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과 예술이 만나다 우리 그릇 | 엘르코리아 (ELLE KOREA)

한 나라의 문화 수준을 보려면 그 나라의 생활 도자기를 보라고 했다. 녹슬지 않는, 깨지지 않는 아름다움을 찬미하던 시대를 지나, 매일 마주하는 식탁에 잔잔한 바람이 불어온다. 이 땅의 산과 강을 닮고 거친 듯 하지만 보드라운 마음씨를 닮은 우리 그릇. 꼭 한식만 담으란 법이 있나. 일상을 설레이게 만드는 우리 그릇의 마법 같은 솜씨를 느껴보자. :: 엘르,옛스러운,아름다운,보드라운,따뜻한,일상,생활,도자기,그릇,엘라서울,엣진,elle.co.kr :: | :: 엘르,옛스러운,아름다운,보드라운,따뜻한

다과상우리 그릇을 처음 시작하기 좋은 것이 바로 찻잔이나 과일 그릇 같은 단품들이다. 우리 그릇을 떠올리면 녹차를 우려내는 다기를 먼저 떠올리기 쉽지만 녹차가 아니더라도 일상 속에서 쉽게 먹고 마시는 내용물을 담아 활용해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 그릇의 자연스러운 형태와 질감은 전통음료나 한과, 다과뿐만 아니라 형형색색의 스위츠나 케이크 디저트와도 잘 어울린다. 색상을 배치할 때 반드시 한 가지 색깔로 통일할 필요는 없다. 서로 다른 색을 믹스 매치하는 것이 포인트. 식탁 위에 과일을 담아 올려놓으면 장식적인 효과도 거둘 수 있다. 비어있는 그릇 자체만으로도 문양과 색감을 감상할 수 있는 마음에 드는 그릇을 찾아보자. 일상에 여유로움과 향기를 느낄 수 있다. 주안상오랜만에 반가운 친구가 찾아왔다. 늦은 저녁 예기치 않은 방문이라 풍성하게 대접할 만한 음식이 없어도 이야기 꽃을 피우기에는 술상이 제격. 국물 있는 음식을 따뜻하게 덥혀 모양새 고운 그릇에 담고 편안한 술잔을 꺼내 격식 차리지 않은 술상을 내어보았다. 집에 있던 오래된 술이면 어떻고 가게에서 사온 소주면 어떨까. 오래된 친구와 잘 익은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추억을 꺼내 만지작거린다. 지나간 시간만큼이나 정겨운 자리는 익어가고. 건네는 잔에 정을 담아 보낸다. 와인와인은 저마다 사연이 있고 역사가 있다. 주인을 닮은 그릇은 세월을 함께 보내며 더불어 나이 든다. 와인을 꼭 투명한 글라스에 담아 먹어야 할 필요는 없다. 오래된 와인 문양을 형상화 한 와인 글라스와 개다리 소반에 질 좋은 치즈와 과일을 담아 우리식 와인 파티를 즐겨보면 어떨까. 와인의 역사와 떼루아를 논할 뿐만 아니라 그릇에 담긴 장인의 숨결을 함께 이야기하면서. 그릇을 배치할 때는 같은 소재로만 통일하지 않고 유리나 목기를 함께 스타일링 하는 것이 훨씬 세련되게 표현할 수 있다. 문화는 원형이 따로 있지 않다. 자기 것으로 소화하고 현재의 쓰임새에 맞게 끊임없이 변형되는 것. 고정관념을 던진 창의로운 발상이 삶을 새롭게 만든다. 밥상아침 식탁이 변하고 있다. 된장국에 잡곡밥, 갖가지 나물과 밑반찬을 고수하는 집도 있고 간단히 토스트와 스크램블, 진한 커피 한 잔으로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다. 바쁜 아침에 아침상이 왠 사치냐며 덜 깬 잠 쫓으며 달려나오는 이는 있고, 아침밥이 하루를 버티게 하는 힘이라며 무슨 일이 있어도 챙겨먹고 나오는 사람도 있다. 영어로 아침은 break + fast. 바쁜 일상을 멈추고 잠시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시간이다. 평범한 식탁 위 매트 대신 도자 매트를 깔고 한국식, 서양식 메뉴에 상관 없이 소박한 아침상을 차렸더니 왕의 아침이 부럽지 않다. 가운데 센터피스에는 계절에 따라 꽃이나 과일, 견과류 등을 담아도 되고, 나눠 먹는 밑반찬을 가지런히 담아도 된다. 소박한 밥상이 하루의 시작을 얼마나 기름지게 하는지. 숨쉬는 그릇은 음식의 맛과 온도를 잘 보존하고 사람 몸에도 이롭다. 세제 대신 밀가루와 물만으로도 간단하게 닦을 수 있는 우리 그릇은 지구의 생명에도 기여하는 기특한 물건이다. 이윤신 (도예작가)1월 말 '이도' 갤러리를 오픈 준비 중이다. 많이 바쁘겠다. 20여 년이 넘게 그릇을 만들어오고 있다. '이윤신'이라는 이름을 알리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작가 한 사람의 힘이 아니라 여러 작가들의 힘을 모아 그 동안의 노하우를 함께 나누면서 유통과 시장을 함께 고민하는 장소를 열고 싶었던 게 꿈이다. '이도'는 현대미술과 현대 도자작품을 중심으로 새로운 생활문화를 제안하는 복합 문화공간이다. 2개의 전문갤러리와 판매공간, 문화강좌와 직접 도자기를 만들어볼 수 있는 도예교실 등 감상과 구매, 체험이 모두 가능하다. 우리그릇의 동시대적 의의는? 우리도자는 우리 시대에 맞게 편안하게 우리의 식탁에서 쓰이는 것이라야 한다. 변화하는 식생활 패러다임에 따라 지금의 우리 모습에 맞게 어울리는 도예가와 도예작품이 나와야 한다. 전통적인 방법만 고수한다고 좋은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전통적인 유약이나 소재를 쓰진 않는다. 대신 전통적인 느낌을 살릴 뿐. 기법에 대한 집착은 따로 없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2010년도에 이윤신이 만든 그릇을 보면 이 시대에 맞는 그릇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이윤신만의 아이덴티티를 언어로 풀어내면? 여유. 흉내낼 수 없는 보통의 아름다움. 우리 그릇을 스타일링할 때 고려할 점은? 경험을 많이 해 봐야한다.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재료를 자신이 해석한 대로 담아보다 보면 자신의 스타일을 찾을 수 있다. 정해진 룰은 따로 없지만 음식을 담는 비례나 여백 정도에 대한 미적 감각을 살려보면 좋을 듯. 입문자를 위한 조언을 부탁한다. 단품부터 시작하라. 풀 세트로 구입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씩 구입해서 어울림을 찾다보면 절로 재미를 느낄 수 있을 듯. 꼭 도자기만 고집하지 않고, 그 사이에 유리컵이나 나무쟁반, 금속 촛대 같은 재료가 다른 오브제를 활용하면 훨씬 세련된 식탁을 마련할 수 있다. 도자기가 깨지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깨지기 때문에 소중히 다뤄야 하는 것이고 소중한 마음이 담긴 그릇을 쓰게 되면 마음이 순화되는 느낌이 든다. PHOTO 이종수 이천수 (도예작가)도예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1997년 이인재 선생님을 만나 무유소정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청자, 분청, 백자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유약을 쓰지 않는 신라 토기와 같은 질박한 느낌에 안성에 처음 작업실을 마련해 1년 정도 작업하면서 대학원 수료. 박여숙 화랑을 만나 전시를 하면서 안정적으로 작업을 하게 되었다. 우리 도자기의 매력을 꼽는다면? 기교 없음의 매력이랄까. 형태감을 억지로 맞추지 않는 자유분방함이 돋보인다. 흙의 원래 물성을 살린 극도의 자연스러운 맛이 있다. 중국은 완벽한 대칭과 스케일, 일본은 집약적 정교함. 일본 그릇은 안 만져도 되는데 더 만지거나 안 그려도 되는데 더 그린 감이 있다. 반면 우리그릇은 만들 수 있는 데 비워놓은 매력이 있다. 항상 한 구석은 비워놓는 멋이나 우리의 심성이 그릇에 녹아있다. 거칠면서 부드럽고 무뚝뚝하면서도 상냥한, 말투는 투박해도 마음은 곱디고운 우리의 감성을 담고 싶다. 작품 속에 새로운 생각을 녹이기 위해 노력하는 점이 있다면? 전통의 뿌리를 가지고 현재의 쓰임새에 맞게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것이 없다. 다만 나의 스타일대로 변형하는 것. 음악이나 미술 같은 다른 분야의 예술, 그리고 인문교양을 통해 얻는 것이 오히려 많다. 도자기만 생각한다고 좋은 도자기가 나오진 않는다.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닫힌 세상이 아니라 열린 세상에서 작업하는 것이 좋은 결과를 낸다. 자신의 그릇을 쓰는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써주기를 원하는가. 늘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 뭔가 어느 정도는 부족한 부분이 있는데 그것을 써주는 사람들이 고맙다. 좋은 그릇을 만드는 것은 그 그릇을 쓰는 사람들. 사람들이 많이 쓸 때 좋은 그릇이 또 나올 수 있다고 본다. 도자기는 결국 쓰는 재미다. 모셔두고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만질 수 있는 예술이다. 차가우면 차가운 대로, 뜨거우면 뜨거운 대로, 철이나 플라스틱에 비해 청명한 음향감도 좋다. 프렌치, 이탤리언, 차이니즈 어느 나라 음식을 담든지 다 어울리는 우리그릇.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 그릇을 쓰는 즐거움을 느꼈으면 싶다.* 자세한 내용은 엘라서울 본지 2월호를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