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워터를 마신다는 것 | 엘르코리아 (ELLE KOREA)

"미디엄 레어로 주세요"라고 스테이크를 주문하듯 이제 레스토랑에서도 물도 "플레인으로 주세요"라고 이야기하는 시대다. 밥상과 주방의 물이 달라지도있다. |

플레인으로 주세요 청담동에서 제법 소문이 자자한 프렌치 레스토랑을 찾았을 때였다. 길고 복잡한 주문을 마무리하는데 웨이터가 묻는다. “하우스 워터로 드릴까요?” 음. 하우스 워터라니. 하우스 와인이란 단어가 주는 정겨움 대신 왠지 억지로 짜낸 말 같아 영 부담스럽기만 했다. 하지만, 이런 경우가 처음은 아니었다. 지난해부터 특급 호텔이나 청담동 일대 파인 다이닝을 표방하는 레스토랑들 사이에선 본 메뉴와 와인 리스트 외에 메뉴판을 하나씩 더 내미는 것이 유행이었다. 바로 ‘워터 리스트’였다. 어쨌거나 이 말은 다른(아마도 더 비싼) 물이 따로 있다는 이야기다. 다른 옵션에 대해 물었더니 역시, 스파클링 워터와 프리미엄 빙하수가 있단다. 한 번 더 되물었다. “하우스 워터 말고 다른 걸 주문하면 ‘차지(왠지 이 단어를 써야 할 것만 같았다)’해야 하는 건가요?” 역시 그렇단다. ”아, 그럼 그냥 물, 아니 ‘플레인’으로 주세요.” 정식 세트 가격을 생각하면 특별한 물 한잔이 대세에 큰 영향을 끼치진 않겠지만 ‘플레인’이면 충분할 것 같은 날이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외국 여행에서 돌아오면 가장 반가운 두 가지가 있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택시값이 우선 그랬고 또 하나는 어딜 가든 공짜로 주는 맛있는 물이었다. 우리는 물이 좋은 나라였고 그만큼 물 인심도 후했다. 그랬는데, 언제부턴가 사람들이 물 타령을 하기 시작했다. 제각각 브랜드를 들먹이며 다른 물은 먹지 않는다던 셀러브리티 마케팅 효과도 제대로 먹혔다. 툭하면 튀어나오는 먹을거리 파동 또한 믿을 수 있는 물에 대한 갈증에 한몫 했다. 정부가 아무리 안전한 아리수의 효능을 강조해도 소용없었다. 이제 백화점 생수 코너는 난감할 만큼 종류가 많아졌다. 어느덧 카페에서 어려운 이름의 ‘물’을 주문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색색깔의 비타민 워터나 페리에, 산 펠레그리노처럼 스타일리시한 보틀에 담긴 미네랄워터는 유행이기도 하고 개성이기도 했다. 물은 패션이었다. 블랙베리를 쓰는지, 연아의 햅틱을 쓰는지에 따라 그 사람에 대한 인상이 미묘하게 달라 보이는 것처럼 남들과 다른 물을 마신다는 건 어떤 이들에겐 그럴듯한 액세서리가 됐다. 어찌됐건 한 가지 사실은 분명했다. 커피와 와인이 그랬고 사케가 그랬듯이 물에 대한 취향을 드러내는 게 더 이상 유별나 보이지 않는 시대가 됐다는 거다. 프리미엄 워터를 마신다는 것 지난 8월 1일 오픈한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워터 바’의 정현경과 오승철은 ‘워터 소믈리에’ 혹은 ‘워터 어드바이저’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국내에 들어와 있는 생수만 1백50여 종류란 사실을 떠올리면 다양한 물의 종류와 기능, 궁합 등에 대해 척하면 척하고 대답해줄 전문가의 등장은 전혀 놀랍지 않다. 에디터들이 패션위크 동안 반드시 들리는 파리 컬렉트 숍의 대명사 꼴레트에서나 보던 워터 바가 가장 대중적인 서울의 백화점 식품관에 들어왔다는 상징성도 주목할만 하다. 우리나라의 물 시장은 연간 4500억원 규모다. 하지만 2025년이면 80억 세계 인구 가운데 약 50억 명이 깨끗한 물을 찾아 헤매게 될 거고 우리나라 또한 예외가 아니라는 유엔인구기금의 예상을 떠올리면 가능성은 무한대다. 기업들이 이런 사업성을 간과할 리 없다. 이미 내로라하는 대기업들과 지방자치단체들은 저마다 물 사업에 뛰어들거나 더 유명한 브랜드의 제품 수입에 앞장서 왔다. 늘 원료에 목말라하는 화장품 회사들 또한 진작부터 물 전쟁에 합류했다. 생수 시장에서 압도적인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건 제주의 화산암반수인 삼다수지만 ‘프리미엄’이라는 태그가 달려 있는 수입 생수들의 가파른 매출 상승률은 경기 침체니 불황이니 하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다. 두 명의 워터 어드바이저와 함께 수십 여 종류의 물을 놓고 이야기를 한참 나누는데 2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한 커플이 왔다. 남자가 페리에를 고르자 여자는 얼른 남자를 말린다. “여기까지 왔는데 페리에라니. 다른 거, 처음 보는 거 먹어보자.” 지난 3월에 오픈한 신세계 부산 센텀시티 워터 바에서 워터 어드바이저 활동을 하다가 새로 오픈한 강남점으로 온 정현경 점장은 프리미엄 생수에 대한 관심이 나날이 대중화되는 걸 느낀다고 했다. 아직까지 물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남자보다 여자가 많다. 커플의 경우에도 주로 여자친구가 끌고 오는 형태. “남자 분들은 이거 먹을 돈으로 술 드시죠. 하하. 하지만 담배나 술 끊는 분들 중엔 물로 효과 보신 분들도 있어요. 워터 바를 찾는 분들 중엔 이미 생수 브랜드에 익숙하고 뭔가 편의점과는 다른 물맛을 보고 싶다는 기대를 안고 오시는 분들이 많아요.” 요즘 제일 인기는 비타민 워터. 유행처럼 한 병씩 들고 쇼핑을 계속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수입 생수 가운데 매출 1위는 여전히 에비앙이고 탄산수 가운데는 페리에나 산 펠레그리노 등 대중적 인지도가 있는 브랜드들이 강세지만 최근엔 사람들의 입맛도 까다로워지고 다양해지고 있는 추세다. 프랑스에서 유일하게 약국에서 판매한다는 이드록시다즈(Hydroxydase)는 최근 출산 후 복귀한 톱 탤런트 A가 다이어트할 때 마셨다는 소문이 나면서 여성들과 연예인들 사이에 인기다. “다이어트에 좋다는 소문이 나니 박스로 구입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식사 전에 먹으면 식욕이 저하될 수 있지만 운동 안하고 이 물만 먹는다고 살이 빠지는 건 물론 아니에요. 결정체가 보일 정도로 미네랄 함량이 높아 약간 짭조름한 맛이 나는데 처음 먹는 사람 중엔 오히려 뱉어내는 사람도 있어요.” 또 다른 워터 어드바이저인 오승철의 충고다. 맛보다 피로나 눈떨림 현상을 호소하는 사람들에게 기능으로 권한다는 이드록시다즈는 200ml 아담 사이즈가 4천4백원. 결코 만만치 않은 가격이다. 하지만 신세계 강남점 워터 바에서 최고가를 기록하는 건 수입 생수가 아니라 ‘내 몸에 이로운 자작나무 수액’이라는 설명이 적혀 있는 이로수(IROSOO)다. 가격은 500ml 한 병에 1만6천원. 충북 영동에 대단위 자작나무 단지를 일부러 조성해 웰빙을 넘어 ‘힐빙’을 외치며 SK에서 야심차게 선보인 이로수는 3월 말에서 4월 초까지, 1년에 오직 15일 동안만 채취할 수 있다고 한다. 너무 비싼 가격 탓에 어드바이저들도 쉽사리 권하진 않지만 앉은 자리에서 두 병을 내리 마실 정도로 마니아들도 생겨나고 지난여름 웨스틴조선에선 이로수를 얼린 얼음으로 만든 10만원 상당의 ‘황제 팥빙수’를 선보였을 정도로 아는 이들 사이에선 잘나가는 물이다. 한 병에 1만5천원 하는 캐나다 빙하수 텐 사우전드BC(10 thousand bc)도 마찬가지다. 지난 해, 유행처럼 해양 심층수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였다면 요즘 점점 두각을 나타내는 빙하수는 ‘실크를 머금는 듯한 부드러움’이 특징이다. 그런가 하면 패키지 디자인으로 상을 받기도 했던 보스(BOSS)처럼 잘 빠진 보틀 디자인으로 우선 먹고 들어가는 물도 있다. 페리에나 산 펠레그리노 처럼 보틀 디자인도 예쁜데다 맛도 심심하지 않은 미네랄워터들은 파티나 모임에서 한층 인기다. 가격의 거품 자체만을 이야기하자면 어차피 커피나 콜라도 크게 다를 건 없다. 하지만 카페인이나 색소 걱정할 필요도, 속이 부대낄 염려도 없다. 이건 물이니까. 게다가 물은 물인데 보기에도 좋아서 맥주병이 있던 자리를 어느새 쏙 대치해도 별 위화감 없이 파티에 어울린다는 장점이 있다. 페리에는 지속적으로 인터내셔널 아티스트들과 콜래보레이션을 벌여 1년에 한 번씩 개성 있는 패키지 디자인의 리미티드 에디션을 선보인다. 그 안의 물맛은 비록 똑같을지언정 마시는 기분은 분명 다르다. 복잡하고 읽기 어려운 라벨이야말로 오히려 와인이 사랑받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라는 이야기가 있다. 도멘과 샤토가 어쩌고 빈티지가 어쩌고 하는 건 모르는 이들에겐 그저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일 뿐이지만 아는 이들에겐 서로 취향을 인정해주는 증거이자 첫 만남에도 어색함을 단번에 녹여낼 수 있는 쏠쏠한 이야깃거리가 된다는 거다. 프리미엄이라는 태그로 분류되는 수입 생수들 대부분도 마찬가지다. 각각 몸에 좋은 성분들을 내세우기도 하지만 잘나가는 요즘 물들은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 컨텐츠가 있다. 빙하를 직접 뚫어 만년설을 녹여서 잡다한 불순물을 빼버리고 한 방울씩 모았다는 텐사우전드BC, 톰 크루즈가 ‘마시는 음료의 전부’라고 말했다는, 이탈리아 밀라노 알프스 언덕 700m 깊이의 온천수로 만들어졌다는 산 펠레그리노. 그저 다르다는 것만으로 그들은 이미 존재 가치를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마실 것인가“맛에 대한 감상은 아무래도 주관적일 수밖에 없어요. 정답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니까. 남들이 뭐라 해도 자기는 효과를 느꼈다면 그게 맞는 물인 거죠.” 워터 어드바이저 오승철은 미묘하고 주관적인 미각의 차이에 대해 강조하면서 한국 음식과 잘 어울리는 탄산수로 오스트리아 출신의 몬테스(MONTES)를 추천했다. 부드러운 탄산을 입 안에 머금으면 우리 음식의 미각을 살려준다는 거였다. 와인 마니아들 가운데서도 와인과 물의 균형을 강조하는 이들이 많다. 물로 와인을 한 모금 마신 후 와인의 맛을 누르지 않을 정도의 물로 입 안의 찌꺼기를 헹구면 와인 본연의 맛과 향을 더욱 살릴 수 있다는 거다. 예를 들자면 부드러운 느낌의 미네랄 광천수 아쿠아파나는 구조감 있는 풀 보디 와인을 지나치게 순한 와인으로 만들어 어울리지 않고 반대로 톡 쏘는 느낌의 산 펠레그리노는 오크 통에서 제대로 숙성된 풀 보디 와인과 서로의 향을 보충해주며 조화롭게 어울린다는 거다. 그런가 하면 요리에 색다른 물을 사용해 미묘한 맛의 차이를 표현해내는 사람들도 있다. 푸드 스타일리스트는 김은경은 여행하다 우연히 알게 된 강원도 금진의 해양온천수를 종종 애용한다. “나트륨 함량이 다소 높은 편인데 이 물에 돼지고기를 담갔다가 요리하면 기름기가 싹 빠져 담백해져요. 특히 한 컵 정도 섞어서 밥을 지으면 밥에서 푸른 빛이 살짝 돌면서 깔끔한 느낌이 일품이에요. 좀 오래된 쌀은 눅눅하고 특유의 냄새가 날 때가 있는데 물이 달라지면 햅쌀마냥 생생해지면서 밥의 맛을 풍부하게 해주는 거예요.” 물과 음식, 혹은 물과 와인에 대한 궁합은 여전히 각자의 입맛에 따라 개인 차가 나게 마련이고, 마시는 물의 종류와 방법도 제각각이지만 취재 중 만난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똑같은 소리를 했다. 어떤 물이든, 많이, 자주 마시라는 것. “굳이 고 미네랄이 함유되지 않아도 좋고 꼭 수입산 프리미엄 미네랄워터가 아니어도 괜찮아요. 삼다수도 좋고 어떤 물이어도 좋아요. 자주, 많이 마실수록 좋아요.” 전문가들의 충고를 떠올리며 이번 마감엔 하루 다섯 잔씩 마시던 커피를 다양한 종류의 물로 바꿔 봤다. 컴퓨터가 부팅되는 동안엔 산 펠레그리노를 마셨다. 병을 딸 때마다 ‘톡’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위로 솟구쳐 올라오는 수많은 기포들이 보기만 해도 상쾌했다. 약간은 쌉싸름하고 개운하면서 상큼한 맛은 오후 2시면 어김없이 몰려오는 단잠을 쫓기에도 그만이었다. 큰 맘먹고 사온 이로수는 살짝 달착지근한데다 미끈미끈해서 솔직히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야근 피로가 절정에 달하는 새벽 무렵 꾹 참고 마셨다. 유난히 원고가 안 써지던 그제 밤엔 괴테가 즐겨 마셨다던 슈타틀 파킹앤(Staatl Fachingen)을 마시며 분위기를 잡아 보기도 했다. 물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마시는 물은 오랜 습관 그대로, 지난여름 제주 여행에서 한라산 중턱의 맑은 공기를 직접 몸으로 느꼈던 삼다수 마을의 화산암반수 삼다수로 시작했다. 여전히 에비앙 빈 병에 볼빅을 채워서 건네면 과연 구별할 수 있을지 자신 없지만 물맛에 재미를 붙이는 만큼 카페인을 덜 마시고 식사량도 줄일수 있어 몸이 가벼워지니 이것 참 생각했던 것보다 기특하다. 물, 정말 물로 볼 게 아니었다. 내 몸에 약이 되는 물 마시기 하루에 사람이 배출하는 수분량이 보통 3.5~4ℓ정도인 데 반해 식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섭취하는 양은 1.5~2ℓ 정도에 그친다. 결국 하루 여덟, 아홉 잔은 마셔야 균형을 맞출 수 있다는 것. 이왕 마시는 물, 조금 더 똑똑하게 마시는 법. 1 술은 물론 커피나 녹차를 많이 마실땐 반드시 그만큼 수분을 보충해야 한다. 언뜻 녹차나 커피도 어차피 물을 타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기 쉽지만 문제는 이뇨작용을 일으키는 카페인이다. 2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공복에 마시는 물 한 잔을 잊지 말 것. 소화기관을 자극해 소화를 돕고 변비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벌컥벌컥 들이키는 것보다 심장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씹어먹듯 천천히 마실 것. 3 물의 온도는 상온이거나 약간 차가운 편이 좋다. 체내의 활성산소를 제거해주는 육각수가 많이 생성되기 때문. 미네랄워터의 경우 얼음이나 레몬, 라임 등도 가급적 피하는 게 좋다. 비싸고 좋은 물에 굳이 정수기 얼음을 섞어 고유의 물맛을 변질시킬 필요는 없으니까. 4 식사 전 물 한 잔은 적당한 포만감을 주기 때문에 과식을 방지하고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식사 중이나 직후엔 물이 위산을 희석시켜 오히려 소화에 방해가 될 수 있으니 되도록 마시지 않는 것이 좋다.*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10월호를 참조하세요!