999년에는 두 차례의 솔로전을 열었다. 이후 갤러리스트 마리안느 보에스키(Marianne Boesky)가 그녀의 작품을 전시하기 시작하며 아티스트 레이첼 파인스타인으로서 성공을 거두게 됐다.존의 격려로 레이첼은 조각뿐 아니라 그림에도 도전하고 있다. 그녀가 선보인 거울 페인팅 시리즈의 첫 전시회를 열었을 때는 그의 영역을 침범한다는 두려움을 극복해야 했다. 존이 그녀의 작품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냐는 루머가 떠돌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당시 작품을 완성하는 모든 과정을 비디오로 촬영해 이런 의심을 불식시켰다. “만일 존이 조각상을 만들었다면 어느 누구도 제가 대신 만들었다고 말하진 않았을 거예요.” 그녀가 불만을 털어놓는다. 그녀의 페인팅 시리즈에는 존의 작품 속 피사체와는 달리 인상주의적인 터치가 가미돼 있다. 5 자신을 마리 앙투아네트로 형항화한 그녀의 작품과 섹시한 조각 작품이 엿보인다.6 그녀의 딸 플로라(Flora)의 모습이다.젊은 시절의 레이첼, 존 커플은 아티스트 세실리 브라운(Cecily Brown), 포토그래퍼 제시카 크레이그 마틴(Jessica Craig Martin)과 함께 느지막히 일어나 스튜디오에서 어울린 다음 파티로 직행하는 생활을 반복하며 ‘경솔하다’거나 ‘작품을 미화시키는 소란스러운 행위’라는 말로 예술계의 따가운 시선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유복한 10대 아이들’처럼 생활했다는 당시와는 달리 현재 그녀의 삶은 평온하고 꽤 일상적이다. 소호 로프트에 있는 레이첼의 집에 들어서자 로코코 풍의 크고 화려한 침대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존은 우리가 이 침대를 산 걸 후세인이 알면 빼앗으러 올지도 모른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죠. 금을 입힌 정말 크고 웅장한 침대예요.” 세 아이의 엄마로서 레이첼의 모습은 어떨까? “요즘엔 아침 7시에 일어나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체육관에서 운동과 킥복싱을 하죠. 정오 즈음에 스튜디오에 오고요.” 그녀는 일주일에 8시간씩, 적어도 3일은 작업하려고 애쓰지만 지금은 다소 무기력한 상태라고 했다. “엄마가 되는 것에 두려움이 있어요. 아티스트가 아닌, 나 자신이라는 독립적인 인간이 아닌 또 다른 누군가가 되는 것에 말이에요.” 이런 이유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그녀는 스튜디오에 아이들이 드나들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스튜디오 바닥에 놓여 있는 장남간 트럭만이 그녀가 세 아이의 엄마라는 흔적을 남기는 듯했다.패션에 관해서도 존은 그녀에게 큰 도움을 준다. “존은 제 스타일리스트예요. 지난 5년 동안 바쁜 나날을 보내느라 제가 옷을 직접 사본 적 없는 것 같아요. 아이 셋을 낳고 보니 옷이 잘 맞지 않는 탓도 있고요. 지금은 스타일리스트가 직접 집으로 오는데 존이 제게 이런저런 조언을 많이 해줘요. 마음에 드는 것, 들지 않는 것을 그가 판단해요. 최근에는 테일러링이 돋보이거나 허리 라인을 강조한 옷을 고르죠.” 이날 저녁, 레이첼과 존은 컬렉터와의 저녁 약속이 있다고 했다. “래리 가고시언(Larry Gagosian)을 비롯한 많은 예술계 인사들이 올 예정이에요.” 이미 도착해 있던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준비를 서두르자 그녀가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이왕이면 좀 더 근사해 보이는 게 좋겠죠?”*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3월호를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