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어권 국가에선 <The Birth of Korean Cool>(Euny Hong 저)이란 책이 화제다. 이 책의 화두는 이렇다. 한류가 이젠 거대한 현상이라는 것 그리고 정부의 계획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국가적 자부심을 고취시키는 것뿐 아니라 새로운 경제적 돌파구로서의 역할도 해낸다는 것. 확실히 한류의 파급 효과는 상당하다. 영국의 집에 전화를 걸 때마다 어머니께선 항상 서울에 관한 다큐멘터리나 한국과 관련된 TV 쇼를 보았다는 얘기를 하신다. 영국의 유력지 <가디언>에서도 거의 매주마다 한국이 쿨하고, 주가가 치솟고 있다는 내용을 다룬다. 내가 처음 한국에 갈 거라고 말했을 때, 하나같이 “그게 어디에 있는데?”라고 했던 반응을 생각하면 굉장히 대조적인 변화다. 게다가 이젠 더 이상 ‘K팝(K-pop)’을 ‘교황(K-Pope)’과 혼동하는 이도 없다. 수십만의 인파가 모여 K팝에 환호하는 놀라운 광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한국을 찾았던 초기엔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던 터라 한국 정부가 K팝의 해외 홍보를 비롯한 관련 사업을 전반적으로 지원한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한 공무원의 귀띔에 따르면 K팝 관련 예산이 그 어떤 문화 상품에 할애되는 예산보다 훨씬 막대한 액수로 증액돼 왔다고 한다. 어떤 면에선 성공적인 투자였다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경보를 울려야 할 때가 아닐지. 한국 정부가 보다 폭넓은 한국 문화를 해외에 알리고자 한다면 말이다. 처음부터 주력해 온 K팝이 성공적인 열풍을 불러일으키긴 했지만 그 외에 다른 분야들은 아예 보이지 않는 상황이니 말이다. 요즘엔 한국영화도 충분히 한국 문화를 알리는 주력 상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1700만 관객을 동원한 <명량>은 북미에서도 개봉 3일 만에 50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였다. 나는 한국영화가 K팝보다 훨씬 더 강한 파급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영화는 한국의 고유 문화나 영역을 더 많이 전달해 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영화는 이를 입증할 만큼 훌륭한 수준에 도달했다. K팝은 극도로 잘 조율된 엔터테인먼트다. 하지만 대부분 한정된 영역에 국한돼 있다.
 
내가 종종 그리워하는 영국의 풍경은 음악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똘똘 뭉친 친구들끼리 밴드를 만들고 소규모 클럽에서 자신들의 연주를 보여주는 모습이다. 그들 가운데선 종종 행운과 실력이 맞물려 빅 밴드로 성장하는 이들도 있다. 한국에서 이런 과정을 좀처럼 보기 힘든 건 한국의 음악 산업을 수많은 아이돌 그룹이 독점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TV부터 라디오, 신문, 심지어는 차트까지 극소수의 밴드나 뮤지션을 제외하면 아이돌 밴드 일색이다. 물론 한국의 아이돌 밴드는 굉장한 재능을 자랑한다. 그들은 숙련된 춤과 노래 실력을 지녔으며 외모도 훌륭하다. 저마다 정확히 무엇을 해내야 하는지, 어떤 무대를 연출해야 하는지, 잘 짜인 각본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하지만 연기에 충실할 뿐 직접적인 감정을 표출하는 일은 극히 드문 것 같다. 뮤지션으로서의 감정이나 사유의 결과물이 아니라 그저 상품에 가까운 음악을 전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적인 흥미가 잘 느껴지지 않는다.
 
대개의 나라에선 대중음악 차트가 다양한 장르들로 혼재돼 있다. 아이돌 스타일의 팝, 인디밴드의 록, 힙합 혹은 기타 뮤지션의 넘버 등등. 한국에도 다채로운 장르의 대중음악을 즐기고 싶어하는 리스너들이 적지 않아 보인다. 2년 전에 찾았던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에서 수천 명의 관중들이 라디오헤드의 노래를 일일이 따라 부르는 엄청난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한편으론 학창시절에 만나 함께 음악을 시작해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이 영국 밴드가 한국에서 활동을 시작했다면 홍대 클럽을 벗어날 수 있었을까 문득 생각했다. 라디오헤드는 자아성찰적인 메시지와 독창적인 음악성을 지닌 밴드다. 잘생긴 외모를 지녔거나 근사한 분위기를 풍기지도 않는다. 게다가 이들은 자신들 스스로 밴드를 결성했고 오직 자신들이 들려주고 싶은 음악만 한다.
 
아이돌 밴드가 주도하는 K팝이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주력 상품으로 일컬어진다는 건 조금 씁쓸하다. 양적인 성장엔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질적인 의미에서 정말 한국을 대표할 만한 자격이 있는가라는 의문이 든다. 게다가 솔직히 이런 방식이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긍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것 같지도 않다. 예쁘장한 소녀 혹은 소년들은 혼연일체로 잘 맞춘 군무를 근사하게 소화해 낸 무대에서 내년 이맘때면 완전히 잊혀질 노래들을 부른다. 그 무대에 열광하던 이들도 언젠간 반복성에 지쳐 싫증내고 말 것이다. 그런 만큼 K팝을 비롯한 한국 대중문화 전반에서 다양성이란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사람들은 결국 진심 어린 감정이나 지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예술을 갈망하기 마련이다.
 
이런 방향성을 염두에 둔다면 영화는 확실히 대안이 될 만한 분야다. 문화기획자들도 이런 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 그렇다면 아이돌 밴드에 초점을 맞춘 K팝의 미래는 어떨까?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론 아이돌 밴드의 음악은 이제 어느 정도 시장성의 한계에 다다랐다고 판단한다. 한국 미디어에선 자화자찬에 가까운 긍정적인 반응 일색이지만 이미 아시아에선 그 인기가 최고점을 찍었고, 미국과 유럽에선 답보 상태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종종 만나는 영국의 지인들은 대부분 K팝이 지나치게 달콤한 가사에 편중됐다거나 너무 완벽하게 짜인 듯한 인상을 준다고 말한다. 그런 면에선 완벽하게 기획된 역량을 자랑하는 아이돌 밴드의 음악과 함께 새로운 음악적 장르를 K팝의 전면에 세워보는 것도 괜찮은 시도일 수 있지 않을까? 한국적인 인디밴드나 힙합 뮤지션의 성장 가능성을 타진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앞서 말한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로 돌아가보자. 당시 라디오헤드의 다음 무대에 오른 팀은 한국의 3인조 일렉트로니카 그룹인 ‘이디오테잎(Idiotape)’이었다. 사실 난 이들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지만 완전히 흥분된 마음으로 페스티벌의 피날레를 목격할 수 있었다. 이디오테잎은 관중을 열광시키는 법을 잘 알고 있었고 지금껏 내가 경험한 세계적인 뮤지션에 비해 결코 떨어지지 않은 수준의 무대를 선보였다. 그래서 나는 이제 미국이나 유럽으로 투어하는 아이돌 밴드에 대한 국가적 지원을 아끼는 대신 이런 걸출한 실력을 지닌 뮤지션들에게도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현재의 K팝 열풍, 그러니까 세계 속으로 뻗어나가는 한국의 문화적 성장세가 비단 정부의 관여로 만들어진 결과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일본을 대신하는 ‘쿨한 아시아’의 중심으로 발돋움하려면 지금보다 더욱 다양하고 확실한 한국적 이미지가 반영돼야 한다. 한국이란 나라가 ‘소녀시대국’이나 ‘빅뱅랜드’로 대변되는 대신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해서 보다 풍부한 문화적 자산을 보유한 진정한 문화 강국임을 보여주길 기원한다.
 
 
WHO'S DANIEL TUDOR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의 전직 한국 특파원이자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의 저자인 다니엘 튜더는 한국에 대한 깊은 애정과 예리한 시선을 지닌 영국인이다. 경리단 길 수제 맥줏집 ‘더 부쓰’의 공동 설립자이기도 한 그는 지금도 한국에서 맥주를 마시며 한국을 읽고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