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희는 유기견이었습니다. 어디서 태어났는지, 엄마아빠가 누군지, 어떻게 보호소로 가게 됐는지, 아무 것도 정확하지는 않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저희 집에 오기 전과 후가 너무나 달라졌다는 거에요.
작년 겨울, 녹사평 역 부근에서 처음 만난 숙희의 모습입니다. 생기 없는 눈빛, 뚱한 표정, 그야말로 개.우.울......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저 모습이 잊혀지질 않아 결국 캠페인을 진행하는 운영자분께 연락을 취했고, 그렇게 숙희는 저희 집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 사이 숙희가 어떻게 변했는지 보실래요~?
혼자 계단을 우다다다 뛰어 올라가 놓고는, 헥헥 거리는 저를 보며 얄밉게 잇몸만개 미소를...!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고 미끄럼틀에서 뛰어 내리는 도발 감행! (숙희야 미끄럼틀은 타라고 있는 거야...;;)
처음 왔을 때는 제가 만지는 것부터 안아주는 것까지 만사 다 귀찮아하더니 이제는 저의 입술을 탐하느라 안달이라는~!
커피 마시는 제 옆에 가만히 앉아, 저렇게 살인미소도 보내준답니다! 숙희야, 니가 웃으면 나도 좋아.
숙희를 입양한 걸 부모님이 아셨을 때 저를 엄청 나무라셨어요. "세상에 유기견이 수만, 수십만 마리라는데 니가 한 마리 입양한다고 세상이 뭐 얼마나 달라지겠니?" "엄마도 강아지 너무 좋아하지만, 숙희는 덩치도 크고......넌 결혼도 했는데 슬슬 아기 생각도 해야......"
맞습니다. 우리나라 유기동물 실태에 대해 얘기하자면 밤을 새도 모자랄 지경일 거에요. 특히 숙희처럼 중대형견인 아이들에게 한국의 현실은 너무나도 가혹해요. 요즘 같은 계절에 복날이라도 다가오면 늘 불안에 떨어야 하고, 공격성이 강해 사람을 쉽게 물거라는 편견에 시달려야 하며, 아파트나 빌라가 대부분인 우리나라 문화에서는 좀처럼 입양이 안 돼 임보가정과 보호소를 전전하다 결국엔 안락사를 당하기 십상입니다. 더구나 순종만을 선호하는 한국에서는, 덩치도 큰데 믹스라고 하면 입양될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집니다.
하지만 길거리 입양 캠페인에 나와 주변을 멍하게 쳐다보던 숙희의 눈빛을 마주했을 때, 전 확신할 수 있었어요. 동물 복지와는 아직 거리가 먼 이 사회를 바꾸기엔 턱없이 부족할지라도, 내가 숙희를 입양함으로써 저 아이가 살고 있는 세상만큼은 바꿔줄 수 있을 거라고. 이렇게 숙희가 밝아진 모습을 보니 제 생각이 틀리지 않은 거 같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